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90화 (90/200)

# 90

소말리아 –1-

세계 최악의 나라는 어디일까?

여러 곳을 꼽을 수 있겠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곳은 다름 아닌 소말리아. 내전 발발 이후 끝없는 수렁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오죽하면 세계 취약 국가 중 부동의 1위라고 불렸을까. 최근에는 남수단이 1위를 가져가고는 있지만.

세계 침식과 차원문이 소말리아의 몰락을 더욱 부채질했다. 지금은 소말리아 영토의 1/3이 괴물들에게 잠식당한 상태다. 몇몇 도시와 근방을 제외한 곳에서는 치안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소말리아에 다녀온다고?"

"네. 한 며칠 걸릴 것 같아요."

"너무 위험한 거 아니니?"

"위험하긴요. 4성 등급 괴물도 없는데요."

4성 괴물의 가치는 지금도 크다.

소말리아에서 4성 괴물이 몇 번 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인근 국가의 각성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갔다. 그리고 4성 괴물을 잡고 성혼을 채취한 다음 돌아왔다.

역설적으로 그것 때문에 소말리아가 전멸하지 않았다고. 그들이 하급 괴물들도 학살하고 성혼을 채취했으니.

"나도 따라갈까?"

"그게 좋겠다. 현이 혼자 위험하잖니."

"에이, 어딜 따라오려고. 누나는 훈련이나 해."

기존 시설들의 강화는 이미 끝냈다. 10층이던 훈련소는 이제 15층이 되었다. 11에는 대련장, 12, 13, 14층에는 4성 각성자를 위한 훈련실, 그리고 15층에는 10층처럼 성혼로가 설치되었다.

경매 결과 5성 각성자가 6명이나 더 추가로 생겼다. 이들을 압도하려면 김현의 일행 역시 5성 각성자가 되어야 한다.

"김현 님. 그냥 5성 성혼 먹는 게 더 쉽지 않아요?"

"그게 더 쉽죠. 대신 나중에 6성 오르기는 이쪽이 더 좋아요. 지금 힘든 대신 미래의 짐을 미리 나눠받는 거죠."

"6성......"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여기서 멈출 수는 없잖아요."

"형. 제가 들은 게 있는데요......"

서경태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왜? 인류의 한계가 5성이라는 거?"

"네. 저도 우연히 듣긴 했지만요."

"틀린 말은 아냐. 하지만 꼭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

6성이라......

언제쯤 시도할 수 있을까?

서두르면 안 된다. 4성에 올라갈 때와는 차원이 다른 난이도니까. 그래도 벌써 5성이 된 걸 생각하면 외계종의 침입이 시작될 무렵에는 시도해도 괜찮지 싶었다.

"좋아, 믿을게."

"저도요."

김현에 대한 믿음이 가장 큰 김애경과 이세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서경태는 물론 피터와 에일리도 동의를 표했다.

즉시 훈련소로 들어가는 넷. 길은 이미 알려주었으니 소말리아에 다녀오고 나면 5성이 되어 반길 것이다.

"출발하죠."

"넵!"

목적지는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

김현은 미리 챙긴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주먹 크기의 정십팔면체 물체로, 각각의 면이 다른 색깔로 물든 채 혼몽한 빛을 품고 있었다.

'이거 하나 있으면 쉽지.'

8월 말에 괴수들을 유인했던 지표석 기둥과 같다. 대신 휴대가 가능하도록 작게 만드느라 이번에 번 성혼을 많이 썼지. 범위도 상당히 좁은 편이고.

그래도 모가디슈 인근, 소말리아 내의 괴물들을 다 불러들이긴 할 것이다. 인근 나라에도 영향이 미칠 텐데, 기왕 발걸음을 하는 김에 인심 쓴다고 생각하자.

"제가 받을 섬이 킬리아 섬이라고 하셨지요?"

소말리아 북동쪽, 아덴 만에서 아라비아 해로 나가는 길목에 있는 곳.

아덴 만이라면 김현도 안다. 해적들의 온상 아닌가.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던 흑인 남자가 움찔했다. 그러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맞습니다. 슈퍼 김께서 가진 섬보다 두 배 정도 큰 곳입니다. 지하수가 풍부해서 살기 좋은 곳이지요."

"주민 퇴거, 다 된 건 맞지요?"

"그럼요. 지금 킬리아 섬에는 단 한 명도 소말리아의 국민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해적은요?"

진실을 통찰한 날카로운 질문.

남자가 슬쩍 김현의 눈을 피했다.

"몇몇 무리가 들어가 있긴 합니다만, 슈퍼 김께서 우려하실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주민 퇴거는 어디까지나 귀측 책임입니다만."

"그것들은 저희 국민이 아닌데요?"

김현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얄팍한 술수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손 안 대고 코 풀겠다는 심산이겠지. 어차피 행정력이 통하지 않는 섬 하나를 써서 국토를 휩쓴 괴물들을 몰아내겠다는 것.

'마음대로 해라.'

어차피 소말리아 연방 정부의 생각대로는 안 된다.

통제를 잃어 무력해진 정부. 외부에서 갑작스레 날아온 구원의 손길. 난립하는 부족들. 그리고 각성자......

소말리아의 미래가 훤히 보였다.

전국 시대.

원 역사에서도 수많은 나라를 집어삼켰던 그 참상이 소말리아에 재현될 것이다.

'그래도 그게 낫지.'

전부 죽는 것보다는.

괴물들에 의해 초토화되어, 한 점의 생명조차 찾기 힘든 죽음의 대지가 되는 것보다는.

"어쨌든 좋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킬리아 섬은 제 겁니다. 누구도 제 권리를 침해할 수 없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합니다."

지도를 보며 생각했다.

해적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고.

이 시기의 해적들은 정상참작할 구석이 있긴 하다. 원래는 평범한 민간인이었다가 막장인 현실 때문에 범죄의 길로 내몰린 거니까.

그러나 경위가 어찌 됐든 이들이 극악한 범죄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단순히 협박이나 하고 몸값이나 뜯으면 다행인데, 살인 등 범죄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곤 했다.

'뭐, 기회는 주마.'

시작부터 다 죽여 없애는 건 조금 부담스럽다. 차라리 살짝 돌아가는 게 낫겠지.

"기장님, 여기로 가주세요."

조종석에 가서 쪽지를 내밀자 기장이 그걸 확인하고 의아한 얼굴을 했다.

"거기엔 공항이 없는데요?"

"괜찮습니다. 공중 강하하면 되니까."

"어, 어딜 가시려고요?"

심상찮은 것을 느낀 정부 관계자가 쫓아온다.

김현은 조용히 웃었다.

"제 섬으로요."

"네? 모가디슈로 먼저 가신다고......"

"귀측과 얘기할 건 다 했으니 각자 일을 하면 그만이지요. 전 제 섬에서 괴물들과 싸우겠습니다."

남자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스쳤다. 보아하니 모가디슈에서 김현을 접대하며 뭔가 일을 꾸몄던 모양. 괜히 그들에게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항공로를 튼 것이기도 했다.

기장이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조종간을 튼다. 비행기가 길게 기울어졌다. 이 비행기 또한 미국에서 제공한 것. 남자가 조심스레 몇 마디를 했으나 처음부터 발언권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뉴욕에서 소말리아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비행기가 킬리아 섬 상공을 지날 때 김현이 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편안한 강하였다.

4성 각성자이던 시절 김현은 강하하면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다. 충격파만으로 몸을 제어하여 낙하하는 건 위험이 상존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5성이 된 지금은 다르다. 단순히 충격파를 쏘아 추진력을 얻지 않는다. 위치 에너지를 운동 에너지로 바꾸는, 실로 혼돈계스러운 방법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섬이 꽤 큰데?'

연차도의 2배 크기라더니 3배는 거의 될 것 같다.

섬 남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쪽배가 십여 척 정박되어 있다.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청년들이 AK 소총을 들고 어슬렁대고 있다. 남쪽 항구에 세운 망루에는 RPG-7으로 무장한 남자들이 보였다.

인구가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2백명 가량 될까? 흔하디 흔한 해적섬이라고 하겠다.

'응?'

눈에 이채를 띠는 김현.

마을을 한 번 굽어보자 이질적인 이름이 셋 떠올랐기 때문이다.

[스즈키 유이]

[사이토 콘]

[요시다 무라]

웬 일본 이름?

김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다들 5살 6살의 어린 아이들이다. 해적들이 아이들을 납치하여 인질로 삼은 것 같았다.

저절로 속도가 빨라졌다.

쌔애액!

김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강하했다. 처음에는 해적들이 김현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누군가 이상함을 느끼고 머리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는 무심하던 해적의 눈이 점차 커진다. 새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삐이익! 삐이익!

"적이다! 적이다!"

당장 호루라기를 꺼내 불었다.

소말리아어.

여러 언어를 할 줄 아는 김현도 처음 듣는 종류다. 그거려니 하고 속도를 조금씩 줄였다.

그걸 올려다보는 해적들의 얼굴에 공포심이 어린다.

"쏴!"

타타타탕!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총을 갈긴다.

요란한 총성이 울리지만 김현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총알이 옷을 찢으며 육체를 찢으려 했으나 피륙도 뚫지 못하고 튕겨나간 까닭.

천천히 착지했다. 그러자 근처 망루에서 화염이 뿜어진다.

씨융!

날아오는 작은 로켓.

RPG-7.

그래봐야 헛것이다. 힐끔 시선을 던졌다. 예전처럼 광선을 뿌린 것도 아닌데 허공에서 저절로 폭발해 버린다.

"허억!"

"알라시어!"

해적들이 놀라 웅성거린다. 어떤 놈은 숫제 총을 던져 버리고 부복하기도 했다.

개중 수염을 길게 기른 남자가 권총을 겨눈 채 앞으로 나섰다.

"이, 일본에서 왔나? 몸값은?"

지역 사투리가 강하게 섞인 영어.

김현도 동양인이라 일본인 각성자로 착각한 모양이다.

입을 꾹 다물고 있자 남자가 위협적으로 권총을 흔들었다.

"몸값을 내놔라! 안 그러면 모두 죽인다!"

"죽여 봐."

"뭐라고?"

"죽여 보라고."

거만하게 턱짓을 하는 김현.

인질들이 어디 있는지는 잘 안다. 근처의 허름한 창고였다. 거길 소총을 든 사내 둘이 지키고는 있으나, 김현이 마음만 먹는다면 죽은 목숨이다.

김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갑자기 심장이 옥죄이듯 아프면서 쿵쿵 뛰기 시작한 것. 더구나 전신의 혈행이 빨라지며 얼굴이 후끈거렸다.

'하은아......'

하은이가 납치 되었을 때의 그 감각.

하필이면 나이가 비슷한 때의 아이들이라 그때의 감정이 솟구치고 있었다.

"시, 시벌! 한 년 죽여!"

남자가 소리쳤다.

여전히 권총을 김현에게 겨눈 채.

저 뒤 창고를 지키던 사내들이 움찔했다. 서로를 마주보며 어찌할 바 몰라할 때 김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지독히 느리게.

탕!

남자가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정확히 김현의 미간을 직격했다. 그러나 흔적조차 남지 못하고 튕겨져 나온다. 생체는 생체이되, 이차원에 금속의 몸을 숨겨 놓은 덕에 갖는 방어 능력이었다.

"괴, 괴물이다!"

"이블리스! 이블리스!"

창고를 지키던 사내들이 겁에 질렸다. 급히 문을 따고 들어가서는 아이들을 끌고 나온다.

하은이 또래 남자 아이 둘, 여자 아이 하나.

그 중 여자 아이에게 총을 겨누고는 뭐라고 소리쳤다.

"거기 멈춰! 안 그러면 이 년은 죽는다!"

이해는 못했다.

그래도 눈치는 챘다.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두 사내를 노려본다.

세상이 일순 회색으로 물들었다.

차갑고 혼탁하며 끈적끈적한 세상.

그 중 오로지 붉게 물든 곳이 있었다.

두 사내의 심장.

붉게 박동한다. 힘껏 붉은 힘을 전신으로 쏘아보낸다. 그리하여 생명을 유지한다.

그걸 끊었다.

아득한 시선으로, 혼원의 힘을 주입하여.

두 사내의 몸이 덜커덕 멈췄다.

눈을 크게 뜬다.

이내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벌벌 떨다가 엎어져 버린다. 딱딱하게 굳은 팔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AK 소총이 떨어져 큰 소리를 냈다.

해적들이 입을 벌렸다.

"이, 이거......"

"뭐냐! 뭐야!"

뭐긴 뭐야. 재앙이지.

김현은 여전히 느긋하게 걸어갔다. 세상 다시 없을 여유로운 움직임인데 감히 뭘 하려는 해적이 없었다. 그저 벌벌 떨면서, 알라신의 가호만 빌면서 지금 이 악몽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난 너희를 배려해 주려고 했었어."

어쨌든 같은 사람이니까.

최소한 살 길이라도 열어주려고 했지. 유인석을 발동하기 전에 미리 도망치게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하지만 지금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겠다.

차라리 죽어 없애는 게 나을 터.

직접 손에 피를 뭍이기가 싫다? 그러면 유인석을 발동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소말리아는 물론 인근 국가와 아덴 만, 아라비아 해에서 몰려든 괴물들이 해적들을 몰살시킬 테니까.

"다음 생에서는 조금 더 나라다운 곳에서 태어나라."

그들의 처지를 일부나마 공감한다.

절망을, 비탄을, 공포를.

그러나 이들은 전생의 아론보다는 낫지 않았는가.

최소한 먹이로 사육되고, 생체 실험을 받고, 쓸모가 다하자 노예병으로 쓰다가 버려지지는 않았으니.

그래서 단호하게 손을 휘둘렀다.

위잉......

유인석이 발동했다.

"크아악!"

저 하늘 위에서 별안간 괴성이 터졌다.

겁을 집어먹고 주위를 둘러보는 해적들.

구름이 사납게 흩어졌다. 바다가 천둥치듯 회오리친다. 기이한 압박감이 바람을 몰고 달리는 말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엄마, 엄마."

일본인 아이들이 비로소 울먹인다.

그들 앞에 버티고 서는 김현.

아이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니, 아이들만이 아니다. 해적들도, 그리고 저 하늘 위에서도 무수히 많은 시선이 김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공위성.

대기권 밖에 있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최고조로 활성화된 아득한 시선은 그 작은 물체마저 모조리 짚어냈다.

까드득, 까득.

주먹을 쥔다.

'궁금하냐?'

지금 김현을 주시하는 인공위성만 해도 족히 수백 개.

지구의 것만이 아니다.

열여덟 세계의 은밀한 시선도 포함되어 있었다.

궁금하겠지.

김현의 진실한 무력이.

단순히 4성 각성자를 압도했다는 단편적인 사실이 아니라 5성 각성자로서 어느 정도 위력을 내는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마.'

인류.

그 종의 한계를.

지구를 침략하여 성혼을 채굴하려면 어떤 장벽을 만나야 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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