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60화 (60/200)

# 60

전력 강화

총 일곱 개.

김애경에게 둘, 이세희에게 셋, 피터와 에일리에게 각각 한 개씩.

"이게 뭐야?"

"뭐긴, 성혼이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더 강한 성혼을 흡수해야 할 필요가 있어?"

김애경의 질문이었다.

하긴 김애경은 지금 상태로도 상당히 강력하다. 극점 심장과 서리거인 성혼은 궁합이 잘 맞았으니까. 4성 괴물만 아니면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고.

문제는 바로 그거였다.

"두 달 남았어."

"두 달? 외계 도래는 8월 말이라고 했으니까...... 일곱 괴수 나오는 거 말하는 거지? 그럼 아직은 여유가 있는 것 같은데."

역시 김애경은 김현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이세희도 마찬가지. 한철군이나 피터, 에일리만 무슨 소린지 몰라 했다.

"그게, 내가 예지했던 것보다 4성 괴물이 더 나올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더 나온다고? 어떻게 알았어?"

"백흔귀에게 들었어. 피셔맨스 워프에서 우리가 혼광 악어를 쓰러뜨렸잖아. 그것 때문에 떠돌이들이 더 찾아올 것 같대. 나 혼자서는 괴수들을 다 감당하지 못할지도 몰라."

지금 김현은 4성 각성자로서는 성장 한계에 부딪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광 악어와 다시 싸운다면 1대 1로도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두 마리를 넘어가면 힘겨워진다. 특히, 원 역사에서 멸절용 파멸호라 불렸던 두 마리의 괴수를 생각하면 전력의 보강은 필수였다.

"누나가 한 마리, 다른 사람들이 한 마리는 맡아줘야겠어."

그 말에 모두 일제히 숨을 죽였다.

"아, 어...... 저, 저희가 한 마리요?"

"응. 너랑 켄트 양, 이 선생님이 한 마리."

"마, 말도 안 돼요!"

피터가 울상을 지었다.

심해에서 만났던 혼광 악어. 놈이 한 번 안광을 토하고 소용돌이를 일으킬 때마다 생사를 오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놈을 김현도 없이, 김애경도 없이 에일리와 이세희만 합류해서 잡으라고?

말도 안 되지, 암. 말도 안 돼.

이세희도 떨떠름한 표정인데, 에일리가 김현처럼 팔짱을 끼고는 가슴을 똑 내밀었다.

"재미있겠네요. 해볼게요."

너 미쳤어?

이세희가 그런 얼굴로 에일리를 돌아본다.

"어차피 두 달 남았다면서요. 그럼 그동안 열심히 수련하면 되죠. Miz. 김만 혼자 괴물이랑 1대 1 하라는 법 있어요? 저도 더 강해져서 1대 1 할 거예요."

당차게 포부를 밝히는 에일리. 한편으로는 김애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동경, 혹은 존경심, 또는 경쟁심이라고 할 만한 복잡한 감정이 푸른 눈동자 끄트머리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둘의 위치가 비슷하다 보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하긴 에일리의 상위 호환격인 인물이 김애경이니까. 원 역사에서도 그랬고.

김현은 짧게 손뼉을 쳐주었다.

"켄트 양이 그래 주면 저는 고맙죠. 기왕이면 여기 있는 분들 모두가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에엑?"

이세희가 펄쩍 뛰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힘들 것 같은데요?"

"그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이 선생님이 버티기로 따지면 저희 중에 가장 강해질 수도 있습니다."

원 역사에서 성스러운 복수자(holy avenger)라 불리던 각성자가 있었다.

그 각성자가 이세희와 비슷했다. 축복, 치유, 방어 계열 성혼을 갖추고 한 자루 검을 무기로 삼았다. 그리고 그 검만으로 온갖 괴물들을 찢어발겼지.

이세희는 근력이 부족하니 거기까진 못한다. 대신 별도의 기법을 가르치면 강력한 방어자이자 공격수가 될 것이다.

"이거부터 받으세요."

[성스러운 축복(천상, 3★)]

[빛의 치유(천상, 3★)]

이것은 기존 성혼의 강화판.

진짜는 이거였다.

[천상 장막(천상, 3★)]

하은이에게 준 용의 장막과 비슷하다. 방어막을 형성하는 성혼으로 크기와 위력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다. 개인용 방어로는 천사의 방패보다 약하고, 단체 방어로는 하늘 결계보다 못하지만 이세희에겐 최적의 선택이라 하겠다.

이세희가 성혼 세 개를 한꺼번에 쥐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이거 느낌이 이상한데요?"

"그럴 겁니다. 묘하게 기분이 나쁘죠? 헛배 부르면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 겁니다."

적합도를 판정할 때의 반응과는 조금 다르다.

각성자만 느끼는, 자신의 역량을 넘어가는 성혼을 손에 쥐었을 때의 감각.

현재 이세희의 혼력 능력치는 25. 3성 등급 성혼 네 개는 과하다. 2성 등급 네 개나 3성 등급 세 개가 적당하나, 김현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어쨌든 흡수는 가능하고, 각성에 성공하면 혼력 능력치가 반드시 오르니까. 또, 인체의 적응 능력 탓에 앞으로 혼력 능력치가 가파르게 오른다.

이걸 적당히 설명하자 이세희가 한숨을 쉬면서도 성혼을 받아들었다.

"휴, 알겠어요. 흡수하면 되죠."

"도와드릴까요?"

미리 날카롭게 갈아둔 단검을 내밀자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차라리 제가 할게요. 으으, 이 짓을 내 손으로 하게 될 줄이야......"

이세희는 단검과 성혼을 가지고 저만치 설치된 안개 공간 바깥, 기존 대장간 건물로 향했다. 저곳에서 자해에 가까운 각성을 시작하겠지.

"이건 피터, 네 거야."

[광륜안(광명, 3★)]

탐지 계열 성혼. 김현의 아득한 시선과는 조금 다르다. 상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판독 계열이고,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탐지 계열이니까. 서로 조금씩 겹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피터가 성혼을 쥐더니 바로 집어삼켰다. 적합도가 높은 만큼 금세 각성이 끝난다. 피터의 눈에 금색 광채가 머물렀다.

"어...... 조금 어지럽네요."

"그렇지? 그래도 얼른 익숙해져야 해. 너 같은 원거리 공격수한테 탐지 계열은 필수니까."

그래야 저격을 하든 폭격을 하든 뭘 한다. 이런 성혼이 없으면 전생의 아론이 그랬던 것처럼 각종 첨단 성혼 장비로 보강해야지.

에일리도 눈을 빛내며 자기 성혼을 받아갔다.

[해일 심장(해성, 3★)]

김애경의 극점 심장에 대응된다. 원 역사에서 에일리가 썼던 조합이기도 했다.

"왜 저는 하나밖에 없어요? Miz. 김은 이제 네 개가 되잖아요."

깜찍한 불평.

김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켄트 양은 아직 혼력 능력치가 낮아서 그렇습니다. 능력치부터 올리세요."

능력치.

예전에는 일행의 능력치를 본인만 봤지만, 지금은 일행 모두에게 공개했다. 기약 없는 성혼 추출에 조금이라도 활력소가 되라고.

"체엣. 그냥 많이 쓰면 돼요?"

"네. 누나가 가르쳐준 것처럼요. 추출도 많이 하고, 일상 생활하면서도 혼력을 전신에 돌리거나 허공에 뿜어서 뭘 만들어 보세요."

말을 하면서 허공에 손가락을 찔렀다. 회색의 불꽃이 피어나더니 빨간 장미를 그리고, 파란 구름이 된 다음 노란 강아지가 되어 멍멍 짖는다.

에일리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 차분히 차례를 기다리던 김애경도 머리를 들이민다.

"야, 소리는 어떻게 냈어?"

"혼력끼리 마찰시켰어."

"그런다고 강아지 소리가 나?"

"연습하면 돼, 연습하면."

다시 손을 흔든다. 초록색 까치가 나타나 까악거리고, 검은색 고래가 그려지며 힘차게 뿌우우 소리를 냈다.

얼른 따라 하는 김애경.

허공에 얼음 강아지가 생긴다. 하지만 거기까지, 짖는 소리는 못 내고 괴상한 쇳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럼 저는 언제쯤 새 성혼을 각성할 수 있어요?"

"지금도 하나 정도는 가능합니다. 생각해 보시고, 원하는 성혼 있으면 말씀하세요."

"이동 계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건 그렇지요. 저도 고민해 보겠습니다."

일단은 해일 심장에 익숙해진 다음에.

원 역사에서 에일리는 오로지 소용돌이와 해일 심장에만 전념했다. 그 결과 돌격 계열 중에서는 최고 수준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이미 역사가 뒤틀렸으니 에일리의 선택을 존중해야지.

마지막은 김애경.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강아지 생성을 멈추고 김현을 본다.

"그래, 내가 뭘 각성하면 4성 괴물이랑 1대 1로 싸울 수가 있어?"

"각성도 하고, 필살기도 익히고, 4성으로 올라가야지. 그럼 진짜 1대 1 된다."

"뭐? 푸하하."

김애경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었다. 그걸 보며, 손에 쥔 성혼 두 개를 어루만졌다.

원 역사에서 김애경은 황혼의 일격과 여명의 연격(連擊)으로 유명했다. 성향, 속성은 반대인데 계열은 같고 기법에서 차이가 났으니 강해질 수밖에. 특히 황혼의 일격과 여명의 연격을 융합하여 내치는 멸망포가 막강했고.

지금은 여명의 연격을 주기가 힘들다. 현재 김애경이 가진 성혼은 황혼의 일격이 아니라 서리거인이니까.

그래서 결정한 성혼.

시화룡(始火龍).

용은 용이지만 용왕계의 용들과는 전혀 다르다. 대초의 불을 품은 거대한 뱀이라고 할까.

시원계는 하늘과 땅이 분리되지 않은 일종의 포란 세계. 이 시화룡은 하늘의 태양이 될 가능성도, 대지의 용암이 될 가능성도 품은 채 시원계의 거친 대지를 헤엄쳐 다닌다.

여기에 극점 심장에 대응할 태양혼까지. 이를테면 시화룡의 성장 방향을 태양으로 설정한 것이다.

괜한 짓 아니냐고? 미리 성장 한계를 그어 버리니까?

사실 그 말이 맞다. 어쩌면 시화룡에만 집중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각성시키는 사람이 김애경이 아니라면.

'사람마다 적성이 다른 법이지.'

원 역사에서 증명된 성장 방향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갈 이유가 뭐 있을까?

여기에 몇 가지 술수를 부렸다.

서리거인의 에너지원은 극점 심장이다. 반면 시원계 성향에서는 이 관계가 뒤집힌다. 시화룡의 형질을 태양혼이 결정하여 방출하게 되니까.

기존에는 속성과 성향만 반대였다면 성혼 사이의 관계까지 뒤집어 놓은 셈. 또, 음양의 이치상 거신계 성향은 땅이 되고 시원계 성향은 하늘이 된다. 힘의 흐름도 거신계는 안에서 밖으로, 시원계는 밖에서 안으로 흐르는 것도 추가.

김애경이 이걸 제대로 깨닫는다면 정말이지 막강한 힘을 얻을 것이다.

"이거 두 개야."

"이번에는 예전처럼 재구축 안 해도 돼?"

"그럼. 어련히 알아서 했을까. 내가 누나한테 최고로 어울리는 성혼을 만들었으니까 먹기만 하면 돼."

"잘 먹을게."

김애경이 정좌하고 두 성혼을 꿀꺽 삼켰다. 곧 전신을 부들부들 떨면서 각성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완벽히 반대되는 성향의 성혼이니. 현재 김애경의 혼력 능력치로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휴, 다 됐어요."

이세희가 초췌한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잠깐 나갈까요?"

김현은 권총 두 자루를 챙겼다. 평소 애용하던 대구경 권총, S&W M500이 아닌 콜트 사의 베스트셀러 M1911이었다.

"잘 보세요."

손을 뻗었다.

회색의 불꽃이 타오르다가 권총으로 스며들었다. 흐릿한 무지개 광채가 빛나다가 어느 순간 사라진다.

탕!

허공에 대고 발사.

한 줄기 광선이 그어졌다. 혼돈계 특유의 기이한 광채다. 이세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피셔맨스 워프에서 제가 총알을 미리 개조해 왔던 거, 기억하시죠?"

"당연하죠."

"그거랑 비슷합니다. 즉석에서 총알에 성혼을 부여하는 게 중요해요. 공격 성혼이면 더 좋겠지만, 아쉬운 대로 혼력만 불어넣어도 속성은 부여됩니다."

건국대학교를 복구할 때부터 가졌던 구상이 드디어 현실화된 것. 그때는 이세희의 혼력 제어 능력이 너무 보잘 것 없어 시도조차 못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가능하겠다.

이세희가 총을 들고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금색 빛이 스며들다가 사그라드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 보다 못해 간단한 조언을 했다.

"처음에는 총알에 부여하고 쏴보세요. 그다음에는 탄창에, 그다음에는 총에 부여하면 더 쉬워요."

"아......"

그대로 따라해 본다.

성공.

총알에 혼력을 주입한 후 쏘자 금색 광선이 그어졌다.

"천상계 괴물들만 아니면 3성, 4성 괴물이라도 충분히 피해를 줄 겁니다. 나중에는 전용 총도 만들어 드릴 테니까 계속 연습하세요. 기관총을 들고 연속해서 쏠 정도로요."

"전용 총도 있어요?"

"만들면 되죠."

이 경우, 단순히 공격용이 아니라 초장거리 지원용으로도 성혼을 쓰게 된다.

지금 이세희의 사거리는 약 50미터 남짓에 불과하다. 하지만 저격총에 성혼을 부여해서 쏜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쯤에서 김애경도 각성 완료.

"느낌이 이상해."

"당연하지."

모든 면에서 반대인 성혼을 두 개나 각성했으니까.

새로운 성혼에 익숙해지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다. 각성소에서의 성혼 추출은 좋은 수련 거리가 되었다. 이때도 저스티스 팀과 가디언 팀은 침식 세계를 복구한다고 바빴으나, 김현 일행만큼은 한 걸음 비켜서서 목가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래가진 못했다.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기 때문.

[애경아, 하은이가 없어졌다.]

올랜도 디즈니 월드가 재개장한 첫날.

거기서 부모님이 하은이를 잃어버렸다고.

툭.

김애경이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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