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
총포법 –2-
"현아!"
"김현 님!"
비명 같은 아우성이 거실을 어지럽혔다.
"괜찮아요, 괜찮아."
김현은 여전히 여유롭기만 하다. 그때 김애경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다 말고 자연스럽게 소파 밑으로 밀어 넣는 게 보였다.
역시 똑똑하다니까.
김현에게 가려 형사들은 김애경의 행동을 보지 못했다. 대신 수갑을 꺼내 들고 김애경과 이세희에게 다가온다.
"김애경 씨? 이세희 씨? 같이 가주셔야겠습니다."
"저, 저도요?"
"알겠어요."
의연하게 손을 내미는 김애경. 그에 비해 이세희는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형사가 재촉하자 안절부절못하다가 겨우 손을 내민다.
"아이고, 현아! 애경아!"
"잠시만요, 형사님들. 잠시 차분하게 얘기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부모님이 거의 졸도할 것 같은 얼굴을 한다. 형사들이 나서기 전, 김현은 길게 머리를 저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세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흥!"
누군가 콧방귀를 뀐다.
그게 네 뜻대로 될 것 같냐는 눈치.
김현에게 수갑을 채운 나이 든 형사가 짧게 목례를 했다.
"그럼!"
형사들이 좌우에서 김현을 압박했다. 거의 끌고 가다시피 집 밖으로 김현을 인도한다. 김애경과 이세희도 마찬가지. 현관문을 나서자 어머니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현아, 애경아!"
가슴이 쓰렸다. 원판 김현의 심장이 부모님의 울음에 반응하는 것.
그러나 김현의 눈은 차갑기만 하다. 경찰차에 태워지고, 경찰차가 경광등을 켜고 도로 위를 질주할 때도 말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아휴, 아주 여유만만하시네."
옆에 앉은 젊은 형사가 이죽거린다.
"뒷배가 만만치 않은가 봐?"
들을 가치조차 없는 말.
가뿐히 무시.
젊은 형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쭈, 대통령이랑 얘기도 하고 기자들 앞에서 건방도 떨고 그런다, 이거지? 허이구, 세상 무서운 줄을 알아야지. 너 임마, 이제 끝났어. 감옥에서 푹~ 썩을 일만 남았다고."
"김 형사!"
"아, 왜요. 하늘 높은 줄도 모르고 날뛰던 놈이 정의 구현 당하는데, 반장님은 통쾌하지도 않아요?"
여전히 말이 없는 김현.
생각보다 경찰 내에서의 김현에 대한 비토 감정이 상당한 모양이다. 건국대학교에서도, 정부청사에서도 김현은 경찰에게 좋은 소리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게 아니면......
김현의 눈이 심원한 빛을 뿌렸다.
'뒤에서 조종하는 작자가 있거나.'
경찰차가 강변북로로 접어들었다. 여전히 차가 막히고, 경광등을 울려대는데도 차들이 안 비켜주자 빵빵 경적을 울린다.
"아, 왜 이렇게 막혀!"
"여기가 항상 그렇죠, 뭐. 기자 놈들 몰려오기 전에 들어가야 하는데요."
"아침에 그렇게 빨리 해치우고 나왔는데 냄새나 맡았겠어? 끽해야 오후에 몰려와서 지랄하겠지."
결론부터 말해서 틀렸다.
경찰차 세 대가 마포구 경찰서로 들어가자마자 기자 수십 명이 몰려들어 카메라를 들이댄 것.
"김현 각성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왔습니다!"
"야, 거기 찍어! 거기! 안에 사람 보인다!"
"김현 맞아?"
"맞아요! 김애경이랑 이세희도 있습니다!"
"진짜? 지금 속보 내보낸다? 틀리면 죽을 줄 알아!"
"아, 빨리 보내기나 해요!"
빵빵!
경적을 울려보았으나 기자들이 비킬 생각을 않는다. 가뜩이나 들어가는 입구가 좁아 어찌 피해갈 수도 없었다. 형사 하나가 창문을 열고 버럭 고함을 질렀다.
"이보쇼, 당신들. 전부 공무 수행 방해야! 얼른 안 비켜?"
그러나 역효과.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야, 창문 사이! 저기 안!"
"김현이다!"
"얼굴 좀 들어봐요!"
사실 형사들이 벙거지를 씌워 얼굴을 가렸으나 가볍게 틀어서 벗어 버린 다음이다. 형사들이 신경질을 냈지만 뭐 어쩔 것인가. 급기야 한 형사가 목을 잡아 누른다.
어쭈?
김현은 속으로 웃으며 슬쩍 고개를 틀었다. 그 바람에 창문 사이에서 보이는 각도로 형사의 손이 노출된다. 뒷머리를 억누르는 손을 카메라 수십 대가 동시에 찍었다.
"야, 찍었어?"
"와, 씨발 놈들. 지금이 쌍팔년도인 줄 아네."
"저 새끼들 영장은 받았대?"
두 차례 세계 복구를 하면서 능력치를 크게 기른 참이다. 더구나 혼력을 이용하면 일시적으로 근력이든 민첩이든 강화할 수가 있었다. 이런 기법을 이용하면 지금처럼 잔재주를 부리는 것쯤 간단하다.
뿐이랴. 혼력을 극한까지 쥐어짜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을 재현하는 것도 가능했다.
아마도 오늘 이 기법을 최대한 활용해야겠지.
형사가 급히 창문을 닫았다. 일단 소리가 차단되자, 어떤 형사가 욕설을 내뱉었다.
"이런 씨발......"
아울러 김현을 죽일 듯이 노려본다.
하나도 안 무섭다.
야생의 호랑이만 나타나도 오줌을 지릴 것들이 무슨? 김현은 경찰차 시트에 편안히 몸을 묻었다. 숫제 휘파람까지 불기 시작하자 형사들이 이를 갈았다.
"이 새끼가, 여기가 네 안방인 줄 알아?"
"두고 보자. 들어가기만 하면 오늘이 네 제삿날이다."
이해가 안 된다.
왜 이 작자들은 김현이 대한민국의 공권력에 얌전히 무릎을 꿇을 줄 아는 걸까?
심지어 왼팔, 의수조차 그대로 놔두지 않았나. 자기들이 허리에 차고 있는 구형 권총보다 훨씬 위력적인 무기인데도.
뭐, 이해는 된다. 여론을 의식해서 그런 거겠지. 의수를 떼어내면 흉한 절단 부위가 바로 노출되고, 사진이 찍히기라도 하면 동정표가 쏟아질 테니.
또 있다. 타성에 젖어서도 그렇다. 지금까지 평화로웠으니 평화로울 거라고 착각하고, 자기네들 권력이 각성자에게도 통할 거라고 보는 무지함.
저절로 냉소가 나온다. 아울러 반드시 이 경직된 상황을 깨뜨려야 한다는 의지를 다잡게 된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길 가던 아주머니가 한 기자에게 묻는다. 주변에 둘러서서 영상 촬영을 하는 사람도 많았다.
"김현 각성자가 체포당했답니다!"
"김현? 혹시 그, 건국대학교에서 대학생 구해서 나온 사람이요?"
"그렇다니까요!"
"맙소사!"
듣고 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술렁인다.
김현이 영웅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각성자이고, 수많은 사람을 구해서 좋게 보는 사람도 있고 특유의 거만한 태도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인식이 일치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 경찰이 체포해서 끌려가면 망한다는 사실.
김현 개인만이 아니라,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가.
"막아요, 막아!"
"못 들어가게 막읍시다!"
시민들이 몰려든다.
마포구 경찰서 앞에 길게 진을 쳤다. 아예 인간 띠를 둘러 경찰차 세 대를 둘러쌌다. 심지어 도로 위의 자동차들까지 소식을 듣고 빵빵거리며 항의를 했다.
형사들이 난감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야...... 왜 이래......"
"너 이 새끼, 알바 동원한 거 아냐?"
시민들의 반응은 김현으로서도 뜻밖.
기자들이야 좋다고 달려올 줄 알았지만 시민들이 왜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지 얼핏 이해가 안 된다.
묘한 감응에 휩싸여 시민들을 둘러보는 김현.
가슴 한편이 간지러웠다.
왜 이러는 거지?
사실은 간단하다.
5월 4일, 첫 침식이 일어난 후 대한민국에서만 희생자가 몇 명이나 있었을까?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최소한 천 명이 죽었다. 또, 아직 침식된 세계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천 명을 넘는다. 그 사람들도 백이면 백 죽었을 테니 2천 명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뜻.
사망자 2천!
6․25 이후 처음 있는 숫자다. 역대 대한민국의 어떤 사건 사고도 이 정도 피해를 내지는 못했다.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북한과의 도발로 국지전이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더구나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에서도 십여 군데 희생자들끼리 자력으로 복구한 것이 다니......
시민들은 목전까지 다가온 위협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길 가다가 은색 물체만 봐도 간이 콩알만 해진다. 그 와중에 위안거리가 되는 게 있다면 딱 한 가지.
'우리나라에는 김현이 있어.'
이것이었다.
이 때문에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김현이 없었다면 매일같이 불안에 떨어야 했겠지. 실제로 김현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기 전, 바로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랬고.
그런데 김현을 잡아간다고?
절대로 안 될 말이다!
"내려라! 내려라!"
"내려라!"
시민들이 합창하듯 고함을 지른다. 처음에는 엷었던 인간 띠가 어느새 수백 명을 넘어가고 있었다.
"반장님, 이거......"
이러한 시민들의 심리는 경찰 측에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거였다. 젊은 형사가 늙은 형사를 돌아본다.
"빌어먹을."
"어, 어쩌죠?"
"그렇다고 집행 안 할 수는 없잖아. 지원 요청해!"
"하지만 반장님......"
"뭐해? 지원 요청하라니까!"
마포 경찰서에서 제복 입은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뭘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시민들이 몸으로 막아서는데 뭘 어쩔까.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질서를 유지해달라고 소리 지르는 게 전부였다.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합니까?"
"너 이 새끼......"
놀리듯 묻자 젊은 형사가 눈을 부라린다.
몸을 더욱 자동차 시트에 묻었다.
"긴급체포 구금 시간이 48시간이었죠?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는데요. 그래야 형사님들도 편하고 저도 편하죠. 안 그렇습니까?"
"젠장."
반장이라는 자가 눈알을 굴린다.
"김현 씨. 제안 하나 합시다."
"뭡니까?"
"김현 씨도 아시겠지만, 일단 우리가 김현 씨를 체포한 건 적법한 행위입니다. 동의하시죠?"
"그건 알죠."
"차로는 못 들어갈 것 같으니 걸어서 들어갑시다. 대신이라고 하긴 뭐해도, 우리도 안에서 김현 씨 편의를 봐 드리겠습니다."
"편의라......"
"반장님!"
젊은 형사가 불만을 터뜨렸으나 반장이 엄격한 표정을 짓는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 젊은 형사가 꿍얼거리며 고개를 숙인다.
김현은 피식 웃었다.
"좀 전만 해도 이 새끼 저 새끼 하시더니, 아쉬워지니까 편의를 봐주신다니 태세 변환이 참 빠르십니다."
"으흠, 내가 말실수한 거는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말로만요?"
지그시 눈빛을 보내는 김현.
반장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김현의 눈이 빙그르르 이동해 젊은 형사를 보자, 젊은 형사도 죽상을 지으며 사과를 한다.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다리를 뻗으며 거만한 어조로 말했다.
"걸어서 들어가는 것 정도는 해드리죠. 대신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끙...... 지은 죄도 있으니 그건 감안을 하지요. 알겠습니다."
기자들 사이를 지나는 일이다. 도중에 무슨 돌출 발언을 할지 몰랐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문이 열렸다.
반장이 먼저 내리고 다음으로 김현과 젊은 형사가 내렸다. 무전기로 지시를 했는지 김애경과 이세희도 모습을 드러낸다.
벌 떼처럼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김현 각성자님! 한 마디 부탁합니다!"
"총포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었다는 게 사실입니까?"
말이 필요 없다. 수갑 채운 두 손목을 길게 앞으로 내밀었다.
퍼퍼퍼펑!
카메라 플래시가 집중된다. 손을 내민 김현과 양쪽에서 팔을 붙든 형사들 구도로.
형사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김현이 하하 웃으며 염장을 지른다.
"형사님들. 고개 똑바로 들고 앞을 보시죠. 죄지은 것도 아니고 왜 머리를 돌립니까?"
가히 초유의 상황.
범죄자라고 붙잡힌 자는 당당하고 붙잡아가는 형사들은 시선 둘 곳을 몰라 한다.
누군가 벼락처럼 질문을 던졌다.
"김현 각성자님! 총포법 위반에 대한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예, 인정합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제가 법을 위반한 것은 사실이니까요."
형사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한숨이 지면에 닿기도 전, 김현은 그들의 기대를 산산조각내고 말았다.
"그래서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시선이 집중된다.
기자도 시민도 경찰도 김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살처럼 쏟아지는 시선을 받아내며 선언했다.
"오늘, 저는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려고 합니다."
"......어?"
누군가 헛바람을 들이킨다.
다들 이해하지 못한 눈빛이다. 멍한 눈으로 김현의 입만 쳐다본다.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농담이시죠?"
코웃음을 치는 김현.
턱을 쳐들며 되물었다.
"15년 뒤면 망해 없어질 나라, 국적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잠시 정적.
세상이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