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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는 헌터사-116화 (116/200)

# 116

모가디슈 –3-

싸늘한 시선이 쏟아진다.

당연한 일.

구조 작업 내내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하루가 훌쩍 지난 다음에야 개선장군처럼 나타났으니 눈길이 고울 리 있을까.

더구나 무장 병력을 거느리고 나타난 참이다. 트럭에 탄 군인과 SUV에 탄 각성자들이 줄줄이 뒤를 따랐다. 바닥을 치는 민심을 직감한 듯 위세를 부려 위압해 보려는 것.

물론 그 대상이 김현은 아니다. 그걸 증거하듯 김현을 보자마자 차에서 내려서는 허리를 굽실거렸다.

"얼굴이 좋은데?"

불편한 심기를 반영한 듯 혀가 짧아졌다.

"어이쿠, 이게 다 슈...... 사령관님 덕분이지요. 사령관님 덕에 소말리아가 살았습니다."

"흠, 그래?"

김현은 대통령들 뒤에 버티고 선 군인들과 각성자들을 보았다.

훈련을 잘 받았는지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꾹 다문 입술에는 강철 같은 의지가 엿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입술을 비틀자 군인들의 손에서 총기가 일제히 떠난다. 소말리 각성자들도 마찬가지. 단 한순간에 무장해제 상태가 되었다.

"무, 무슨 짓입니까!"

"비상! 비상!"

대처는 빨랐으나 초월적인 폭력 앞에서는 부질없는 짓.

허공에 둥둥 뜬 총과 무기에 시선을 던진다.

그러자 핏빛 손이 수십 개도 넘게 튀어나왔다. 그것들이 총과 무기를 잡고는 단숨에 부러뜨린다.

와작!

과자 깨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대기를 때렸다.

손들이 총과 무기를 내던진다. 박살난 부품이 먼지처럼 콘크리트 바닥 위를 굴렀다. 대통령이 그걸 보고는 침을 삼켰다.

"사령관님...... 왜, 왜 이러십니까?"

"누가 무장하고 들어와도 된다고 했지?"

"예? 저는 소말리아 연방정부의 대통령으로서......"

"훗, 지옥 화염 앞에 시민들을 버리고 도망친 주제에 혀가 길어."

"사령관님! 그렇다면 제가 여기서 옥쇄했어야 했단 말입니까? 그럼 소말리아는 끝입니다, 끝!"

"당신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아. 당신 하나 죽는다고 소말리아가 어떻게 되지는 않지. 내가 늦게 왔으면, 그래서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죽었으면 소말리아가 끝장났겠지만. 안 그래?"

김현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든 잘 들렸다. 이곳 관공서 앞 광장은 물론 모가디슈 폐허 구석구석까지 창날처럼 뻗어나갔다.

자연히 소말리아 시민들의 시선에 적대감이 어렸다.

첫 문민계 대통령이자 반 테러 운동가 출신. 처음 당선 되었을 때 기대를 많이 받았다. 하지만 성혼 사태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안 그래도 지구 최악의 나라라 불리던 소말리아를 거의 멸망 직전으로 몰아넣었으니.

그걸 느낀 대통령이 주춤주춤 물러났다. 군인들이 눈치를 보며 맨몸으로 대통령을 감싼다.

거기다 대고 차갑게 일갈했다.

"무장은 허용하지 않는다. 모조리 이집트에 놔두고 들어와. 아, 보급품은 감사히 받지."

이미 자경단원들에게 영음을 보냈다. 뒤쪽 트럭에서 대통령이 가져온 보급품을 모조리 털라고.

군인들이 저항했지만 김현의 자경단은 전원 3성 각성자 이상이다. 무장도 충실하고 능력치도 훈련소에서 열심히 올린 상태. 가뿐히 제압하고는 보급품을 강탈하듯이 인도 받았다.

"어, 이거 이상한데?"

"40년 산 발렌타인 위스키?"

"이 시계 비싸 보이는데?"

"세상에! 파텍 필립이잖아!"

"손대지 마시오! 대통령 각하의 개인용품이오!"

"새끼야, 시민들 줄 보급품이지 개인용품이 여기에 어디 있어? 어느 정신 나간 새끼가 어제 하루 동안 20만 명이 넘게 죽은 도시에 사치품을 들고 와? 시민들 위로해줄 보급품이지, 안 그래?"

"그, 그것이......"

행렬에서 벌어진 작은 소요가 김현의 귀에 들렸다.

거리가 멀어서 대통령은 모르는 것 같지만 옆에 있던 사브리나는 다 듣고 있었다.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더니 팔뚝에서 칼날을 뽑아낸다.

"그만."

선연하게 느껴지는 살의를 제지하자 사브리나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사령관님, 저 자를 가만히 놔둘 겁니까? 소말리아의 종양이나 다름이 없는 자입니다."

"이런 기생충은 어디에나 있어. 잡아서 뭐하게? 여기서 죽이면 네 속은 통쾌하겠지만 순교자로 올려주는 일 밖에 안 된다."

"순교자요? 말도 안 됩니다! 이 자는 탐욕과 무능의 화신이에요!"

"작은 아가씨, 왜 그러는 거요?"

자기를 눈앞에 두고 설치니 불길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대통령이 불안해하며 물었다.

사브리나를 살짝 가로막으며 턱짓을 했다. 저 뒤로 가보라는 의미. 대통령이 슬금슬금 물러나 행렬의 중심으로 들어간다.

"어억! 이게 무슨 짓이오!"

당연히 자기 소지품을 봉인한 트럭이 파헤쳐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많기도 많았다.

한 눈에 보기에도 값비싼 명화, 조각, 여러 사치품까지......

주위를 둘러싼 시민들의 시선이 차츰 차가워진다. 방방 뛰던 대통령도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얼른 군인들을 대동하고는 김현에게 달려와 호소한다.

"사령관님, 이건 너무 한 것 아닙니까? 제가 이집트에서 얼마나 힘들게 빌어서 군대와 각성자, 보급품을 가지고 왔는데요! 제가 판단 실수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 물건까지 손을 대는 건 너무합니다!"

"당신 개인 물건이라고?"

"당연하지요!"

"소말리아 시민들의 고혈이 아니라?"

"그, 그것은...... 제가 소말리아를 위해 봉사하면서 받은 마땅한 소유물입니다!"

"그 말, 시민들 앞에서 해보시지."

대통령이 시민들을 보고는 어깨를 살짝 움츠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불씨만 당기면 활활 불탈 모양새. 여기서 더 말을 했다간 맞아 죽을지도 몰랐다.

군대? 각성자?

김현에게 압도당한 다음이다. 그간 뉴스로 들은 김현의 성향대로라면 자신이 시민들에게 압살당하는 걸 노릴지도 몰랐다. 그리고 모가디슈의 구원자임을 내세워 소말리아를 차지하는 거다.

'젠장,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애초에 지금 가져온 개인 소지품은 따로 쓸 데가 있어서 가져온 거다. 대통령은 흠흠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사령관님, 실은 제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

"할 말이 있다고?"

"예. 조용한 곳에서 둘이서만......"

"그럴 것 없어. 여기에서 하지."

김현은 여태 망토처럼 두르고 있던 천 자락을 휘둘렀다. 천이 지상에서 변형되며 새하얀 의자 두 개와 작은 탁자 하나가 생겼다.

거기 앉아서 다리를 꼬고 대통령을 쳐다보는 김현. 대통령의 푸짐한 볼 살이 푸들거렸다. 그러나 여기서 절대 갑은 김현. 터럭만큼이라도 심기를 건드릴 수 없으니 얌전히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할 말은?"

"실은 제가 가져온 것들 말입니다......"

"말해."

"사령관님께 드릴 선물이었습니다."

김현은 고개를 모로 꼬았다.

"선물? 그게 다?"

"예. 인류 최강의 각성자께서 친히 걸음을 하셨는데 그냥 넘길 수는 없지요."

그 말은 진실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김현에게 줄을 대려고 한 것. 이번 일을 계기로 지지율이 급락하는 것은 뻔할 뻔자니 땅도 떼어주고 선물도 줘서 자기 자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 고맙게 받지. 한스!"

"예, 사령관님."

"선물 모조리 털어서 감정해. 그 가치만큼 치즈 케이크 사서 여기로 가져오고."

"치즈 케이크요?"

"그래. 얼마나 많이 사올 수 있는지 보자고."

대통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건 완전히 자신을 망신 주겠다는 의도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치즈 케이크가 문자 그대로 산만큼 쌓일 터. 모가디슈의 시민들은 그걸 보고 대통령의 사치를 실감할 것이다.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쳤던 자의 치부가 저 정도였구나, 하고.

"너무 하십니다, 사령관님!"

"뭐가?"

"절 도와주시러 온 거 아니었습니까?"

"잘 들어."

김현은 살짝 몸을 기울였다. 목소리를 낮추지만 그 성량만큼은 줄어들지 않는다. 시민들이 집중하는 가운데 차가운 어조가 대통령을 할퀴었다.

"난 소말리아 연방정부 원수의 구원 요청을 받고 왔어. 그 원수가 뭐라고 했더라? 아, 소말리아를 살려달라고 했지. 그래서 왔고, 저 괴물을 제압했지."

한쪽을 가리키는 김현.

그 손가락이 저 앞에서 하루 넘게 원산폭격 중인 지옥 화염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까 알겠더라고. 지금 소말리아에는 저 괴물 새끼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이 하나 있어."

"그, 그......"

대통령이 말을 더듬었다.

직감적으로, 김현이 무엇을 말하는지 눈치 챈 까닭.

김현의 눈동자가 음험하게 빛났다.

"대통령, 당신이야. 당신이야말로 소말리아에게 가장 큰 위협이야."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소말리아를 위해 얼마나 봉사했는데!"

"그래서 소말리아가 이 꼴이 됐어? 괴물이 쳐들어오니까 사치품은 몽땅 챙겨서 도망가고? 당신이 제대로만 했으면, 각성자만 제대로 키웠으면 소말리아가 과연 이렇게 됐을까?"

"소말리아 상황이 어떤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외국인! 내정 간섭하지 말란 말이오!"

하여간 말이 궁하면 내정 간섭이니 뭐니 한다니까.

손을 뻗어 대통령의 목을 움켜쥐었다. 억세게 들어 올리자 대통령이 켁켁거리며 발버둥을 쳤다.

"나, 나는 미국 시민이오. 당신도 미국인이면 내게 이러지 말아야......"

미국인?

소말리아 대통령이면서 미국인이라고?

여태 가만히 지켜보던 서경태가 아는 척을 했다.

"들은 적이 있어요. 소말리아 대통령이 복수 국적자라고......"

"그래? 하지만 어쩌나. 나는 상관없는데. 난 미국 대통령이라도 필요하면 죽일 수 있는 사람이야."

"헉!"

주위의 미국인들이 헛바람을 들이킨다.

어쨌든 그냥 죽이는 건 사브리나에게 말했듯이 아쉽다. 김현이 앞으로 소말리아의 주권을 온전히 획득하려면 정당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퍽!

"커억!"

땅바닥에 메다꽂자 대통령이 죽는 소리를 냈다.

"왜 그래? 뼈도 안 부러졌는데."

"당신, 당신 진짜......"

대통령이 바닥을 구르며 원독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래, 그러라고.

악에 받쳐 사방을 들쑤셔 줘야지. 그래야 내가 움직일 곳이 넓어지거든.

"대통령님!"

"괜찮으십니까?"

군인들이 대통령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웠다. 대통령이 이를 갈다가 애써 머리를 숙인다.

"복구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시민 투표를 할 거다."

거기다 대고 말해주었다.

"모가디슈가 내 보호를 받고자 하면 기꺼이 그렇게 하지.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더 많다면 나 스스로 물러나겠다."

대통령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굴욕에 물든 눈동자가 영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끝내 야욕을 드러내는 거요?"

"야욕? 그렇다고 해두지."

"소말리아의 의식 있는 시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당신이 당신네 영지에서 벌인 일은 나도 알고 있소. 아름다운 전통을 모두 파괴하고, 저런 사악한 마녀에게 자경단장 직을 주었지. 양식 있는 자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을!"

"글쎄? 두고 보지. 그런데 그거 알지 모르겠다. 생존 욕구는 모든 욕구에 우선한다는 거."

투표 결과가 반대로 나오면?

그럼 김현이 더 볼 일은 없다. 즉각 화염 지옥을 데리고 철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무주공산이 된 해변 지역만 일부 차지하면 되겠지.

"어쨌든 그때 보자고. 내게 주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지금 사태를 야기한 작자들부터 심판할 테니까."

독재.

그것도 절대 왕정에 준하는.

아니, 거의 살아있는 신이나 다름이 없지. 김현도 지금 자기 영지에서는 그런 지위를 누리고 있으니.

대통령이 비칠비칠 물러났다. 짐이 싹 털린 트럭에 올라서는 마지막 발악을 한다.

"미국 연방정부와 UN에서 지금 일을 따질 거요!"

"그러던가."

김현에게 필요한 것은 군대. 난민들을 받아들이던 때부터 지금 일은 각오했다.

계급 사회로의 회귀?

개인의 무력이 국가를 넘어서는 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인류가 쌓아온 가치가 후퇴하는 것은 아쉽지만 생존을 위해서, 인류의 자강 독립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요량이었다.

"형님, 더 무서워진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지켜본 서경태의 감상이었다.

"그런 거 같지? 맞아."

그게 사실이다. 예전에도 쾌도난마하는 성격이었지만 조금 더 과격해졌다고 봐야지.

육체도 영혼도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법이니.

유령의 냉혹함, 흡혈귀의 잔인함......

그것을 모두 갖춘 게 김현이다. 아까 대통령은 물론 소말리아 측 각성자와 군인들을 모두 학살하지 않은 게 용하다고 봐야 했다.

복구 작업은 빠르게 진행된다.

김현은 모가디슈 시민 전체에 시민 투표 개최를 알렸다. 아울러 UN에도 상황을 설명하고 임시 선거 관리 위원회 파견을 요청했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투표 진행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미국.

고소장이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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