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68화 (68/200)

# 68

비철룡 태산호 –1-

통곡한다.

울부짖는다.

한 남자를 꽉 끌어안고 있다. 몸이 다부진, 머리가 하얗게 샌 늙은 사내다.

바로 알아보았다.

벌써 두 달 전이었지. 건국대학교에서 막 탈출하던 서경태를 향해 달려들던 남자가 있었지.

서영도라고 했던가.

서경태의 아버지.

둘이 얼싸안고 통곡하던 장면은 매스컴을 타고 대한민국 전역에, 아니 지구촌 전역에 알려졌었다.

지금도 가끔 희자되는 장면.

이제는 달라졌다.

숨이 끊어진 채 아들의 품에 안겨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안 돼......"

이세희가 망연하게 서서 서경태와 서영도를 바라본다. 당시의 감동적인 재회를 목격했던 터라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경태야!"

황급히 달려간다.

증폭 권총을 쏠 생각도 못 하고 두 손을 겹쳐 서영도의 가슴 부위에 대는 이세희.

금색 광채가 폭발적으로 쏟아졌다.

치유, 치유, 치유.

그러나 소용없다.

이미 호흡이 끊기고 심장이 정지한 상태의 시체를 되살리기란 불가능했으니.

"눈을 떠요!"

급기야 울음을 터뜨린다.

서경태를 밀어내고 강하게 CPR(심페소생술)을 하지만 무소용. 서영도의 꺾인 머리가 돌아올 줄을 모른다.

"크흐흑!"

서경태가 허물어진다.

무릎을 꿇은 채 오열한다. 폭포수 같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려 질척한 땅을 적셨다.

"안 돼, 안 돼, 안 돼......"

김애경까지 가서 이세희를 돕지만 그게 되겠나.

지그시 아랫입술을 깨무는 김현.

더 서둘렀다면 서영도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럴 리가.

눈으로 보기에도 목 관절에 사후 경직이 이미 시작되었다. 죽은지 2시간이 넘게 지났다는 뜻. 그 시간이면 김현 일행이 아직 하늘 위에 있을 때다.

"후......"

피터와 에일리가 뒤쪽에서 한숨만 불어냈다. 서경태와는 처음 만나지만, 시체가 누구인지 아는 것만으로도 그 절망을 공감할 수 있었으니.

서경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서경태 주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대부분이 젊은 남자들.

하나 같이 지친 기색이다. 아마도 미르 부대 소속 각성자들이겠지.

"괜찮아요?"

"형!"

애써 아무렇지도 않게 서경태의 어깨를 짚었다. 서경태가 오열하며 김현에게 안겨든다.

등을 두드려주었다.

서경태는 한참이나 꺼이꺼이 울었다. 이쯤 되자 이세희와 김애경도 포기하고 서영도에게서 손을 뗐다.

"저희가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이세희가 눈물 젖은 얼굴로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서경태는 울고만 있었다. 아무것도 안 들린다는 듯이, 아니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그렇게.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김현은 서경태를 품에서 떼어냈다. 서경태가 뭐라고 말을 하려 했으나 김현이 한 발 더 빨랐다.

"전투 준비."

곤충들의 접근을 알아챈 것.

권총을 두 자루 빼어 들었다. 감정에 젖어 있던 일행들도 정신을 차린다. 저마다 소총을 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저깁니다!"

탕탕! 타타타탕!

10시 방향, 15미터 앞.

김현은 그곳에다 대고 권총을 쏘았다. 총탄이 날아가면서 마침 진흙 속에서 뛰쳐나오던 곤충을 관통했다.

"키에엑!"

"키이이익!"

곤충들이 기묘한 소리를 지르며 터져 나간다.

징그러운 광경.

하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만났던 괴물들이다. 눈살을 찌푸릴지언정 기겁하는 이는 없었다.

시커먼 몸에 빨간 눈. 뽀글뽀글 전신을 뒤덮은 털. 가느다란 다리와 삐죽한 주둥이, 한 쌍의 투명한 날개. 초파리를 사람 머리 크기로 키운 듯한 모습이다.

[기생파리]

1성 등급 괴물인 만큼 약해 빠졌지만 치명적인 괴물인 것은 마찬가지. 희생자에게 자기 알을 까서 내부로부터 살을 파먹게 하여 부화시키니까.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모조리 죽어 나갈 터. 그런데 이변이 벌어졌다.

"죽어!"

서경태가 괴성을 지르며 돌진한 것.

어둠 질주.

꺼먼 선이 되어 공간을 가로지른다. 거기 부딪친 기생파리들이 퍽퍽 터져 나갔다. 어쨌든 단련을 하긴 했는지 색깔도 더 짙어졌고 방출되는 어둠의 범위도 커져 있었다.

"사격 중지!"

급히 총구를 내렸다. 서경태가 좌충우돌하며 어둠 질주를 사방에다가 써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벽에 부딪치고 천장을 들이받지만 아무래도 좋은 모양. 기생파리의 날갯소리만 들리면 무조건 달려들고 본다.

김애경이 아랫입술을 깨물고 그런 서경태를 보았다.

"경태야......"

"죽어, 죽어, 죽으라고!"

서경태는 한참을 더 발광한 다음에야 겨우 진정했다. 그 발밑에서 기생파리의 시체가 서서히 녹아 진물이 되어 사라지고, 오직 은색 성혼만 몇 개 남아 처량한 빛을 뿜는다.

"형......"

눈물이 또르륵 흐른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힘내요."

할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비참하게도.

그나마 한바탕 날뛰어서인지 이성을 찾은 것 같다. 다시 서영도의 시체 앞으로 가 큰절을 올렸다.

두 번......

다시 촉촉해진 눈으로 김현을 돌아본다.

"지금은 장례를 못 치르겠지요?"

"백록담을 복구한 다음에나 가능하죠. 그리고 한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뭔데요?"

"시체를 화장해야 합니다."

"네?"

화들짝 놀라는 서경태.

어쩔 수 없었다. 아득한 시선을 통해 보이는 게 있으니까.

[기생파리 알]

부화까지는 시간이 남았지만, 그것도 십여 분 남짓이다. 일단 부화하면 시체 내부부터 파먹기 시작하여 인간파리로 변하겠지. 유명계에서 빙의귀가 생기듯이.

"기생파리가 이미 알을 깠습니다. 10분만 있어도 부화합니다. 그것도 인간의 DNA를 받아들여서, 변형된 형태로요."

"기생파리...... 알......"

서경태도 바보는 아니다. 미르 부대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리고 이 침식 세계에 드나들면서 보고 들은 것도 있다. 따라서 김현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러나 쉽게 화장하자는 말은 못 했다.

당연한 일. 어느 자식이 이제 막 죽은 아버지를 지금 바로 화장하자고 선뜻 나설까. 격식 있게 모든 절차를 거쳐서 화장하는 것도 아니고.

이럴 때는 눈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김현은 의수를 곧추세우고 서영도의 시체에게 다가갔다. 아득한 시선을 통해 살핀 후, 뜯겨나간 목줄기 바로 아래에 손을 가져갔다.

부욱!

칼처럼 세운 손으로 쇄골 아래를 절개하자 힘없이 찢어지면서 하얀 곤충의 알이 드러난다.

사람 손가락 크기. 하얗기만 한 게 아니라 투명해서 그 안의 징그러운 파리 유충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알이.

"으드득!"

서경태가 이를 갈아붙인다.

징그럽지도 않은지 알을 잡고는 힘껏 빼냈다. 유충이 위험을 감지하고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손에다가 확 힘을 준다. 역겨운 녹색 체액이 손바닥에서 터져 흘러내렸다.

"김현 님. 그냥 절개할 수는 없어요?"

"힘들어요. 알이 다 이렇게 큰 건 아니어서요. 좁쌀 크기 알도 많은데 그걸 언제 다 일일이 빼내겠습니까? 10분 안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흐윽!"

김현이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하자 서경태가 길게 울음을 흘린다.

이를 악물고 허공을 보았다가 서영도의 시체를 보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김현과 시선을 맞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말을 꺼낸다.

"아버지는 저 때문에 돌아가셨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2시간 전에 여기 탑에서 나갔을 때, 용한테 들켜 버렸거든요."

서경태가 다시금 눈물을 찍어냈다.

"들키지 말았어야 했는데...... 아니, 저 혼자 거기서 죽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게 무슨 도망을 쳐서......"

서영도는 김애경처럼 강화 계열의 각성자였다고 한다. 위험에 처한 아들을 보고 몸을 던져 찰나의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그 덕에 서경태는 도망치는데 성공했으나 서영도는 용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벼락처럼 내리찍는 충격파 숨결. 비록 용 중에서는 파괴력이 약한 편이나 2성 등급 각성자가 견디기는 어려운 그 공격을.

"네 잘못이 아냐."

우는 서경태가 안쓰러워서였을까. 어느덧 말을 놓게 된다.

"괴물 새끼들이 잘못한 거지."

"그럴까요?"

"당연히. 애초에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 지구에 쳐들어온 게 누군데? 그놈들만 아니었으면 네가, 네 아버지가 이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어. 지금도 학교 잘 다니면서, 일 잘 하면서 잘 살고 있었겠지."

서경태의 몸이 정지했다. 마치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듯이.

이내 눈을 시허옇게 떴다.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고 꺽꺽 거리며 입을 벌렸다.

"맞아요. 다 그놈들 때문이에요. 그놈들만 없었다면, 그 새끼들이 지구에 오지만 않았다면......"

끼기긱, 끼긱.

그때, 쓰러져 있던 서영도의 시체에서 기괴한 소리가 울렸다. 마침내 기생파리의 알이 부화하여 인간파리로 진화하려는 것이다.

서경태가 김현을 본다.

핏발 선 눈으로, 잔뜩 충혈이 되어서는 원독어린 광기를 토했다.

"형님, 화장해 주세요."

"유품은?"

"챙겼어요."

서경태가 이를 으스러져라 깨물며 서영도의 시체를 보았다.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마음에 박아두려는 것 같다.

손을 뻗고 불을 뿜었다.

녹아내린다.

완벽하게,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간다.

남은 것이라고는 한 줌의 재가 전부.

그나마 그것까지 완벽하게 소멸 되고 만다.

이것이 혼돈의 불꽃.

세계와 이계의 구분도 없이 저 아득한 곳 너머, 신도 괴물도 아닌 고즈넉한 존재의 심장에 어린 허무와 혼돈의 힘이었다.

"크흐흑!"

잠시 냉정을 가장했던 서경태가 다시 오열했다.

"아버지!"

그렇게 유일한 혈육을 떠나보냈다.

서경태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이 능력치를 확인했다.

<능력>

[이름] 서경태 [성별] 남성 [나이] 23

[진영] 지구 [종족] 인간 [상태] 정상

[근력] 16 [체력] 17 [민첩] 19 [감각] 18

[혼력] 21 [의지] 23 [통찰] 16 [위엄] 17

[성향] 암흑

[성혼] 그림자 숨기(암흑, 3★), 어둠 질주(암흑, 3★)

[보물] 귀신 깃든 단검(2★)

'강해졌구나.'

그 대가가 너무나 뼈아프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니......

쿠오오오!

멀리서 광량한 포효가 들렸다. 거기 실린 막강한 힘 때문에 유충탑 전체가 흔들린다. 먼지가 폴폴 쏟아지자 서경태가 이를 악물었다.

"개새끼, 다 죽여 버릴 거야."

"괜찮아?"

"형님, 형님이라면 저 개새끼들 다 죽여버릴 수 있지요?"

무슨 말을 할까. 묵묵히 머리를 끄덕였다.

서경태가 충혈된 눈을 하고 김현의 손을 붙잡았다.

"형님, 저 새끼들 다 죽여 버려요. 그럴 수 있죠?"

"당연하지."

김현은 무심코 등에 멘 배낭을 매만졌다.

혼돈의 독.

처음에는 자신이 직접 비철룡의 역린에 꽂으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서경태에게 맡기는 게 낫겠다.

비철룡이야말로 서경태의 원수. 아예 불가능하다면 모르겠으나 그런 것은 아니니까.

"다들 모여 봐요."

미르 부대는 배제. 대장과 부대장을 잃고 이미 전의를 상실했으니까.

"설명부터 하죠. 어, 경태 너 영어 되냐?"

"듣는 건 잘 해요."

"좋아. 그럼 영어로 한다. 우리가 잡을 괴물은 비철룡과 태산호라는 괴물입니다."

비철룡(飛鐵龍), 태산호(太山虎).

혼광 악어와 비슷하게 둘에게도 항공 사냥꾼이니 하늘의 절망, 도시 파괴자, 대지의 비명 같은 별명이 붙어 있었다.

사실 개별로 따지면 혼광 악어보다 약하다. 잡히기도 훨씬 더 빨리 잡혔으니까. 문제는 둘이 앙숙이라는 점. 영역을 정해놓고 지키는 종류도 아니라서 쏘다니다가 서로가 마주쳤을 때 엄청난 재앙이 벌어졌다.

이 둘이 박살낸 도시만 50개가 넘는다. 희생자 숫자로 따지면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

"원래는 둘을 잡기가 힘듭니다. 놈들은 제법 똑똑해서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을 가거든요."

"하, 괴물 주제에 도망을 가요?"

"응.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한 괴물이 멍청한 거지. 고위 괴물들은 인간보다 더 똑똑하고 교활한 괴물도 많아. 어쨌든, 놈들이 마음 먹고 도망치면 잡기가 힘들어. 그러니까 아주 많이 분노하게 할 필요가 있어."

혼돈의 독을 꺼냈다.

"방법은 간단해. 용의 목 아래, 사람으로 치면 쇄골과 쇄골 사이에 움푹 들어간 부분이 있지? 거기에 자기 혼자 거꾸로 난 비늘이 있어. 역린이지."

"거기에 꽂으면 돼요?"

"응. 유인은 내가 할게. 기회만 보다가 거기에 이걸 꽂아. 하나만 꽂아도 성공이고 두 개, 세 개 꽂으면 더 좋아.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누나는 비철룡을 위주로 맡아줘. 내 성혼으로는 비철룡의 비늘을 뚫기가 어렵거든."

"그렇게 세?"

"방어에 특화된 괴물이라서. 또, 시간익이라는 성혼을 쓰는데 그게 골치 아파. 직접 겪어 보면 알 거야."

"알았어."

"그리고 다른 분들은......"

각자가 해야 할 일을 세세히 알려주었다.

오래 끌 수는 없다. 지금도 이곳 세계 곳곳에 미르 부대원이 고립된 채 구조만 기다리고 있으니까.

소모품도 충분히 나눈 다음 유충탑을 나섰다.

적당한 공터에 자리를 잡고 인근의 괴물을 몽땅 소탕했다.

"죽어! 죽어!"

서경태는 이번에도 폭주하고 있었다.

가볍게 주의를 준다.

"냉정해라. 이성을 잃으면 될 일도 안 된다."

"네, 형님."

그제야 입술을 짓씹으며 이성을 되찾는다.

크허어엉!

가까이에서 들리는 포효.

곧 포효의 주인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왔다.

쿵! 쿵! 쿵!

딛는 걸음걸음마다 불길한 울림을 가득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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