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88화 (88/200)

# 88

경매 –2-

'쉽다니까.'

김현이 공간 이동을 활용한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게 아니면 연차도와 미국 동부를 그리 쉽게 왔다갔다 하는 게 말이 안 되니까.

하지만 그것도 1회성일 줄 알았지, 이렇게 대규모 인원을 간단히 옮길 수 있다는 사실을 누가 알았을까?

모든 교통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이것은 엄청난 변혁.

벌써 정치인과 부자들이 머릿속에서 분주히 주판을 튕기는 중이었다. 이 기술이 몰고 올 파급 효과를 계산하느라.

"오오, 슈퍼 김!"

대통령의 말투가 오늘따라 살갑다.

5성 성혼도 성혼이지만 조금 전 공간 이동을 자신도 겪었으니까.

생각해 보라.

세계 각지에 미군 기지가 있다. 지금은 항공로로 연결되어 있지만 만약 공간 이동이 가능해진다면? 그것도 문 드나들 듯이?

안 그래도 강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진다.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능해지는 때가 오는 것.

"오셨습니까?"

김현은 담담하기만 했다.

"하하하! 역시 슈퍼 김입니다, 미국의 영웅!"

대통령이 더욱 과장된 태도로 김현을 껴안았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냥 Mr. 김이라고 부르시라니까요."

"아니, 슈퍼 김이 어때서요? 엄청나게 멋있고 힘있는 이름인데요. 슈퍼 아닙니까, 슈퍼맨!"

"슈퍼맨이 아니라 슈퍼마켓 생각나는데요?"

"네? 하하하! 우리 슈퍼 김, 농담도 슈퍼합니다!"

"으으으."

김현의 반응이 재미있어 저러는 걸까? 대통령이 더욱 크게 웃었다. 그 장면을 외국의 원수들이 딱딱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많이도 왔다.

중국 주석, 독일 총리, 인도 총리, 프랑스 대통령, 일본 총리, 대한민국 대통령......

하긴 딱 10개만 판매한다고 하는 5성 성혼이다. 지금 이들은 전략 무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터. 아무리 1달 주기로 성혼을 경매한다고 했어도 그렇다.

1달을 앞서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김현이 보여주었으니까.

"오랜만입니다."

"예, 잘 지내시죠?"

"네. 연차도는 잘 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요."

"저희는 추가로 섬을 더 할양할 계획이......"

바로 며칠 전의 일이다.

연차도 주변의 한 섬이 침식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보유한 천리안으로 미리 경보를 울리기는 했으나 노인 몇 명이 고립되었다.

소식을 듣고 서경태가 나섰다.

아버지 생각이라도 난 모양. 단 30분 만에 섬을 복구했고 피해자들을 모두 구했다. 그때 대한민국 정부에서 감사패를 수여한 것으로 안다.

이후 섬을 더 할양하자는 얘기가 나왔나 보다. 김현은 움직이지 않더라도, 일행 중 한 명만 움직여도 인근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니.

김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됐습니다. 섬 몇 개를 더 가질 계획이긴 합니다만 그게 대한민국일 필요는 없어서요. 적당히 떨어진 다른 나라가 낫죠."

성혼은 한 곳으로 모이는 성질이 있다. 그 성질을 응용한 게 인공 침식이다.

성혼 농장이라고 그 성질에서 자유롭진 않다. 한 곳에 대규모의 농장을 조성할 경우 인접한 농장 전체의 효율이 떨어진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큰 나라라면 모를까, 대한민국 같은 작은 나라는 두 개, 세 개로도 넘쳐난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침을 삼키며 재차 말하려고 하자, 옆에서 얼쩡거리던 일본 총리가 환하게 웃으며 끼어들었다.

"김 상! 우리 일본은 어떻습니까? 우리 일본에는 섬이 아주 많습니다."

"나쁠 건 없죠."

원판 김현은 일본을 무척 싫어했다. 그것은 아론도 다나까 때문에 비슷하지만, 알아서 성혼 농장 자리를 주겠다는데 거부할 이유는 없지.

일본 총리가 두 손을 매만졌다.

"5성 성혼만 몇 개 배분해주신다면......"

"너무 비쌉니다."

"예?"

"너무 비싸요. 대한민국은 훈련생 1천명 위탁 교육하는 것만으로 연차도를 제게 할양했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듣고 있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럼요. 저희한테 그렇게 할양 받으셨는데 다른 나라에 5성 성혼 대신에 받으시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총리?"

하필이면 일본이 끼어드니 자기도 어깃장을 놓는 것.

호시탐탐 매의 눈으로 노리던 국가 원수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상황이 예전과 달라서 작은 섬 하나를 대가로 5성 성혼을 받는다면 나쁘지 않은 거래다. 하지만 고작 위탁 교육 받자고 주권의 일부를 나눠줄 수는 없지.

김현은 적당히 사람들을 응대하다가 자리로 가 앉았다. 어느새 저녁. 예정된 경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착석해 주십시오!"

사회는 미국에서도 유명한 경매 진행자가 맡았다.

"지금부터 기다리시던 5성 성혼의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오오오!"

"시작이구나!"

짝짝짝짝!

열화와 같은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진행자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아, 그 전에 이번 경매의 주최자께서 양념 삼아 공개할 무구 석 점이 있다고 하시네요."

박수가 야유로 변하는 건 순식간.

"우우우!"

"뭐냐!"

"집어쳐라, 집어쳐!"

때는 이때다 싶었나 보다.

참석자 중 젊은 이들이 일제히 욕설을 퍼부었다. 표면상으로는 진행자를 향한 거지만 그게 실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다들 안다.

또다시 발작하나 싶어 김애경이 김현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김현은 느긋하기만 했다.

바로 이어질 진행자의 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놀라지 마십시오! 5성 등급 무구인 파괴의 검, 용살총, 반사의 부적입니다!"

"어?"

"잠깐만, 5성?"

"거, 거짓말!"

웅성거리는 사람들 앞에서 세 무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차원 공간인 각성소 안.

헤드라이트가 세 무구를 비춘다.

길쭉한 대검, 음험하게 빛나는 소총, 주먹 크기의 패.

파괴의 검은 혼력을 주입하면 강력한 기운을 일으켜 전방을 휩쓸어 버린다. 용살총은 혼력으로 광선 공격을 할 수도 있고 자신의 공격 성혼을 주입해 증폭하는 것도 가능했다. 반사의 부적은 강력한 방어용 장신구. 하루에 3번 5성까지의 공격을 고스란히 반사시킨다.

"미, 믿을 수 없다! 5성이라니!"

이 또한 외계종들이 판매하지 않는 품목.

"그래봐야 수공예품이지."

누군가 뇌까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김현이 바로 받아쳤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사시면 되겠습니다. 훗, 외계산이라니...... 막상 그 외계종들은 줘도 안 가질 물건들을 보물이라고 아주 애지중지하십니다, 그래."

"잠깐만. 그게 무슨 소리요? 줘도 안 가진다니?"

"외계종들에게 물어보시죠."

상식적으로 좋은 게 있으면 자기네들이 쓰지. 왜 외계 정복 대상 종족에게 준단 말인가?

식민지 시대에도 그랬지. 상등품은 모조리 본토로 갔다. 식민지나 식민지가 될 곳에는 하등품만 뿌렸고.

뇌까렸던 이가 불편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국의 한 거부가 손을 들었다.

"이십! 셋 다!"

4성 등급 성혼 20개로 다 사겠다는 말인가 보다.

진행자가 난처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이 세 품목은 아직 팔지 않습니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을 테니 여흥삼아 공개한 겁니다."

"검, 이십오!"

"이십육!"

벌써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진행자가 이쪽을 보기에 살짝 머리를 끄덕여 주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오늘 공개한 석점의 무구를 판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좋습니다. 그럼 검부터 가겠습니다. 이십육, 이십육 나왔습니다. 이십칠 없습니까?"

경매 단위는 4성 성혼으로 고정되었다. 단 계산은 하위 성혼도 받는다. 1대 20의 고환율 덕에 1성으로 따지면 8000개지만, 현금으로 계산하면 오히려 더 쌌다. 한때는 수십만 원씩 했으나 지금은 가치가 많이 내려갔으니까.

"이십칠!"

"이십팔!"

"삼십!"

"삼십 나왔습니다, 삼십!"

다들 주춤했다.

아무리 5성 무구라도 4성 성혼 30개는 조금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진행자가 힐쭉 웃었다.

"자, 여러분도 보시다시피 저는 1성 각성자입니다. 요정계 판독 계열 성혼인 별의 관찰을 가지고 있죠."

김현이 한때 유용하게 썼던 성혼.

"다들 보이지요? 그렇지요?"

"아, 뭘 하려고 그래요."

"대충 넘기고 진행부터 합시다."

"낙찰 아니요? 낙찰?"

30을 부른 중동 거부가 안달을 냈다. 진행자가 슬슬 걸어가 허공에 걸린 파괴의 검을 집었다.

"자아, 잘 보십시오."

무거운지 휘청거리며 들어서는 허공에 내리긋는 진행자.

쿠아앙!

강력한 힘이 천장을 때렸다. 넓디 넓은 이차원 공간 안이지만 울부짖는 파동에 모두 놀라 일제히 벌떡 일어날 지경.

"저, 저, 저!"

"1성 각성자가 썼는데 더 정도라고?"

"꿀꺽."

무기를 쓰는 각성자들이 일제히 침을 삼켰다.

"어이쿠, 이거 슈퍼 김께서 썼을 때랑은 너무 비교가 되서 부끄럽기만 합니다. 아쉬운 대로 어떻게, 켄트 양께서 도와주시겠습니까?"

"어, 제가요?"

"그럼요. 켄트 양 눈빛이 장난 아닌데요."

에일리가 침을 삼키며 앞으로 나섰다. 이미 자기 몫에서 떼어 전용 무구를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 욕심이 난 모양이다.

콰르릉!

에일리가 검을 휘두르니 아주 천둥 소리가 났다. 세계 전체가 망가질듯 흔들린다. 급기야 아무도 없는 쪽에다 소용돌이를 썼더니 대규모 해일이 일어 밀려갔다.

"살살 좀 하세요."

김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세계를 조작하여 해일을 흩었다. 에일리가 홀린 듯이 파괴의 검을 보았다.

"저, 저도 경매에 참가해도 되죠?"

"그야 그렇습니다만, 원래는 검을 안 쓰시잖아요?"

"이제부터 배우면 되죠."

"뭐,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어차피 에일리 앞으로 배당된 몫은 많으니까. 파괴의 검과 소용돌이의 궁합도 나쁘지는 않고.

이어 용살총의 시현도 이뤄졌다.

피터가 단상 위로 올라왔다. 광선 폭격을 용살총을 이용해 쏘자 무시무시한 위력이 발휘된다. 얼마나 위력이 강했는지 세계를 관통하여 언뜻 외부, 즉 뉴욕의 정경이 잠깐 비칠 지경.

무구를 노려보는 이들의 탐욕어린 눈빛이 짙어졌다.

마지막에는 진행자가 참 담대한 일을 벌였다.

"슈퍼 김, 나와 주시겠습니까?"

반사의 부적을 직접 차고 김현을 호명한 것.

김현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왔다.

진행자가 가슴을 쭉 내밀었다.

"자, 슈퍼 김. 딱 세 대, 딱 세 대만 전력으로 때려 주십시오."

"전력으로요?"

"예. 슈퍼 김이 그러셨잖습니까? 5성 이하의 공격이라면 무엇이든 막을 수 있다고요."

빤히 진행자를 주시하는 김현.

진행자는 입가에 은은한 웃음을 지을 뿐 딱히 변화가 없다.

참 담대한 인물이었다.

아무리 반사의 부적을 찼어도 김현의 주먹 앞에 서면 도망치고 싶은 생각부터 들 텐데.

"짓궂으십니다."

그렇게 말하자 진행자가 싱글싱글 웃었다.

"에이, 짓궂기는요. 무서워 죽겠는데요."

"갑니다."

사실 김현은 앞의 진행자보다 본인을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반사의 부적은 김현에게도 예외가 아니니까. 김애경의 멸망포라면 반사의 부적을 관통하여 충격을 주겠으나 김현에겐 그럴 기술이 없다.

철컥, 철컥.

혼돈의 갑옷을 불러왔다. 전신을 갑옷이 덮어 씌우, 아니 생체를 아예 금속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일격.

꾸아앙......

폭음이 세상을 뒤집을 때 반사의 주먹이 밝은 빛을 토했다.

보였다.

전방을 향해 질주하던 힘이 거기 부딪쳐 완벽히 되돌아가는 것이.

김현의 전신이 회색 힘에 휩싸인다.

견뎠다.

지금 상태는 공격력만 아니라 방어력 또한 우월하니까.

그 상태에서 연타를 먹였다.

왼쪽 주먹, 다시 오른쪽 주먹.

하나하나가 산을 으스러뜨릴 정도로 막강한 일격.

그걸 보던 각성자들이 충격에 빠졌다.

당연하다.

세계 전체가 그 충격을 분산하여 흡수하느라 옅어져 세계의 저편, 뉴욕 시가 고스란히 보일 정도이니까.

마치 허공에 뜬 채, 혹은 심연에 잠긴 채 뉴욕을 내려다보며 또한 올려다보는 듯한 느낌. 상부와 하부가 다 보이니 참으로 희한한 경험이었다.

피터가 쓰던 용살총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이것이 5성 등급 각성자, 5성 등급 무구......"

누군가 얼이 빠져서는 중얼거렸다.

"후우!"

김현도 변신을 풀었다.

전신이 다 얼얼했다. 속이 진탕되었는지 배가 조금 아렸다. 그래도 애써 평정을 가장했다.

"보셨지요?"

주위를 둘러본다.

"삼위일체, 즉 능력과 성혼과 장비가 조화를 이루면 이런 위력이 나옵니다. 어쩌면 오늘 이 자리에서 저와 비슷한 가능성을 품는 분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대해 보지요."

진행자에게 눈짓을 보냈다.

바로 알아듣고는 진행 재개.

"삼십 나왔습니다, 파괴의 검 삼십! 삼십일 없습니까?"

"삼십오!"

"사십!"

"으...... 사십이!"

"사십오!"

한 바탕 쇼가 효과가 있었다. 멈칫했던 경매 금액이 미친듯이 폭주했다.

파괴의 검 낙찰가는 51.

들어간 노고와 재료에 비하면 몇 배는 더 뽑아냈다.

용살총과 반사의 부적도 좋은 가격을 받았다. 각각 47, 83으로 낙찰이 된 것.

'반사의 부적이 대박이네.'

이건 일반인도 쓸 수 있으니까. 핵폭탄 정도가 아니면 대부분의 재래식 무기도 방어 가능하고. 독살은 어쩔 수 없지만 저격을 시도했다간 저격수가 되레 자기 총알에 맞아 죽는다는 뜻.

역시나 아직은 각성자보다는 일반인, 특히 거부들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조금 늦은 밤.

본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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