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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헌터사-26화 (26/200)

# 26

총포법 –1-

따스한 햇볕이 뺨을 간지럽혔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항상 느껴지던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 대신에 허공만 휘젓게 된다.

"어마?"

눈을 떴다.

작은 방, 두툼한 이불과 요, 단조로운 벽지 무늬.

어딘지 안다. 엄마랑 같이 자는 큰방은 아니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집에 있는 방이다. 명절마다 가서 자곤 했었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흐머니?"

할머니를 부르려고 했는데 말이 잘 안 나온다. 당황해서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으응!"

잠깐 사위가 조용해지더니 방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얼굴을 한 김애경이 뛰어 들어왔다.

"하은아?"

"어마!"

울며 김애경에게 안기는 하은이.

김애경이 와락 하은이를 껴안았다.

"응, 그래. 하은아. 엄마 여기 있어. 울지 마, 착하지? 뚝!"

"뚝!"

엄마에게 안긴 하은이가 배시시 웃는다. 깨어나 보니 혼자 있어서 무서웠던 모양.

"어마, 배고파."

안정을 되찾고 칭얼거렸다.

"그래, 엄마가 밥 차려줄게. 할머니 할아버지랑 TV 보고 있어."

"응!"

어느새 아버지와 어머니도 들어와 하은이를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하은이가 벌떡 일어나 손을 흔든다. 자연히 부모님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자리에 앓아누운지 벌써 열흘째. 말이 조금 부자연스럽기는 하나 그것 말고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김애경이 하은이를 끌어안다시피 하고 거실로 나왔다.

"하은아, 안녕?"

"아녕!"

거실에는 김현만 아니라 이세희도 앉아 있었다. 어젯밤 정부청사를 복구하고 자기 집으로 간 게 아니라 김현과 김애경을 따라온 것. 당분간은 같이 있고 싶다나.

천진한 하은이의 인사에 이세희가 웃음을 지었다.

"어머, 하은이 너 언니 기억하니?"

"응! 기억하지! 내가 언니 지켜줬잖아!"

"뭐? 호호호."

이세희가 웃으면서도 걱정스러운 얼굴로 김현을 돌아본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은이와 이세희가 대면했던 시점에는 이미 하은이가 유령에게 빙의되어 있었으니까. 아직도 그 후유증이 남아 있나 싶었나 보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은이는 괜찮습니다."

"하은이가 왜?"

"빙의 됐을 때 기억이 남아 있잖아. 그건 문제가 안 돼. 원래 빙의 되면 꿈꾼 것처럼 기억할 때가 많거든. 유령을 완벽히 쫓아냈느냐가 중요하지. 하은이는 걱정하지 마."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냐? 빙의라니? 유령?"

아버지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걱정할까 봐 일부러 감추었으니 당연한 노릇.

이제는 밝혀야겠지. 망설이다가 말했다.

"신촌 병원에 저희가 휘말렸을 때요. 하은이는 거기에서 유령에 빙의가 됐어요."

"뭐, 뭐라고?"

"지금은 완전히 치료됐으니까 걱정 안 하셔 돼요. 오히려 또래 애들보다 훨씬 더 건강할걸요?"

"할머니, 할아버지! 나 봐라? 엄청 힘 쎄다?"

하은이가 자기 얘기를 하자 신이 났나 보다. 거실 구석에 있는 실내 자전거로 가서 들어 올리는 시늉을 했다.

어릴 때부터 곧잘 하던 장난.

그런데......

그르르릉.

평소라면 미동도 하지 않았어야 할 실내 자전거가 요동을 치는 것 아닌가.

하은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더욱 힘을 주었다. 급기야 그 작고 여린 팔이 50kg이 넘는 실내 자전거를 만세 부르듯 치켜들고 말았다.

"저, 저런!"

"하은아!"

장내에 있던 이들 모두 깜짝 놀랐다.

딱 한 명, 김현만 빼고.

하은이가 놀란 사람들을 보고 으스대는 얼굴을 했다. 실내 자전거를 앞뒤로 크게 흔들며 자랑을 했다.

"엄마, 나 좀 봐라!"

"하은아! 위험해!"

가녀린 몸이 흔들리는 게 금방이라도 실내 자전거를 떨어뜨려 다칠 것 같다. 김애경이 급히 달려갔다. 실내 자전거를 빼앗아서는 거실 바닥에 내려놓자 하은이가 실쭉 웃었다.

오른팔을 구부려 보이며 알통을 만드는 하은이. 알통이라고 해봐야 소담하기 그지없다. 유독 삼촌을 보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삼촌! 나 힘세지? 삼촌은 이런 거 못 하지?"

"하하, 그래. 못 한다, 이 녀석아."

"야, 너는 웃음이 나와?"

김애경이 눈총을 보낸다. 이세희나 부모님도 걱정스러운 기색. 그러나 김현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능력>

[이름] 주하은 [성별] 여성 [나이] 3

[진영] 지구 [종족] 인간 [상태] 강건

[근력] 13 [체력] 12 [민첩] 12 [감각] 12

[혼력] 15 [의지] 14 [통찰] 13 [위엄] 11

[성향] 유명, 거신, 용왕

[성혼] 없음

근력을 보라.

무려 13이다. 성인 남자가 평균적으로 10이라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수치. 각성하기 전의 김애경보다 오히려 높다.

특히 혼력과 의지가 엄청난 수준. 아직 한국 나이로 다섯 살 밖에 안 됐다는 점을 생각하면 10년만 지나도 인간을 초월하는 지경까지 성장할 것이다. 원래는 없음이던 성향도 세 개나 생겼고.

"걱정하지 마. 별 것 아니니까."

"뭐가 별 게 아닌데?"

"누나가 하은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그건 순전히 누나가 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유령이든 천사든 이계종은 인간의 육체에 빙의하는 게 가능해. 이때 대처를 잘못하면 정신과 영혼에 영구적인 후유증을 얻지만 반대일 때는 180도 달라져. 오히려 강건해지는 거야."

"좋은 거라고?"

"그래. 하은이는 앞으로 다른 애들보다 더 빨리 자라고 힘도 세져. 머리도 좋아지지. 아마 10년만 지나도 외국어 10개 정도는 가뿐히 할걸? 서울대는 따놓은 당상이겠다."

"그거 정말이지?"

서울대 운운하자 김애경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자기도 서울대를 나오긴 했어도 자식이 머리 좋다고 하는데 싫어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그런데 넌 그걸 다 어떻게 아는 거냐?"

아버지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물었다.

"저, 이래 뵈도 예지 능력자잖아요. 그래서 알아요. 미래를 엿봤거든요."

"예지로 그런 것까지 안다고?"

"제가 본 건 많아요. 제가 보고 싶은 걸 마음대로 못 봐서 그렇지...... 이제 다 말씀드릴게요."

다시 한번 포장된 진실을 이야기한다.

3월 1일, 폭주하는 성혼에 휘말려 허리를 다친 이후로 무서운 꿈을 꾸었다고. 세계가 침식되고 외계의 구조물이 강림하며, 온갖 괴물과 외계종이 지상을 거니는 꿈을.

다만 김애경과 이세희에게 그러했듯 자세히 풀어놓지는 않았다. 근자에 벌어지는 일과, 그로 인한 결과를 관측했다고만 했다.

'다 말할 수는 없지.'

김현은 끝까지 믿을 상대와 전략적으로 끌어들일 인물에게만 인류의 끝에 대해 풀어놓을 생각이었다. 아쉽게도 부모님은 그 두 범주 모두에 속하지 않는다.

역사에 남은 기록을 봐도, 김현이 품은 기억을 봐도 두 분은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으니까. 괜히 얘기해 봐야 걱정만 시키고 비밀이 새어나갈 염려만 커진다. 그러느니 적당히 알려주고 마는 게 낫지.

"우와, 삼촌이다! 엄마도 있어!"

이야기가 지루했던지 하은이가 리모컨을 꼼지락거렸다. 뉴스 채널이 나오며 화면에 김현과 김애경, 이세희가 비치자 박수를 쳤다.

반면 김애경과 이세희, 부모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화면 하단에 박힌 자막 때문이다.

[침식된 세계 내부 영상 공개.]

벌써 어젯밤부터 몇 번을 보았던 그것.

모든 방송사가 죄다 호외로 다루고 있었다. 국내만이 아니다. 전 세계 최초 영상인만큼 세계 어느 뉴스 채널을 틀어도 저 영상이 반복해서 재생되었다.

"우와!"

영상만 보면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한 영화 같다. 거대한 물뱀이 날뛰고 기계 의수가 날아가 폭발하자 하은이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엄마 최고!"

왜 김현이 아니라 김애경을 찾냐고?

당연한 것 아닌가. 김현의 시점으로 촬영한 장면이니 김애경이 물뱀과 드잡이질을 벌이는 게 아주 잘 보였으니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갔다.

하늘 위에서 금빛 점들이 날아온다. 카메라의 주인이 권총을 꺼내 항전한다. 한 발에 하나씩, 모조리 떨어뜨리는 게 멋있기는 하나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권총.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였지?

김애경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도대체 저걸 왜 공개했는지 모르겠네. 야, 너 법 잘 모르지? 허가 없이 총 소지 하면 10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이야. 가만히 입 다물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왜 보여주지 못해 안달이 났어?"

"저기 언니, 혹시 저도 해당하는 거예요?"

"너만 그런 줄 알아? 나도 마찬가지야. 아오, 진짜! 난 아예 실업자 되게 생겼다고! 이럴 거면 입이라도 잘 다물고 있던가!"

"엄마? 삼촌이랑 싸워?"

"아냐. 그냥 얘기하는 거야."

속사포처럼 퍼붓는 걸 하은이 덕에 멈췄다. 김애경이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다.

김현은 빙그레 웃었다.

지금 김애경이 이리 성질을 부리는 이유는 간단했다. 김현이 액션캠의 메모리 카드를 한성일보를 비롯한 유력 언론사에 뿌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침식된 세계 두 곳의 내부가 전 세계에 공개되었다. 문제는 도중에 권총과 산탄총 사격을 가하는 장면도 함께 나왔다는 것.

언론사에서 적당히 편집하긴 했으나 다 가리기란 불가능. 지금은 인터넷에서 난리가 난 상태였다. 전후 사정이 어떻게 되든, 김현 일행 모두 총포 소지 허가를 받지 않은 건 사실이니까.

"넌 웃음이 나와?"

"나만 믿어. 다 생각이 있어서 한 일이니까."

"생각은 무슨.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어휴, 누나. 생각해 봐. 고작 권총이랑 산탄총 그거, 진짜 문제가 될 것 같아?"

"문제가 되지. 암, 크게 문제가 되지."

"그럼 누나 성혼은? 지금 제법 잘 쓰잖아. 주먹이 아니라 손가락만 써도 사람 하나 죽이는 건 문제가 안 될 건데, 총은 규제하고 누나 성혼은 규제 안 하면 말이 안 되는 거 아냐?"

"그건 그렇지만......"

"내 팔도 그래. 총, 아니 어지간한 수류탄보다 더 센 무기인데 지금 멀쩡하게 차고 있잖아? 누나. 지금 총포법은 구시대의 법이야. 그걸 언제까지 고수할 수는 없어. 그래서 일부러 공개한 거야. 침식된 세계 내를 알리기도 할 겸, 몇 가지를 조금 바꾸려고."

일종의 충격 요법.

사실 이러려고 액션캠을 달고 들어간 것이다. 내부의 정보도 풀고 총포법 개정에 대해 목소리도 내려고.

"그래도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진짜 구속되기라도 하면 어떻게 해요? 어쨌든 불법인 건 사실이잖아요."

"구속이라...... 뭐,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야!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걱정마. 대한민국 정부가 제정신이라면 날 구속하기는 힘드니까."

"정부가 일이란 일은 다 하는 줄 아니? 그럼 경찰은 왜 있고, 검찰은 왜 있어? 아, 진짜 답답하다."

사실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둔 건 있다. 김애경이 결사반대할 게 뻔해서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뿐.

"어쨌든 하은이가 일어나서 다행이다. 경찰서 가기 전에 하은이 일어나는 것만큼은 보고 싶었는데."

"너어......"

김애경의 눈이 흔들렸다.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다 내렸구나 싶어서.

"별일이야 있겠니. 위에서도 생각이 있으면 우리 현이를 감옥에 가두지는 못할 거야."

어머니가 애써 희망 어린 말을 하지만 다들 표정이 안 좋다. 화면상으로 나오는 불법 행위의 증거가 너무 명확한 이상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런데도 김현은 느긋하기만 했다.

'언제쯤 경찰이 찾아올까?'

오늘? 아니면 내일?

긴급체포일 수도, 단순 참고인 소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현은 전자일 확률이 더 높다고 봤다. 경찰은 경색된 조직이고, 김현이 최근 거만한 반응을 보여서 미운털이 박혔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장 정윤식 경위도 그렇게 몰아붙였으니 그럴 수밖에.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체포가 낫지.'

보다 숨 막히게, 보다 극적으로.

지금 김현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긴급체포는 경찰의 정당한 권리이지만, 그걸 행사한다면 무시무시한 역풍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역풍이 김현에게 날개를 달아주겠지.

띵동.

"누, 누구세요?"

별안간 초인종이 울리자 어머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마포구 경찰서에서 나왔습니다.]

"혀, 현아......"

생각보다 빠르다.

걱정하지 말라고 웃어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문을 열어준다. 사복형사들이 김현을 보고 흠칫 놀랐다.

"집행하시죠."

알고 있다는 듯 두 손을 내밀자 형사들이 자기들끼리 시선을 교환한다.

그것도 잠시.

한 나이 든 형사가 앞으로 나서며 수갑을 꺼냈다.

"김현 씨.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 10조와 제 12조 1항을 위반하였으므로 형사소송법 제 200조의 4항에 의거, 2018년 5월 16일 오전 11시 11분 당신을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체포구속적부심을 법원에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철컥.

수갑이 김현의 두 손목에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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