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팔레스타인 전쟁 -1-
"전쟁이 났다고?"
"예, 사령관님."
김현은 멀거니 사브리나를 쳐다보았다.
전쟁이 났다. 그래서 뭐?
김현은 슈퍼맨이 아니다. 지구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다 김현이 처리할 수는 없었다. 이런 일은 UN에서 해결해야지 자신에게 가져와서 뭘 어쩐단 말인가. 막 7성으로 승급한 까닭에 몸을 추스르기도 힘든 판에.
사브리나가 김현의 눈치를 살피더니 별안간 무릎을 꿇는다.
"사령관님, 부디 죄 없는 아이들을 구해주십시오!"
"사브리나, 왜 그러는 거냐?"
"어제 하루에만 가자 지구에서 죽은 사람이 천 명이 넘습니다! 오늘은 또 서(西) 예루살렘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백 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다쳤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지옥입니다, 지옥!"
이야기를 들어보니 참 가관이었다.
전쟁이 벌어진 것은 바로 며칠 전. 김현 일행이 흰금 궁전을 향해 변형 트레일러를 타고 달려가던 시점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쟁이 전개되었다고 한다. 폭격 후 군대를 진입시키는 대신 각성자들을 투입한 것. 피해가 커진 것은 이 때문이었다.
각성자들이 인정사정 보지 않고 성혼을 투사했다. 심지어 재미 삼아 사람들을 학살하는 자도 있었다고.
'이런……'
원 역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얄궂게도 처음 일이 터진 곳도 팔레스타인의 가자 지구. 이 일은 훗날 중국 내전, 크림 반도 전쟁, IS의 대규모 테러 등으로 번진다.
'여기서 끊어줄 필요는 있지.'
외계종에 맞서 힘을 합쳐야 할 시기.
원 역사에서도 인간끼리의 전쟁으로 깎아먹은 전력이 얼마던가. 특히 민간인 학살은 도덕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실리를 위해서도 지양되어야 했다. 성혼은 인간의 영혼에서 비롯되고, 인구가 줄면 성혼 생산도 결국 줄어드니까.
성혼 농장? 그것도 결국은 지구 전체 인구에게 영향을 받는다. 지구 전체 인구가 줄면, 김현의 성혼 농장 생산 효율도 감소한다는 뜻.
그래도 덜컥 사브리나의 말을 들어주기는 좀 그렇다. 김현은 시큰둥한 얼굴로 툭, 하고 몇 마디를 던졌다.
"왜? 너도 이슬람이라고 팔레스타인을 동정하는 거냐?"
"아닙니다, 사령관님."
"그럼?"
"사령관님께 속한 이상 저에게 국가와 종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고 있으니 이리 간청 드립니다.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에서도 수백 명씩 죽었답니다! 부디 불쌍한 아이들을 구해주세요!"
사브리나가 꿇어앉은 채 머리를 조아린다. 그러다 안고 있던 타블릿 PC를 김현에게 바쳤다.
힐끗 보고는 태블릿 PC를 켜는 김현.
사진 수백 장이 저장되어 있었다.
살해당한 아이들. 시체가 되어 널브러진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장난하듯 학살하며 낄낄대는 각성자들의 동영상까지.
현지에 파견되어 있는 기자들이, 그리고 정보원들이 확보하여 보낸 증거였다. 원 역사와 겹쳐지는 듯한 그 모습에, 김현도 잠깐 동안 현기증을 느꼈다.
"팔레스타인만 이런 게 아니라고?"
"예. 이스라엘이 그런 것처럼 팔레스타인도 각성자들을 파견해 보복했습니다. 가자 지구와 유대인 정착촌에는 오직 시체들만 쌓여 있다고 합니다. 부디 사령관님께서 이 지옥을 종식시켜 주십시오!"
고개를 든 사브리나의 눈에 신뢰와 애원이 가득하다.
마치 구세주를 보는 듯한 표정.
김현은 픽 웃었다.
"나는 구세주가 아니야. 영웅도 아니지."
"사령관님, 사령관님의 힘이라면……"
"그래, 내 힘이라면 가능해. 하지만 세계 전역을 다 돌면서 모두를 지키는 건 불가능하지. 비슷한 일이 어디서든 수백 번은 발생할 텐데 그걸 다 어떻게 해?"
"하지만……"
"네가 해라."
"네?"
"나한테 기대지 말고, 네가 5성을 넘어 6성이 되어서 평화유지군 대장을 하란 말이다."
때는 무르익었다. 김현은 준비해 놓았던 5성 성혼을 내밀었다.
사브리나의 합치 성혼은 칼날 팔뚝.
지금까지 추가로 곤충의 힘과 겹눈 시야를 각성한 참이다.
이 셋의 조합은 당왕(螳王), 즉 사마귀왕.
사브리나가 경건한 태도로 성혼을 받아들었다. 그걸 한꺼번에 꿀꺽 삼키더니 거품을 물고 경련하기 시작한다.
'자질이 참 좋아.'
아무리 김현이 이끌어 줬다고 해도 벌써 5성에 도달했으니.
몇 달 뒤에는 6성도 가능하겠지. 그때쯤 되면 지금 추세로 보아 7성 등급이 몇 명은 나올 것 같지만.
잠시 기다렸다. 한참 바닥을 구르던 사브리나가 어느덧 정신을 차렸다.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고는 매무새를 정돈하고 다시 꿇어앉는다.
"5성 등급이 된 걸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럼 제가 팔레스타인에 가서 양쪽을 중재해도 될까요?"
"아니. 지금 네 능력으로는 부족하지. 아까 보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쪽에 5성 등급 몇 명씩 있는 것 같던데?"
"예……"
5성 성혼을 경매로 팔아서 막대한 이득을 챙기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5성 각성자가 곳곳에 출현하는 시기가 되었다.
"나도 네 생각에 어느 정도 공감은 한다.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지만, 선이라는 게 필요한 법이거든."
"그렇지요?"
살짝 동의를 해주자 사브리나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이번 일은 내 방식대로 처리할 거다. 너도 내가 하는 걸 잘 봐둬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네 무력이야. 네가 6성 등급만 됐어도 지금처럼 날 찾아올 필요도 없었겠지. 너와 뜻을 같이 하는 동지 십여 명만 더 있었어도 마찬가지고."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
"지금은 그렇지만 언제까지 멈춰 있을 생각은 없겠지? 열심히 해라. 힘도 키우고 세력도 키우고. 그래야 네 이상을 세상에 관철할 수 있어."
"혹시라도 사령관님의 뜻과 대치될까 두렵습니다."
"그럴 때는 네가 접어야지, 안 그래?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평소에 잘 가늠해보고."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사브리나의 충성심은 진짜다. 사브리나는 다소곳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키는 김현.
백혈탑의 가족 전용 거실로 들어갔다. 마침 가족들끼리 모여 다과를 즐기는 중이었다.
하은이가 앙앙거렸다.
"TV 볼래, TV!"
"아, 글쎄 저녁에 보자니까 그러니."
"싫어, 싫어!"
오랜만에 보는 평화로운 광경이다.
스윽 들어가서 소파에 앉자 하은이가 반색을 했다.
"삼촌!"
쪼르르 달려와 안기더니 또 졸라댄다.
"나 TV 볼래, TV!"
"TV는 왜? 항상 보는 거잖아."
"어제부터 엄청 재미있는 거 한단 말이야!"
"재미있는 거? 애니메이션이라도 틀었어?"
"아니 아니, 뉴스 봤지, 뉴스!"
"뉴스?"
"어, 그게 자꾸 CNN이랑 알자지라를 보려고 해서 말이야."
"그게 왜? 아…… 어차피 모자이크는 해서 나오지 않아?"
"모자이크해도 장난 아니야, 지금."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 지구에서 불어 닥친 폭풍은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여론전.
서방의 방송국은 이스라엘의 참담한 모습을 주로 보도한다. 아랍의 방송국은 그 반대로 팔레스타인에 카메라를 비추었다. 누가 더 낫니, 누가 더 잔혹하니 싸우고 있지만 김현이 보기엔 둘이 거기서 거기였다.
잔인한 장면이 자꾸 나오니 TV 채널을 돌린 모양. 하은이는 유명계의 영향을 받은 까닭에 잔인한 장면에서 재미를 느끼고.
가만히 놔두면 사이코패스 되겠는데?
김현은 가족 중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말을 꺼냈다.
"강아지랑 고양이 키우자."
"어?"
"갑자기 무슨 말이야?"
"하은이 말이야. 병원에서 겪은 일 때문에 사고가 또래 애들이랑 조금은 달라. 동물 키우면 도움이 될 거야. 어때?"
"와, 삼촌 최고! 강아지 키울래, 강아지!"
하은이가 반색하며 방방 뛰었다.
이질적인 외모, 사령관의 조카라는 신분 때문에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
말상대라고는 바쁜 김현과 김애경을 대신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밖에 없었다. 밝고 건강하게 자라고는 있으나 속으로는 많이 외로울 것이다. 아무리 성혼의 영향으로 정신이 자랐다고는 해도 애는 애니까.
"알았어. 내가 한 번 알아볼게."
"아, 그리고 나 지금 가자 지구에 갈 생각이야."
"웬일이야? 신경도 안 쓸 줄 알았는데. 넌 그런 거 싫어하잖아."
정확히 말하면 정치와 관련되는 걸 싫어하지. 대한민국과 미국에서 당한 게 있으니.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두고만 보기에는 너무 많이 갔어. 우리 하은이만 해도 악영향을 받고 있잖아?"
"그건 그래."
"괜히 위험한 데 가는 거 아닌지 싶다."
어머니가 걱정을 했지만 김현과 김애경 모두 살짝 웃을 뿐이다. 공표는 하지 않았으나 김현이 7성 등급이 된 이상, 지구에서 김현을 어쩌기란 불가능했으니.
"그 사람들은 어쩌고? 내일 시작하기로 했잖아."
"며칠이면 돼."
"그렇게 빨리? 너 또 깽판 치려고 그러지?"
"깽판에는 깽판, 살인에는 살인이지. 또, 어차피 백혈탑에서 시술할 거니까. 안개 공간 재료만 가져가면 되지."
"삼촌, 삼촌! 나도 따라갈래!"
"어허, 넌 얌전히 엄마 말 잘 듣고 있어. 삼촌이 갔다 오면서 강아지 귀여운 녀석으로 데려올게."
"진짜? 약속이다!"
"그래, 약속."
김현이 팔레스타인으로 향한다는 사실은 이미 모가디슈 소재 기자들을 통해 알렸다.
동행하는 자는 두 명. 이세희와 서경태, 에일리.
이세희는 의료 봉사를 위해 가는 거였고 서경태와 에일리는 민간인 학살하는 놈들을 그냥은 못 보겠다고 해서 따라왔다.
"형, 어떻게 하려고?"
"다 작살을 내야지."
최소한 민간인 학살은 안 된다.
그런 공감대가 여기 있는 동료만이 아니라 모가디슈에 남은 일행에게도 형성되어 있었다.
소말리아에서 북서쪽으로 한참을 가야 나오는 이스라엘. 거기서도 서쪽에 붙은 가자 지구.
전쟁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난 참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 보니 가자 지구 전체, 아니 가자 지구만이 아니라 그 인근 유대인 정착촌에도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심각하네요."
김현도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죽음, 그 강렬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죽음과 공허의 혼종이 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삶이 풍성해야 할 곳마다 죽음의 힘이 넘쳐났다.
"쯧……"
힘이 차오르는 것을 느끼자 되레 분기가 치솟는다. 언론에서는 수천 명 단위라더니 실은 그게 아니었다. 각성자들이 학살한 수는 그보다 몇 배는 되었다.
겨우 며칠 사이에 1만 명이 넘게 죽다니? 그것도 대부분이 민간인인데?
여기 오길 확실히 잘했다.
"어디로 가죠?"
"가자 시티 북쪽, 난민 캠프로 갑시다. 거기서 각성자들이 느껴집니다."
아직도 수백 킬로미터 밖. 7성 등급 각성자는 이 정도는 감지할 수가 있다. 특히 김현의 두 속성 중 하나, 죽음이 실시간으로 피어나고 있다면.
마음이 급해지지만 억눌러 참는다. 대신 종이비행기에 혼력을 더욱 강하게 투사했다. 종이비행기가 재차 변형되며 더욱 빠르게 가자 지구를 향해 비행했다.
특이한 형태의 비행기이니 멀리서도 잘 보인다. 접근함에 따라 죽음이 피어오르는 속도가 점차 감소했다.
때를 맞추어 가자 지구에 파견된 기자들이 난민 캠프로 모여든다. 팔레스타인 소속의 각성자들도 마찬가지. 학살 상황이 진정되면서 대치 국면으로 돌아갔다.
'도망가지 않네?'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튈 줄 알았더니 의외.
슬쩍 놈들을 확인하고는 그 이유를 알아냈다.
세 명.
5성 각성자인 척 의뭉을 떠는 각성자들이 있었다.
실은 6성 각성자.
게다가 유명계 성향.
지구에서 퇴출당하고 이를 갈던 유명계가 또다시 암수를 뻗어온 것이다.
워낙에 철저하게 위장하고 있어서 김현이 6성 등급에 머물러 있었으면 이번 기습에 크게 손해를 봤겠지.
'제법이야.'
아직 차원의 벽은 6성 외계종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더욱이 세 명이나 탈각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자원을 소모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것은 일회성. 향후 지구를 식민지로 삼는 것조차 포기하고 김현에게만 집중한 선택. 아주 진귀한 바늘을 만들어 차원의 벽에 조그마한 생채기를 냈다고 할까.
이번 일을 기회로 유명계를 완전히 탈락시키는 것도 가능하겠다.
놈들을 확인하는 사이 가자 지구 상공에 도착했다.
아주 가관이다.
사방이 불타는 건물 천지. 어딜 보아도 시체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피를 흘리는 어린아이를 안고 우는 여인이 보이고, 쓰러진 아비 옆에서 넋을 놓은 소녀가 눈에 밟혔다.
종이비행기가 천천히 내려간다.
먼지를 뒤집어 쓴 기자들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천 자락을 거두고 땅에 내려앉자 한 덩치 큰 각성자가 침을 퉤 하고 뱉었다.
"멀리서 여기까진 어쩐 일이쇼?"
"당신들, 너무 갔어. 최소한 민간인은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흥, 당신이 뭔데?"
건들거리는 말투, 이죽거리는 표정.
본 적이 있는 얼굴이다.
비행기 위에서 확인했던 세 유명계 각성자 중 하나.
또한 사브리나가 건네준 태블릿 PC에 저장된 동영상 중, 어린아이들을 학살하며 웃고 있던 자 중 하나이기도 했다.
이걸 참아야 해?
말없이 왼손을 한 번 뻗었다.
촤악!
이죽거리던 각성자의 머리가 석류처럼 으깨졌다.
피와 함께 뇌수가 뿌려진다.
공기가 얼어붙었다.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경악에 차서는 김현을 쳐다본다.
비웃어 주었다.
"뭐긴. 너흴 단매에 쳐 죽일 수 있는 분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