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00화 (100/200)

# 100

첫 원정 -3- [4권 끝]

"무슨 생각이야?"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듬성 바다를 벗어난 후, 김애경이 질문을 던졌다.

에일리가 목을 치는 시늉을 했다.

"다 잡으면 되죠? 그런 거죠?"

"아하! 그렇구나."

"형, 아까 바닥에 깔린 보석들이요. 꽤 비싼 것 같은데 맞죠? 아예 거길 거점으로 삼으면 어때요?"

김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비교적 답에 근접하긴 했지만 멀었다. 시작부터 주민 학살이라니, 그러다 현상금이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다들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저기 있는 것들은 우리가 알던 지성 없는 괴물이 아닙니다. 어엿한 세계의 주민이에요."

"세계의 주민?"

"응. 우리 식으로 치면 그냥 시민 1, 시민 2야. 마을 1, 마을 2고. 그런 곳을 외계종이 와서 공격했다고 생각해 봐. 당장에 고위 유령들이 출전해서 우릴 사냥하려고 할걸? 지구에서 군대가, 각성자들이 그러는 것처럼 말이야."

입장이 뒤바뀐 셈.

방어자에서 공격자로, 피침략자에서 침략자로.

마음 편하게 다 쓸어 담고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그것은 파멸의 지름길이니까.

김애경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서 사업을 한다고 했구나.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렇지. 우린 사업하러 온 거야. 거점도 원정 기지가 아니라 해외, 아니 외계 지점 설립한다고 생각하면 돼."

"그럼 싸울 일은 없어요?"

"모르죠. 찾아봐야지. 어쨌든 이런 경우에는 이면의 진실을 잘 따져봐야 합니다. 이상하지 않아요?"

"이상하긴 이상해. 둘 다 서로를 싫어하던데 왜 가만히 있는 거지? 평화로운 종족도 아니고, 혈귀들 같은 경우엔 칼날 귀신들보다 훨씬 강력하잖아."

"바로 그거야. 누나가 뭘 아네.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야. 둘을 싸우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그게 뭘까?"

"뻔하지. 지배자야. 이 근방은 분명히 어떤 상위 유령의 영지야. 그 유령이 싸우지 못하게 했으니 앙앙불락하면서도 서로 보고만 있는 거지. 혈귀들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면, 최근에 세금을 못 받은 것도 그거랑 관련이 있을걸?"

유명계는 대단히 수직적인 구조다. 또 강자 지존의 법칙을 따른다. 칼날 귀신과 혈귀의 상부에 강력한 지배자가 있다면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그 지배자인지 뭔지부터 찾아야겠네."

"맞아. 그런 다음에야 뭘 하든 할 수 있어. 타협해서 지점을 마련할지, 아니면 지배자를 밀어내고 우리가 거길 차지할지."

"응? 그게 가능해?"

"당연하지. 뭐, 그냥 싸웠다간 유명계 공적이 되겠지만 우리한테는 소개장이 있으니까."

유명계 진출의 기본은 인맥이다. 거점을 얻고 싶다면 상위 유령의 비호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

'어떤 유령일까?'

혼급이면 아주 쉽다. 때려잡고 백염공에게 세금을 바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신급일 때. 백염공의 비호만으로는 부족할지도 몰랐다. 왕급에게 비호받고 있을지도 모르니.

'정보부터 모으자.'

아득한 시선을 발동한다.

유명계의 이질적인 성혼이 김현의 투시를 방해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다. 자신의 내부를 보듯 그 영혼을 세계에 투영시키자 근방의 상황이 혼란스럽게 뇌리로 파고든다.

깎아지르는 절벽, 얼어붙은 바다, 끓는 용암, 개구리 눈깔 같은 하늘, 푸석한 대지, 그리고 진흙 구름에 숨은 그림자 궁전......

"아!"

순간, 김현은 정신이 으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받고 명징(明澄) 상태에서 깨어났다.

몸이 떨린다.

거대한 눈동자가 잔상처럼 어른거렸다.

오로지 검은색의, 흰자위도 홍채도 없는 눈동자.

거룩한 음울함과 오롯한 잔인함을 품고서 김현을 내려다본 그 존재.

잠깐의 주시에 혼백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설마, 7성?'

그건 아니다.

다만 투시 계열과 정신 계열 성혼을 동시에 가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김현의 아득한 시선을 간파하고 일격을 날렸겠지.

"선생님, 축복이랑 보호요."

"네!"

이세희가 황급히 두 성혼을 걸어주었다. 김현만 아니라 일행 전원에게 모두.

김현은 자신의 정신 방어막을 공고히 했다. 성벽을 쌓는다고 상상하며 방벽을 둘러친 것. 아울러 다른 일행에게도 당부했다. 정신 방어에 신경을 쓰라고.

"지배자가 어떤 존재일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어떤 괴물인데요?"

"괴물이라고 하지 마세요. 최소한 외계에서는요."

"그럼 뭐라고 해요?"

"그냥 유령이라고 해요."

"간단하네. 그래서, 어떤 유령이야?"

"일단은 정보를 수집하자. 두세 종류로 압축했는데 정확하진 않네. 나이도 알아야 하고, 가장 중요한 건 어떤 고위 유령에게 세금을 바치는지 알아내야 해. 궁전에 대해서도."

"궁전? 궁전에 살아?"

"어. 하늘을 봐. 구름이 조금 이상하게 생겼지?"

구름만 아니라 하늘도 이상하다. 하늘은 유리 천장처럼 번들거리고, 구름은 진흙을 대충 뭉쳐다 하늘에다가 박아넣은 것처럼 생겼으니까.

"외계니까 그렇겠지."

"저기 큰 구름 보여? 하늘 다 뒤덮은 거."

"보여."

"그 속에 그림자 궁전이 숨어 있어. 유령은 거기 거주하는 모양이야. 만나려면 하늘로 올라가야 해."

"세상에......"

하늘 위에 거주하는 괴물이라니.

다들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시 쉰 후 인근의 유령 마을을 돌아다녔다.

어디에나 있었다. 바다에도, 지상에도, 지하에도, 투명 산 뒤의 이차원 공간에도.

"우리는 어둠의 종주께 영혼을 바친다네."

그리하여 얻어낸 칭호, 어둠의 종주.

6성 주제에 거창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감탄을 표했다.

"실로 무시무시한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두려운 세상에는 처음이어서 그러는데, 어둠의 종주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후후, 산 자가 저승에 왔으니 무서울 만도 하지. 어둠의 종주께서는 매우 관대하고 자비로운 분이니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네. 어둠의 종주께서는 영혼만 제때 바치면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으시거든. 다만......"

"다만?"

"크흠! 그럴 일이 있네."

한참 이야기보따리를 풀던 얼음 귀신이 딴청을 피웠다.

이럴 때 보면 진짜 인간 같다니까.

미리 챙겨온 명금을 1관 건넸다. 얼음 귀신이 반색하며 말을 이어나간다.

"조금 유약하신 점이 단점이지. 종족 간의 항쟁을 일절 엄금하셨거든. 쯧, 서로를 잡아먹어야 하는 유령들이 입맛만 다신 게 벌써 500주기가 지났네. 여기저기서 불만이 폭주하고 있어. 뭐, 함부로 불만을 표시했다가는 종주의 간식거리가 될 테니 다들 닥치고 있네만."

역시나!

분명히 500주기라고 했겠다. 1주기란 차원문이 열리고 닫힘을 뜻하는 것이다. 지구에서는 그에 열흘 정도이니, 지구 기준으로 보면 13년에서 14년 정도 어둠의 종주가 이 일대를 지배했다고 보면 되겠다.

"500주기요? 대단합니다. 어둠의 종주께서는 역시 위대하십니다. 그토록 오래 영지를 유지하시는 걸 보면요."

"웬걸. 그리 강한...... 크흠, 크흠."

얼음 귀신이 또 딴청을 피운다.

금에 환장한 귀신 같으니.

이번에는 1관으로 안 됐다. 3관을 내리 내어준 다음에야 닫힌 입을 열 수 있었다.

"어둠의 종주께서는 대단히 무서운 분이지만 그리 강한 분은 아니라네. 성혼의 계열이 썩 좋지 못하거든. 태생도 사실은 비천하셨고...... 대신 줄을 잘 잡았지."

"줄이요?"

"그래. 칼의 늪이라고 혹시 아나? 유명계에서도 강력한 영력이 휘몰아쳐 위험하기로 소문난 곳이지. 그곳의 지배자인 흑인왕과 친분이 있는 모양이야. 벌어들이는 영력의 절반을 흑인왕에게 바친다고 들었어. 100주기마다 1번씩 인사도 간다더군."

흑인왕(黑刃王)!

김현의 얼굴이 구겨졌다.

흑인왕은 흑영존의 수하로 강력한 8성 유령이었다. 그런 존재에 비비려면 이쪽은 백라왕의 비호를 받아야 한다. 어지간해서는 힘들고, 상당한 대가를 내야겠지.

"그렇습니까? 역시 종주라는 칭호를 쓰실만합니다. 제가 이 무서운 세계를 여행하면서 더 알아두어야 할 지배자가 있습니까? 자칫 무지로 인해 실수할까 두렵습니다."

"글쎄? 근방에는 어둠의 종주 말고는 특별한 지배자가 없네. 다들 명군이니 혼군을 참칭하는 어설픈 것들이지. 혼급도 되지 못한 얼치기를 누가 알아주겠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것도 받으시죠."

"어이쿠, 뭘 이런 걸 다......"

유명계의 주민들은 영력이 고여 풍부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김현 일행이 도착한 곳도 그러했다. 사실, 영력이 풍부하니 차원문이 뚫리는 거였다. 황폐한 곳에는 차원문조차 만들어지지 않는다.

운을 기대하고 다시 차원문을 뚫어보던가, 이곳에 거점을 만들던가 둘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

"정체를 알았어요."

일행들끼리만 둘러앉은 자리에서 운을 뗐다.

"흑귀 일족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진화하는, 암운마종(暗雲魔宗) 같습니다."

"흑귀는 알겠는데, 암운마종이요?"

흑귀는 3성 괴물이다. 이름처럼 새까만 몸에 정신 공격이 특기였다. 일행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뭐, 당시에 이미 전력이 3성 정도는 가뿐히 쓸어버릴 정도라 잡귀에 불과했지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흑영탑이 세워진 건 아시죠? 거기 탑주가 흑운혼이라고 암운마종 중 하나입니다."

"아...... 알겠어요. 엄청 까칠하다던데요? 들어갈 때마다 정신 공격한다고. 그래서 인기도 없대요."

"나 같아도 서글서글한 외계종 상점 이용하지, 짐승 취급받아가며 거기 들어가고 싶진 않겠다."

"종족 특성입니다. 자존심도 높고, 자기가 인정한 상대 아니면 짐승 취급을 하지요."

"어, 탑주면 혹시 5성이에요? 여기 어둠의 종주도?"

"아냐. 한 등급 더 승급한 놈 같아. 떠돌이 생활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유명계에서 승급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거든. 하여간 평범한 놈은 아냐."

"그럼 의뢰 같은 걸 해서 인정받아야 하나요?"

"불가능해. 유명계 소속이 아니면 절대 인정을 안 하거든. 들어가자마자 이게 웬 떡이냐고 잡아먹으려고 하겠지."

사실상 선택지는 둘.

싸우느냐, 물러나느냐.

그걸 얘기하자 의견이 단번에 하나로 모였다.

"해보자! 우리는 우리가 3성일 때 이미 4성 괴물을 잡았잖아!"

"맞아요. 6성이면 장땡이에요? 우리가 힘을 합치면 6성 유령이건 뭐건 잡을 수 있어요!"

"저도 찬성. 동영상으로 몇 번 봤는데, 그 암운마종인지 뭔지가 괴물 주제에 거드름 피우는 게 마음에 안 들었어요."

"조금 무서운데......"

"여기까지 와서 빼려고?"

"아냐, 아냐! 싸우자! 싸워!"

"형, 저도 싸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차피 다시 차원문 넘어도 더 좋은 조건 거점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소개장도 있으니 해볼 만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전의가 충만했다.

그래, 그래야지. 이 정도는 깨부순다 생각하고 달려들어야지. 이리 따지고 저리 따지며 돌다리만 건너려고 하면 인류의 자강 독립은 그만큼 멀어진다.

귀환까지 남은 시간, 이틀.

충분히 돌아다녔다. 최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암운마종의 눈에 띄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벌건 물컹이들은 언제 처리할 건가?"

"요악 뾰족이들은 아직도 잘 살아 있던데?"

칼날 귀신과 혈귀 마을에 들를 때면 불만을 듣곤 했다.

이것들이 적반하장일세.

버럭 성을 냈다.

"누굴 바보로 알아? 그들을 학살하다가 어둠의 종주에게 노여움을 사면, 그래서 어둠의 종주가 우릴 단죄하겠다고 나서면 어쩌라는 거지? 응? 당신들이 시켰다고 자백이라도 할까?"

"어허, 그럼 하겠다고 하지 말았어야지."

"언령의 구속을 모르는 것들 같으니라고. 이래서 산 자들과 상종해서는 안 된다니까."

"건방지게 굴면 혼내줄 테다."

"푸하하! 그래 봐라! 종주의 5백 군세가 너흴 영겁의 고통으로 인도할 테니!"

"5백? 하하하. 그쯤이야 간단히 쓸어버릴 수 있지."

"으흐흐, 아무것도 모르는군. 멋대로 해라. 너희가 아무리 구세지경의 영웅이라도 멸성지경의 군대 5백은 당할 수 없을 테니."

일부러 긁었더니 정보가 톡톡 나온다.

멸성지경, 즉 4성 괴물을 5백이나 거느리고 있다는 것 아닌가.

더 도발해 보았는데 5성 괴물은 없다고. 간부급으로 있을 법도 한데 종주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하긴 죄다 정신 제압으로 데리고 있다고 하니 5성을 상시 제압하고 있기는 부담이 컸겠지.

정보를 충분히 얻은 다음 귀환했다.

그리고 백혈탑에서 명금 십만 관을 내고 백라왕을 소환.

백라왕(白裸王)은 이름처럼 벌거벗은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전신에 거미줄처럼 퍼진 검은 핏줄이 섬뜩했다. 백라왕이 무감정한 눈으로 김현을 주시했다.

[흑인왕의 종복인 암신종을 죽이고, 그 영지인 그림자 궁전을 갖고 싶다고?]

암신종(暗神宗).

김현은 이 이름을 알아내고 성공을 자신했다. 김애경의 비망록에도 기록된 이름이니까.

"예. 대가로 암신종이 흑인왕에게 바치던 영력에 더해 1할을 얹어드리겠습니다."

고작 이걸로는 안 되겠지.

역시나 백라왕이 머리를 젓는다.

[불가. 그 정도로는 내 권속이 암신종을 도모한다 해도 허락할 수 없다.]

"혹시, 바라시는 게 있습니까?"

이어질 요구가 짐작된다.

백라왕이 허연 눈으로 김현을 주시했다. 이어 창백한 입술을 달싹인다.

[최소한 3성 성혼의 농축 승화 방법, 그리고 네 성혼 농장의 설계도는 받아야겠다.]

이야......

어쩌면 이리도 예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를 못하냐?

김현은 짐짓 얼굴을 굳혔다.

"그 둘은 제 모든 것입니다. 모두 가져가시겠다니, 너무 많은 걸 바라십니다."

[그렇다면 더 할 말이 없다.]

지그시 김현을 주시하는 백라왕.

웃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 진심으로 낭패라고 생각했다. 백라왕 정도면 김현의 정신 방어를 뚫고 속내를 간파하고도 남을 테니까.

고민에 잠긴다. 사실은 모두 결정을 했지만, 정신 계열 성혼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고민하는 것처럼.

과연 이런 대가를 치러서라도 유명계에 진출해야 하나, 하고.

침묵이 길어졌다. 적막 속에서 백라왕과 백흔혼이 잠자코 김현을 응시한다. 숨 막힐 듯한 분위기가, 김현이 짧게 불어내는 한숨으로 깨져 버렸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백라왕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인 것은 단지 착각이었을까?

[내가 원하는 것은 그 두 가지다. 그 두 가지를 내게 선사한다면 나 또한 그대의 편의를 봐주도록 하지.]

"휴! 좋습니다. 하지만 그냥 비호만 해주셔서는 곤란합니다. 보호 협약이라도 맺어주셨으면 합니다."

[보호 협약이라......]

백라왕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인다. 단지 세금만 받는 비호와 공격당하면 아예 군대를 보내거나 자신이 직접 개입하겠다는 보호 협약은 차원이 다르니까.

[그대가 내 권속이라면 모르되, 산 자인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휘하의 공(公)께라도 보호 증빙을 받고 싶습니다."

[보호 증빙? 그 정도는 가능하지. 백염공에게 명하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죄송스럽습니다만, 한 가지 편의만 더 봐주셨으면 합니다."

[무엇이냐?]

"초혼의 피리가 필요합니다."

초혼의 피리.

유령 군대를 부르는 보물.

백라왕이 흔쾌히 승낙했다.

[고작 그 정도쯤이야...... 좋아, 내려주마. 단 이번에 쓴 다음에는 오직 네 영지의 방어를 위해서만 써야 할 것이다. 차후의 항쟁에서 쓰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다.]

"감사합니다!"

[아울러 향후 1천 주기 동안 영력을 상납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지식을 보고하는 데 있어 티끌만큼도 누락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당연한 말씀을."

저번에 백흔귀와 백영귀가 참관하고도 얻은 게 없어서 이런 조건을 단 것 같다. 김현은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깝지 않으냐고?

물론 아깝다.

그러나 99륜을 이용한 농축 승화 기술은 김현에게는 이미 한물간 기술이다. 대량으로 운용하기도 힘들고. 차라리 비싼 값 부를 때 파는 게 낫다. 성혼 농장? 마찬가지지. 99륜을 이용한 가속이 쓸만하나 이 역시 99륜을 가진 각성자가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고.

유명계에서 이 기술을 해석해 새로운 기술을 만들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관념이 지구와는 다른 유령들 아닌가. 그들이 새로운 도약을 할 때쯤에는 지구의 자강 독립이 이미 현실이 됐겠지.

[그대가 백라궁에 들 날을 기대하마.]

그 말을 끝으로 백라왕의 환영이 사라졌다.

숨도 못 쉬고 엎드려 있던 백흔혼이 벌떡 일어났다.

[대단하군, 선...... 아니, 거래자! 고작 구세지경에 들었으면서 유명계의 왕과 대면한 이는 그대가 처음이야!]

"고작 구세지경?"

[어엇? 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지. 백라왕을 비롯한 왕들은 우리가 꿈도 못 꾸는 경지에 올라 있거든. 거래자, 자네도 구세지경에서 더 올라가고 싶으면 육체를 버리는 게 좋아.]

"됐어."

김현은 어느새 손에 쥐어진 피리를 보며 웃음 지었다.

[초혼의 피리(6★)]

백라왕은 나름 성의를 표했다. 각 초혼의 피리는 2등급 아래 유령 군대를 소환하니, 그림자 궁전 내부의 흑귀가 몇 마리든, 어둠의 종주가 하위 종족을 몇이나 제압하여 써먹든 대처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관문은 딱 하나.

김현 일행이 어둠의 종주를 쓰러뜨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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