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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헌터사-73화 (73/200)

# 73

훈련소 –3-

자연히 어마어마한 압력이 쏟아진다. 혼력의 농도가 너무 높은 까닭에, 일반인이 들어섰다간 허우적대다가 죽거나 괴물로 변형되겠지.

"후우우, 후우."

김애경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3성 각성자로서는 한계에 달한 김애경도 이곳에서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다.

"누나, 내가 전에 말했지? 여긴 성혼로(星魂爐)라고 불러."

"성혼을 제련하는 곳인가 봐?"

"비슷해. 3성 각성자 전용이야. 여기서 한계를 넘으면 4성 등급으로 진화할 수 있어."

"왜 성혼을 다 여기 쓰나 했더니, 이걸 만들려고 그런 거였어?"

"응. 1회용으로 쓰긴 아까워서."

정확하게 만든 성혼로는 동급의 성혼을 복용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당연히 성혼을 그때그때 소모하는 것보다는 성혼로를 만드는 게 효율적이다. 또, 성혼을 먹어서는 1개 성혼만 등급을 올릴 수 있지만 성혼로는 그게 아니니까 더더욱 그렇다.

"누나는 이미 4성 등급 각성자가 될 자격을 얻었어. 나머지는 몸에 각인시키는 것뿐이야."

"몸에 각인시킨다?"

"응. 인체에는 한계가 있거든. 그게 3성이야. 4성으로 나아가려면 한 꺼풀 벗는 과정이 필요해."

4성으로 올라서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뼈를 깎는 수련을 통해서도, 대오각성을 통해서도, 이계의 존재가 빙의되면서 넘을 수도 있다. 혹은 그런 것 없다는 듯이 그냥 올라서는 것도 가능했다.

김현이 두 주먹을 마주쳤다. 땅땅 금속음이 나자 김애경이 그걸 주시했다.

"자, 간단해. 나한테 멸망포를 날려봐."

"으, 유치해."

"뭐 어때? 미국인들 유치한 이름 좋아하는 거 잘 알면서."

김애경의 멸망포는 원 역사와 똑같은 이름이 붙었다. 김현은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김애경은 아닌 모양이다. 멸망포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질색하곤 했다.

"얼른 해. 얼른 하고 이 선생님 도와주러 가야지."

"하아, 알았어."

김애경이 순순히 주먹을 당긴다.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고요한 눈이 김현을 주시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김애경의 오른팔에 붉고 푸른 광채가 새어나왔다.

두 가닥의 빛이 뱀처럼 길어진다. 나무덩굴처럼 김애경의 팔을 칭칭 감는다. 더 나아가 서로가 주먹에서 마주치는데, 그 모습이 꼭 DNA의 이중나선을 보는 듯하다.

주먹에 스며들며 완전히 합일되는 상극의 힘.

투명한 빛이 일어났다.

그 즉시 김애경이 주먹을 떨쳐냈다.

별빛을 가르며 날아오는 한 줄기 힘!

위압감도 존재감도 없었다. 날아오는구나, 인지하는 순간 이미 심장을 꿰뚫어 버린다.

이것이 극대 파멸력.

원 역사에서도 몇 안 되는 각성자들만이 다뤘던 힘.

김현도 경시할 수는 없다. 양 팔을 교차하여 앞을 막았다. 힘을 끌어올리자 혼돈의 불꽃이 피어오르며 전면을 방어했다.

우르릉.

전신이 떨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멈칫하는 김애경을 향해 냉엄하게 소리쳤다.

"더!"

"괜찮겠어?"

"괜찮으니까 더 세게 때려박아!"

10층은 혼력의 분포가 극도로 높다. 여기서 멸망포 같은 기술을 쓰는 것도 힘들고 막상 발현해도 위력이 무척 반감된다. 따라서 김현이라면 충분히 방어할 수가 있었다.

김애경이 이를 악문다. 이번에는 왼팔을 뻗는다. 투명한 빛이 날아와 김현을 강타했다.

다시 오른팔, 다시 왼팔.

한 발 때리기도 힘든 게 멸망포인데 이 정도면 열심히 노력한 것 같다. 내심 흐뭇해하면서도 또 외쳤다.

"더 세게! 더 빠르게!"

"이이익!"

김애경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사이 10층 성혼로가 기이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가득 차 있던 별이 점차 사라진다. 아니, 투명하게 변한 거였다. 얼핏 봐서는 모르나 저마다 어마어마한 힘을 품었다. 흡사 김애경이 날리던 멸망포를 보는 듯했다.

"이건......"

김애경도 그걸 눈치챘다. 지친 눈으로 사방을 돌아본다.

그때, 별들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때린다.

김애경을, 사정 봐주지 않고. 세상을 부수는 파괴력이 김애경을 향해 쏟아졌다.

"아아악!"

솟구치는 비명.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며 피가 뿌려졌다. 섬뜩한 소리를 터뜨리며 9층과의 경계까지 내려왔다. 저마다 수련하던 일행들이 급히 모여들어 김애경을 올려다본다.

"왜, 왜 그래요?"

"무슨 일이에요?"

"진화가 시작된 겁니다. 걱정말고 수련이나 하세요."

팔짱을 끼고 김애경을 올려다보는 김현.

성혼로가 김애경을 두드린 건 어디까지나 잠깐 동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김애경은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보다 못한 이세희가 손을 뻗었으나 김현이 말렸다. 김애경 홀로 이 난관을 돌파해야 4성 각성자가 될 테니.

김애경이 꿈틀거렸다.

몸에서 붉은 기운이 일어났다.

시화룡. 무한한 가능성을 담은 시원계의 생물이자 개념. 그것이 육체를 돌아다니면서 상처를 복구하고 있었다.

그걸 따라 싸늘한 청광이 불어온다. 서리거인이 김애경의 몸을 고정했다.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며 재생을 도운 것.

성혼로가 이번에는 그 둘에 반응했다.

빨갛고 파란 광선이 쏟아진다. 김애경이 눈을 뜨고는 시화룡과 서리거인을 동시에 발현했다. 적색 광선은 서리거인으로, 청색 광선은 시화룡으로 막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벼락처럼 쏘아지는 멸망포!

성혼로가 파멸력으로 반격한다. 김애경이 멸망포로 받아친다. 그러다 힘이 다해 거꾸러지면, 또 두 성혼이 작용하며 김애경의 몸을 재생시킨다.

이세희가 놀란 눈으로 김애경을 보았다.

"언니가 원래 저런 것도 가능했어요? 재생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누나 성혼이 아니고, 성혼로의 힘입니다."

성혼로는 자신의 안에서 발현되는 성혼과 공명한다. 나중에는 자신의 힘을 빌려주기까지 한다.

4성 등급 8개, 3성 등급 100개의 성혼이 빚어내는 그 힘을.

그래서 이런 게 가능했다. 시화룡과 서리거인 모두 약간의 재생력은 있지만 눈에 보일 정도는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아아아!"

김애경이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괴성을 질렀다.

등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공격이 쏟아진 탓에 미처 멸망포로 쳐내지 못한 것.

"씨빠아아알!"

고래고래 지르는 욕설.

10층만이 아닌 훈련소 전체에 퍼진다. 워낙에 크고 감정이 깃든 소리라 훈련생들까지 김애경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열이 올라 죽을 것 같았다.

훈련이 고통스러운 건 이해를 한다. 딸 하은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이런 것쯤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앞에서만 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뒤에서, 옆에서, 머리 위와 다리 밑에서 날아오는 걸 어쩌라는 거냐?

차라리 온 몸에서 발산한다면 좋으련면.

모든 방위를 일거에 쓸어버리도록.

'잠깐만.'

몸에서라고?

주먹만 내치는 게 아니고, 전신에서 한꺼번에?

섬광이 머리를 스친다.

몸을 웅크렸다.

붉은 뱀과 푸른 뱀이 두 팔에서 기어나온다. 그리하여 서로를 휘감고 고등한 차원으로 나아가려고 할 때였다.

'아니지.'

일점으로 쏘아보내는 것도 아닌데 이중나선이 왠 말인가. 구체가 되는 만큼 전혀 다르게 운용해야지.

순간, 김애경의 두 눈에서 빛이 번쩍였다.

왼쪽 눈은 적색으로, 오른쪽 눈은 청색으로.

성혼이 폭발한다.

미친 듯이 폭증하며 불길이 김애경을 휘어감았다. 한 줄기가 아닌 무수히 많은 줄기가, 그것도 좌우 반신을 완벽히 가른 채 서로를 탐하며.

종국에는 하나로 합쳐진다. 불의 마룡과 얼음 거인이 서로 손을 맞잡는 듯한 광경.

그러나 부족하다.

힘이, 절대적인 힘이, 계단을 오를 만큼 충분하지가 않았다.

성혼로가 반응한 것은 이때.

김애경을 기준으로 한쪽은 붉게, 한쪽은 푸르게 변한다. 그것이 압착되며 김애경에게 순수한 힘을 불어넣었다.

마침내 계단을 넘는 김애경.

시화룡과 서리거인이 합일된다. 좌와 우, 안과 밖, 순과 역, 처음과 끝이 모조리 일치했다. 그리하여 하나의 이적을 만들어낸다.

김애경이 완전히 투명하게 변했다. 힘의 원천, 그것이 되어 사방을 굽어본다.

이것에만큼은 김현도 압도 당했다.

김현만 아니라 훈련소 내부의 모든 이들이 그랬다. 영혼을 짓누르는 무게에 놀라 본능적으로 김애경을 주시했다.

김현은 분명하게 목격했다.

[성혼] 서리거인(거신, 4★), 극점 심장(거신, 4★), 시화룡(시원, 4★), 태양혼(시원, 4★)

모든 성혼이 4성 등급에 오른 것을.

능력치도 크게 상승했다. 31이던 혼력 능력치가 39를 단숨에 찍는다. 그밖에 대부분의 능력치가 30 부근에 도달했다.

"아......"

김애경도 오래 유지하지는 못했다.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어 정신을 잃고 낙하한다.

천천히, 낙엽처럼, 9층을 향해.

"언니!"

이세희가 김애경을 받아들었다. 심장 박동과 호흡을 확인하더니 안심한 얼굴을 한다.

"잠들었네요."

"네, 고생했지요."

"방금 그건 뭐에요?"

"글쎄요. 멸망포의 전신 버전 같네요."

"그럼 저 상태로 싸울 수도 있겠네요?"

"네.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관건이죠."

원 역사에서 극대 파멸력을 다룬 각성자는 대개 단발성의 필살기가 전부였다. 지금 김애경처럼 몸을 파멸의 존재로 바꾼 각성자는 김현도 처음 본다. 과연 얼마나 강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처남! 처남!"

주태일이 소리를 높여 김현을 불렀다. 무시하려고 했으나 아예 혼력까지 써서 소리를 증폭시킨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더니, 김현 하나 부르려고 저런 기법까지 익혔어?

별 수 없이 내려가자 주태일이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방금 애경이가 뭘 한 거야? 저것도 성혼이야?"

"성혼은 아니고 기술이야. 그리고 누가 반말해도 된다고 했지?"

"처, 처남?"

"교관에게 예의를 지켜라, 훈련생."

김현은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집게손가락이 날아가서는 주태일의 이마를 후려갈겼다. 주태일이 신음을 흘리며 주저앉아 자기 머리를 싸맸다.

묘한 눈길이 훈련소 안을 수놓는다. 자꾸 김현을 처남이라 부르는 주태일이 이상했고, 아까 보았던 김애경의 변신이 워낙에 인상 깊기도 해서.

기왕 이렇게 된 것, 지식 하나를 더 풀기로 마음먹었다.

"여러분이 조금 전 목격한 건 파멸력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흔히 멸망포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죠."

"저, 저기요. 멸망포는 그냥 일직선으로 쏘는 거 아니었어요?"

"거기서 한 발 더 나간 거죠. 이번에 우리 누나가 4성 등급이 되면서 더 강해졌습니다."

"저희도 그걸 쓸 수 있을까요?"

누군가 침을 꿀꺽 삼키고 묻는다.

"그럼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만화에서도 많이 나오죠? 상극의 힘을 융합시켜서 쏘면 그게 바로 멸망포입니다. 우리 누나 같은 경우는 거신계의 서리거인과 시원계의 시화룡을 융합했지요. 여러분도 노력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

하늘까지 닿을 강력한 의지, 섬세하고 정교한 성혼 제어 능력, 바다처럼 웅혼한 혼력, 이 삼박자가 이뤄져야 겨우 극대 파멸력에 입문할 수 있으니까.

여기 있는 1천 명 중 단 1명이라도 극대 파멸력을 쓰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일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여기서 알린 개념이 퍼져 나가고, 그러고도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지구 전체에서 서너 명 출현하는 게 전부겠지.

한 어린 남학생이 당돌한 질문을 던졌다.

"둘 중에 누가 더 세요?"

"비밀입니다."

개념 없기는.

아직 어려서일까? 아니면 각성자들의 상식이 정립되지 않은 시대여서 그럴까? 김현은 한 차례 찌릿 눈총만 보냈다.

정답을 얘기하자면 김현이 김애경보다는 강하다. 원 역사에서도 김애경의 극대 파멸력은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차오 박사의 99륜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개념이니까. 여기에 차오 박사 사후에 만들어진 기술도 적용되었고.

극대 파멸력에 대해 짧게 강의를 마치고 9층으로 올라왔다. 이세희의 앞에 서서 손짓을 했다.

"자, 시작하죠."

"후웁. 네!"

이세희가 몸을 날리며 전용 쌍권총을 쏘았다. 성 속성이 부여된 탄환이 김현에게 마구 날아온다.

여기에 불규칙하게 때려대는 별들도 있다. 이세희의 몸이 금세 피로 물들었다. 직접 자신을 치료하고는 다시 김현에게 달려들었다.

며칠 후 9층 졸업 요건을 만족했다. 자연히 10층에 올라 스스로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과잉 치료 해보세요."

"네? 과잉 치료요?"

"네. 성령의 보호를 과하게 때려 박아도 좋고, 축복을 마구 부여해도 좋습니다. 방어막을 중첩해서 써보기도 하시고요. 뭐든지 한계까지 힘을 써보세요."

"전 언니처럼 하는 게 아닌가 봐요?"

"같을 수가 없죠.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선생님은 이 방법이 가장 어울릴 것 같아서요."

이세희가 김현을 보더니 그대로 따라했다. 자신에게 빛의 치유를 한계까지 주입한 것.

성혼로가 반응했다. 막대한 치유의 힘이 집중된다.

"우우욱!"

이세희가 구역질을 했다.

얼굴이 울긋불긋 했다. 모발이 빠르게 자라더니 이세희의 전신을 뒤덮는다. 그 속에서, 이세희의 육체에 암세포가 가득 번져 괴물처럼 변했다.

급히 9층으로 내려오는 이세희. 숨을 헐떡이며 김현을 본다.

"김현 님, 이건......"

"천상계의 여러 성혼은 인간에게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지요. 하지만 그게 꼭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예전에 건국대학교에서 느끼셨잖아요? 이번 기회에 실감해 보세요. 선생님의 성혼이 어떤 것인지, 어떤 효과를 가졌는지."

이제야 위험성을 실감한 이세희.

성혼로로 올라간다.

재차 도전. 4종류의 성혼을 자신에게 번갈아 사용했다.

과잉 치유는 암을 유발한다. 축복을 걸면 어느 순간부터 저주가 되어 몸이 녹아내린다. 보호를 덮으면 정신이 나가 깔깔깔 웃음을 터뜨린다. 방어막을 둘렀는데 그것들이 몸을 압박하여 뼈를 부러뜨리고 근육을 뭉갠다.

"오호호호!"

"아아악!"

"으흐흐흐흑!"

이세희는 울고, 웃고, 소리를 질렀다. 누가 보면 미친 여자가 따로 없었다. 아래쪽에서 잘 수련하던 각성자들이 놀라 위를 보다가 절레절레 머리를 흔들었다.

"으으, 진짜 심각하네."

"4성이 되려면 저래야 돼?"

"끔찍하다."

"그래도 4성 되면 세계에서 3번째야. 일단 되기만 하면 초대박이라고."

모두가 훈련에 전념하던 시점.

김현은 익숙한 얼굴 하나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갔나?'

욕심이 그득한 인물이라 여간해서는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몇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사정을 알게 되었다.

김애경이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김현에게 다가온 것.

"야, 그 인간이 우리 집에 와 있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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