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17화 (117/200)

# 117

처단 –1-

펑! 펑펑!

플래쉬가 연속해서 터진다.

미국 워싱턴 소재 연방법원.

그 입구에서 뚱뚱한 흑인 남자가 서서 기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일입니다."

스스로 셔츠를 풀어 자기 목을 보여준다.

목에 멍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또다시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진다.

"소말리아의 연방정부 대통령으로서, 현재 소말리아가 이 지경이 된 것에 제 책임이 막중하다는 사실은 저 또한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 이렇게 사적인 폭행을 당할 정도의 일입니까? 국제법은 어디로 갔습니까? 시민을 보호하는 미국의 연방법은요? 저는 소말리아의 원수이자 미국의 시민으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합니다. 슈퍼 팀의 리더 김현을 이 시간부로 고소합니다. 슈퍼 김은 법정에 나와서 자신의 폭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김현은 TV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지금은 아침. 막 일어나서 아침을 먹는 중이다. TV를 보던 소말리아 인들이 욕설을 내뱉었다.

"저런 철면피 자식!"

"저딴 새끼가 인권 운동가라니...... 인권 운동가가 다 마리화나 피우고 천국 갔겠다!"

"애초에 뽑지를 말았어야 해."

"무슨 수로? 우리 [의이원] 이맘들께서 뽑으시는데."

"그 이맘이라는 놈들도 싹 다 도망갔다며. 쳐 죽일 놈들."

모가디슈는 대형 난민촌으로 변했다.

애초에 멀쩡한 건물이 없으니 당연한 노릇. 아예 잔해를 싹 다 밀어버렸다. 도시다운 모습을 되찾으려면 앞으로 몇 년은 족히 걸리겠지.

여기에 킬리 섬과 시리아, 아이티의 난민들도 합류했다. 김현이 보기엔 마뜩치 않지만 그래도 동병상련을 느끼는 것일까. 음식을 분배하고 천막을 치는 등 잡일을 거들고 있었다.

"사브리나."

"예, 사령관님."

"여기서도 자경단을 모집하겠다. 이번엔 네가 해봐라."

"예, 알겠습니다."

어린 소녀가 자경단장이라고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것에 불만 있는 자가 꽤 많아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도 강행할 작정이었다. 남녀 차별이 유독 심한 이슬람 문화권이니 거기서부터 시작하려는 것.

"사령관님, 방금 연방법원에서 특급 배송된 서류입니다."

막 보급품을 이끌고 도착한 한스가 다가온다. 힐끗 보니 큼직한 서류 봉투가 들려 있었다.

"고소장입니까?"

"예."

한스가 켜져 있는 TV로 시선을 던지며 대답했다.

봉인을 뜯고 읽어본다.

별 내용은 없었다. 고소가 들어왔고 조만간 재판이 열린다는 정도. 변호사 선임 어쩌고 하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는 미리 알아두었습니다. 경력이 20년 정도 되는 국제 변호사인데 이런 정치적인 의미가 큰 사건에 대해서는 베테랑......"

"필요 없습니다."

"예?"

"변호사 선임하지 마세요. 이번 고소, 무대응합니다."

"하지만 사령관님, 그러면 손해 보십니다. 법원 측에서 더 강력하게 선고하려고 할 겁니다."

"흠......"

김현은 고개를 모로 꼬아 한스를 보았다. 창백한 얼굴이 타오르는 횃불 빛에 비쳐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목덜미를 물어뜯을 것 같은, 음험한 포식자의 냄새.

한스는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치며 물러났다.

그걸 보고 김현이 빙긋이 웃는다. 자기 앞의 앉은뱅이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권유했다.

"대답하기 전에 한 가지 묻죠. 한스 씨는 지금 일에 만족합니까?"

"네? 아, 당연하지요! 처지 어려운 분들을 돕는 일 아닙니까?"

"단지 그게 다는 아닐 건데요."

"하하, 역시 사령관님 눈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렇죠. 회장님께서 연봉을 많이 주셔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동지이자 동료인 한철군만큼은 아니지만 한스 또한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연봉을 받는다.

아무리 3성 판독 계열 각성자라 해도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이 정도 연봉을 받을까. 반 년 전이라면 모를까, 요즘에는 3성 각성자가 썩어 나는데.

"그럼 묻죠. 제가 미국과 결별해도 절 따라올 생각이 있습니까?"

"예에?"

한스가 눈을 크게 뜬다.

주변에 있던 서경태나 피터, 에일리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얼굴이었다. 이미 귀띔을 해주었고, 피터나 에일리는 미국이라는 국가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니.

그 기색에 한스도 빠르게 진정했다. 이내 신중한 얼굴이 되더니, 천천히 머리를 끄덕인다.

"사령관님께서 떠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혹시,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십니까? 그러기에는 미국과의 관계가 돈독하신데요......"

"저도 굳이 전쟁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돌아가는 걸 보면 한바탕 분탕질은 해야 할 것 같네요."

"으음, 전 이미 사령관님께 고용된 몸입니다. 사령관님 결정이 무엇이든 따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이지만 꿀꺽 삼켜 버린다.

제법 눈치가 빠른 인물.

김현이 미국과의 결별을 언급한 것만으로도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일지 계산을 끝낸 것이다. 무엇이 자기한테 더 이득이 될 것인지도.

'가족들을 이주해야겠다.'

설마하니 전면전 수준까지 가서 가족들이 위험해지진 않겠지만, 최근 미국 내에서 대두하는 미국 우월주의 각성자들이 테러를 할 수도 있으니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결별하려고요? 어차피 기반도 다 미국에 있잖아요."

"시설 다 비웠잖아. 이제 미국에 있는 건 없어. 무진의 표랑 풍운의 표만 거둬들이면 끝이야."

"네? 백혈탑이 여전히 센트럴 파크에 있는데요?"

피터의 지적에 말없이 씨익 웃어 보인다.

에일리가 설마 하는 얼굴로 김현을 주시했다.

"백혈탑 그거, 움직일 수 있어요?"

"오 마이 갓!"

비로소 탄성을 지르는 피터.

"백혈탑을 모가디슈로 옮겨올 거야. 백혈탑 내부에 빈 공간이 많은 건 알지? 거기에 농작물도 심고 공장도 만들 생각이야."

정확한 명칭은 이차원 농장, 이차원 공장이라고 한다.

인류 저항군이 극한으로 발전시켰던 기술 중 하나.

외계종의 탐색에서 숨어서 식량과 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만들었던 시설이었다. 이거라면, 그리고 백혈탑이 있다면 40만이 아니라 100만도 먹여 살릴 수 있다.

혼력 중독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정화 장치를 잘 만들면 된다. 호흡으로 흡수하는 혼력은 어쩔 수 없으나 구강 섭취하는 혼력은 미리 인류에 맞는 형태로 바꾸면 끝.

그러면 육체가 혼력에 친화적으로 바뀌어서, 훗날 성혼을 각성하기 더 쉬워지는 이점도 있다.

"미국이 싫어하겠습니다."

"그간 절 쓴 값이라고 생각하라고 하죠."

현재의 미국은 원 역사에서보다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당장 김현이 합류한 뒤로 시민 희생을 획기적으로 줄였으니까. 각성자 전력도 그렇다. 원 역사와 단순 비교를 하자면 100배 이상으로 강해졌다고 봐야 한다. 5성 각성자도 벌써 수십 명이 되었고, 4성 각성자는 수백이 넘었으니.

원 역사에서는 3성 각성자밖에 없던 시점이다. 미국은, 아니 모든 인류가 김현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해도 모자라다.

윙윙, 윙윙윙윙.

갑작스레 스마트폰이 운다. 화면을 보니 때마침 연락하려고 했던 사람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슈퍼 김!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정보가 느리십니다. 벌써 며칠은 지났는데요."

[끄응, 그것이 이것저것 논의하느라...... 어쨌든 슈퍼 김이 소말리아 대통령을 폭행한 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이런, 허허......]

"안 그래도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었는데 잘 됐네요.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그러시겠습니까? 아, 뉴욕에서 오시는 거지요? 비행기를 보내겠습니다.]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날아가죠."

[허허...... 알겠습니다. 기다리지요.]

모가디슈에 펼쳐 놓은 전이 공간을 통해 뉴욕 펜트하우스로 향했다. 김애경이 거실 소파에 누워 달걀로 저글링을 하다가 김현을 쳐다본다.

"우리 독재자 나으리께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나라에는 어쩐 일이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방송에서 완전히 난리 났더라. 너 보고 철 지난 독재자, 시대의 찬탈자, 절대 황제라고 부르던데?"

"푸하하하!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유치하기도 하지.

김현은 배꼽을 쥐고 웃었다.

김애경이 콧잔등을 신경질적으로 실룩인다.

"웃지 마. 야, 지금 미국 언론들이 안 그래도 지금 대통령 싫어하는데 네가 실수하니까 아주 죽자고 달려드는 거잖아.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목을 졸라대면 어떻게 해?"

"누나가 거기 있었으면 더했을 걸. 멸망포 한 방 먹였을지도 몰라."

"설마."

"TV로 봐서는 체감 못해. 그 새끼 쓰레기이긴 했어. 적응 다 했으면 직접 가서 봐. 아, 부모님이랑 하은이도 데려가고."

"하은이는 왜?"

"미국 떠날 생각이야."

김애경만큼은 자세히 알아야 한다. 김현은 앞으로 자신의 구상과 계획을 설명했다.

한참을 듣다가 탄식하듯 한숨을 내쉰다.

"기자 놈들이 틀린 말 한 건 아니었네."

"뭐, 맞아."

"그냥 미국에 있으면서 군대를 양성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공격대 만들어서 말이야. 네가 말한 대로 회사 차려서 차원 무역해도 좋고."

"그건 너무 적고 절차도 복잡해. 생산력에도 문제가 크지. 미국처럼 복잡한 사회에서 정치 싸움, 시장 싸움을 하면서 군대를 키우는 것보단 3세계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야......"

"기반은 있어. 백혈탑에 모든 게 다 있지. 부족한 건 내가 만들어 뒀던 시설로 채웠고. 이제 달리기만 하면 돼. 1년, 1년만 지나도 5성 각성자 1천 명에 6성 각성자 수십은 갖출 거야."

여기에 알음알음 퍼지는 지식으로 지구 곳곳에서 6성 각성자가 탄생한다.

인류의 자강 독립이 거의 칠부 능선을 넘고 있었다.

김애경이 김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너...... 원래도 그랬지만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지?"

"이번에 서둘러서 외계 원정 갔다가 당한 거 잊지는 않았지? 천천히 해, 천천히. 또 무슨 탈이 날까 봐 무섭다."

"알았어. 나도 다시 생각해볼게. 그래도 이번 일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야."

"휴우, 좋아. 부모님이랑 하은이 데리고 소말리아 가 있을게."

"응. 백혈탑 곧 도착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줘. 아! 이 선생님도 데리고 가야지. 다른 사람들 가족들이랑."

"그래야겠다."

김현은 사라지는 김애경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손을 내려다본다.

창백한 피부, 굵은 핏줄이 꿈틀거리는 지극히 흡혈귀다운 손.

확실히 조급해졌다. 3세계의 독재자로서 군대를 구축한다는 구상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자꾸만 더 빨리 움직이게 된다.

지금도 느껴지는 육체와 영혼의 괴리 때문이겠지. 1억 분의 1도 없을 우연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뤄내긴 했으나 육체와 영혼 사이에는 작은 균열이 존재하고, 이 균열이 시시각각 커져가고 있으니.

'할 일을 하자.'

김현을 지탱하는 것은 두 가지.

사명감과 복수심.

그것이었다.

눈을 감으면 들린다.

최후의 시간에 스러져 가는 저항군의 비명소리. 그리고 폭발음과 저 멀리서 이글거리는 성혼의 작렬음......

눈을 떴을 때, 김현의 눈에서는 망설임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대로 워싱턴으로 이동.

역시 종이배를 활용한다. 이번에는 기동성만 따져 작게 만들었더니 속도가 빨랐다. 비행기를 탄 것보다 조금 느린 속도로 백악관에 도착했다.

"정지!"

4성 각성자 둘이 위압적으로 앞을 막아선다.

"잠시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대우한다고 적당히 빼먹더니?

김현은 두 각성자와 눈을 한 번씩 맞추었다. 그러자 각성자들이 몸을 움찔하고는 머리를 끄덕인다.

"이상 무!"

"이상 무!"

"어? 당신들, 무슨 소리야?"

지켜보던 경비병들이 제지했으나 각성자들은 딱딱한 얼굴로 이상 무만 소리친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지나치는 김현.

경비병이 비상을 울리려다 말고 멈칫했다.

'아, 몸수색 했지.'

그 사이 김현의 정신 공격이 두뇌를 훑고 지나간 것이다.

CCTV를 보던 이들이 눈을 비볐다. 분명히 몸수색을 해야 하는데 김현이 그냥 지나친 게 이상했기 때문.

"이봐, 방금 이거......"

"뭔가 이상해. 벨 눌러!"

늦었다.

유리 덮개를 열던 보안 직원이 손을 한 번 떨었다.

"왜 그래?"

"아, 먼지가 묻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유리 덮개를 손으로 쓸고는 그냥 제 자리에 앉아 버린다.

김현은 혼멸 성혼으로 백악관을 훑어보았다.

모두 경계 중이다.

극심하게.

단 한 명, 대통령 정도만 현재 경계 태세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비록 최근에 김현의 행보가 이상하긴 해도 자신을 어쩌지는 않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순진한 건가, 대범한 건가?'

물론 김현은 필요하다면 미국 대통령 정도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히 척을 진 것도 아닌데 그러기는 싫다. 자연스럽게 미국 대통령이 앉아 있는 벙커로 향했다.

"정지...... 아앗, 이상 무!"

"너희들 지금 뭐...... 아냐, 잘 하고 있다고."

정신 계열 성혼은 이래서 무섭다.

강한 적을 상대하기는 어려워도 약자를 상대하는 데 최적화된 계열 성혼.

더구나 김현에게는 변환 계열 최고봉인 혈왕과 혈마도 있으니......

그야말로 완전체.

적에게는 악몽, 아군에게는 최강의 조력자라 할 만 했다.

"오셨습니까?"

경비병이 자진해서 열어준 벙커 문으로 들어가자 대통령이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반면, 대통령 주위의 보좌관들은 유령 보는 듯한 창백한 얼굴로 김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당연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벙커 내의 모니터를 통해 김현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유유자적 활보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까.

"경비병들한테 정신 방어 헬멧이라도 지급하세요. 5성 각성자만 침입해도 털리겠습니다."

"하하, 5성 각성자가 어디 그리 흔합니까?"

"알렉산더나 닉스, 리아도 5성이 되었다던데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대통령의 얼굴에 갑갑하다는 표정이 스쳤다.

김현은 대통령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통령은 무신경한 얼굴이지만, 보좌관들은 노골적으로 안심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실 말씀이 있다고 하셨지요?"

"예. 전 곧 미국 시민권을 포기할 생각입니다."

"저, 저......"

"아니, 그리 많이 지원을 받아놓고는!"

당장에 성토가 쏟아진다.

김현이 쏘아보자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으나 불만스러운 기색은 여전했다.

"하긴, 한 가지 조건을 들어주신다면 시민권을 포기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요."

"뭡니까? 혹시 이번 재판에 도와달라는 거라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대통령이라고 해도 사법 기관에 개입할 수는 없어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합니다. 예전에 기억하십니까? 제 조카가 납치당했던 사건이요."

"아, 그야 당연히......"

"지금쯤은 조사가 끝났을 것으로 압니다. 범인, 누굽니까?"

대통령을 직시하며 묻는 김현.

까만 눈동자에서 감정을 읽을 수가 없다. 유리알 같은 눈이 머리 주위에서 일렁이는 빛의 흔적을 반사하며 기이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것이라고 볼 수 없는 눈.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돌렸다. 한편으로, 수개월 전 받았던 보고를 떠올리게 된다.

극비리에 보고 받았고, 일부러 파묻어 버렸던 그 이름들을.

김현은 여전히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다. 대통령의 이마에서 한 줄기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밝히면, 밝히면 어떻게 되는 거요?"

"생각하시는 대로 될 겁니다."

"그건 안 됩니다. 차라리 은밀하게......"

"아뇨. 전 그 이름을 듣는 즉시 쫓아가서 그 9명을 모두 죽일 겁니다. 공개적으로요."

맙소사!

대통령은 장탄식을 터뜨렸다.

김현이 이미 자기 머릿속을 읽은 모양이다. 그 아홉 명 중에는 자신의 측근도 있고 반대파도 있다. 그들이 죽는다면, 그것도 자신에게 이름을 들은 김현에게 공개적으로 죽는다면 결국 매장당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런 정치적 모험을 감수할 수는 없는 노릇.

어찌할 바 몰라 망설일 때, 김현이 유령처럼 다가와 오른손을 내밀었다.

악수.

엉겁결에 손을 잡고 흔들자 김현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예? 잠깐만! 슈퍼 김, 어딜 가는 겁니까? 우리 앉아서 얘기를 해봅시다! 제발!"

이미 늦었다.

김현이 유령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친 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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