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29화 (29/200)

# 29

장관의 권력 –1-

충격!

대한민국 전체가 놀랐다.

이제는 누구나 아는, 심지어 해외까지 이름이 알려진 예지 능력자 김현!

누구도 그의 말을 허투루 듣지 못한다. 지금까지 예고한 모든 것이 현실이 되었으니.

[15년 뒤 대한민국은 사라집니다.]

이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어디서든 화제가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토론도 하고 우려도 표했다.

어쨌든 대한민국 전체에 먹구름이 드리운 건 불문가지.

반면 당사자는 태연하기만 했다.

"밥 안 줍니까?"

"넌 밥 생각이 나니?"

같이 앉아 취조받고 있던 김애경이 눈에 쌍심지를 켰다.

이세희도 눈치를 보다 묻는다.

"김현 님, 정말 다른 나라 갈 거예요?"

"네, 갈 생각인데 왜요?"

"그럼 우리나라는요?"

"뭐, 저랑 상관있나요. 망하든 말든. 자기네들이 알아서 해야지. 어차피 원래 망할 나란데 뭐 어때요?"

목소리가 워낙 큰 탓에 주변 경찰들이 힐끔거리며 쳐다본다. 불과 몇 분 전 경찰서 앞에서 벌어진 소동은 다들 봐서 어느 정도 사정은 알고 있던 것.

"아, 수사에 협조 좀 해주세요."

앞에 앉아 있는 경찰이 소리를 질렀으나 김현은 콧방귀만 뀌었다.

"글쎄, 다 말했잖아요? 권총 세 자루, 산탄총 두 자루, 권총탄 210발, 산탄총탄 80발 사서 건국대학교랑 정부 청사에서 썼다고요."

"그래서 그걸 누구한테 샀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그건 말하기가 조금 그런데요. 비밀을 지키기로 해서."

"이봐요, 김현 씨!"

경찰의 목소리가 커진다. 김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씩 웃었다.

"맞아. 우리나라 치안 수준이면 그분도 금방 잡히겠죠? 외국 갈 때 데리고 가야겠네요. 그분, 각성자 적성이랑 장인 적성이 같이 있거든요. 잘만 키우면 알아주는 장인이 될 분을 감옥에서 썩게 할 수는 없죠."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그쪽 같은 말단이랑 장난쳐서 뭐하게요? 미리미리 알려주는 겁니다. 상부에 잘 보고하라고."

"여기 경찰서입니다. 애들 노는 놀이터가 아닙니다. 그 점을 명심하십시오."

제법 협박도 할 줄 알고?

김현은 음험하게 웃었다.

"그쪽이야말로 제가 누구인지 명심하시죠."

"뭐요?"

"지금 이 경찰서에 있는 인원 전부, 제가 마음만 먹으면 다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점을 명심하고 말조심하세요. 신사적으로 나갈 때 예의를 지키라, 이 말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김현의 눈이 퍼렇게 번쩍였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퍼렇게. 아울러 아직도 차고 있는 의수가 윙윙 울기 시작했다.

"그만 좀 해라."

김애경이 끼어들었다.

"너 오늘 왜 그래?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싸우지 못해 복장 터져 죽은 귀신이라도 달라붙었어?"

한 번 쓰게 웃었다.

소 뒷걸음질에 쥐 잡는다고 김애경이 진실의 편린을 짚어낸 까닭에.

적당히 넘겼다.

"다 알면서 내숭 떨기는."

"너......"

김애경도 김현의 속내를 어느 정도는 눈치챘다.

몸값 올리기.

하지만 이게 노림수의 전부라면 이상하다. 이거 하나 때문에 그 난리를 쳤다고?

"여, 김 형사. 적당히 하고 들여보내. 어차피 하루 이틀 있을 거 아니잖아."

"후, 알겠습니다. 자, 김현 씨. 소원대로 밥 시켜드릴 테니 이만 일어나시죠."

"전주식 콩나물국밥 아니면 안 먹습니다."

"어휴, 그러세요."

담당 경찰이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점심을 먹고, 간단한 신체검사를 거친 후 유치장에 수감 되었다.

한쪽 벽면이 철창으로 되어 있어 개방된 형태. 뒤쪽 화장실만 칸막이 같은 것으로 막혀 있었다. 그나마 소리와 냄새는 가리지 못할 것 같다.

편하게 드러누웠다. 감시하던 경찰이 버럭 소리를 지른다.

"여기가 당신네 안방인 줄 알아?"

가볍게 무시.

아예 눈을 감았다. 일부러 코를 골기 시작하자 경찰이 이를 간다. 그러나 다른 수감자에게 그러하듯 발작하진 못하고 있었다.

사전에 들은 게 있기 때문.

대신 애꿎은 다른 수감자의 철창을 몽둥이로 땅땅 때렸다.

"뭐해? 구경났어?"

"아, 진짜."

"각성자라고 특별 대우하네."

"시벌, 내가 여기 나가면 청와대에다 민원 찌르고 만다."

"조용! 조용!"

잠자코 기다린다.

호수에 돌을 던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있을 터. 그걸 보고 앞으로의 행보를 결정할 생각이었다.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품는 건 바로 엊그제, 대통령이 자신들을 NSC에 초대했기 때문이겠지.

'김현. 너도 애국애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냐?'

그렇다고 대답하듯이 심장이 한 차례 퉁 하고 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영원히 그렇겠지. 원판 김현을 달래듯 속으로 읊조렸다.

'일단은 맞춰주마.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만......'

가슴이 찌이잉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감시 경찰이 자기 자리에서 전화를 받더니 당황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소리 높여 김현을 호명했다.

"수감자 김현, 면회다."

과연 누가 왔을까?

경찰의 뒤를 따라 면회실로 들어섰다. 유리창 너머에서, 동그란 얼굴에 단춧구멍 같은 눈을 한 남자가 일어나더니 눈인사를 건넨다.

뭐야, 행정안전부 장관이잖아.

섬광처럼 어떤 영감이 뇌리를 스쳤다.

경찰청이 어느 부처 소속이더라? 현재의 행정안전부 장관은 미래에 어떤 일을 벌이고?

그래......

의심은 했다. 누군가 은밀하게 조종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게 이 인간이었어?

충분히 가능하지. 원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으니까. 다만 시기상으로 훨씬 더 빨리 벌어지는 바람에 얼른 생각을 못 했을 뿐.

벌써부터 역사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다음 입을 열었다.

"의외네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행정안전부 장관이 수더분하게 웃는다.

"무슨 일로 오기는요. 우리 김현 각성자께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계신다고 해서 부랴부랴 쫓아왔지요."

"그러셨습니까?"

여전히 심드렁한 김현.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 아닙니까? 김현 각성자를 이렇게 대우하다니요. 미국 같았으면 명예 훈장을 받고, 의회 연설까지 했을 일입니다."

"그렇겠지요."

영혼 없는 대꾸에 행정안전부 장관의 눈썹이 씰룩였다.

"김현 각성자께서는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네, 필요 없습니다."

단칼에 잘랐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눈에 당혹감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하긴 이런 소리를 어디서 들어봤을까? 전부 허리나 굽히고, 장관님 장관님 하면서 떠받들었겠지.

거기다 대고 웃어 주었다.

가볍게 웃는다는 게 한쪽 광대뼈만 승천한다. 꼭 조커 가면처럼, 그래서 예리한 비웃음이 되어 날아간다.

"전 병 준 사람한테 약 받아먹을 생각은 없어서요."

확인을 위해 던진 말.

행정안전부 장관의 눈동자 깊은 곳에 당황한 기색이 살짝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아주 찰나의 순간. 보통 사람이라면 놓쳤겠으나 김현 또한 한때 거대한 조직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읽는 것에는 능숙했다.

김현의 가슴에 차가운 칼이 하나 돋아났다.

'역시.'

행정안전부 장관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농담 아닙니다만. 그러게 왜 직접 오셨습니까?"

"예? 우리 김현 각성자께서 안 좋은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을 돌리려고 왔지요. 아무리 그래도 한민족......"

"그러니까 직접 오신 게 실수라고요. 하던 대로 경찰청장이나 내세우시지 왜 직접 오셨습니까?"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이 날아온다. 그걸 보며 입꼬리를 삐죽 들어 올렸다.

"제 초능력, 미래 예지 하나라고 누가 그랬죠? 최소한 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행정안전부 장관이 눈을 부릅떴다.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친 어떤 생각 때문에.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만 김현이 독심술이나 그와 비슷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김현을 찾아온 것이야말로 치명적인 실수.

그러나 역시 노회한 정치인은 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상찬의 말을 던졌다.

"하느님께서 우리나라를 버리시지는 않았나 봅니다. 김현 각성자의 말을 들으니 아주 든든합니다."

말 돌리기는.

김현의 입가에 걸린 웃음이 짙어졌다.

"뭐, 발뺌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전 이미 확인했고,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건지도 정했으니까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지금 내 앞에 있는 김구영 씨, 당신을 죽일 겁니다."

내용은 무시무시한데 말투가 평이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조금은 늦었다.

잠깐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뭐, 뭐, 뭐요? 지금 날 협박하는 거요?"

철컥!

이제야 사태를 깨달은 경찰들.

김현의 방 쪽에 있던 경찰이 권총을 빼 든다. 리볼버 탄창 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다만 아직은 판단하기 힘든지 김현을 직접 겨누지는 않고 있었다.

"움직이면 쏜다!"

"맞출 거면 맞혀 보세요. 그쪽이 방아쇠 당기는 것보다 내 반응 속도가 더 빠르니까."

혼력 가속만 잘 써도 경찰 한두 명 정도는 충분히 제압한다. 김현은 맞은편 경찰이 급히 전화를 거는 것도 무시하고 의자에 편히 몸을 기댔다.

숫제 다리를 꼬며 여유를 부리기까지. 서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의 눈에 어처구니없다는 감정이 스친다.

"지금 당장 죽이겠다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시길. 그냥 예고하는 겁니다."

"누가 겁먹을 줄 알고? 이보세요, 김 각성자! 법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닙니까? 대한민국의 경찰이 다 허수아비인 줄 알아요?"

"허수아비죠. 미국에 비하면."

"뭐?"

"아, 미국 귀화 조건을 하나 더 달려고요. 지금 내 앞에 있는 당신, 김구영 씨 목을 자르는 것으로."

시종일관 담담한 어조. 하지만 그냥 듣고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김현의 눈이 한 톨 흔들림조차 없었으니까.

또르륵.

행정안전부 장관의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미국에 요청한다고? 귀화하는 조건으로?

미국이라면, 미국이라면......

애써 현실을 외면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국은 우리 대한민국의 혈맹입니다! 미국이 동맹국 장관을 죽여가며 당신을 귀화시킬 것 같아요? 세상에 어느 막장 나라가 그런 부담을 짊어진답니까? 택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사실 누가 택도 없는 소리를 하는지는 그 스스로도 잘 안다.

그래서 무심결에 내려다보았다. 넥타이를 고정해 놓은 금색 넥타이핀, 그 넥타이핀에 장식된 깨알 크기의 사파이어를.

그 심리 상태를 꿰뚫어 본 김현.

툭, 하고 몇 마디를 던졌다.

"녹음 중이죠? 네, 그 정도는 하셔야죠. 우리 대화 공개하셔도 좋습니다. 기왕이면 편집도 잘하시고요."

"누, 누가 녹음을 한다고......"

"당신네들 정치 한다는 새끼들이 하는 생각은 다 뻔하거든요. 그런데 이걸 어쩌죠? 그거 공개해서 여론 형성해 봐야 저한테는 아무 손해도 없는데. 미국이요? 한 번 생각을 해보세요. 동맹국 장관 하나 목 날려서 욕먹는 게 클지, 저 데려가서 미국인들 구해서 얻는 이득이 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비교가 안 된다.

김현은 다시 웃었다.

"그리고 저도 김구영 씨를 생물학적으로 죽일 생각은 없어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그렇잖아요? 그냥 죽여 버리는 건 너무 쉽지. 차라리 사회적으로 죽여달라고 할 겁니다. 미국도 그게 입맛에 맞을 거고요. 아무리 그래도 동맹국인데, 정말로 죽여 버리는 건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이익...... 이 매국노 새끼! 아무리 내가 실수를 했기로서니, 외국 힘을 빌려서 날 매장하려 들어? 내가 그렇게 쉽게 당할 것 같아?"

행정안전부 장관이 입에 거품을 문다. 김현은 다리를 꼰 상태 그대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매국노는 무슨. 김구영이라는 쓰레기가 저지른 일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

"무슨 헛소리냐!"

"알고 있잖아? 이명준, 최절고, 김탁, 성시예, 한정호, 박미령......"

발광하던 몸이 그대로 멈춘다.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김현을 쳐다보는 행정안전부 장관.

당연히 그럴 테지. 기억에서 도저히 지우지 못하는 이름일 테니.

"그, 그래서 그게 뭐 어떻다는 거냐?"

역시나 오리발을 내민다.

"그럼 이렇게 말해줄까? 병역 비리, 정경유착, 뇌물 수수, 성접대, 토지 강탈, 협박 및 폭력이라고?"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금까지 저지른 범죄들.

원 역사에서는 2021년에 밝혀진다. 그래서 당시 당내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떨어지는데, 김현은 그 정보를 언급하고 있었다.

행정안전부 장관의 얼굴에서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본의 아니게 장관의 치부를 듣게 된 경찰들도 움찔거렸다.

쐐기를 박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도 아니고, 이쯤이면 간단하지 않겠어? 기자 몇 명한테만 슬쩍 찔러주면 되는데?"

김현이 직접 움직인다면 어떻게든 여론전을 해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국이 나선다면?

필패. 정치적 생명은 여기서 끝이다.

결국 행정안전부 장관이 무너지고 만다.

휘청거리다가 책상을 간신히 붙잡고 서서, 흔들리는 눈으로 유리창 너머 김현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도대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뭔 개소리야.

남을 건드렸으면 된통 얻어맞을 각오는 해야지.

본인은 가벼운 길들이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원 역사에서 김애경이 당한 걸 생각하면 적당히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김현은 한쪽 발을 까딱이며 경찰을 돌아보았다.

"아직 30분 안 지났나요?"

"아, 네! 네!"

그제야 경찰들이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를 정리하려고 한다.

그에 앞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받더니 표정이 급변하는 경찰. 의아해져서 귀에다가 혼력을 집중했다. 아직 부족한 혼력이지만, 수화기 너머 다급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온다.

"잘됐네요."

툭 내뱉는 김현.

"민기석 씨도 내려오라고 하세요. 여기서 삼자대면하고, 깔끔하게 결론을 내죠."

힘없이 책상에 기대어 서 있던 행정안전부 장관의 눈이 커진다.

민기석......

너무나 익숙한 그 이름.

바로 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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