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칸쿤
[미켈 멕켈란? 그게 누군데요?]
모르는 걸까.
하긴 미국의 정보원이 워낙에 많아야지. 대통령씩이나 되는 인물이 일일이 이름을 알면 그게 더 이상하다.
"제 조카를 납치한 갱단을 사주한 자입니다. 갱들도 정확한 인적 사항은 모르고 이름만 알고 있었지요. 미국 비밀 조직의 일원이라는 사실이랑요."
[어...... 그게 정말입니까? 갱들은 질이 나쁜데, 거짓말을 했거나 자기네들이 잘못 알고 있을 가능성은......]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놈들 중에 간파 성혼을 가진 놈이 있었거든요."
[후...... 알겠습니다. 미켁 멕켈란이라, 조사를 한 번 해보지요.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번 일은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며 우리는 Mr. 김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알죠. 그러니 이렇게 대통령께 직접 전화한 것 아니겠습니까?"
[후우, 워낙에 비대한 조직이다 보니 제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요.]
그걸로 전화가 끊어졌다.
하은이는 여전히 조잘조잘 떠들고 있었다. 김애경과 이세희가 그걸 보고는 한 시름 놓았다.
"누나, 선생님. 먼저 사무실에 가 계세요. 전 어디 좀 들렀다가 갈게요."
"어딜 가게?"
"칸쿤에."
"너......"
김현의 내심을 간파한 김애경이 눈을 가늘게 뜬다.
"호랑이가 되라며?"
"그건 그렇지만, 괜히 일 크게 만들 건 없잖아."
"어휴, 우리 누나 또 시작했네. 크게 벌여야지.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안 생기지. 안 그래?"
김애경이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세희가 김현의 등을 살짝 때렸다.
"알았으니까 다치지나 말고 오세요."
"전 다치고 싶어도 다칠 수가 없는데요?"
"농담이시죠?"
이세희의 눈이 김현의 팔 다리를 빠르게 훑는다. 선글라스 너머 타오르는 두 눈까지도.
이거야 원.
지금 몸 상태를 생각하면 반박할 수가 없구나. 김현은 쓰게 한 번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경찰들이 불편한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뒤처리 부탁합니다. 아, 저기 마약 밀매 잠수정 침몰시켰으니까 그것도 예인해주시고요."
"뭐, 뭐요?"
이제야 잠수정에 대해 알아차렸는지 부두 바깥으로 몸을 내민다. 물 아래 어른거리는 꺼먼 물체를 보고는 고함을 친다, 지원을 요청한다, 난리를 부렸다.
자리를 벗어나는 일행.
마이애미 공항에서 두 편의 비행기를 수배했다. 하나는 뉴욕행, 하나는 칸쿤행. 김현은 칸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칸쿤까지는 2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지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켈리 가르시아에게 알아냈던 칸쿤 외곽의 한 저택으로 이동했다.
"엄, 무슨 일로 가시는 겁니까?"
택시 기사가 김현의 팔 다리를 훔쳐보며 물었다.
스페인 어.
김현이 가장 능숙하게 쓰는 언어 중의 하나다.
"비즈니스 때문에 가는 거죠, 비즈니스."
"엄, 그러십니까?"
택시 기사가 네비게이션을 조작하듯 스마트폰을 두드렸다. 그 와중에, 김현은 택시 기사의 손이 스마트폰 뒤에 숨겨진 작은 단추를 누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한통속이구나.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이 그렇다. 지역 주민들과 밀착되어 있을 때가 많다. 이게 다 중앙 정부의 행정력이 제대로 미치지 않기 때문이라나. 마약 카르텔이 학교와 병원을 운영하며 주민들의 환심을 살 때도 많다고.
'일일이 안 쫓아다녀도 되고, 좋네.'
좌석에 몸을 깊이 묻었다. 택시 기사는 시간을 끌려고 할 터, 아마도 길을 뱅글뱅글 돌아갈 것이다. 그 전까지 조금 쉬어둘 요량이었다.
역시나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저택 앞에 도착했다. 돈을 받자마자 택시가 꽁무니를 뺀다.
웅장한 저택. 흰 대리석으로 만든 벽이 높다랗게 솟아 있다. 저택을 완전히 감싸 안쪽이 안 보이고, 두툼한 철문이 앞을 가로막았다.
얌전히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냐?]
"각성자 김현이다."
[무슨 일로 왔지?]
"다 알면서 왜 묻지? 문이나 열어."
[이거나 쳐먹어라!]
기이잉.
기계음이 들리며 철문 위쪽에서 기관총이 하나 나타난다. 그것이 사정없이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타타타타!
딱 보기에도 소구경 기관총이다. 김현은 잠자코 서서 총알 세례를 받아주었다. 정확히 몸통을 노렸으나, 몸통과 융합되다시피 한 흉갑에 막혀 불똥만 튀기고 만다.
이어 가볍게 손을 휘젓는 김현. 회색빛 칼날이 길게 그어진다. 거기 걸린 기관총이 단번에 동강났다.
콰앙!
두 손을 철문에 붙이고 내부로 충격파를 발산하자 철문이 종이처럼 찢어졌다. 거길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자 조직원들이 소총을 겨누고 일어난다.
"쏴!"
타타타타탕!
아, 이 진부한 것들.
김현은 신경질적으로 두 손을 펼쳤다. 손가락 마디 마디가 분리되어 날아간다. 허공을 수 놓으며 벌떼 같은 비행을 끝나자, 총성이 그치며 잠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툭! 투둑!
어림잡아 스물은 넘을 조직원들이 모조리 쓰러진다.
전부 미간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김현의 의수 조각이 미간을 관통한 것. 아득한 시선과 혼돈의 주사위로 미래를 예지하며 쏜 까닭에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
이제는 시체 밭이 되었다. 핏물이 번지는 그곳을 홀로 찰박거리며 걷는다.
투앙!
멀리서 총성이 울릴 때, 김현도 머리를 젖혔다.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이마 앞을 스치고 지나간다.
머리를 맞으면 김현도 위험. 하지만 혼돈의 주사위가 미리 경고를 해주고 있었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보며 천천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광선이 쏘아진다.
기이한 색채의 빛줄기가 콘크리트 벽과 저격수를 동시에 꿰뚫었다. 모든 것이 지워지며, 상체가 사라진 저격수가 옆으로 미끄러졌다.
"말도 안 돼!"
"괴, 괴물!"
숨어 있던 자들이 웅성거렸다.
내버려두었다.
무장하지도 않은, 그저 이 저택의 사용인들이었으니까.
"이거나 쳐 먹어라!"
옥상에서 한 남자가 몸을 내밀었다. 어깨에다가 뭘 견착하고 있었는데 구경이 꽤 커보인다.
RPG-7.
김현은 이미 그걸 알고 있었다. 아득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가, 남자가 방아쇠를 당긴 다음에야 손가락을 하나 쏘아 보냈다.
쾅!
손가락은 남자의 코앞에서 탄두를 관통했다.
격렬한 폭발이 일며 남자가 찢어진다. 끽 소리도 못하고 죽었다. 남은 것은 공중으로 솟구치는 화염과 무너지는 옥상이 전부.
"으악!"
"컥!"
김현의 전진은 계속된다.
갱단은 별의 별 중화기를 동원하여 김현을 저지하려고 했다. 거치형 기관총, RPG-7은 애교에 불과했다. 크레모아를 터뜨리는가 하면 무반동총을 쏘아대고 매설한 C4를 폭파시키기도 했다.
모두 헛짓.
아득한 시선으로 꿰뚫어보고 혼돈의 주사위로 미래를 예지하고 있는데 뭘 어쩌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무장한 조직원은 모조리 죽고 김현이 저택 본관에 진입하게 된다.
"이 나쁜 놈아! 우리 오빠 살려내!"
도중에 어린 하녀가 난입하는 일이 있었다.
아마도 김현이 죽인 조직원 중 자기 오빠가 있었던 듯.
김현은 차가운 얼굴로 하녀를 주시했다. 그리고 하녀가 김현에게 접근하기 전에 목을 비틀어 죽였다.
"헉!"
여태까지 사용인들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던 김현이다.
안 그래도 피와 죽음으로 점철되어 있던 공간에, 더욱 싸늘한 공포가 강림했다.
"날 얕보지 않는 게 좋은데."
고드름처럼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
"너희, 산체스 파는 내 3살 난 조카를 납치했다. 그 어린 아이에게 재갈을 물리고, 수갑과 족쇄를 채웠지. 난 그 복수를 하러 왔다. 산체스 파는 모조리 죽인다. 감히 덤비는 자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내 어린 조카를 건드린 이상, 나도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쫓아가 죽이지 않는 것을 감사히 여겨라."
이쯤 되자 조직원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저마다 들고 있던 총을 내던지며 두 손을 든다.
이제와서 뭘?
김현은 손을 휘저어 몽땅 도륙을 냈다. 조직원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항전해 왔으나 소용 없다. 김현에게는 생채기 하나도 못 내고 전부 싸늘한 시체가 되었다.
잔인한 것 아니냐고?
전생에서 배웠다. 밟을 때는 밟아야 한다는 사실을. 그러지 않으면 독버섯처럼 자라나 언젠가 앞길을 막게 된다.
보스, 산체스는 여지껏 자기 방에 있었다. 도망쳐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다. 산체르를 경호하던 자들만 뒷문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어딜 가려고?
선글라스를 벗었다. 이번에는 특히 아득한 시선에 힘을 준다. 폭발하는 광선이 그들을 쫓아가 신체 한 부위씩 지워버렸다.
"으으으......"
"으흐흑."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반신이 사라진 채 쓰러져 있던 남자가 김현에게 손을 뻗는다. 보지도 않고 손을 밟아주었다. 의족에 밟힌 팔이 으스러지고, 남자의 영혼이 육체를 떠났다.
삐이걱.
산체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산체스가 흐릿한 눈으로 김현을 보더니 툴툴거린다.
"마왕이 따로 없군. 그래, 속이 시원한가?"
문을 닫고 산체스의 앞에 섰다. 산체스가 담배를 뻐끔거리더니 말을 잇는다.
"아까 자네가 죽인 아이는 리사라는 아이였다네. 올해 15살이고,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 많은 소녀였지. 오빠와의 우애도 두텁고, 막내도 잘 보살폈어. 그게 귀여워 저택에 고용했는데, 그게 다 물거품이 되었군."
"맞아. 어떤 멍청한 보스 때문에 그리 된 거지. 내 조카만 납치하지 않았어도 너희끼리 잘 먹고 잘 살았을 건데."
"이 자식!"
산체스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독사 같은 눈으로 김현을 올려다보더니 이를 바드득 간다.
"너희 각성자들이란! 타코 한 줌어치도 안 되는 초능력을 믿고 으스대는 꼴이라니! 너야말로 그 초능력 때문에 낭패를 당할 때가 반드시 올 거다!"
"안 올 걸. 이미 심각하게 쓴맛을 봤거든."
"무슨 개소리냐!"
"어쨌든, 네가 이 조직의 보스이니 내 조카를 납치한 책임을 져야지?"
한 발짝 다가갔다.
산체스의 눈이 흔들린다. 그러더니 왼손에 숨긴 권총을 빼어들어 자기 입에 가져갔다.
김현의 기색을 보니 그냥은 넘어가지 않을 것 같고,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
"그러면 안 되지."
자연스럽게 권총을 빼앗았다. 그리고 오른손 집게 손가락을 산체스의 가슴에 찔렀다. 이미 혼돈의 힘을 끌어올린 까닭에 손가락이 간단히 가슴뼈를 관통하여 심장에까지 가 닿는다.
"으으, 무슨 짓을......"
"간단해. 내 일을 대신해줘야겠어."
산체스가 의구심 어린 눈으로 김현을 본다.
이게 무슨 소리지?
자길 고용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당연히 아니다. 김현의 사고방식은 산체스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다. 비단 산체스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람들 다 마찬가지.
혼돈의 기운을 주입한다.
"으윽, 으으윽!"
산체스가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렸다. 이어 입에서 피를 주르륵 흘린다.
시커멓게 죽은 피.
방금 김현은 산체스의 심장에 혼돈의 씨앗을 심었다.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발아한다. 종래에는 숙주의 전신으로 퍼져 혼돈귀로 만들어 버린다.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아는 자들을 죽여."
"무슨 헛소리냐?"
지금은 그렇겠지. 하지만 혼돈에 잠식되고 혼돈귀로 완전히 변하기 전, 반인반괴가 되었을 때 지금 김현의 명령을 기억하고 아는 자들을 죽이러 돌아다닐 것이다.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자들부터, 사랑하는 이들부터.
산체스를 제압한 다음에는 집무실을 뒤졌다. 대놓고 놓인 금고는 무시. 금괴와 다이아몬드 밖에 없었으니까. 대신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뜯고 은밀히 숨겨진 비밀 금고를 부숴 서류를 챙기자 산체스가 키득키득 웃었다.
"그래, 다 가져가라! 으하하! 세상을 뒤집어 버려!"
언뜻 서류를 살펴본다.
산체스 파가 저지른 온갖 추악한 범죄에 대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미국과의 연결 고리도.
칸쿤 자체가 미국 자본에 의해 개발된 곳이다. 산체스 파는 그들의 은밀한 비호를 받아 성장했고, 최근에는 미국 남동부와 마약 밀매로 세력을 키웠다.
'대통령한테 주면 알아서 하겠지.'
그 이상은 관심없다.
마약 밀매? 인신 매매? 강도, 강간?
정치인들 보고 알아서 하라고 그래. 김현은 인류 생존이라는 목표만 이루면 된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이제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가족들을 건사하는 정도.
오늘 손을 과하게 쓴 것은 그 때문이기도 했다.
전생에서, 5살이 되자마자 가족들과 생이별했던 기억. 그 상처가 무의식 깊이 숨어 있다가 이제 드러난 것.
'나쁘지 않아.'
김현도 그것을 알았다. 하지만 굳이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또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마련이니까.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마이애미, 그리고 칸쿤......
기이할 정도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칸쿤은 산체스 파의 저택 안에서 일을 벌였으니 그렇다고 쳐도, 마이애미는 목격자가 그리 많은데도 불구하고.
SNS에 퍼진 것은 잠깐 동안이 전부. 김현의 조카가 납치 당했고, 흉악무도한 범죄자들이 인질극을 벌이는 걸 구출했다는 것 정도만 알려졌다. 세세한 과정은 쉬쉬 묻혀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알 사람은 다 알았다.
김현을 건드리는 건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또 하나.
김현의 무력이 이미 인간의 범위를 넘어섰다는 사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