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어둠의 종주 –1-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했다.
김현은 어둠의 종주에 대해 모든 것을 낱낱이 안다.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어떤 힘을 가졌는지, 주특기로 삼는 것은 무엇이며 어떤 비밀을 가졌는지, 전부.
차곡차곡 준비를 해 나간다. 백흔혼을 통해 수많은 재료를 구했다. 일행 전원에게 새로운 무구를 장비시키는 한편 훈련소에서 손발을 맞췄다.
여기에 난민들과 자경단까지 신경 쓰려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그래도 날고뛴 덕에 딱 2주 만에 흡족한 결과가 나왔다.
'이 정도면 됐어.'
일행의 상황을 점검하며 생각했다.
<성혼>
[김현] 혼원(5★, 혼돈), 아득한 시선(5★, 혼돈), 혼돈의 주사위(5★, 혼돈)
[김애경] 서리거인(5★, 거신), 극점 심장(5★, 거신), 시화룡(5★, 시원), 태양혼(5★, 시원)
[이세희] 성스러운 축복(5★, 천상), 빛의 치유(5★, 거신), 성령의 보호(5★, 천상), 천상의 장막(5★, 천상)
[피터] 광선 폭격(5★, 광명), 광륜안(5★, 광명), 광성체(5★, 광명)
[에일리] 소용돌이(5★, 해성), 해일 심장(5★, 해성), 대해벽(5★, 해성)
[서경태] 어둠 질주(5★, 암흑), 그림자 은신(5★, 암흑), 칠흑 칼날(5★, 암흑)
돋보이는 것은 역시 피터와 에일리.
5성 각성자가 될 무렵 새롭게 각성했던 성혼, 광성체와 대해벽을 5성까지 끌어올렸다. 두 성혼 모두 종주와의 결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장비>
[김현] 혼원수(5★), 혼원각(5★), 혼원체(5★), 혼원안(5★)
[김애경] 양극전갑(5★), 거인의 장갑(5★), 용의 날개(5★), 왕의 투구(5★)
[이세희] 천상 보의(5★), 금강 쌍권총(5★), 성광 귀걸이(5★), 반사의 부적(5★)
[피터] 절대 방어의 팔찌(5★), 용살총(5★), 멸절의 인장(5★), 통찰의 안경(5★)
[에일리] 해왕갑(5★), 심해 괴수의 뿔(5★), 해일의 장화(5★), 심해의 진주(5★)
[서경태] 투명마검(5★), 음혼갑(5★), 분열의 팔찌(5★), 무흔 장화(5★)
이 여섯 명만으로도 세계 정복이 가능할 터. 김현의 경매 덕에 생긴 5성 각성자들도 아직은 얼치기에 불과하다.
[오호, 볼 때마다 달라지는군!]
"왜 왔어?"
백흔혼이 너스레를 떨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미 한솥밥을 먹는 처지에 그러지 말게. 자네 행성 말로 아주 빅뉴스를 가져왔으니까!]
"뭔데?"
[암신종의 6성 성혼에 대해서이지!]
김현은 말해 보라는 눈길을 던졌다. 무엇인지 이미 알고는 있지만, 시간 차이 때문에 혹시나 다를 수 있으니.
백흔혼이 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듣고 놀라지 말게. 바로 영혼 메아리라네!]
"알고 있어."
[응? 안다고?]
"그래. 상대의 성혼을 복사해서 똑같이 발현하는 성혼이지. 안 그래?"
[이런...... 이거 알아낸다고 명금 꽤 들였는데 헛짓했군.]
암신종은 그래서 까다로웠다. 6성 이하의 성혼은 무엇이든 복사해서 되돌려주니까.
'답은 멸망포지.'
비단 멸망포만이 아니라 혼력 기법을 극도로 쓰는 기술이라면 뭐든 가능하다. 평생을 두고 단련한 경험과 혼력 제어 능력까지 복사하진 못하니까.
"부탁한 거나 잘 준비해 줘. 물량만 충분하면 승산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젠 같은 식구이니 최대한 도우마.]
김현이 백염공의 보호를 증빙 받기로 해서일까? 백흔혼의 태도가 전에 없이 살가웠다. 요즘에는 거의 수수료조차 받지 않고 물건을 퍼줄 정도.
덕분에 준비가 금방 끝났다. 멸망포만으로는 모자라니 영혼 메아리를 교란할 성혼 허수아비들과, 암신종의 비밀에 대처할 고대 흡혈귀의 핏방울을 대거 끌어 모았다.
[응? 이건 왜 사는 건가?]
"그럴 일이 있어."
[흠...... 뭔지 알겠군. 이거 의외인데? 그래서 백라왕께서 직접 나서신 건가......]
암신종의 비밀.
참으로 어이없는 거였다. 유령 주제에, 유명계 태생 주제에 불사계의 흡혈귀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했을 줄이야.
김애경과의 혈전에서 그 사실이 드러났다. 죽기 직전에 몰리자 흡혈귀로 변하여 위기를 타파하려고 한 것. 유령 사냥꾼 박준이 급히 유령들을 소환하여 암신종의 배신을 알리는 바람에 수포가 되었지만.
"내일 돌입합니다."
일행들을 불러놓고 선언했다.
[드디어 내일인가!]
백흔혼이 물색없이 엉덩이를 들썩였다.
"오늘은 빨리 돌아가서 푹 쉬시고, 내일 최상의 상태로 보지요. 내일 전투가 우리는 물론, 인류 전체의 미래를 결정지을 겁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네. 그지?"
"그러게요. 처음에 합류할 때만 해도 까마득했는데......"
진실을 아는 김애경과 이세희가 감상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진실을 모르는 셋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그리고 결전의 날.
성혼 공방 지하 차원문을 가동하여 유명계로 접어든다. 장소는 처음 도착했던 바로 그곳, 칼날 절벽 위였다.
"망토 입으세요."
오늘을 위해 준비한 영혼의 망토.
망토를 쓰자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아울러 불어오는 저승의 바람에 의해 두둥실 떠오른다. 활강하듯이 몸을 젖히자 저절로 몸이 밀려간다.
요령 자체는 활강과 비슷했다. 그 방향이 반대로 되긴 했어도.
소리를 높여 외쳤다.
"그림자 궁전은 저기 큰 구름 안에 있습니다. 구름은 진흙으로 되어 있으니까 숨 멈추고 최대한 안으로 파고드세요! 주민들이 공격할 수도 있는데 반격하진 말고 방어막으로 밀어내세요. 괜히 평판 나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알았어!"
"Yes, Sir!"
"가자고요, 가!"
김현이 가장 먼저 진흙 구름에 파고들었다.
거친 저항감이 김현을 밀어냈다. 무시하고 힘을 높인다. 그러자 주위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흙 구름 속에서 사는 물귀신들. 자기 터전을 지키는 것에만 신경 쓰기 때문에 지구에서는 몇 보지 못했다.
미리 말한 것처럼 방어막으로 밀어낸다. 워낙 허약한 것들이라 속절없이 밀려났다. 위협하듯 쉑쉑 거리는 소리를 내지만 역시 무섭지가 않다.
얼마나 전진했을까.
"후아!"
답답한 진흙 속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김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도저히 상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공기를 몇 번 마시자 근방에서 머리 하나가 불쑥 튀어나온다.
"빨리 통과했네?"
"누나도."
"다른 사람들은?"
"곧 나올 거야."
아득한 시선을 통해 다 보고 있었다. 과연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일행 모두 합류했다.
"저게 그림자 궁전이에요?"
"맞아요."
진흙 구름 안은 거대한 공동. 그 안에 하나의 궁전이 서 있다.
글쎄, 저걸 궁전이라고 해야 하나?
구와 육면체가 제멋대로 교차하고 있다. 게다가 서서히 회전하며 서로 만났다가 헤어지고, 겹쳐졌다가 동강 나는 것을 반복한다.
가장 기이한 것은 음영에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 그래서 눈이 여간 좋지 않고서야 고양이가 제멋대로 풀어놓은 털실 뭉치로 착각하게 생겼다.
마침 길쭉한 원통 기둥이 김현 일행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안쪽으로 통하는 문도 하나 보였다.
일행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갈까요?"
"가죠."
진형은 언제나 같다.
김애경과 에일리가 선두. 서경태는 은신하여 어디론가 사라진다. 중심에는 김현이 자리를 잡고 이세희와 피터는 후미에서 따라왔다.
원통 기둥, 아니 복도에 진입.
그르르르.
짐승의 울음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이어 길게 늘어지더니 귀신의 웃음소리처럼 변화한다.
이세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김현 님, 이거 저번에......"
"예, 천살귀입니다. 수가 조금 많네요. 10마리입니다."
"10마리!"
"그럴 수 있죠. 이곳은 6성 유령의 둥지니까요."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4성 떠돌이 20마리가 달려들어 죽기 직전까지 몰렸던 게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니까.
김애경이 일행을 돌아보고는 외쳤다.
"뭐야, 겁먹었어? 바보들아! 우린 그때랑은 차원이 달라! 나 혼자서도 천살귀 10마리쯤은 잡겠다. 긴장 풀어. 가볍게 때려잡고 지나가자고!"
김현은 초혼의 피리를 만지작거리다가 그냥 집어넣었다. 김애경이 말한 대로 가벼운 상대이니, 몸풀기 삼아 상대하는 것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킥킥킥, 킥킥킥킥.]
[산 자다.]
[몇 주기 전에 아래 영토에 나타났던 자들이군. 겁도 없이 종주의 궁전에 침입하다니, 영력을 바치고 먹거리가 되어라!]
천살귀.
달걀처럼 얼굴이 없고, 칼로 된 팔과 다리를 가진 귀신. 그리고 접근할수록 잔혹한 혈향을 풍긴다.
"하앗!"
에일리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두 팔을 펼치자 심해의 진주가 반응한다. 아울러 대해벽이 펼쳐지며 물의 벽이 통로를 완전히 메웠다.
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따라서 물의 벽은 일행 근방만이 아닌 천살귀 주위의 벽까지 밀려갔다. 여기에 소용돌이를 발휘하자 천살귀들이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크읏!]
[이 고깃덩어리 마녀가!]
다음으로 연계한 것은 피터.
한가롭게 걸어가며 광성체를 띄운다. 피터의 주변으로 빛나는 점이 포실포실 일어났다. 그것들이 위성처럼 피터를 감돌다가 천살귀들을 감지하고 슝슝 날아갔다.
그것만으로 상황 종료. 천살귀들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러고도 살아 있는 천살귀는 소용돌이에 의해 찢어지고 말았다.
"이야, 너희 둘 진짜 강해졌구나?"
서경태가 감탄하여 손뼉을 쳤다.
피터가 괜히 으스댔다.
"이 정도는 해야지."
"다음에는 내 차례다. 알았지?"
"알았...... 어?"
피터는 미처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거대한 압력이 정신을 압박해온 까닭.
피터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머리를 떨어뜨렸다. 얼굴이 빠르게 하얘지더니 코에서 피를 뚝뚝 흘린다. 이세희가 다급히 손을 썼다.
"피터! 괜찮니?"
축복과 보호, 치유가 중첩되어 날아간다.
시작하기 전에 축복과 보호는 걸어두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방어를 뚫고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면 암신종의 능력이 대단하긴 대단하다.
김현은 잠자코 초혼의 피리를 꺼내 불었다.
삐이이이!
듣기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소음이 대기를 타고 번졌다.
기온이 확연히 싸늘하게 내려간다. 귀곡성이 거푸 울리며 피리에서 흰 덩어리 같은 것이 휙휙 튀어나왔다. 그것들이 좋다고 김현의 주위를 돌다가 궁전 전역을 향해 날아간다.
4성 유령 군대.
천살귀와는 비교가 안 되겠으나 군대는 수만 많으면 장땡이다. 초혼의 피리가 불러낸 유령 군대는 적어도 수천은 되는 듯했다. 그것들이 그림자 궁전 전체를 헤집자 피터를 압박하던 시선이 사라졌다.
"큭, 이제 조금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다. 잘 버텼어."
"Mr. 김...... 정말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정신 공격을 당한 여파가 상당했던 걸까. 피터가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처음 오디션 보던 때의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당연하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나만 믿고 따라와."
"정말이죠? 정말이죠, Mr. 김?"
"물론. 자, 유령 군대 사라지기 전에 전진하자. 일단 궁전 중심에서 암신종과 싸우기 시작하면 우리 승리야."
"믿을게요."
이후에는 쾌속 진군.
경비 역할을 하는 4성 유령들이 덤벼들었으나 수가 극히 적었다. 대부분은 유령 군대에게 발이 묶인 것이다. 그 이하 유령들은 김현 일행을 봐도 감히 덤비지 못했다. 이미 김현 일행에 대한 소문이 퍼졌나 보다.
진입 후 얼마 지나지도 않아 대전 앞에 도달했다. 문지기 격으로 두 마리의 괴물이 서 있었다.
[투마혼]
[요마혼]
오호, 5성 괴물들......
투마혼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바닥에다가 내리찍었다.
[더는 지나가지 못한다. 산 자들.]
[오호호, 나는 너희 육체를 주면 통과시킬 생각이 있는데.]
"됐어. 내가 직접 지나가지."
가볍게 몸을 날린다.
철컥, 철컥, 철컥.
쇳소리와 함께 변형되는 김현의 육체.
투마혼이 코웃음을 쳤다.
[잔재주를!]
몽둥이를 길게 뻗자 어마어마한 힘이 용솟음친다. 이것만 봐서는 음습한 유령이 아니라 강건한 거인을 보는 듯하다.
김현은 신중한 눈으로 몽둥이의 궤적을 주시했다. 그러다가 두 손을 쭉 내밀어 몽둥이를 잡아챘다.
투마혼의 안광이 크게 일렁였다.
[아니?]
그리고 나타나는 김애경.
두 주먹 가득 멸망포가 장전되어 있었다. 그걸 교차하며 내뻗는다. 투마혼이 처음 한 방은 어찌어찌 막았으나 두 번째에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말았다.
[이런, 멍청이가!]
요마혼은 대처가 늦었다. 투마혼이 당하는 걸 본 다음에야 환상 성혼을 흩뿌린다.
환상 성혼에는 판독 성혼이 쥐약.
김현은 아득한 시선을 통해 진실을 꿰뚫어 보았다.
"피터, 10시 반, 전방 상향 39도!"
"Yes, Sir!"
광선이 날아간다. 이어 폭격하듯 김현이 지정한 방향을 휩쓸어버렸다.
먼지가 걷히고 낭패한 기색으로 나타나는 요마혼.
안심하기엔 일렀다. 요마혼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일어나 칠흑처럼 검은 검으로 요마혼을 양단해 버린 것. 요마혼이 째지는 비명을 질렀다.
"이걸로 끝......이 아니네?"
서경태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요마혼의 심장을 찔렀는데, 요마혼이 연기만 뿜을 뿐 머리를 돌려 서경태를 노려보았기 때문이다.
[너!]
"유령들이야. 급소 없어. 죽을 때까지 난도질해."
김현의 싸늘한 목소리에 비로소 정신 차렸다. 이어 마구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초반부터 승기를 잡았어도 5성은 5성.
싹 다 정리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분하다......]
[종주시어, 자리를 피하소서......]
완전히 소멸된 둘.
짤막한 휴식을 취했다. 그다음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앞에 있었다.
암신종이, 어둠의 종주가.
시커먼 구름 중앙에 거대한 눈알만 하나 둥둥 떠다닌다. 눈알이 일행을 한 명씩 한 명씩 확인했다. 피터가 눈을 보고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암신종과 김현의 눈이 마주친다.
착각이었을까?
암신종이 웃는 것처럼 보였다.
[왔구나, 선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