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51화 (51/200)

# 51

99륜

우선 얼굴.

몽땅 짓뭉개졌다. 코와 귀는 흔적처럼 구멍만 남았고, 피부도 늘어 붙은 게 중증 화상 환자를 보는 듯하다. 더구나 머리카락은 몽땅 사라지고 물고기 비늘 같은 각질이 빈자리를 큼직큼직하게 채우고 있었다.

얼굴은 아무래도 좋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두 눈.

타오르듯 혼돈의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아니, 빛이라고 하기엔 조금 달랐다. 말 그대로 타오르는 중이다. 이것은 불꽃, 종래에는 영혼을 집어삼키고 말 종말의 선언이었다.

"미남인데?"

돌아온 현실에서, 김현이 씩 웃으며 말했다.

김애경이 울 것 같은 표정을 한다.

"웃음이 나와?"

"그럼 울까? 누나. 잘 된 거야. 우리 이겼잖아. 사실 아까 그놈은 절대 못 이기는 게 정상이었어. 이겼으면 됐지. 살았으면 된 거 아냐?"

"그래도......"

"도대체 그놈은 뭐였어요?"

"4성 등급 괴물이요. 8월 범람 때 나타나는 줄 알았습니다만, 여기 이곳에 숨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Mr. 김도 모르는 게 있네요."

"전 불완전하니까요. 아는 건 완벽하게 알지만 모든 걸 알지는 못합니다."

잠시 얘기를 나누는 사이 저 앞에서 사람들이 접근하는 게 보인다. 양복 입은 남자들. 아마도 고위 공무원이겠지.

"정말로 괜찮겠어?"

김애경은 여전히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살짝 몸을 내려다본다.

딱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다. 자세히 보니 의수와 의족에서도 혼돈의 불꽃이 타닥타닥 불똥을 튀기고, 육체 주변의 공간이 너울너울 아지랑이처럼 일렁이고 있었으니까.

한 번 웃어주었다.

"괜찮다니까."

투타타타타.

헬기가 날아왔다.

샌프란시스코 교외의 널찍한 호텔로 옮겨갔다. 방으로 올라간 후, 김현의 상태를 확인한 일행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현아, 너......"

그새 김현의 몸이 많이 무너졌기 때문.

눈에서만 빛나던 혼돈의 불꽃은 이제 귀와 코, 입에서도 흘러나온다. 게다가 네 개의 의수 전부가 기이한 형광색을 내뿜었다. 여기에 쉬지 않고 음침한 증기 같은 것을 발산하고 있으니 정말로 인간의 형상이 아니었다.

"그러게, 꽤 심하네."

"야! 꽤 심한 정도가 아니잖아?"

"괜찮아, 괜찮아.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야."

해결 방법은 간단하다. 김현이 5성 등급에 이르러 혼원 성혼을 제대로 제어하기 시작하면 모든 일이 해결된다. 단지 눈빛이 해괴해 보이는 정도에서 끝나니까.

"Mr. 김, 병원부터 가요."

에일리가 김현의 손을 잡아끌었다.

하얗고 예쁜 손. 솜사탕처럼 부드럽겠지.

하지만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 김현의 두 손 모두 금속이 되었고, 탁한 녹색 광채를 뿜으며 번들거리고 있으니까.

"병원 간다고 낫겠습니까? 어차피 이걸 치료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어요."

"아, 치료돼요?"

"다행입니다!"

피터와 에일리가 반색했다.

"치료된다고요?"

여태 빛의 치유를 쓰던 이세희도 마찬가지.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두 눈이 젖어 있었다.

"그럼요. 정확히 말하면 치료가 아니라 증상 고정이에요. 더 심해지지 않게 하는 건 가능해요."

"증상 고정이라고?"

"어. 앞으로 몇 년은 이렇게 있을 각오를 해야지."

"너 진짜......"

김애경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래도 김현은 빙글빙글 웃고 있었다.

"괜찮대도. 결국은 치료할 수 있어. 참,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성형 수술이나 할까?"

김애경이 매섭게 째려본다. 김현의 감정이 남아서일까? 저절로 목이 움츠러들었다.

치료에 앞서 정산 시작.

1성 등급 24개, 2성 등급 63개, 3성 등급 8개, 4성 등급 4개.

펜타곤과 피셔맨스 와프에서 얻은 걸 다 합쳐서 이 정도가 나왔다.

정리표대로 점수를 매겨 보니 김현의 기여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4성 등급 3개를 가져가고 3성 등급에서 또 2개를 가져가야 겨우 맞출 지경.

"제 건 현이한테 몰아줄게요."

"저도요."

여기에 김애경과 이세희가 자기 점수를 김현에게 몰아주겠다고 선언했다. 이 정도면 4성 등급 전부를 김현이 가져가야 한다.

"어, 어어 저도 Mr. 김에게 제 점수 드릴게요."

"그럴 필요 없어. 너도 목숨 걸고 싸웠는데 네 몫은 받아야지."

"그래도......"

"됐으니까 얼른 크기나 해."

피터가 어색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일리가 침착하게 말했다.

"혹시 제 몫 필요하시면 빌려드릴게요."

"하하, 괜찮습니다. 필요한 만큼은 있어요."

기여도를 따져 보니 김현이 4성 등급 성혼 네 개를 다 가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김애경과 이세희에게 고맙다고 하자, 둘이 별 것 아니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빨리 치료나 해. 엄마 아빠 걱정하실라."

"알았어. 나중에 이자 쳐서 갚을게."

"이자는 무슨. 정 그러면 우리 하은이 장난감이나 사주던가."

"좋아. 아주 좋은 걸로 하나 만들어줄게."

"만든다고 하니까 오히려 걱정되는데......"

"안 갚으셔도 되니까 빨리 치료부터 하세요."

"에이, 계산은 정확히 해야죠.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김현에게 몰아준 대신 김애경과 이세희는 자투리 성혼 몇 개 밖에 못 받았다. 김현은 다시금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백흔귀를 불렀다.

으슥한 안개가 깔리며 백흔귀가 소환된다. 피터가 딸꾹질을 하고, 에일리는 흥미롭다는 눈빛을 던졌다. 해골바가지가 김현을 보더니 안광이 크게 흔들렸다.

[설마 선지자인가?]

"맞아, 나야."

[놀랍군. 이거 안타까운데...... 진심으로 애도를 표하네. 이번이 마지막 거래가 되겠군.]

"마지막 거래는 무슨. 한 1주일 뒤에 또 부르면 아주 기절초풍할 분위기다?"

[선지자여, 그대의 혜안도 혼돈계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인가? 그대는 이미 혼돈에 침식되었다. 혼돈은 생육과 영령에게 모두 치명적이니, 그대의 운명이 감히 결정되었다고 하겠다.]

"글쎄. 두고 보자고."

[음......]

백흔귀가 묘한 기색을 흘린다. 김현은 피식 웃었다.

"왜? 죽이게?"

[그럴 리가. 그건 불가능하다.]

"표식 같은 거 박으면 되잖아. 사신의 표식 말이야."

[큼! 도저히 숨길 수가 없군.]

사신의 표식.

별 건 아니다. 특정한 파장을 영혼에 새겨놓아 해당 성향의 괴물들이 찾아오게 하는 거니까.

지금은 아무 쓸모 없는 짓이지만 현충일부터는 달라진다. 범람하는 괴물들이 일제히 몰려오기 때문. 이 경우에는 유명계 성향 괴물들이겠지.

백흔귀가 망설이다가 본심을 털어놓았다.

[선지자, 그대에게는 숨겨봤자 소용이 없지. 선지자의 말이 옳다. 선지자 같은 강력한 협조자를 혼돈계에 빼앗기는 것은 나로서는 크나큰 실책이며 실패다. 요즘 선지자 덕에 내 입지가 단단해진 것이 사실이나, 그 경우 크게 문책을 당할 터.]

"그래서 날 죽여서 만회하시겠다?"

[미안하지만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 우리 유명계가 가질 수 없으면 반드시 부수어야 하니. 선지자가 단순한 협력자라면 적당히 넘어가겠으나......]

그나마 이게 말이 통하는 정도였다. 천상계나 거신계 같았으면 불문곡직 달려들었겠지. 지금 오가는 사자들은 사실상 허깨비, 혹은 환영 수준이라 전투력은 거의 없는데도.

백흔귀가 어떻게 나올지 처음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 준비한 제안을 꺼내 들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

[무슨 말인가, 선지자여.]

"불안하지? 내가 혼돈에 완전히 먹혀서 혼돈수가 될까 봐."

혼돈괴가 아니라 혼돈수.

백흔귀가 순순히 긍정을 표했다.

[그렇다. 우리로서는 절대 감내할 수 없는 악재이다.]

"잘됐네. 나 재활하는 거 도와줘."

[말도 안 되는 소리. 일단 혼돈에 접촉한 이상 운명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거, 나보고 혼돈령이 되라는 얘기로 들리는데."

[선지자!]

백흔귀가 다급히 김현을 부른다.

김현은 4성 등급 성혼을 흔들었다.

"이거 어디서 구했을 것 같아? 곧 자정인데, 조금만 기다리면 어딘가의 사자가 찾아오겠네. 나라고 그냥 죽어 줄 수는 없으니, 그 사자랑 이야기를 해봐야겠어. 그렇지?"

[선지자. 이렇게 우리를 배신할 것인가?]

"네가 먼저 그랬잖아. 네가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마찬가지야. 나도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어. 네가 협력하면 좋겠지만 그게 안 되면...... 각자도생해야지."

백흔귀가 김현을 주시한다. 지지 않고 마주 보았다.

사실 김현이 이길 수밖에 없다. 사신의 주시라고 해봐야 김현이 버텨내면 그만이니. 혼돈계와의 교섭 여하에 따라 지원이 쏟아지면, 이런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한계가 있고.

마침내 백흔귀가 항복하고 말았다.

[원하는 게 뭔가, 선지자여?]

김현이 빙긋 웃었다.

"일단 이거 받아."

4성 등급 성혼 세 개를 내밀었다.

백흔귀가 그걸 받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 멸성지경 성혼 3개라니...... 선지자여, 그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겠네. 나도 건 게 꽤 많다네.]

"알아. 그럼 서비스 좀 팍팍 주던가. 내가 이번에 살아남으면 네가 탑주 나리 되는 건 시간문제라는 건 알지?"

[크흠! 성공 선물을 준비해 놓겠네.]

"쯧, 야박하기는. 투자해야 할 때 팍팍 투자해야 크게 돌아오는 거 몰라?"

[근래 내 처지가 곤궁하여 어쩔 수 없다.]

"뭐, 알았어."

이런 사소한 것까지 인간을 닮아서 좀 우습다. 하긴 그래서 이 녀석을 계약자로 선택했지. 사고방식이 완전히 다르면 대화 자체가 어려우니까.

미리 준비한 목록을 건넸다. 사실 성혼 3개로 교환하기에는 조금 많은 양이다. 백흔귀가 조금 갈등하고는 손을 뻗었다.

쿠구구구.

온갖 재료가 쏟아졌다.

9종의 금속, 9종의 보석, 9종의 가죽, 9종의 뼈, 9종의 천, 9종의 액체, 9종의 기체, 9종의 곤충, 9종의 약초.

[도대체 이런 걸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군.]

백흔귀가 투덜거린다.

그래, 짐작도 못 하겠지. 이건 인류 역사에 나타났던 뭇 천재 중에서도 천재, 차오 박사가 개발해 낸 기술이니.

흔히 99륜이라 부르는 기술.

아흡 세계의 재료가 빚어내는 조화가 핵심이다.

혼돈계, 천상계, 악마계, 시원계, 거신계, 광명계, 암흑계, 유명계, 불사계, 이렇게 아흡 세계.

중심에는 혼돈. 나머지는 각각 성(聖)과 마(魔), 처음과 끝, 빛과 어둠, 영혼과 육체를 상징한다.

[부디 생존하길 기원하겠네. 혹시 실패할 것 같으면 스스로 팔의 동맥을 베게나. 내가 작은 배려를 해두었으니 또 다른 삶을 이어갈 수 있을 걸세.]

"됐어. 난 유령이 될 생각이 없어."

김현이 제법 마음에 들긴 했나 보다. 유명계의 주민이 될 길을 열어주는 걸 보면. 사실 원 역사에서 이런 식으로 다른 세계로 가는 자들도 많긴 했는데 김현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럴 거였으면 전생에 진작 어느 세계든 귀의했겠지.

재료를 몽땅 미리 준비해 둔 수레에 실었다. 호텔 옥상에 헬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김현과 각성자들이 오르자마자 요란한 로터음과 함께 공항으로 이동한다.

"현아, 너......"

"응, 조금 더 심해졌지?"

그새 피부가 퉁퉁 불었다. 만지면 살이 벌어지며 검은 증기가 솟는다. 거기서 뿜어지는 역한 냄새에 주위 사람들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는 금방. 김현 일행을 태우고 왔던 미군기가 대기하고 있었다.

기내의 작업실로 직행.

한철군이 심각한 얼굴을 하고 김현을 맞이했다.

"이봐, 괜찮은 거야? 왜 이렇게 됐어?"

"괜찮습니다. 괴물들과 싸우다 보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인데요. 목숨 건졌으니 됐죠."

"허허 참......"

"작업실은 저 혼자 써도 되겠습니까? 이번에 만들 물건은 완전히 집중해야해서요."

"아, 그렇게 해."

한철군은 물론 여기까지 따라온 일행 모두 내보냈다. 김현이 안에서 대장간 문을 잠그자, 그걸로도 모자라 미군이 주변을 에워쌌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는 김현.

설계도 하나 없이 즉석에서 강력한 보물을 만들려고 하니 조금 답답하다.

묵묵히 시작.

가장 먼저 손을 댄 건 뼈대.

영철과 혈철로 기초를 심고 다른 금속을 덧댔다.

연장은 딱 하나. 두 손이 전부.

어떻게 두 손만 가지고 제작이 가능하냐고?

지금 김현이 손에 뿌리는 걸 보면 안다.

치익!

광명 용액.

김현이 구입한 9종의 액체 중 하나.

이걸 손에 뿌리면 화려한 빛이 발생한다. 이 상태에서 별빛 구리를 떡 주무르듯 마구 변형시킬 수 있다. 혼력을 조금씩 뽑아내며 형태를 잡으면 그것으로 완료.

사실 지금 두 손이 다 의수가 되어서 이렇게 하는 게 가능했다. 그냥 평범한 손이었으면 진작에 광화(光化)되어서 녹아내렸겠지.

다른 재료도 마찬가지. 액체가 아니면 약초, 천을 이용해서 변형시키면 된다. 81종이 전부 그렇게 맞물려 있었다.

그래서 99륜. 9종 9류의 재료를 결합하여 만드는 수레바퀴이니.

몰입한다.

오롯이 99륜의 제작에 집중한다.

용광로가 뿜어내는 열기도, 쿠아아앙 비행기 착륙하는 소리도, 점차 무디어져 가는 감각도 모두 잊었다. 오직 두 손만 놀렸다. 어찌나 집중했는지 눈앞에서 노니는 두 손이 태산처럼 거대해 보였다.

1시간, 2시간, 3시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모든 것을 다 잊었다. 배고픔도 목마름도,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완벽한 무념무상.

언제였을까.

전생에서 멸망왕을 만들 때 그랬을까. 아니면 최후의 계획을 짜낼 때 그랬을까.

김현의 손놀림이 섬세해진다.

사랑하는 여인의 교구를 어루만지는 듯하다. 어쩌면 도자기를 마무리하는 도공 같기도 하고, 별 바다를 빚는 창조주의 손길을 닮기도 했다.

다음 순간에는 반대로 대범해졌다.

쓱쓱 산과 계곡을 그려낸다. 격렬하고도 깊숙하게 들어간다. 도자기를 깼다가 조립하는 걸 몇 번이나 하고, 새까만 어둠을 빛으로 반전시키는 재주를 부렸다.

어느덧 24시간이 지났다.

또르륵,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김현은 그것을 자각하고 눈을 떴다. 눈앞에 거대한 수레바퀴가 완성되어 있었다.

지름이 거의 2미터. 김현보다 더 컸다.

가장 특이한 것은 색채.

은은한 무지갯빛을 띠고 있었다. 혼돈계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더 밝고 희망적인 광채였다. 보기만 해도 그 화려함에 기억 속 깊이 남을 지경.

하지만 이 아름다운 색깔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곧 봉인되어 숨어 버릴 테니.

손을 뻗었다.

우우웅......

수레바퀴가 반응한다.

미리 챙겨둔 성혼을 집는다. 유일하게 처분하지 않고 가지고 있던 하나.

수레바퀴 중심에 넣었다. 그러자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저절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그 크기가 축소되어 한 손에 들어갈 정도가 된다.

그걸 잡아 심장에다가 꽂았다.

"크윽!"

무시무시한 통증이 전신을 치달렸다.

육체가 급속히 기화하며 스러지기 시작했다. 살이 마르고, 피가 증발하는 게 너무나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눈을 부릅떴다.

혼력을 움직인다. 혼력에 묻어 있을 혼돈의 힘을 회전시킨다.

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퍼뜨린다 생각하고, 심장에서 대동맥궁으로, 대동맥에서 모세혈관으로, 정맥을 통해 심장으로 돌아오게끔.

처음에는 힘들었다. 삐걱거렸다. 수레바퀴가 더더욱 파고들며 고통만 가중했다. 그러나 그에 굴하지 않고 우직하게, 황소처럼 혼력만 계속해서 움직였다.

응답이 있었다.

수레바퀴가 잔뜩 달아오른다. 무지갯빛 광채가 짙어졌다. 그 빛에 김현의 심장이 반응했다.

불꽃이 타오른다.

불길한 혼돈의 불꽃. 그것이 수레바퀴와 만났다.

삐걱삐걱삐걱삐걱.

약속된 기능이 발휘된다.

만신창이이던 김현의 육체.

복구된다. 살이 솟고 피가 생성된다. 짓물렀던 피부도 정상으로 돌아가고 물고기 비늘 같던 각질이 자취를 감춘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는 듯한 광경.

"허억, 허억, 허억."

어릿한 통증이 남아 있으나 이 또한 곧 사라질 터. 김현을 괴롭혔던 환각도 환청도 사라졌다. 명징한 감각이 김현의 두뇌를 일깨우고 있었다.

손을 내려다본다. 아득한 시선이 보내오는 정보 중, 어느 한 항목에 시선이 꽂혔다.

[혼원(혼돈, 4★)]

원 역사보다 몇 달은 더 빠른 4성 등급 각성자의 탄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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