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천상체 –2-
몇 번 언급했듯이 인류의 한계를 벗고 6성으로 올라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환골탈태는 불가능하니 제외. 종족 변환도 해당 진영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으니 제외. 이제 남는 것은 인체 개조와 영육 개변이었다.
"영육 개변으로 할게요."
이세희의 선택.
김현은 입맛을 다셨다.
"인체 개조가 더 좋습니다만."
"싫어요, 그건."
하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것이다. 김현이 제시한 건 키메라 만들 듯 천사들의 육체를 이세희의 육체에 덧붙이자는 거였으니까. 눈은 보석안으로, 뇌는 하늘핵으로, 심장은 천사의 정수로 대체하는 식.
"누나, 정말 할 거야?"
서경태가 조심스레 묻자 이세희가 머리를 힘차게 끄덕였다.
"응. 난 이미 결정했어."
"경태 너는 어때? 너도 조만간 선택할 때가 올 텐데, 넌 어떻게 할래?"
"저는......"
서경태가 입을 우물거린다. 21세기의 관념으로는 인간을 버리는 게 그만큼 어려운 모양이다.
"난 환골탈태를 하면 된다고 했지?"
"맞아."
"이거 조금 미안하네......"
"뭐가?"
"그렇잖아. 다들 뭔가를 희생하는데......"
"하하. 막상 환골탈태 시작하면 그 소리 다시는 안 나올 걸?"
4가지 방법 중 가장 쉬운 것은 인체 개조다. 전생의 김현도 전신의 생체 조직을 곤충의 것으로 대체하고, 기계 부품을 박는 식으로 6성을 이루었다.
환골탈태?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처참하다. 단지 뼈가 바스라지고 근육이 가루가 되었다가 재생하는 게 아닌, 거의 분자 단위까지 소멸되었다가 재생성 되는 것이니.
"이 선생님은 아마도 이렇게 변할 거예요."
김현은 허공에 한 줄기 핏물을 뿜어냈다. 일행의 얼굴이 미미하게 찌푸려졌으나, 곧 핏물이 빚어내는 조화에 눈을 휘둥그레 뜨게 된다.
형태는 물론 색채마저 변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하나의 아름다운 조각상을 만들어낸다.
천사.
작은 날개가 소담하다. 물빛 머리칼 너머 후광이 어렸고, 금빛 눈과 어울려 아리따운 광채를 자아냈다. 벌거벗은 육체 곳곳에는 금빛 선이 질주하며 연신 옅은 파동을 뿜어냈다.
"아름답네요."
"그렇죠? 미래에서는 이걸 천상체라고 부릅니다. 이 선생님이 천상 성향 각성자라 다행이에요. 축복, 치유, 보호, 방어 계열이라서 다행이고요."
"이런 거면 영육 개변도 할 만 하겠어요!"
"그러게."
글쎄, 과연 그럴까?
아무리 아름다워도 이질적인 것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배척까지는 어쩔 수가 없다.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건 차라리 낫다. 환상으로 가리고, 변형하여 인간처럼 하고 다녀도 되니까.
하지만 자기 자신이 갖는 본능적인 이질감은?
영육 개변은 인체 개조와 종족 변환의 중간에 있다. 따라서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선생님. 시작하기 전에 알려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요?"
"일단 시작하면, 영육 개변이 완료되고 나면 1달에 1번 오는 주기가 사라집니다."
"1달에 1번? 아, 그거 좋은데요."
"좋은 게 아니죠. 임신도 불가능해지니까."
"세희야......"
그 의미를 깨달은 김애경이 이세희의 이름을 부른다.
이세희 또한 몸이 빳빳하게 굳었다.
임신을 못한다?
물론 출산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이세희도 가끔은 꿈꾸는 게 있었다. 다정하고 멋진 남편과 평온한 하루를 보내며, 귀여운 아이들을 돌보는 것 같은.
"나중에라도 아이를 갖고 싶으시면 난자를 미리 보관해두세요. 원하시면 인공 자궁을 만들어 드릴게요."
"인공 자궁? 그걸로 되요?"
"기능적인 면으로는요."
"Mr. 김, 말을 너무 쉽게 하시는 거 아니에요?"
에일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인간을 기계 부속 집합쯤으로 얘기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22세기에는 그렇게 됩니다. 자연 출산하는 개체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돼요. 아, 충왕계는 유전자 조작을 해서 한 번에 20 개체씩 출산하게 만들긴 하네요."
"20 쌍둥이? 말도 안 돼!"
"네, 말도 안 되죠. 그런 거에 비하면 인공 자궁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이 선생님, 그렇지 않아요?"
이세희가 입술을 찔끈 깨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다 듣지 않았는가. 처음에 김현에게 구출되어 신촌 병원을 빠져나왔을 때부터. 그때, 김현에게 합류하겠다고 결정한 순간 지금의 선택이 결정되었을지도 몰랐다.
'운명이지.'
흉악한 괴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가족을 이룰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그때 빙의귀에게 사로잡힌 미친 의사에게 살해당하는 것보다 100배는 나은 상황이었다.
"시작해요."
"예. 이쪽으로 오세요."
김현은 꼭대기 승천의 문으로 이세희를 이끌었다.
승천의 문, 지금은 김현이 대대적인 개조를 끝냈다. 성혼 공방 지하에 있던 것을 옮겨와 덧붙인 것이다.
성혼 공방과 훈련소, 성혼 거래소도 한참 옮겨오는 중. 다만 7층 변환로는 폐쇄해 놓았다. 아직 거기까지 손을 댈 여력이 없었으니까.
"저건......"
차원문 생성기 옆에 커다란 캡슐 4개가 있었다. 그걸 본 일행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키 3미터의 아름다운 천사들이 잠든 채 각각 캡슐 속에서 태아처럼 몸을 웅크리고 있었으니.
"5성 등급 천사들입니다."
"어, 아까 김현 님이 보여준 모습과 비슷한데요?"
조금씩 다르기는 하다.
어떤 천사는 머리카락이 파랗고, 어떤 천사는 황금색 후광을 둘렀고, 어떤 천사는 전신에 금빛 문신이 있고, 어떤 천사는 유독 날개가 작은 등의.
"네. 이 선생님은 이 외계종들의 정수와 성혼을 흡수해서 영육 개변하게 될 겁니다."
영육 개변이든 인체 개조든 재료가 필요하다.
가장 최고의 재료는 역시 해당 등급의 동일 성향, 동일 계열 외계종. 지금 상태에서는 6성 등급 천사 수성천이 그렇다고 하겠다.
하지만 차원의 벽이 두터워 아직은 6성 외계종이 넘어올 수가 없다. 김현이 생포한 다음에도 그러했다. 따라서 5성 외계종들만 사냥하여 데리고 왔다.
이세희가 별안간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다른 생명을 빼앗아서 한다는 게 조금......"
"하하하, 선생님.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이놈들은 잔인하기 짝이 없는 괴물들이에요."
"아무리 그래도요."
"어휴, 선생님. 본인한테 축복 써보세요."
그러자 이세희가 흠칫 놀랐다. 과거 건국대학교에 진입했을 때의 일이 생각나서였다.
일행 전원에서 축복과 보호의 성혼을 거는 이세희.
천사들의 본 모습이 드러난다.
우유 같던 피부가 찢어지고 푸르스름하게 물들었다. 황금색 후광도 사라진다. 기이한 보랏빛 영기만이 대신하여 남았다.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90은 넘은 노파를 보는 듯했다.
조금 전의 아름다운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말 그대로 괴물에 가까운 모양새.
이세희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 저도 저런 모습이 되나요?"
"아뇨."
머리를 저었다.
"영육 개변은 자신의 이상을 자신의 육체와 영혼에 투영합니다. 따라서 이 선생님이 평소 생각하는 천사의 이미지가 덧씌워질 겁니다. 재료의 영향을 상당히 받으니, 아까 제가 보여준 모습대로 구현되겠지요."
"아......"
"어쨌든 신경 쓰실 거 없습니다. 천사고 용들이고 다들 우리를 잡아먹으려고 안달이 났다는 거, 선생님도 잘 아시잖아요? 우리를 지키려면 우리가 먼저 놈들을 잡아먹어야 합니다."
"후, 그건 맞아요."
이세희가 천사를 보다가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하면 되죠?"
"이쪽으로 들어오세요."
커다란 캡슐 건너편에 작은 캡슐이 있었다.
SF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동면 장치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들어가 누우면 딱 맞을 것 같은 관 형태의 캡슐.
이세희가 조심조심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자기가 누운 캡슐과 천사들이 들어 있는 캡슐을 한 번씩 보고는 김현에게 슬쩍 시선을 보낸다.
"그건 그렇고 재주도 좋으시네요. 언제 이걸 다 준비하셨어요?"
"바쁘게 움직였죠."
캡슐 네 개가 사방에 있고 이세희가 든 캡슐이 중앙에 있었다. 김현은 중앙 캡슐을 조작하여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뚜껑 위쪽으로 성혼 다섯 개를 집어넣었다.
하나하나가 6성 등급. 떠돌이 6성 수성천을 잡고 얻은 성혼이었다. 이 정도는 투여해야 영육 개변에 필요한 힘이 공급된다.
"이 선생님."
[네?]
하늘 수정을 깎아 만든 뚜껑 너머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울린다.
"육체 개변이 아니고 영육 개변입니다. 얼핏 보면 육체만 바꾸는 것 같지만 영혼도 조금 바뀌게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요?]
"천상계의 영향을 받는 거죠. 아마 잠시 후의 선생님은 지금보다 더 오만하고, 더 독선적이고, 더 가식적인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저 욕하는 거예요?]
"하하, 그럴 리가요. 알아두시라는 의미에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참, 그리고 이거 기억하세요? 예전에 샌프란시스코 갔을 때, 민달팽이 정신 공격에 일부러 당했던 거요."
[기억해요.]
"그때 제가 뭐라고 그랬죠?"
[마음의 중심을 지탱할 키워드를 정하라고......]
"네, 그거면 됩니다. 선생님한테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꼭 품으세요. 선생님이 어떻게 변하건,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게 새롭게 탄생할 6성 각성자 이세희의 정체성이 되겠지요."
[정체성......]
많은 것이 떠오른다.
힘들었던 학창 시절, 태움에 지쳐 울곤 하던 간호사 시절, 신촌 병원의 재앙, 김현과의 만남, 그리고 외계종과 성혼......
'뭐가 가장 중요할까?'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오늘 자신이 이렇게 과감한 결단을 내리게 한 존재들.
그들의 미소가 보고 싶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순수하기 그지없는 미소가 이세희의 얼굴에도 떠올랐다.
[준비됐어요.]
"갑니다."
철컥!
캡슐 옆에 돋아 있던 손잡이를 빠르게 내렸다.
동시에 사방의 캡슐 모두에 시꺼먼 핏물이 차오른다. 아울러 회색빛 영기가 천사들의 영혼을 급습했다.
[아아악!]
[아아아악!]
[살려줘!]
[괴로워! 누가 구해줘!]
일제히 비명을 지르는 천사들.
단순한 소리가 아닌 영혼으로 외치는 고통이다. 그 절망이, 공포가 여기 있던 일행 전부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도, 도망쳐!]
[이힉!]
오죽하면 기계처럼 변한 유령들까지 승천의 문에서 뿔뿔이 흩어져 아래층으로 도망쳤을까.
일행은 잘 버티고 있었다. 저마다 성혼 방어벽을 세우고는 캡슐 쪽을 노려본다.
"형, 잘 되겠죠?"
"잘 되지. 걱정하지 마. 내가 볼 때 성공율이 99.99% 정도 돼."
이세희가 암신종의 공격에서 이미 6성으로 승급하는 길을 밟았기 때문이다. 단지 버티는 것만으로, 단지 천사들의 정수를 흡수하는 것만으로 이세희는 6성 등급에 오른다.
"누나도 시작하자."
"어? 나도?"
"응. 킹스 포인트에 준비해 뒀어."
"세희 보고 있어야지."
"뭐하러? 성공할 게 뻔한데. 그리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알게 돼. 유령들이 내 귀가 되어 주거든."
"휴우, 알았어. 하여간 성미가 번갯불에 콩 볶아 먹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니까."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지."
성혼 공방의 빈 자리에 거대한 구조물이 구축되어 있었다.
칠흑 같은 공허를 생성하는 것.
중력도 공기도 없다. 있느니 무한한 어둠 뿐. 그리고 허공을 부드럽게 유영하는 여덟 개의 별이 전부.
김애경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뭐야?"
"충격 흡수 장치야. 저기 작은 별들 보이지?"
"어, 보여."
"저기에 성혼을 하나씩 넣을 거야. 6성 등급 성혼이고, 시원계에서 네 개 거신계에서 네 개를 뽑았어."
"헉, 6성 등급 8개요?"
에일리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환골탈태하려면 그 정도 힘은 필요해요."
몇 가지 안전장치를 갖춘 다음 김애경이 충격 흡수 장치에 들어갔다.
시작하기 전 주의를 준다.
"누나, 성혼로 기억하지?"
"당연한 말을."
"그거랑 비슷해. 6성 성혼에서 나오는 힘이 장치에 퍼졌다가 반탄 되어 돌아올 거야. 힘이 엄청나니까 육체가 반드시 붕괴하게 돼. 아마 분자 단위까지 흩어지겠지."
김애경이 김현을 말가니 쳐다본다.
"너...... 날 죽이려고?"
"뭔 소리야. 6성만 되면 돼. 그러면 성혼이 자연스럽게 질료를 끌어안고 누나 몸을 복구하게 되어 있어."
"말은 쉽다."
"엄청나게 힘들고 고통스러워. 잘못하면 영영 육체를 재생성하지 못할 수도 있지. 그래도 난 누날 믿어. 정 힘든 것 같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까 걱정 말고."
초기에는 환골탈태를 할 때 무조건 개인의 정신력에만 의지해야 했다. 하지만 김현에게는 100년 간 쌓인 지식이 있었다.
청사진 투영기, 영음 전달기, 혼력 조율기......
재료의 부족으로 조악한 형태를 하고 있으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싶었다.
과연 그러했다.
약 24시간 뒤, 이세희와 김애경 모두 껍질을 깨고 나왔다.
[김애경] 서리왕(6★, 거신), 태초화(6★, 시원)
[이세희] 수성(6★, 천상)
도합 세 명의 6성 등급 각성자.
이만하면 현재 지구에 와 있는 외계종 전체와 자웅을 결해 볼 만한 전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