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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헌터사-115화 (115/200)

# 115

모가디슈 –2-

지금 사브리나가 떠올린 생각은 이거였다.

김현이 저 악마를 소환했고, 모가디슈를 일부러 공격한 것 아닐까 하는, 실로 발칙한 상상.

곧 머리를 저어 버린다. 설마 하니 김현이 그런 사악한 짓을 저질렀을 리는 없지 싶어서.

김현은 느긋하게 대답했다.

"5초 전에 내 노예가 되었지. 뭐, 한시적이긴 하다만."

공중으로 몸을 띄워 지옥 화염의 머리에 발을 올려놓는다. 지옥 화염이 굴욕적이라는 듯 몸을 떨었다.

정신 방어 능력이 제법이다. 표층 의식은 모두 장악했지만 심층 의식은 아직 자아를 유지하는 걸 보면.

그래봐야 시간문제. 김현은 지옥 화염에 대한 정신 공격의 강도를 높였다. 지옥 화염의 눈에서 불똥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이냐고?

아니, 핏물이다. 악마에게 눈물이 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린가.

"내려가자."

김현은 지옥 화염의 머리 위에 올라탔다. 다소 우스꽝스런 모양새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지옥 화염이 날개를 펼치며 화염이 분출되고, 그것이 날개 형상으로 뻗어나가 흉악한 정경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천천히 강하하기 시작.

지옥 화염이 으르렁거렸다. 그때마다 화염 숨결이 사방으로 뿜어진다.

일종의 반항. 본 척도 하지 않고 명령했다.

"불 꺼라. 덥다."

[예, 주인님.]

당장 날개도 숨결도 잦아들었다. 남은 것은 무기 두 점이 전부.

"무기 나한테 주고, 지상에 불도 꺼."

[예......]

무기는 지옥 화염들의 생명이나 다름없다. 심층 의식에서 격렬한 거부감이 일어났으나 가볍게 그걸 찍어 눌렀다. 결국 채찍과 칼을 김현에게 바치는 지옥 화염.

받아들자 거대한 불길이 일어났다. 악마 성향 각성자라면 모를까 김현의 육체는 지금 흡혈귀의 것. 당연히 거부 반응이 일어난다. 무시하며 피의 힘을 퍼부었다.

궁궁궁궁.

두 무기가 전율하듯이 운다. 그에 따라 지옥 화염도 발작하듯 몸을 뒤틀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 두 무기는 피의 기운에 잠식되어 불을 꺼뜨리고 말았다. 무기의 생명이 다한 것을 느낀 지옥 화염이 구슬프게 한 번 울었다.

[우어어어.]

"시끄럽다."

지옥 화염의 머리를 된통 쥐어박았다.

사람들 학살할 때는 좋다고 날뛰더니 제 무기 박살났다고 징징거려? 지구인을 구더기 취급하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깨진 지옥 화염 검(5★)]

[깨진 지옥 화염 채찍(5★)]

'어쨌든 좋은 거 얻었네.'

좋은 재료다. 불의 정수와 악마의 정수만 넣어 부활시킬 수도 있고, 다른 세계의 정수를 이용해 새로운 무구로 만들 수도 있었다.

"너, 저기 불은 안 끄냐?"

불타는 도시를 가리켰다. 그러자 지옥 화염이 힘없이 입을 벌린다.

쓰아아아.

빨려드는 공기.

정확히 말하면 인근 지역에 존재하는 불의 힘을 흡수하고 있었다. 자연히 지상의 화염이 그 힘을 잃고 사그라졌다.

남은 것은 잿더미와 검은 연기가 전부. 김현은 연기를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그나마 피해가 덜한 관공서 앞쪽에 내려앉자 숨어 있던 시민들이 고개를 삐죽 내민다.

"히익!"

"악마다! 악마!"

"숨어, 얼른!"

지옥 화염의 존재 때문에 겁을 집어먹은 모양이다. 기껏 모습을 비췄다가 도망치고 있었다.

훨씬 더 큰 종이배나 도열 중인 자경단원은 보이지도 않는 모양. 김현은 즉각 지옥 화염에게 명령을 내렸다.

"엎드려."

[예, 주인님.]

"그게 엎드린 거냐? 제대로 해."

김현의 머릿속에서 어떤 영상이 그려졌다. 그걸 전달 받은 지옥 화염이 멈칫거린다. 5성 급이면 악마계에서도, 떠돌이 중에서도 방귀 꽤나 뀌는 존재일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정신 공격의 강도를 높이는 김현. 지옥 화염이 느릿느릿 움직였다. 머리를 무너진 건물 조각 위에 박고는 다리를 길게 뒤로 뻗었다. 두터운 팔을 등 뒤로 넘겨 깍지를 끼고는 날개를 고이 접는다.

흔히 말하는 원산폭격 자세.

키 5미터나 되는 거대한 악마가 그러고 있으니 상당히 우스꽝스럽다. 바들바들 떨리는 육체가 상처 입은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이 지경이 되어서야 모가디슈 시민들이 삐죽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엄마, 저거 봐!"

"뭐야, 저거?"

"사람들이다!"

"사람들? 진짜네!"

"저 사람들이 악마를 잡았나 봐!"

"살았다, 살았어!"

시민들이 슬금슬금 걸어 나왔다.

김현이 턱짓을 하자 자경단원들이 소수만 남고 사방으로 흩어졌다. 곳곳에 갇힌 시민들이 있을 테니 구조 작업을 시작한 것. 강력한 성혼은 단지 전투만 아니라 이런 구조 활동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슈퍼 김......"

누군가 김현을 알아보고 신음을 흘렸다.

김현은 옛 모습을 고수하고 있었다.

청바지에 후드티, 그리고 강철 의수. 이 모습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이런 곳에서도 알아보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한 차례 술렁임이 사방으로 번졌다.

"슈퍼 김이라고? 그 슈퍼 김?"

"우린 살았다! 살았어!"

"저런 사람이 우릴 구하러 올 줄이야......"

김현은 혼멸 성혼을 이용해 주위를 훑어보았다.

피해가 컸다.

수년 전만 해도 모가디슈의 인구는 대략 130만 명을 넘었다. 괴물들이 날뛰기 시작한 후로 급감하여 70만 명으로 줄어들긴 했으나 아직도 소말리아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다. 그나마 안전하다고 알려져 난민들이 모여든 것도 한 몫을 했고.

그런데 지금 김현이 파악한 숫자는 고작 50만 명에 불과했다. 지옥 화염이 분탕질을 친 몇 시간 동안 거의 1/3이 죽어나간 것.

울화가 치밀어 올라 지옥 화염을 걷어찼다.

[커헉!]

옆구리에 구멍이 뻥 뚫리며 화염이 솟구친다.

그걸 집어다가 지옥 화염의 얼굴에 문질러 주었다. 핏빛 화염으로 변모하여 얼굴을 태우자 지옥 화염이 비명을 지른다.

"조용히 해!"

자경단원들만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하다. 김현은 종이배를 원상복구하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지금 어딥니까?"

거친 음성이 전파를 타고 쏘아진다.

조금은 당황한 듯한 대답이 들려왔다.

[어, 어디라니요?]

"저 지금 모가디슈 와 있는데, 어디 계시냐고요."

[아,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는 임시로 이집트에 와 있습니다. 여기서 정부를 지휘하는 중입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진짜......

더 들을 것도 없었다. 위험에 처한 시민들은 버려두고 저 혼자, 아니 자기들끼리 도망쳤다는 소리니까.

전화를 끊어 버렸다. 숯검뎅이 묻어서 자신만 쳐다보는 시민들을 똑같이 응시한다.

'어떻게 하지?'

어쩌긴 뭘 어째.

한 번 후읍, 숨을 들이마시고는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원래의 천 자락으로 돌아간 종이배를 망토 두르듯 몸에 둘렀다.

피의 힘을 방출.

천자락이 피를 흠뻑 머금는다. 본래는 백색이던 천이 붉게 물들었다. 그러더니 더없이 넓게 확장되며 양 옆으로 길쭉하게 자라났다.

이 천의 이름은 혈족 비단.

흡혈귀의 힘에 반응하여 자유자재로 변형되고 증식하는 기능이 있었다. 김현의 힘이라면 거대 구조물도 짓는 게 가능할 지경.

자라난 천이 허공에서 스스로 얽히고 꼬물거리며 어떤 형상을 갖춘다.

시민들과 자경단원들이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럴 만도 하지. 허공에서 붉은 뼈가 생기고 살이 자라 피부까지 덮이니 누가 보아도 경악스러울 터.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두 쌍의 손.

손가락은 물론 피부의 주름, 솜털까지 섬세하게 구현되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엄청나게 크고, 부드러운 살색이 아닌 옅은 핏빛이라는 게 다를 뿐.

"경태야."

그 와중에도 열심히 전화를 걸고 있었다.

[어엇, 형? 무슨 일이세요?]

"도움이 필요해서. 나 지금 모가디슈 와 있는 건 알지? 여기 상태가 장난이 아니야. 이재민이 50만 명이다."

[헉, 진짜요?]

"그래. 그리고 10만 명 정도가 지금 건물에 깔려 있어."

[맙소사......]

"피터랑 에일리한테 상황 설명해 주고 얼른 모가디슈로 와라."

[어...... 제가 가도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일단 출발할게요.]

"올 때 백혈탑 들러서 안개 세트 가져와. 무슨 말인지 알지?"

[아하! 그런 방법이 있네요! 알았어요!]

"한스한테 말해서 철거 지원팀이랑 구조 지원팀도 꾸려서 와 달라고 하고. 음식이랑 약도 많이 필요해."

[네! 바로 갈게요!]

서경태라면 킬리 섬에서 출발하여 1시간 내에 모가디슈까지 도착할 것이다. 5성 각성자의 어둠 질주는 속도가 무시무시하니까.

이때쯤 손의 생성도 완료.

바로 앞에 생존자 다섯이 있었다. 무너진 건물 사이 공간에 깔렸는데, 연기를 들이마셨는지 질식해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

손을 뻗었다. 혼멸 성혼으로 미래를 들여다본다. 혼돈의 주사위는 없지만 혼왕 성혼이 대체했다. 오히려 미래 예지에 있어서는 더욱 정확했다. 지금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

중간 돌을 하나 빼낸다. 건물이 무너진다. 그건 다른 손으로 받쳐 저지하며 다른 두 손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사람 하나 통과할 구멍이 열리며 내부 상태가 보였다.

"사령관님, 저기!"

"보고 있다."

거대한 손은 들어가지 않는다. 사브리나가 움직이려 할 때 김현이 진짜 손을 뻗었다.

핏빛 채찍 같은 게 꿈틀거리며 뽑혀 나온다. 그것이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생존자들을 하나씩 연달아 건져 올렸다.

구석에 눕히자 자경단원들이 달려들었다. 소지하고 있던 침낭을 모포처럼 펴서 바닥에 깐다. 몇몇이 생존자들의 호흡을 확인하더니 바로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김현이 가르친 적은 없지만 자기들끼리 이런저런 교육을 한 모양.

보고 있던 시민들도 합류했다.

"저, 저희도 도울게요!"

"스테판이잖아! 세상에!"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허공에 떠 있는 김현은 확실히 무서운 모습이다.

어지간한 트럭 크기의 핏빛 손을 네 개나 부리고, 둥둥 떠서는 기이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으니......

그러나 불타는 도시, 연기를 내뿜는 폐허 앞에서 그런 기괴한 모습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생존이 우선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그 일념이 시민들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이게 했다.

김현은 관공서 앞 광장부터 복구를 해나갔다. 이 순간에도 외곽의 시민들이 죽어나가고 있으나 그걸 느끼는 김현의 마음은 담담하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아무리 강한 각성자라도 전부를 구할 수는 없다. 포기할 건 포기해야 한다. 그것이 김현이 22세기에서 배운 수많은 교훈 중 하나였다.

"손이 부족합니다, 사령관님!"

"곧 지원이 온다.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더 빨리 움직여라."

"예!"

김현은 혼자 수천 명 분을 했다.

시민들과 자경단원들이 하는 것보다 김현 혼자 해치우는 게 수십 배는 많았다. 중장비 수십 대를 동원해도 김현을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형! 저 왔어요!"

먼 곳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하늘에 검은 선이 그어지더니 김현의 앞에 바로 내리꽂힌 것. 서경태가 도착하자마자 커다란 가방을 던졌다.

그걸 받아든 김현.

무진의 표와 풍운의 표가 기분 좋게 웃음 짓고 있었다.

하늘에다가 던진다.

힘이 집중되면서, 정신력이 쑤셔 박히면서 안개 공간이 펼쳐졌다. 안개 공간은 삽시간에 모가디슈 전역을 뒤덮었다.

"어어?"

"저건 뭐지?"

시간이 없다. 김현은 확장과 연결을 동시에 시행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을 구조하는 중이니 능력이 실로 비범했다.

이윽고 완성된 안개 공간이 무너진 관공서 위에 내려앉는다. 그곳에 있던 잔해를 몽땅 분해해 버리고, 대신 무한한 공간이 자리를 차지했다.

부웅, 부웅.

안개 너머에서 힘찬 엔진 소리가 들렸다.

폐허와는 어울리지 않는, 인류의 문명을 상징하는 소음.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그 속에서 짙은 안개를 뚫고 최초의 거두가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에서 흔히 쓰는 초대형 트럭.

트레일러를 매달고 있었다. 트럭이 씨근덕대며 달려와 공터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트레일러가 열리고 긴급 구호품이 쏟아지자 시민들이 함성을 질렀다.

"살았다!"

"만세!"

"자자, 다들 비켜 주세요! 들어와야 할 게 많습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대형 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여기에 불도저, 지게차, 로더, 굴삭기, 덤프트럭 등 여러 중장비까지......

심지어 자원 봉사를 하러 온 각성자들도 눈에 띄었다.

주로 한국인들.

신필종과 박준의 모습도 보였다. 심지어 정윤식 경위도 나타났다. 아마도 김애경의 임시 승인을 받아 연차도를 통해 온 것 같은데 조금 기분이 괴상했다.

전생에서는 경술팔적이던 이들 아닌가? 그런 이들이 돕겠다고 나타났으니 그럴 수밖에.

"모두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어려울 때 돕고 살아야지요."

"저희도 김 회장님 덕을 많이 봤으니까요."

그 의도가 뻔히 보였지만 모른 척 했다. 세상사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얻어먹을 게 있어야 붙어 있는 법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합심하여 모가디슈의 생존자들을 구출해 나갔다.

구출 작전은 꼬박 하루가 넘게 이어졌다. 하룻밤을 새고, 다음날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생존자들을 모두 구출하는 것에 성공했다.

그렇게 구한 사람만 7만 명.

3만 명은 불귀의 객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김현은 고생한 이들과 함께 둘러앉아 조촐하게나마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어이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이때, 도망쳤던 소말리아 대통령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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