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92화 (92/200)

# 92

난민 –1-

많기도 많다.

바다 위를 본 김현의 첫 감상이었다.

5성 각성자가 되어 합류한 김애경이 옆에서 한 마디를 했다.

"완전 보트 피플이네. 어쩔 거야?"

못해도 수백 척.

쪽배마다 열 명, 스무 명 씩 타고 있으니 적어도 수천 명이 킬리아 섬 앞바다에 떴다. 지금도 계속 늘고 있으니 1만 명을 돌파할지도 모르겠다.

모두 킬리아 섬에 다가왔다가 물러나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어떻게든 들어오려고는 하나 안개 공간이 거부하는 탓.

그들이 섬쪽을 보며 울부짖었다.

"살려주세요!"

"알라시어!"

"제발 살려주세요! 아이들만이라도!"

바깥에서는 안쪽이 안 보인다. 까마득히 짙은 안개를 앞에 둔 채 덧없는 부르짖음만 울려퍼졌다.

저들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구원을 청하는 걸까.

김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렇게 놔둘 거야?"

김애경이 거세게 콧김을 분다. 김현이 나서지 않으면 자기가 직접 나서겠다는 듯이.

두 눈이 난민들 사이, 한 어린아이에게 꽂혀 있었다. 하은이와 비슷한 또래인데 팔다리는 앙상하고 배가 맹꽁이처럼 불룩했다. 이런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으니 모성애를 느낀 모양이다.

"휴우, 안 놔두면 어쩌게?"

"어쩌긴? 밥이라도 줘서 보내."

"한 끼 먹여서 끝날 일이 아냐. 어디 정착하게 해서 집도 지어주고, 음식이랑 옷도 주고, 교육을 해서 어디 취업까지 시켜야 끝나지."

"왜? 못해? 그럼 내가 할게. 내 배당금 줘. 그걸로 저 사람들 먹여 살릴 테니까."

김현의 재산이 늘어나는 만큼 김애경의 재산도 늘고 있다.

이것은 일행 모두 마찬가지. 비록 비율로 따지면 얼마 안 되지만 김현이 버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 대부분이 성혼이나 명금이어도 그렇다. 달러로 환전하면 지구의 어떤 거부도 김현 앞에서 명함을 못 내밀 것이다. 극심한 환율 변동을 우려해 섣불리 환전을 시도하지 않을 뿐.

"에휴, 누나. 저 사람들이 다가 아니니까 그렇지. 조만간 백만, 더 시간이 지나면 천만 명까지 늘어날 걸?"

"뭐? 천만 명? 말도 안 돼!"

"말이 돼. 소말리아 전역이 누나한테 들러붙을 테니까. 저기 시리아나 아이티도 그렇고."

"상관없어. 정 안 되면 죽이라도 쒀서 나눠주자. 나 그럴 돈은 있잖아?"

"그건 그렇지."

이거 진심인가 보다.

예전부터 그랬지. 원판 김현이 보기에도 조금은 쓸 데 없이 정의감이 넘쳤고 동정심을 부리곤 했다.

"알았어. 내가 할게."

한 번 져줄까?

사실은 져주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생각하던 계획의 일환이지만.

김애경이 뜻밖이라는 얼굴로 김현을 보았다.

"네가 한다고? 정말?"

"응. 내 방식대로."

"불안한데......"

언제고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 22세기에서 21세기의 역사를 바꿀 계획을 세울 때도 비슷한 상황을 연출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그래도 이처럼 빠를 줄은 몰랐지. 단순히 성혼 농장 얻자고 벌인 일이 군벌 시대를 열 신호탄이 될 줄이야.

그렇다. 군벌 시대.

조금만 삐긋해도 전국 시대로 빠질 위험이 있지만 사실 그럴 가능성은 낮다. 무엇보다 강력한 외부의 적이 있으니까.

'응?'

앞으로의 미래를 그리던 김현의 눈에 이상한 장면이 보였다.

저 앞쪽, 난민들의 뒤에서 고속정 몇 대가 나타나 난민들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 것.

그걸 본 난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노를 저었다. 쪽배가 위태롭게 흔들리며 섬을 향해 다가온다. 그러나 노를 저어봐야 뭐라도 되겠나. 금세 고속정에 의해 따라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고속정들이 거칠게 쪽배를 확보했다. 총을 겨누고 올라와 난민들을 윽박지른다. 난민들은 저항도 못해보고 굴비처럼 둘둘 엮이는 신세가 되었다.

해적?

아니다. 정부군이었다. 그 증거로 고속정마다 소말리아 국기를 계양해 놓았다. 군인들도 군복은 입지 못한 대신 가슴팍에 소말리아 국기를 달아놓았고.

"놔주세요, 제발!"

"시끄러워! 이 반역자 놈들. 네놈들은 교수형이야, 교수형!"

청바지에 셔츠만 입은 군인들이 우악스럽게 난민들을 잡아 끌었다.

이들 사이에는 어떤 사정과 갈등이 있는 걸까.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이쯤에서 결정을 해야 했다. 개입할 것인지 방관할 것인지.

개입한다면 끝까지 가야겠고 방관한다면 난민들이 모두 끌려가는 걸 지켜봐야겠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황.

김현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다녀올게."

"으응? 야! 어딜 가는데?"

김애경이 소리치거나 말거나 김현은 안개 공간을 빠져나왔다.

푸욱.

그런 소리와 함께 안개가 폭죽처럼 흩어졌다. 거기서 김현의 몸이 튀어나오자 난민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슈퍼 김! 슈퍼 김!"

"아아, 알라시어!"

"돌보심이 있으시도다!"

환호를 듣고 입맛을 다셨다.

'이래서 개입하기 싫었는데.'

21세기의 모든 부류 중 군벌로 흡수하기 어려운 것이 이들이다. 이슬람, 그 중에서도 강경파. 물론 이슬람을 믿는다고, 수니 파에 속한다고 무조건 강경파라 볼 수는 없지만 이들 중에는 분명 이슬람 강경파가 속해 있을 것이다.

인도적인 측면에서 밥 주고 옷 주고 집 주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세력화할 생각이 있다면 신중해야 한다. 괜히 죽 쒀서 개 주듯, 이슬람 신정국가만 탄생시킬 가능성이 있으니.

'선택은 너희가 해라.'

단숨에 공간을 가로질렀다.

파아앙!

음속을 돌파.

찢어지는 충격파가 김현의 뒤를 따라왔다. 거센 바람에 바다가 아우성을 쳤다. 쪽배가 흔들리며 난민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무시. 혼돈의 주사위를 통해 그들 중 단 한 명도 다치지 않을 궤적을 택해 날아갔으니까.

어느새 정부군 고속정 위에 도달했다. 관성의 법칙을 무시하며 단숨에 멈추자 찢어지는 파열음이 천지에 진동했다.

쿠르르릉!

마른 하늘에 날벼락.

지척에서 터진 굉음이 골수까지 파고든다.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그들의 눈에 한 남자의 모습이 맺힌다. 하늘에 못 박힌 듯 서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김현이.

"아, 악마다!"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일까.

후광처럼 번지는 태양광에 군인들이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소총을 들어올리는 것을 장교라고 베레모를 쓴 자가 급히 말렸다.

"그만! 각성자잖아, 각성자!"

"소위님, 아무리 각성자라도 사람이 어떻게 하늘을 납니까? 저건 악맙니다, 악마!"

타타탕!

그러더니 장교가 말리건 말건 총질을 한다.

부정확한 조준.

총알은 모조리 김현을 한참 빗나갔다. 아무리 태양을 등지고 있어도 한숨 나오는 실력에 한숨 나오는 군기였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고작 수십 미터 거리도 못 맞추는 게 말이 돼?

소말리아의 실정이 보이는 대목이었다. 김현은 천천히 고속정을 향해 내려갔다. 그러자 제압되어 무릎 꿇고 있던 난민들이 필사적으로 손을 흔들었다.

"살려주세요!"

"사람 살려! 여기에요, 여기!"

대부분이 소말리아어라 알아들을 순 없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지 눈치챘다. 허공에서 날아 그쪽으로 다가가자 베레모를 쓴 장교가 앞으로 나선다.

"잠시만! 혹시, 슈퍼 김입니까?"

진짜 저 별명 좀 어떻게 하든지 해야지.

무표정하게 머리를 끄덕이자 장교가 침을 삼켰다.

"이건 우리 소말리아의 일입니다. 슈퍼 김이 개입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한 발짝 움직여 붙잡은 난민들을 김현의 눈에서 가린다. 켕기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은 모양.

김현은 짧게 한 마디만 내뱉었다.

"틀렸어."

"예?"

"틀렸다고. 여긴 내 영해다. 무슨 생각으로 무단 침입한 거지?"

장교의 입이 벌어졌다.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리더니 되묻는다.

"그게 무슨...... 슈퍼 김의 영해라니요?"

"나는 소말리아 연방정부와의 계약을 통해 킬리아 섬을 할양 받았다. 따라서 국제법 상 킬리아 섬 인근 해역은 내 영해다. 내 영해에 무단 침입하고 선제 공격까지 가하다니...... 소말리아는 나와 전쟁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

장교의 입이 더욱 크게 벌어진다. 뭐라고 말은 하고 싶은데 기가 막혀 도저히 말이 안 나온다는 표정이다.

영해를 주장하는 개인이라니!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이미 영토를 가지고 있는데 영해가 없을 건 또 뭔가.

머리를 굴려 항변해 본다.

"국제 사회의 인정도 못 받은 주권을 주장하는 겁니까? 그러려면 UN에 가입부터 하고 오세요!"

"주권은 인정 받아야 생기는 게 아니다. 스스로 주장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내 주권을 행사할 힘이 있어."

오른 주먹을 가볍게 쥐었다.

회색의 불꽃이 오른팔 전체를 휘어감는다. 그에 따라 기이한 열기 같은 것이 사방으로 번졌다. 위협적인, 짐승의 송곳니 같은 섬뜩한 기세가 등골을 쿡쿡 쑤셨다.

"이블리스!"

한 늙수레한 남자가 외쳤다.

아까 김현에게 총질을 했던 자.

또 총을 겨누며 소리친다.

"알라께서 함께 하신다!"

타타타탕!

어쩜 이리도 배우는 게 없는지.

총알이 김현의 전신을 두들겼다. 물론 살갗을 뚫지도 못하고 옷만 찢으며 튕겨나간다. 분명 사람의 몸인데 불똥만 튀자 군인들이 크게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김현은 투명한 눈으로 남자를 보았다. 한 발짝 걸어간다. 남자가 발작하듯 방아쇠를 당겼으나 탄창의 총알을 다 소모한 다음이다. 남자가 목에 핏대를 세웠다.

"알라께서 너희 악마들을 심판하시리라!"

소말리아어라서 못 알아들었다.

그나마 이해한 단어는 둘.

알라, 그리고 이블리스.

입을 비틀며 웃었다.

"오냐, 악마가 되어주지."

손을 뻗는다.

힘이 일어난다.

혼원수가 철컥철컥 나타났다. 그것이 물고기 아가리처럼 벌어진다. 아울러 세상 전체를 빨아들이자 대기가 울부짖으며 소용돌이쳤다.

"으어어? 으아아아!"

힘은 오롯이 남자에게만 집중되었다. 남자가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으며 김현에게 날아온다. 무정한 금속 팔이 남자의 목을 콱 움켜쥐었다.

"뭐, 뭘하려는 거요!"

장교가 제지하고 나섰으나 무시.

남자를 접었다.

모든 관절을, 역방향으로.

처절한 비명이 터졌으나 개의치 않는다. 단 몇 분 사이에 남자가 인간 공이 되어 버린다. 그걸 장교에게 굴려 주자 장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찌, 어찌, 어찌 이런 잔인한 짓을......"

"너희도 비슷한 짓 많이 한 것 같은데 뭘?"

이제는 5성에 이른 아득한 시선.

상대의 정체를 살피고, 공간을 뛰어넘어 투시하는 것은 물론 과거의 편린도 엿보고 있었다.

여기 정부군이랍시고 나타난 자들도 결국은 해적과 다를 바가 없다. 정부의 비호 아래 작은 왕으로 군림했다. 적대하는 부족들을 수도 없이 약탈하고 멋대로 범죄를 저질렀지.

그래서 난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킬리아 섬으로 도망쳐 온 것이다. 괴물도 무섭지만 정부군은 더 무서워서. 무능한 정부 대신 괴물들을 소탕한 이국의 각성자라면 최소한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아서.

팔짱을 끼고 군인들을 한 번 주욱 둘러보았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움찔거린다. 누군가 알라와 이블리스를 반복해 중얼거리며 총을 쓰다듬자 흥미롭다는 시선을 던졌다.

"왜, 해보려고?"

대부분의 군인은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래도 뉘앙스라는 게 있다. 호의적이지 않은 감정을 감지한 탓에 다들 시선을 피했다.

"죽었어......"

그 사이 장교는 인간 공이 된 남자를 살피고 있었다. 워낙 우악스럽게 다룬 까닭에 오래 버티지 못했나 보다. 팔 다리만 꺾은 것도 아니고 척추까지 몽땅 뒤로 접었으니.

장교의 눈에 불꽃이 일었다.

"당신! 아무리 당신이라도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법입니다. 이 시간부로 벌어지는 사태는 모두 당신 책임이라는 걸 명심하시오!"

"어이가 없군. 내 영해를 멋대로 침범하고, 선제 공격을 가한 주제에. 너희 소말리아 정부군은 모두 너처럼 후안무치한 놈들이냐?"

"뭐요?"

"이런 소리지."

오른손을 활짝 펼쳤다.

또다시 재현되는 조금 전 장면.

장교가 비명을 지르며 끌려왔다. 목을 움켜쥔 채 높이 들어올렸다. 어찌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장교가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그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까불지 마라, 죽고 싶지 않으면."

그대로 던져 버리는 김현.

"으헉!"

장교가 군인들 사이로 날아갔다. 군인들이 화들짝 놀라 장교를 받아낸다. 어찌나 세게 던졌는지, 군인 십여 명이 한꺼번에 쓰러져 난장판이 되었다.

"경고는 이번 한 번 뿐이다."

손짓을 했다.

난민들이 비죽비죽 일어났다. 눈치를 살피더니 타고 온 쪽배에 몸을 싣는다. 노를 저어 킬리아 섬으로 향하는 것을, 장교와 군인들이 무력한 얼굴로 보고만 있었다.

무사히 떠난 걸 보고 다시 몸을 날렸다. 인근의 고속정에 내려앉아 동일한 과정을 밟았다.

"경고는 이번 한 번 뿐이다."

물론, 말로는 듣지 않았다.

새로운 고속정이 접근을 시도하자 팔 하나를 날려 박살냈다. 그제야 정부군이 생존자를 구출한 뒤 선수를 돌려 돌아갔다.

"살았다!"

"만세!"

"알라시어!"

난민들의 움직임이 빨라진다.

그래봐야 굼벵이.

이 모습을 눈에 담고서 킬리아 섬으로 돌아왔다.

1만도 넘는 군입을 먹여 살리려면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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