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75화 (75/200)

# 75

괴수 [3권 끝]

먼저, 이세희.

1주일 넘게 미친 여자처럼 수련에 수련을 거듭한 끝에 4성 등급으로 오르고야 만 것이다.

'6성 때가 힘들겠는데?'

4성은 인간의 한계를 시험한다면, 6성은 인류라는 종의 한계 밖에 있다. 거기 도달하려면 인간을 벗어나야 한다. 지금 보여주는 이세희의 모습을 봤을 때는 과연 그게 가능할까 싶었다.

어디까지나 나중 일. 지금은 축하해주도록 하자.

"선생님, 축하해요!"

"세희야 축하해!"

"역시 누나가 짱이에요!"

짝짝짝!

피터와 에일리도 열광적으로 박수를 쳤다. 잠시 훈련소에서 벗어나 케이크를 자르며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이세희가 발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모두 고마워요! 진짜 힘들긴 하네요. 예전에는 조금 아프긴 했어도 견딜 만 했는데."

"그렇죠? 그래서 그때 말했잖아요. 별 것 아니라고."

"호호호. 지나고 보니 그러네요."

이세희가 짤랑짤랑 웃었다.

에일리가 입을 삐죽인다.

"저는 언제쯤 10층에 도전할 수 있어요?"

"조금만 더 분발하세요. 거의 다 됐습니다."

"그 거의가 언젠데요?"

"어휴, 말씀드렸잖아요. 혼력 능력치 최소 30, 다른 능력치가 모두 25를 넘겨야 한다고요. 지금 켄트 양은 통찰 능력치랑 감각 능력치가 모자라요. 통찰은 21, 감각은 24니까."

"두 개만 올리면 졸업 맞죠?"

"네. 지금하는 수련만 계속해도 됩니다."

에일리는 9층에서 표적 맞추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소용돌이를 채찍처럼 휘둘러 아주 작은 표식이 되어 있는 걸 맞추는 수련인데 꽤 어려울 것이다. 소용돌이가 원거리 공격 성혼도 아니고 눈만 아니라 육감을 동원해 맞춰야 하니까.

"제가 도와줄까요?"

"그러시면 좋죠. 그런데 어떻게요?"

이세희의 말에 에일리가 반가워하면서도 의구심을 표한다. 김현은 슬쩍 웃었다.

"그거 괜찮겠네요. 켄트 양은 유독 통찰 쪽이 약해서...... 선생님이 성령의 보호만 덮어씌워도 좋아질 겁니다."

"어어, Mr. 김. 보호 사용하면 더 안 좋지 않을까요? 에일리 감지 능력이 더 좋아지는데."

"그건 옛날 얘기죠. 지금은 다릅니다."

김현의 말에 이세희가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었다.

과잉 부여라고 할까. 그걸 얘기하고 있었으니까. 성령의 보호를 과할 정도로 중첩해서 씌우면 정신에 장애가 생긴다. 그 와중에 현실을 꿰뚫어 보려면 통찰 능력치가 필요했다. 자연히 수련에도 도움이 되겠지.

피터가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세희에게 물었다.

"저, 저기요. 저도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물론이죠. 김현 님, 피터는 뭐가 부족해요?"

"저기 써놓은 것처럼, 육체적인 면은 거의 다 문제에요."

김현이 펜트하우스 한쪽에 걸어놓은 화이트보드를 보았다.

근력 18, 체력 20, 민첩 22, 감각 21. 여기에 위엄도 19로 낮은 편이었다. 에일리의 능력치와는 비교도 안 된다.

심지어 최근에 합류한 서경태보다 낮을 지경이니 원.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도움이 절실했다.

김애경이 두 주먹을 마주쳤다.

"차라리 내가 도와줄까? 멸망포 몇 대 맞고 세희한테 치료 받으면 몸 재생될 테니까 금방 강해질 것 같은데."

"히익!"

"누나, 그런 무식한 방법은 누나 같은 사람이나 쓰는 거지 보통 사람한테 쓰면 죽어."

"뭐? 무식?"

"Mr. 김은 역시 절 아시네요!"

피터가 얼른 김현의 뒤로 숨었다. 김애경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눈빛으로 을러댄다.

"그럴 거 없이 피터도 이 선생님이 축복 강하게 걸어주는 게 나아. 경태야, 너도 똑같이 가자."

"저도요?"

"응. 너도 얼른 4성까지 올라와야지."

"4성 되면 전에 그 용 같은 괴물도 저 혼자 잡을 수 있을까요?"

어엿한 4성 각성자라면 가능하지.

단, 장비를 충실하게 갖췄을 때.

강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장비도 새로 맞춰줄게. 그러면 비철룡이든 태산호든 충분히 잡아."

"전 이걸로 충분한데......"

서경태가 귀신 깃든 단검을 들자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언뜻 보기에도 표면에 실금이 자글자글하다. 언제 박살날지 모르니 저걸 쓰게 할 수는 없지.

"새로 맞춰야지. 그건 옛날에 가난하고 아무 것도 없을 때 쓰던 물건이야. 거기 안에 든 귀신이 좋은 놈도 아니고. 아예 용암 용광로에 넣어서 녹여버려야겠다."

"알았어요. 갚을게요."

"형이 선물로 주는 거니까 그냥 감사하게 받아."

돈은 쌓아둬서 뭐하게?

백흔귀에게 받은 돈만 명금 백만 관이다. 그걸 털 생각이었다. 비단 서경태만 아니라 일행 전부를 위해서.

'투자지, 투자.'

8월 15일 전까진 6명 전원 4성 각성자로 만들고 4성 등급 장비로 무장시킨다고 생각해 보라. 개개인이 모두 괴수 1마리씩은 감당할 수 있다.

그럼 애초의 계획에서는 조금 벗어난다. 원래는 4성 등급 성혼을 모두 싹쓸이하려고 했는데, 팀 내부에서는 나누게 생겼으니까.

'어쩔 수 없어.'

최근에 백흔귀가 재차 경고를 해왔으니까.

지구를 노리는 떠돌이가 많다고.

백록담 세계에서 비철룡과 태산호를 사냥한 것이 떠돌이들의 호기심과 식욕을 더욱 부채질했다던가.

새롭게 발견된 성혼 생산 행성, 지구!

그곳에 가면 혼광 악어와 비철룡, 태산호를 잡을 정도로 능력 있는 각성자가 있다더라.

꿀맛나는 고위 각성자!

강력한 각성자를 사냥하고 그 성혼을 만끽하는 것은 떠돌이들의 가장 큰 도락이다. 그래서 유래없이 강하게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고.

'못해도 스무 마리 이상.'

백흔귀가 경고한 내용.

"고맙다, 백흔귀. 그래서 사고 싶은 게 있는데."

[뭐지?]

"타천의 낙인, 마왕의 지문, 사신의 표식, 용왕의 인주......"

총 18가지 물건.

백흔귀의 시선이 은근해졌다.

[누구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나?]

"그러면 내가 직접 손을 쓰지. 여기에 지표석 18개도 같이 부탁해. 최상급으로."

[떠돌이들 때문이냐?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떠돌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나도 알아."

김현이 방금 주문한 물건은 모두 괴물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타천의 낙인이니, 사신의 표식이니 하는 물건 자체가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 외계종의 사자들이 현지종 각성자를 치우는데 쓰곤 했으니까.

4성 괴물들로 인한 피해를 줄이려는 궁여지책. 유인해서 상대하려는 심산이었다.

'이건 기회야.'

위기이자 기회. 괴수들을 모조리 잡아 성혼을 수거하면 4성 등급 성혼이 100개 넘게 모일지도 몰랐다.

그 정도라면......

연차도에 건설할 성혼 농장을 처음부터 한 단계 상향 조정하여 건설해도 되겠다.

당초 목표는 4성 등급의 대량 생산. 그걸 넘어 5성 성혼으로 바로 넘어가도 좋다는 뜻이다.

'그럼 얼마나 빠른 거지?'

원 역사에서 4성 각성자는 내년 초가 되어야 출현한다. 김애경이 비철룡에게 달라붙어 멸망포를 깨닫고, 그걸 때려박으면서 전신이 재구성되어 진화하는 것.

5성은?

답은 2년이다. 원 역사에서 2020년 여름에 김애경이 5성 각성자가 되었으니까.

2년 빠르게 5성 각성자가 양산된다라!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 곧 도래할 외계종들의 거점 주재자가 5성 등급이기 때문이다. 지금 백흔귀는 4성 등급이지만 김현과의 계약 때문에 조만간 5성 등급 탑주가 되어 나타나겠지.

'2년 동안은 고착 상태가 유지되지.'

외계종들이 가장 철저하게 가면을 쓰는 때다.

자기네 거점을 운영하면서 성혼 수집에 주력하며 외계의 우월한 보물로 환심을 사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만큼 차원의 벽이 엷어지니 침식 세계가 늘고, 때때로 침식 세계를 통하지 않고 바로 침입하는 떠돌이가 생긴다. 그래서 각성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말 그대로 각성자 전성 시대가 열리지.

인류 저항군들 사이에선 이 시기를 대사냥 시대(Age of Hunting)라고 부를 정도.

이때가 중요하다.

외계종들의 침입에 맞서 힘을 기를 마지막 시기이니까.

'5성 각성자를 찍어내자.'

2년 동안 5성 각성자 수백 명만 확보해도 최소한의 자위 능력은 생긴다.

김현의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앞으로 세울 계획이 두뇌에서 수도 없이 세워졌다가 폐기되고, 다시 뼈대를 갖추기를 반복했다.

따르르릉, 따르릉.

고전적인 벨소리가 울렸다.

대통령.

전화를 받자마자 축하부터 건넨다.

[축하합니다. 슈퍼 김!]

잠깐 말을 잊었다.

유치한 호칭에 저절로 몸서리가 쳐진다.

"슈퍼 김은 또 뭡니까?"

[슈퍼 팀 리더니까 슈퍼 김이지요.]

"그냥 Mr. 김으로 불러주세요."

김현은 몸을 부들거리며 말했다.

슈퍼에서 파는 김도 아니고 슈퍼 김이 뭐냐, 슈퍼 김이?

겹경사라면 겹경사.

슈퍼 팀 경쟁이 드디어 끝났다고 했다.

결과는 김현 일행의 압도적인 승리. 그간 시민들이 슈퍼 팀이라고 부르기는 했으나 이번에 확실히 공언 받은 것이다.

[모레 의회에서 수여식이 있습니다. 참석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참, 다른 팀도 참가합니까?"

[참석하지요. 흠...... 혹시 말입니다. 다음 2기 훈련생으로 저스티스 팀과 가디언 팀을 받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사람들을요? 대가만 확실하면 못 받아줄 건 없죠. 그런데 대통령께서 아셔야 할 게 있습니다."

김현은 알렉산더와 닉, 리아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셋 다 인격 파탄자로 갈수록 심해진다는 말도 함께.

[저도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그리 큰 문제라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지금은 그렇죠. 나중에 등급이 더 높아졌을 때가 문제입니다. 이 셋은 훈련소에 들어오면 4성 각성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공권력으로 제어하기 힘들어지죠. 미리 대책은 세워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허헛...... 다음달부터 각성자 등록제를 시행하기로 했는데 그걸로는 부족할까요?]

"부족하죠. 자경단 구성을 서두르세요."

결국 두 팀은 2기 훈련생에서 빠졌다. 미국 입장에서도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훈련을 위탁하는 건데 제어하기 힘든 사람을 들여보내기는 어려웠기 때문. 애초에 두 팀의 각성자들이 탐탁치 않아 하기도 했고.

대신 새로운 각성자들을 대거 들여보냈다. 소방관, 경찰관, 군인 출신의 검증된 인품을 지닌 지원자들. 대범람 때 벌어놓은 3성 성혼으로 각성시킨 다음이었다. 실력만 갖춰지면 저스티스 팀과 가디언 팀을 대체하고도 남겠지.

3기부터는 민간에 완전 개방하기로 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지원자를 모집할 작정이었다. 전 세계 각성자 누구에게든 무작위로 기회를 주되, 상당한 참가료를 지불해야 받아들인다.

미국 대통령과의 대화를 끝내자마자 대한민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김 각성자님. 할양 절차가 마무리 됐습니다.]

"그래요?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요. 저희 각성자들을 훈련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소식은 듣고 있는데, 다들 많이 좋아졌다면서요?]

"예. 이제 어딜 가도 다 자기 몫은 할 겁니다. 아, 이상한 곳으로 빠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분명히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나옵니다."

[혹시 짚어주실 이름이라도?]

"글쎄요. 제 능력이 거기까진 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쥐꼬리만한 힘이라도 얻으면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이들이 있다. 훈련생 중 그럴 기미가 보이는 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김현이 개입할 필요는 없겠지. 대한민국의 일은 어디까지나 대한민국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섬을 더 할양해서라도 더 많은 훈련생을 보내고 싶어했다. 그건 끊었다. 김현은 섬 하나로 충분했으니까. 차라리 다른 나라에 거점을 마련하는 게 낫다.

"축하합니다, 슈퍼 김!"

"와아! 슈퍼 김!"

"으으, 그러니까 그 슈퍼라는 거 좀 떼어 버리면 안 됩니까?"

명예 훈장 수여식에 갔더니 기자들이 난리를 쳤다.

올라오는 오글거림에 손발이 우그러들 것 같다. 손사레를 치며 호칭 수정을 요구했지만 도무지 들어주지를 않는다. 오히려 더 재미있어 하며 놀리듯 김현을 불러댔다.

"멋있는데 왜 그러세요?"

"그러게."

"으으, 미국인들 감성이란......"

피터의 말에 에일리가 맞장구를 치고 서경태가 머리를 젓는다.

나이대가 비슷해서일까? 겨우 서너 살 차이. 셋이 어느새 친근해졌고 서경태도 영어를 곧잘 말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조금만 더 굴리면 되겠어.'

수여식을 끝내자마자 복귀.

약간의 사건이 있었지만 생략하기로 하자. 알렉산더가 시비를 걸고, 닉이 도전적으로 몸을 부딪쳐 오는 것이나, 리아가 게슴츠레한 눈길을 보내는 정도는 이제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지금 당장은 할 일도 없다. 5성으로 승급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능력치 상승도 불가능하다. 김현도 자신의 시간을 오롯이 일행의 수련에 투자했다.

그 결과 김현 일행 여섯 명 모두가 4성에 올랐다.

가장 많이 성장한 것은 역시 서경태.

<서경태>

[성혼] 어둠 질주(4★, 암흑), 그림자 은신(4★, 암흑), 칠흑 칼날(4★, 암흑)

[보물] 유리검(4★), 암혼갑(4★), 아홉 분신 팔찌(4★)

은신과 암습, 교란에 특화되었다. 앞으로 일행이 함께 싸울 때 자기 몫을 톡톡히 할 것이다. 과연 그럴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만.

1기 훈련도 끝났다. 약 보름 동안의 훈련이었다. 처음에 1층에서 구토하고 울던 각성자들은 이제 없다. 대부분이 6층에 도달했고 일부는 9층에서 씨름하다가 훈련 수료를 맞이했다.

낙오자는 약 1백 명. 생각보다 적었다. 비록 외부로 나갈 수는 없다고 해도 인터넷과 전화는 연결되었으니 자신이 얼마나 큰 기회를 얻었는지 자각하고, 지인들로부터 끝없이 응원 받아서이겠지.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슈퍼 김!"

"아, 그렇게 안 불러주면 안 됩니까?"

미국 내에서 부르는 별명이 여기까지 번졌나 보다. 김현의 얼굴을 유일하게 찌그러뜨릴 수 있는 마법의 단어. 훈련생들이 낄낄거리다가 인사를 하고 떠났다.

2기 훈련생들의 훈련도 시작.

어느새 8월 15일이 성큼 다가왔다.

김현은 미리부터 네바다 주의 핵실험장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곳이야말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할 전장이니까.

전 세계를 감시하던 미국 국방부에서 연락이 왔다.

거대한 괴물들, 괴수라 불러야 할 것들이 출현했다고.

정확히 28마리.

인류 문명을 아예 끝장내 버릴 수도 있는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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