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46화 (46/200)

# 46

지옥 훈련

"키야악!"

괴물이 달려든다.

사람 형상을 한 괴물.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운 냄새를 풍긴다. 옷이라고 할 수도 없는 누더기를 걸친 채, 그 아래 썩어빠진 육체를 만천하에 내보이고 있었다.

좀비, 혹은 걷는 시체.

불사계의 1성 괴물이라던가.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끼고 물러났다. 축축한 흙벽이 금세 등에 와 닿았다. 눈살을 찌푸리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죽어!"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강력한 힘을 가진 물줄기가 에일리의 오른손을 감고 회전했다. 그걸 단번에 때려박았다.

정확히 좀비의 가슴에 박힌 주먹.

쿠콰콰콰콰.

소용돌이가 거칠게 좀비의 몸을 찢어발겼다. 심장 부근부터 뒤틀리더니 살점이 뜯어져 사방으로 날아간다. 이내 좀비가 넝마처럼 변하고 말았다.

"훗!"

찡긋 눈웃음을 날려본다. 제대로 성혼을 발휘하는 것은 처음인데, 가슴이 뻥 뚫리는 해방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너무 쉬운 거 아니에요?"

으스대듯 묻자 대답이 돌아온다.

[1성 등급 괴물은 일반인도 처리할 수 있습니다. 2성으로 가죠.]

이어 앞쪽 공간이 뒤틀리며 괴물 하나가 튀어나왔다.

좀비보다 훨씬 컸다.

키 2.5미터. 피부를 벗긴 인체 모형처럼 뻘건 근육이 그대로 노축되어 있다. 눈은 없고 팔이 땅까지 내려오며 손끝의 손톱이 단검처럼 예리하게 돋았다.

2성 등급 괴물, 식인귀.

"캬악!"

나타나자마자 도약하여 덤벼온다.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르며, 붉은 육체가 몇 배로 확대되었다.

"합!"

참으로 흉악한 모습인데 기 죽지 않고 반격하는 게 가상했다.

에일리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발차기를 했다.

그러나 실수.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에일리의 다리보다 식인귀의 두 팔이 훨씬 길다는 점. 칼날 같은 식인귀의 손톱이 에일리의 어개를 꿰뚫었다.

"아악!"

비명을 지르는 에일리.

몸부림을 치나 소용 없다. 상어를 닮은 이빨이 순식간에 눈앞으로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성혼을 발현했다.

푸확!

에일리의 심장으로부터 퍼런 물이 솟구친다. 그것이 세찬 회오리를 그렸다. 동시에 식인귀를 정통으로 후려쳤다.

"끼엑!"

식인귀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에일리는 통증을 참으면서 돌진했다.

"죽어! 죽어! 죽어!"

겉으로 보기에는 여려 보이는 주먹을 몇 번이나 식인귀의 머리에다가 꽂았다.

좀비였으면 여기서 끝이 났겠지. 하지만 식인귀는 녹녹치가 않았다. 제 손을 호랑이 발처럼 오므리고는 손톱을 에일리의 등에다가 꽂았다.

"아악!"

섬뜩한 감촉.

불같은 통증.

에일리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던 때, 세상이 빠르게 멀어진다.

의식이 꺼지고, 고통이 사라졌다.

눈을 떴을 때, 에일리는 축축한 토굴이 아니라 호텔의 커다란 회의실에 돌아와 있었다.

"우엑! 우에엑!"

자신도 모르게 구역질을 하는 에일리.

누런 위액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쏟아졌다. 참아보려 했으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몇 번 몸을 휘청거리다가 부끄럽게도 토사물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씻고 나오세요."

"으윽, 으으으, 으흑."

에일리는 허우적대면서 겨우 일어났다. 그 와중에도 이를 꽉 깨물고 울지 않으려고 하는 게 대견했다. 아무리 꿈속에서였다고는 하나, 유사 죽음을 체험한 사람 대부분은 커다란 정신적 충격을 받기 마련이니까.

"너무 심한 거 아냐?"

김애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묻는다. 척 보기에도 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녀가 저런 꼴을 보여서 안쓰러웠던 것.

"죽는 것보다는 낫지."

"그야 그렇지만."

"으아아악!"

피터가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에일 리가 그랬듯이 구토를 해대기 시작했다.

김현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피터를 노려보았다.

"좀비도 못 잡는 건 너무 하지 않냐?"

에일리는 어쨌든 침착하게 자기 성혼을 발휘했다. 그 방향성이 잘못되어 식인귀에게 당한 거지 싹수는 보였다.

그런데 피터는 이게 뭐냐. 좀비를 보자마자 얼어붙었다. 처음에는 가만히 서 있다가 목줄기를 뜯어먹혔고, 그 다음에는 뒤돌아서 도망치다가 막다른 곳에서 좀비에게 잡혔다.

"좀비는 네 성혼만 날리면 한 방이야. 어제 가로등은 잘만 부쉈으면서 좀비는 왜 못 부숴?"

"그, 그게, 그러니까......"

"설마 사람을 닮아서 그렇다는 건 아니겠지? 그럼 좀비 말고 문어 괴물을 던져줄까?"

"히익!"

"어휴, 이걸 진짜......"

눈살을 찌푸리다가 손짓을 했다.

"다시 들어가 봐."

"아, 안 돼요!"

그러나 김현의 손짓은 단호했다. 피터의 머리 위에 들러붙은 보석이 몽환적인 빛을 뿌렸다.

"안 되는데......

피터가 잠꼬대를 하듯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잠에 빠져든다. 막 씻고 나오던 에일리가 그걸 보고 살짝 놀랐다.

"켄트 양도 앉으세요. 다시 시작하죠."

"저거 치워야 하지 않아요?"

떨떠름한 얼굴로 바닥을 가리킨다. 이세희가 코를 막은 채 코맹맹이 소리로 말했다.

"종업원 불렀어요."

"네, 알았어요."

에일리가 제 뺨을 치며 힘내자며 중얼거린다. 그걸 보며 조언을 해주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성혼을 잘못 쓰고 있어요. 소용돌이는 회전력입니다. 일직선으로 뻗는 공격에는 안 어울려요."

"그럼 어떻게 해야 돼요?"

"그건 켄트 양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요. 전 가르쳐 주지 않을 겁니다. 자, 갈까요?"

"네."

에일리는 금방 납득했다. 확실히 정신 상태를 보면 피터보다 에일리가 훨씬 나았다.

쉽게 깨닫지는 못했다. 두어 번 더 죽은 다음에야 소용돌이의 운영 방법을 깨달았다.

"하압!"

돌진하는 에일리.

가녀린 몸이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돌격하는 모습이 흡사 해일이 불어닥치는 듯하다. 식인귀가 위압감을 느끼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당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

소용돌이에 접촉하는 즉시 식인귀가 튀는 공처럼 나가떨어졌다. 그걸 에일리가 쫓아갔다. 몇 번 짓밟자 전신이 우그러들며 분쇄되고 말았다.

"헉, 헉, 헉."

숨이 찼다.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효율이 너무 낮아요.]

"여기서 효율을 어떻게 더 올려요?"

[여러 방법이 있지요. 타격 순간에만 성혼을 끌어올리거나, 국소 부위에만 발현하는 식으로. 그렇게 온 몸으로 최대 출력을 쓰면 오래 못 버팁니다.]

혼력 능력치가 30을 찍었다면 모를까, 13 정도로는 몇 분만 그렇게 써도 지친다.

에일리가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미소를 지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해보세요. 익숙해질 때까진 식인귀로 가죠.]

요정계의 보물 중 백일몽이라는 것이 있다. 찰나의 순간 길고 긴 꿈을 꾸게 하는 보물이었다. 그걸 개조해서 지옥 훈련 중이었다.

에일리는 전방의 식인귀를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당했지만 벌써 9승째. 10승만 거두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작정이었다.

"핫!"

가벼운 도약.

흐릿한 빛이 에일리의 주변을 감돌았다. 소용돌이를 발현하기 직전의 상태. 식인귀가 포효하며 달려온다. 휙 내리치는 팔을, 소용돌이를 사용함과 동시에 붙들었다.

그리고 회전.

거친 물줄기가 용처럼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식인귀의 가슴을 강타하며, 한편으로는 팔을 반대쪽으로 잡아뜯는다.

순식간에 분리되는 팔.

"크아악!"

식인귀의 비명이 허공을 때렸다.

'잘 하네.'

김현은 의식 속에서 그걸 지켜보며 미소를 지었다.

원 역사에서도 에일리는 저런 기법을 썼다. 관절기와 결합된 소용돌이 성혼.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아무리 큰 괴물이라도 어디 한 군데가 뜯어지지 않고는 못 견뎠으니까.

이쯤에서 피터도 좀비는 물론 식인귀를 잡기 시작했다. 사실 피터가 더 쉽다. 일정 거리를 두고 생성되니 백일몽이 시작되자마자 광선 폭격을 날리면 그만이니까.

[3단계로 가겠습니다. 지금부터는 같이 해보죠.]

"네? 같이요?"

"어어? 어?"

에일리와 피터, 둘이 보는 세계가 일그러졌다. 그리고 콜로세움과 같은 형태의 건물이 나타났다.

둘은 그 안에 서 있었다. 에일리가 피터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피터가 저절로 눈을 내리깔았다.

"Mr. 김, 농담이시죠? 쟤랑 같이 하라고요?"

[익숙해져야죠.]

"싫어요! 차라리 혼자 할래요!"

[혼자서는 이기기 힘듭니다만...... 뭐, 피터도 동의한다면 그렇게 하지요.]

피터가 입을 우물거렸다. 그러더니 겨우 입을 열었다.

"저, 저도 그냥 혼자 할래요."

[뭐, 좋습니다.]

혼자서는 죽었다 깨나도 못 이길 텐데?

둘이 원하니 들어주었다. 피터의 몸이 사라지며 다른 공간으로 전송된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거대한 괴물.

피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시체를 기워 만든 거인이었다. 키는 거의 4미터에 달하고, 우락부락한 몸이 코끼리를 보는 듯했다. 팔은 네 개이고, 거대한 정글도와 쇠사슬로 무장하고 있었다.

피터는 몰랐지만 김현이 이 거인을 봤다면 별의 관찰이 이런 이름을 출력했을 것이다.

시체 골렘이라고.

"으아아, 으아아아!"

그래도 훈련한 게 효과가 있었다.

피터는 괴성을 지르면서 광선 폭격을 퍼부었다.

최대 출력.

전봇대나 자동차 하나는 가볍게 날릴 노란색 광선이 마구 날아간다. 짧은 시간, 거의 수십 발은 넘게 시체 골렘을 두드린 것 같았다.

"흐으, 흐으, 흐으."

혼력을 모두 소모한 피터.

시체 골렘이 있던 곳은 쑥대밭으로 변했다. 먼지가 가득 피어 올라 속을 엿보기가 힘들었다. 피터는 거길 보며 생각했다.

'죽었겠지?'

틀렸다.

촤르륵!

먼지 속에서 쇠사슬이 날아왔다.

뭘 해볼 새도 없이 쇠사슬 끝의 갈고리가 피터의 어깨를 콱 찍었다. 통증을 자각하고 비명을 지르기도 전 쇠사슬이 피터를 확 잡아챘다.

"으아아아!"

그것으로 끝.

피터는 차마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과정을 거쳐 살해당했다.

"그만...... 이제 그만......"

흐느껴 우는 피터.

대각선 먼 곳에 앉아 있던 에일리가 퍼덕거리며 일어났다.

"우웩!"

또 구토했다.

이젠 나오는 것도 없다. 멀건 위액이 전부.

김현은 팔짱을 낀 채 둘을 보았다. 에일리가 먼저 이성을 되찾고 재차 도전을 선언한다. 백일몽을 작동시키고 다시 시체 골렘과 싸우게끔 했다.

피터는 그저 울고만 있었다. 그냥 들여보냈다가는 정신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 옆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피터. 힘드냐?"

"네, 네......"

"그럴 거다. 네 능력으로는 시체 골렘을 잡을 수가 없어."

원거리 공격수는 시체 골렘 같은 단단한 괴물과 상성이 나쁘다. 이동 계열 성혼이 있다면 모를까, 고정 포대처럼 성혼만 날리다가 잡혀서 죽기 일쑤.

피터가 원망 어린 눈으로 김현을 보았다. 김현은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켄트 양이랑 둘이서 힘을 합치라고. 그러면 이길 수 있어."

"하지만 켄트 양은 절 싫어하는데......"

"안 되겠으면 혼자서 들어가던가. 지금 네 능력으로는 절대로 시체 골렘을 못 이겨."

피터가 울상을 지었다.

"으아악!"

때맞춰서 일어나는 에일리.

김현은 피터를 툭 건드리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잘해 봐."

에일리가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를 악물고 빈자리에 앉자, 피터가 급히 에일리를 불렀다.

"저, 저기요!"

"왜?"

익숙한 눈빛이 피터를 본다.

펠릭스 패거리가 항상 자신을 보던 눈. 거기 깃든 감정은 분명하다.

경멸.

저절로 움츠러들지만, 끔찍하기만 한 시체 골렘을 생각하자 없던 용기가 솟아났다.

눈을 질끈 감고 소리쳤다.

"가, 같이 해요!"

"뭘?"

"시체 골렘이요!"

그 말만 던지고 눈치를 살핀다.

단숨에 거절하려다, 에일리는 속이 울렁이는 것을 느꼈다.

끔찍한 외모는 그렇다고 치자. 그 맷집은 실로 엄청났다. 소용돌이를 최대한으로 전개해도 피륙에 상처만 조금 남는 정도였으니까. 무슨 수를 써도 일대일로 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방해하지나 마세요."

"저, 정말이죠?"

대답 대신 고개를 돌렸다. 푸른 눈이 김현을 똑바로 주시했다. 김현은 백일몽을 발동하여 둘을 꿈의 세계로 보냈다.

처음에는 실패.

에일리가 시체 골렘의 주의를 끈 건 좋다. 잡히지 않게 소용돌이를 중요할 때 쓰며 피해 다녔다. 피터는 멀리서 광선을 날리며 공격했다. 하지만 기습처럼 날린 쇠사슬에 또 끌려가고 말았다.

피터가 주눅이 들어서 김현과 에일리의 눈치를 살폈다. 에일리는 폭발할 것 같은 얼굴이었으나 김현은 굳이 피터를 타박하지 않았다.

"잘했다. 많이 좋아졌어."

"저, 정말요?"

"그래. 그런데 공격을 할 때 무턱대고 날리지 말고 적당히 해. 너무 퍼부으니까 시체 골렘이 너부터 죽이려고 들잖아. 천천히 깎으란 말이야."

"아, 어그로 끌지 말라는 말씀이죠?"

MMORPG에서 말하는 어그로(agro). 간단히 말해서 위협 수치. 게임의 몬스터는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플레이어부터 잡으려고 한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돼."

"알겠어요!"

"켄트 양은 잘하고 있습니다. 단, 공격할 때 관절기만 쓰지 말고 타격기도 써보세요. 돌려차기 정도는 써도 좋잖아요?"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재차 도전.

아슬아슬하게 패했다. 피터의 혼력이 바닥나면서 광선 폭격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당히 좋은 말로 격려해주고 3번째 도전.

여기서는 성공했다. 피터의 광선이 시체 골렘을 교란하는 사이 에일리가 시체 골렘의 두 눈을 터뜨렸다. 이후 적당히 도망 다니면서 피해를 누적시키자 그 거구가 덧없이 쓰러지고 만다.

"이겼다!"

"해냈어요!"

피터와 에일리가 얼싸안고 기뻐했다. 여전히 피터를 탐탁지 않아 하는 에일리지만, 그래도 전우애 비슷한 감정은 생긴 것 같다.

김현은 그 장면을 보며 흡족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아직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피터는 조금은 용기를 갖게 됐다. 에일리도 마찬가지. 자신의 성혼에 익숙해졌고 협동 전투에 대해서도 배웠으니 최소한의 자격은 갖췄다고 봐야 한다.

"훈련은 여기까지 하죠. 푹 쉬세요."

그러나 휴식은 길지 않았다.

다음날, 뉴욕 JFK 공항에서 비행기 한 대가 이륙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향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