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28화 (28/200)

# 28

총포법 –3-

공기가 얼어붙었다.

모두 말을 잊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지?

뭐가 망해?

나라가 망한다고? 대한민국이?

난데없는 폭언에 누구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김애경이 멀찍이서 묻는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우리나라가 왜 망해?"

대답 없이 시선만 던졌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인류가 멸종하는 판국에 대한민국이 남아 있기란 완전히 불가능했으니.

"말도 안 돼......"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만다.

그런 김애경의 반응에 비로소 정신줄을 잡았나 보다. 사람들이 곳곳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뜻입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말 그대로입니다. 15년 뒤, 즉 2033년에 대한민국은 사라집니다. 압록강, 백두산, 두만강 남쪽에서는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삼도천 너머에서 들리듯 흐릿해졌다.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다. 재차 맹공을 가한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볼까요? 오래 살고 싶으신 분들, 당장 비행기 표 사서 미국이나 중국, 일본으로 가세요. 대한민국보다 방사능 덩어리 후쿠시마가 안전합니다. 거기서 사시는 게 멍청하게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것보다 몇 년은 더 산다, 이 말입니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우리나라인데, 우리가 지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옳소! 하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김현은 냉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 수갑이 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그러려고 했지요. 실제로도 그랬고. 신촌 병원은 제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을 친 거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건국대학교는 누가 구했습니까? 정부청사 침식을 경고한 건 누구죠? 제가 없었다면,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하지만 정부는, 대한민국은 그런 저에게 쇠고랑을 채우는 것으로 대답했습니다. 나라가 망하든 말든, 구시대의 법을 관철하겠다는 명목으로!"

양쪽에서 형사들이 팔에 힘을 준다. 두 팔이 꽤 아팠다. 그러나 기린의 생명이 있는 한 이 정도로는 김현의 의지도, 육체도 제압할 수가 없다.

강단 있어 보이는 한 아저씨가 소리친다.

"억울하신 건 알지만, 그게 국적을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왜 이유가 되지 않죠? 좋습니다. 다른 측면에서 말씀드리지요. 방금 말씀하신 분, 제가 공개한 영상을 보셨습니까?"

"봤습니다."

"그럼 아시겠네요. 총 한 자루에 실탄 100발만 있으면 약한 괴물 정도는 일반인이라도 대처할 수가 있습니다. 갑자기 침식된 세계에 끌려가도, 외부에서 도움이 올 때까지 자력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소리에 시민들이 일제히 술렁였다.

"자, 우리나라가 총기 소지 허가 국가라고 생각해 봅시다. 세계가 침식됐어도 처음부터 저희가 상대했던 거대 물뱀 같은 강한 괴물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아기 천사 같은, 고블린 같은 약한 괴물만 출현합니다. 권총 한 자루로도 쓰러뜨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시민들이 서로 도와가면서, 1시간, 딱 1시간만 버티면 됩니다."

"1시간......"

"우리나라는 땅덩이가 작아서 어디서든 비행기만 뜨면 1시간 이내에 도착합니다. 도시 몇 개 선정해 놓고 각성자들로 이뤄진 특수 부대를 대기시킨다고 생각해 보죠. 그리고 세계 침식이 일어나면 출동시키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만 하면 천 명이 죽을 걸 희생자 없이 넘어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원 역사에서도 시행됐던 방법이다. 톡톡히 효과를 보았으나 총기 소지 합법 국가들보다는 효율이 낮았다. 시민들이 버티는 시간 자체에 한계가 있었으니.

현실성 있는 대책에 시민들이 웅성거렸다. 진지하게 총기 소지 합법화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총기 소지를 합법화하면 여러 부작용이 생길 것 같은데 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부작용이 더 크냐, 이익이 더 크냐의 문제 아닙니까? 저는 굳이 계산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음......"

"하지만 제 경우는 조금 다르지요. 뭐하러 우리나라에 총기 소지를 합법화하자고 주장하고, 입법될 때까지 싸웁니까? 이미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나라로 가면 되지."

다시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 시민들은 이제 당혹을 넘어 조금씩 분노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꾸짖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은 애국심도 없냐?"

"하, 애국심이요?"

대놓고 비웃는 김현.

수갑을 내밀며 이를 갈 듯 소리쳤다.

"목숨을 걸고 괴물들과 싸웠더니 돌아온 게 이겁니다! 애국심이요? 그건 도대체 어디에 필요한 물건입니까? 현실을 보세요! 그 알량한 애국심 때문에 재산을 바치고 생명을 바치신 분들이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친일 매국노들은요? 독립유공자 자손은 폐지를 주워 생활하고, 매국노 자손은 떵떵거리며 사는 게 현실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씁쓸한 현실을 꼬집는 외침.

시민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분명 국가유공자들에 대한 지원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의 인식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매국노 관련해서는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수갑을 낀 채 두 손을 활짝 펼쳐 보이며 말했다.

"당신들은 당신들 좋은 곳에서 죽어 버리세요. 전 제 가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갈 테니."

"그만둬."

보다 못한 김애경이 제지했다.

"네가 왜 이러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그만둬. 옳지 않은 일이야."

"왜 옳지 않은데?"

"아까 할아버님 말씀 못 들었어? 넌 애국심도 없니? 케네디도 그랬잖아. 국가가 날 위해 무엇을 해줄 걸 바라기에 앞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야 한다고."

"이해가 안 된다. 애국심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어서?"

"있지.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무리를 이루는 건 사람의 본능이야."

"철 지난 사회 계약론은 더는 의미가 없어."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야?"

"간단해. 누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 사회의 보호를 받지 않아도 무방한 개인이 곧 출현해. 개인의 무력이 국가를 넘어서는 때가 온다고. 이런 상황에서, 개인은 왜 자기보다 약한 국가에게 충성을 바치고, 이딴 웃기지도 않는 수갑에 채워져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지? 사람들 구하겠다고, 괴물들 잡겠다고 총 들고 간 게 죄야?"

김현이라고 애국심과 애족심이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강한 편이다. 소위 말하는 국뽕 대체역사 소설을 심혈을 기울여 썼을 정도니까. 지금도 말을 할 때마다 그러지 말라는 듯 심장이 콕콕 쑤셨다.

그러나 22세기에 태어난 아론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개념.

애초에 모든 민족과 국가가 사멸한 다음 출생한 아론이다. 인류애는 있을지언정 애국심과 애족심은 없다. 자연히 자기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 격해졌다. 형사들이 김현을 잡아끈다.

"인제 그만하시죠. 시간은 충분히 드렸습니다."

"들어갑시다."

버티는 김현.

형사들의 손이 거칠어진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혼력까지 동원하여 버티기 때문이다.

약이 올랐는지 젊은 형사가 김현의 무릎 뒤를 걷어찼다.

"가자니까, 이 애국심도 없는 새끼야!"

"어쭈?"

그러나 그 정도에 꺾일 김현이 아니다. 되레 흉험한 웃음을 지으며 젊은 형사를 돌아보았다.

"지금 때렸습니까?"

"내가 언제?"

아차 싶어 오리발을 내밀지만 이미 김현에게 명분을 준 다음.

불같은 눈으로 젊은 형사를 노려보며,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부터 저항하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뭐, 뭐?"

"당신네들, 국가권력에 저항하겠다. 이 말입니다."

다시금 두 손을 앞으로 길게 뻗는다.

사진에 잘 담기도록, 누구나 다 볼 수 있게.

왼손을 꺾는다. 거의 180도까지, 보통 인간의 손이라면 불가능한 각도까지 꺾인다. 다섯 손가락 전부가 팔에 가 닿았다.

그대로 수갑을 움켜쥔다.

꽈드득.

가볍게 박살 나는 수갑.

형사들의 입이 벌어진다. 의수가 살인 무기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 자리에서 수갑을 부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

이어 몸을 털자 팔을 붙잡고 있던 형사들이 저만치 튕겨 나간다.

"우왓!"

"으악!"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본능의 경고.

한 경찰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고 있었다.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리볼버 탄창을 돌리는 장면이 시야에 잡혔다.

실탄을 쏘겠다고?

김현의 눈이 가늘어진다.

혼력이 가속된다. 전신의 신경망이 전깃불 튀듯 기지개를 켠다. 사고가 빨라진다. 시간이 느려진 듯 세상이 둔하게 움직였다. 그 와중에 홀로, 김현의 의수만 정상적으로 움직인다.

권총을 정조준. 이후 자그마한 폭음이 터진다.

캉!

괴물 상대라면 턱도 없는 공격. 그러나 인간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인.

충격파가 터진다. 일직선으로 길게 뻗어 나간다. 권총을 정확히 후려치자 경찰이 권총을 떨어뜨리고 만다.

"이, 이건......"

망연한 표정을 짓는 경찰.

김현이 돌진했다.

전력으로 들이받으려는 찰나, 한발 앞서 김현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그만둬."

전신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는 여성.

김애경.

형사들이 귀신이 곡한다는 얼굴을 했다. 분명히 조금 전만 해도 김애경을 꼭 붙들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저기까지 이동해 버렸으니.

속으로 감탄을 했다.

벌써 혼력을 가속하여 초가속을 얻는 방법을 터득했구나, 하고.

"그만 안 두면 어쩔 건데?"

"내가 막을 거야."

김애경이 음울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어 두 손을 흔들어 수갑을 털어 버린다. 그 간단한 동작에 얼어붙은 수갑 덩어리가 탕탕 쏟아졌다.

두 눈이 참으로 결연했다. 어떻게든 김현을, 자기 동생을 막아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겠다는 태도.

빙긋이 웃었다.

"누나. 내가 왜 미국 안 가고 여기 있는 줄 알아?"

뚱딴지같은 질문.

일순, 김애경의 눈에 의아함이 깃든다.

"갑자기 미국은 왜?"

"그렇잖아? 미국이야말로 각성자의 천국이야. 지금은 아니어도 곧 그렇게 돼. 내가 미국인이었으면, 그래서 미국 예일대를 구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취급을 받기나 했겠어?"

"그럼 미국 가지, 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

"다 이유가 있지."

단 하나의 이유가.

"누나 때문이야."

"뭐?"

"누나 때문이라고. 누나가 아니었으면 진작 미국 갔어. 높은 연봉 받고, 히어로 좋아하는 미국 사람들 지지받아가면서 편하게 싸웠을걸?"

2118년에 세운 시공 이동 계획에서 목적지는 다름 아닌 2018년 1월 1일의 서울이었다.

왜?

애경 장군 때문에.

미국이 국력으로는 세계 최고이고, 각성자 전력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애경 장군의 가치가 미국보다 낫다고 판단한 것.

그런 시대이고 그런 인물이다.

김애경의 눈이 복잡해진다.

김현의 말에 숨은 뜻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몸을 돌렸다. 권총을 빼 들고 이쪽을 겨누고 있는 형사에게 다가간다.

"왜, 쏘게요?"

피식 웃자 형사가 손을 떤다.

"이, 이이......"

"쏠 테면 쏘세요. 그 순간 대한민국의 멸망이 확정되니까."

협박 같은 말을 무시하지 못한다. 김현의 말에 얼마만 한 무게가 실리는지는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뻣뻣하게 굳고 마는 형사.

품을 뒤졌다. 수갑이 나오자 스스로 두 손에다가 건다. 철컥하는 쇳소리와 함께 결박 상태로 돌아갔다.

조금은 차분해진 김현. 다시 기자들과 시민들 앞에 섰다.

"보시다시피 각성자들은 그깟 총 한 자루, 실탄 몇 발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위험한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각성자들 전부를 수용소에 처넣을 겁니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격렬히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예정된 종말만 앞당기게 됩니다. 이런 판국에, 이런 시대에 언제까지 구닥다리 법을 붙잡고 있을 겁니까? 여러분은 시대의 변화를 실감해야 합니다. 다리가 찢어질 정도로, 아니 부러뜨려가며 쫓아가지 않으면 결국 도태됩니다. 그걸 아셔야 해요."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다.

그냥 들어가도 될 일이지만 일부러 비아냥거리며 몇 마디를 남겼다.

"뭐, 이제 저랑은 상관없는 일이죠?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어디든 환영합니다. 전 대한민국에 대한 모든 기대를 다 접었으니까 연락 주십쇼. 조건만 맞으면 탈옥해서라도 찾아갑니다. 그럼!"

보란 듯이 상큼한 미소를 한 방 날려준다.

아직도 해롱거리는 형사들을 툭툭 쳤다. 형사들이 급히 일어나 김현의 두 팔을 붙든다. 그리고 데려가기 시작하는데, 어째 형사들이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김현이 달고 경찰서로 향하는 듯했다.

그 뒷모습을 시민들이 복잡한 눈으로 주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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