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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헌터사-37화 (37/200)

# 37

펜타곤 –3-

혼력을 가속한다. 몸이 불타는 것 같았다. 오호갑의 하체가 힘껏 일어난다. 근섬유가 힘을 증폭하며 모든 힘을 아래로 때려박았다. 왼발이 땅을 강하게 굴렀다.

쾅!

오죽 세게 굴렀는지 작은 폭음이 터졌다.

몸이 쏘아진다. 백호검을 든 채 긴 호선을 그린다. 그 속도가 워낙에 빨라서 돌개바람을 보는 것 같았다.

장갑병들이 반응한다.

일제히 권총을 들어올리는 게 느릿하게 망막에 와 맺혔다. 그러나 놈들이 조준을 마치기 전, 김현은 이미 놈들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백호검을 올려친다.

오호갑의 상체만으로 증폭한 힘. 그것이 백호검을 타고 뿌려졌다. 아름답되 치명적인 백색 반월이 장갑병 셋을 동시에 갈랐다.

콰콰쾅!

일제히 폭발하는 장갑병.

지나친다.

강철 파편을 얻어맞으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돌진하던 기세 그대로 정면의 장갑병을 오른쪽 어깨로 강타했다.

퍽!

나동그라지는 장갑병.

하지만 힘없이 당하지는 않는다. 쓰러지면서도 오른팔에 장착된 전기 칼날을 사선으로 올려 그은 것.

덧없이 허공만 가르고 만다. 위기의 순간 김현이 몸을 뒤집었기 때문. 그리하여 돌진하던 힘을 모조리 해소했다.

[위험! 위험!]

[제압! 제압!]

외계어가 시끄럽게 귀청을 두드린다.

말없이 왼손을 내밀었다. 권총을 한 장갑병의 머리에다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탕!

육중한 진동이 왼손을 뒤흔들었다.

자세고 뭐고 잡을 것 없이 냅다 갈긴 권총. 의수가 충격을 제대로 흡수했다.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장갑병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장갑병의 약점은 두 군데. 가슴과 머리. 곧 폭주하며 사방으로 전기 칼날을 휘두르며 권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합!"

고장난 장갑병의 뒤로 돌아가 힘껏 걷어찼다. 이어 한쪽으로 몸을 기울여 총알 세 발을 마저 소모했다.

콰직!

그 사이 고장난 장갑병이 처리되었다. 전기 칼날이 심장을 궤뚫은 것. 그걸 보고 눈을 빛냈다.

다시 한 번 혼력 가속.

가볍게 도약한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몸이 거의 천장까지 치솟았다. 이제 여섯 기 남은 장갑병들이 일제히 김현을 올려다본다.

어느새 두 번째 권총이 손에 들려 있었다. 초월적으로 집중된 의식 속에서 세계가 느릿느릿 움직인다. 수중을 유영하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권총을 들어 장갑병의 머리를 조준했다.

타앙!

소리마저 길게 늘어지는 시간 속.

총알이 장갑병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관통했다.

타앙!

또 한 발.

다른 장갑병의 눈에서 빛이 꺼진다.

타앙! 타앙! 타앙!

장전한 총알을 모조리 비웠다.

백발백중이었다. 수직으로, 사선으로, 횡으로 날아든 총알이 장갑병들의 머리를 모조리 박살냈다.

남은 것은 단 하나.

김현이 처음에 돌진하여 쓰러뜨렸던 장갑병 뿐.

놈을 노려보며 착지.

감각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세상이 제 속도를 찾았다. 아울러 혼력 가속 후의 허탈감과 무력감이 전신을 뒤덮었다.

[후퇴! 후퇴!]

장갑병이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한다.

차갑게 주시하는 김현.

타타타탕! 타탕!

장갑병들이 사방으로 총알을 쏴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김현을 맞추기는커녕 주위 천장과 벽을 긁는 게 전부.

그렇다고 저 안으로 뛰어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눈먼 총알에 맞기라도 하면 손해 아닌가. 대신 백호검을 쥐고 몸을 힘껏 뒤로 당겼다.

오호갑에 힘이 들어간다.

울끈불끈, 근섬유가 최대한으로 부풀었다.

모든 혼력을 집중한다. 그것이 오호갑을 타고 올라간다. 힘을 쥐어짜듯이, 혼력이 지난 부위가 푸시시 수증기를 뿜으며 쪼그라들었다.

그리하여 팔꿈치를 막 지났을 때, 오호갑의 전완 부위가 풍선처럼 부풀었을 때 힘껏 팔을 휘둘렀다.

쌔액!

하얀 빛 줄기가 세상을 가로질렀다.

정확히 허리를 양단해 버린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서 근처 벽에 박히자 폭음이 터지며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

"훗."

짧게 코웃음을 치는 김현.

장갑병은 완전히 죽지 않았다. 멀리서나마 몸을 돌리더니 권총을 높이 들어 사격을 해온다.

제법 정밀한 사격이지만 그 정도로 김현을 맞출 수 있을까? 김현은 진즉에 모서리 뒤에 몸을 숨긴 다음이었다. 느긋하게 권총을 재장전한 후 쏘자 허리 잘린 장갑병 또한 멍청이가 되어 버린다.

이때쯤 다른 장갑병들도 자기들끼리 상잔하고 말았다. 모두 중장갑을 갖추고 있으나 자기네 대구경 권총이라면 충분히 관통하기 때문.

장갑병 시체가 녹아 사라지는 걸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저거 권총 수거할 수 있으면 좋은데.'

지금 쓰는 S&W M500도 강력하지만 2성 등급 권총과는 비교가 안 되니까. 지구 최강의 권총이라고 할 수 있는 triple action thunder를 연발로 갈기는 수준이라고 하면 될까?

어쨌든 이번 전투는 대성공이었다. 김현이 상대했던 장갑병 10기 중 4기가 2성 등급 성혼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으, 따가운데?"

성혼을 수거하고 돌아가니 김애경이 이세희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다.

"누나, 다쳤어?"

"조금 긁혔어. 너는?"

"난 멀쩡하지. 찰과상만 조금 있어."

아닌 게 아니라 등에 한 군데, 허벅지에 한 군데 관통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나마 이세희의 치료로 깔끔히 나았고, 갑옷도 서리거인 성혼을 이용해 즉석에서 수리했지만.

"집중 좀 하지 그랬어. 아까 그놈들 정도한테 상처 입으면 안 돼. 서리거인만 잘 써도 다 막는데."

"쓰고 있어도 뚫던데?"

"그럴 것 같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출력으로 쓰고 있으면 저놈들도 머리가 있는데 똑같은 공격만 하겠어? 지들도 힘 모았다가 공격하고, 같은 자리만 공격하지. 완급 조절을 해야 해. 공격당하는 부위에만 쓰고, 위험하면 전신으로 뿜어내서 방어막을 치란 말이야."

김애경이 고심하는 표정을 짓는다. 김현의 말귀를 알아들은 것.

고민하라고 내버려두고 성혼을 확인했다. 김애경이 담당한 곳에서도 2성 등급 성혼 8개가 나왔다. 모두 기갑계여서 솔직히 조금 탐이 났다.

'여기 끝내고 정말 성향을 바꿔?'

아직은 시기상조. 4성 등급을 달성한 다음이나 생각해보자.

"조금만 더 가면 축 지킴이야. 예전에 신촌 병원에서 만났던 혈귀 기억나지? 그거보다 세니까 조심해."

"어떤 괴물인데?"

"예지몽에서 못 본 괴물이야. 나도 몰라."

아까 본 지도를 기억하며 전진한다. 1성 등급 괴물이 몇 번 앞을 가로막았으나 일행에게는 장애물 역할도 못했다. 사뿐히 즈려밟고 전진했다.

도착한 곳은 상당히 큰 공동. 신기하게도 천장이 뻥 뚫려서 까만 우주가 훤히 보였다. 그리고 공동 중심 바닥에는 커다란 원형 출입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전생에 몇 번 보았던 구조. 김현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이게 나온다고?'

무엇이 나타날지 알아챈 것이다.

어쩌면 펜타곤 복구가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위잉. 위잉.

일행이 안으로 들어서자 적색 경보가 울렸다. 동시에 공동 중심에 위치한 원형 출입구에서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누나."

"응?"

"조금 있으면 우주선 하나가 나올 거야. 나오자마자 얼음 폭풍 몇 대 때리고 방어하고 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김애경이 김현을 돌아본다.

"그렇게만 하면 돼?"

"응. 괜히 반격하지 말고 방어나 잘해. 방심하면 훅 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걱정하진 않았다. 곧 나올 3성 괴물의 공격으로는 김현이 만든 갑옷의 방어를 뚫지 못하니까.

"김현 님, 저는요?"

"선생님은 눈에 안 띄게 숨어 있으세요."

사실 숨을 곳은 없다. 이곳은 일종의 이륙장이니까. 김애경만 원형 출입구 정면에 서 있게 하고 김현과 이세희는 서로 떨어져서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기이이잉!

원형 출입구가 열리기 시작했다. 단단한 철판이 걷히며 시커먼 내부가 드러난다. 그리하여 원형 출입구가 완전히 개방되었을 때 시커먼 물체가 공동 중심으로 솟구쳤다.

거대한 직육면체.

아까 일행이 타고 왔던 것과 비슷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전후로 길쭉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인지 모를 장식이 붙어 있다는 사실과 여기저기서 삐죽 고개를 내민 광선 포대가 존재한다는 것.

찌이잉.

직육면체 전면부에서 섬뜩한 적색 광채가 번쩍였다. 그것이 정면에 있는 김애경은 물론 이 공동 내부를 샅샅이 훑는다. 세 명 모두 이마에 붉은 점이 하나씩 박혔다.

"하압!"

김애경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 아까 돌격병에게 그러했듯이 오른팔을 힘껏 뒤로 당겼다가 뿌린다.

폭발하며 날아가는 얼음 폭풍.

이게 다가 아니다. 왼팔도 똑같이 휘둘렀다. 이번에는 조금 날카롭게 뻗은 탓에 얼음 폭풍이 아니라 고드름 창이 하늘을 꿰뚫을 기세로 쏘아진다.

번쩍!

빛을 뿌리는 직육면체.

놀랍게도 허공에서 회전하며 옆으로 물러난다. 얼음 폭풍과 고드름 창이 직육면체를 강타하려 했으나 실패. 스칠 뻔한 것을 방어막이 발동되어 막아낸 것이다.

"뭐 저런......"

이세희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린다.

직육면체가 몇 차례 더 회전하다가 허공에서 정지했다. 그러더니 광선 포대 8문을 동시에 김애경에게 겨눈다.

아랫입술을 깨무는 김애경.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다. 김현에게 이미 당부를 받은 다음이니까. 부상을 각오하고, 두 팔을 교차하며 전신에서 서리거인을 끌어올렸다.

한계까지 돌아가는 극점 심장. 그 힘을 받은 서리거인.

김애경의 전신이 푸른빛에 휩싸인다. 그게 파랗게 작렬하다 못해 하얀 색으로 불사를 듯 타올랐다.

발사되는 적색 광선포. 그것이 김애경을 직격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무려 수십 번이나.

"언니!"

발을 동동 구르는 이세희.

직육면체가 붉은 빛을 뿌려 이세희를 재차 포착한다. 하지만 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김애경에게 집중했다. 광선 폭격이 하도 쏟아져서 서리거인 성혼이 증발하며 허연 수증기가 뿜어졌다.

김현이 날아오른 것은 바로 이때.

여전히 인공 중력이 작용하고 있었으나 상관 없다. 오호갑의 힘을 최대한으로 써서 도약했으니까. 직육면체가 정지비행하는 높이까지 뛰어올라 그 위에 착지했다.

기이잉!

직육면체가 반응하여 세차게 흔들어댄다. 하지만 김현이 백호검을 직육면체에게 꽂아넣은 다음이었다.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이어 백호검을 찍어가며 직육면체 정면으로 이동. 외부에서 보기에는 까맣기만 한, 다른 곳과 차이 없는 벽이 눈에 들어온다.

실은 이것도 강화 유리로 되어 있다. 지구의 강화 유리와는 격을 달리하지만 금속 벽보다는 훨씬 약하지.

꽈광!

유리를 깨뜨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직육면체가 아주 요동을 친다. 그걸 견디며 내부를 확인했다.

기본적으로 정육면체의 구조와 같다. 전면의 유리창, 그리고 책상에 놓인 초록 반구와 까만 금속판.

바닥에 백호검을 꽂은 채 금속판에 손을 얹는다.

[경고 : 혼력 인증을 진행하시오.]

역시나.

하지만 이 직육면체 구조물, 행성 강습기에 한해서 입력할 수 있는 명령어가 몇 개 있지.

저 깊이 묻어놓았던 기억을 꺼냈다.

의수가 밝게 빛났다. 연결된 금속판을 통해 순수한 혼력이 주입된다. 그것이 금속판에 빠르게 특수한 명령어를 입력했다.

[긴급 조치.]

기갑계에서 흔히 쓰는 언어가 아닌, 오직 6성 이상의 고위 기계들에게만 허락된 고등 기갑 언어.

[장갑 기사의 권한으로 당 행성 강습기의 일련번호를 조회한다.]

잠시 답변이 없었다.

설마 실패한 걸까? 다른 기계라면 모를까, 행성 강습기는 애초에 장갑 기사를 위해 생산된 물건이라 실패할 리가 없는데?

다행히 곧 깜빡거리는 전기신호가 의수를 통해 전달된다.

[......에러, 에러. 일련번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장갑 기사의 권한으로 당 행성 강습기의 일련번호를 12345678로 부여한다.]

[일련번호 부여 작업 진행 중...... 완료되었습니다.]

[장갑 기사의 권한으로 당 행성 강습기를 징집한다. 본 장갑 기사는 아론 로드리게스, 지구 파견 장갑 기사단의 총단장이자 제 2 행성에서 수위 장갑 기사의 자격을 인증받은 자다.]

[영광입니다, 총단장님. 일련번호 12345678, 당 행성 강습기는 지금부터 총단장님을 수행합니다.]

성공이다!

미친 듯이 요동치던 직육면체, 행성 강습기가 안정을 되찾았다. 김현이 손을 뻗자 그 손짓에 반응하여 차분히 공동 아래쪽을 향해 내려간다.

[자가 수리해라.]

[네, 총단장님.]

밖으로 나오며 의수를 매만졌다.

붕괴의 손 자체가 장갑 기사의 기술을 응용하여 만든 거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처럼 행성 강습기의 제어 권한을 얻는 건 꿈도 못 꿨겠지.

"어떻게 한 거야?"

김애경과 이세희가 괴물 보듯이 김현을 쳐다본다. 김현은 어깨만 한 번 으쓱였다.

"해킹 좀 했지."

"너 별 걸 다 한다."

"이제 알았어?"

"김현 님, 치료해드릴게요."

아닌 게 아니라 얼굴과 몸이 말이 아니다. 옷은 다 탔고, 드러난 피부는 울긋불긋하니 수포가 잔뜩 잡혀 있었으니.

빛의 치유를 몇 차례 받자 나아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행성 강습기가 수리를 마쳤을 때 타고 날아올랐다.

바로 옆의 구형 물체로 직행.

붉은 빛이 행성 강습기를 한 차례 훑었다.

[혼력 인증 중...... 인증 완료.]

프리패스.

이 작은 세계에 한해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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