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팔레스타인 전쟁 -3-
6성 성혼의 삼중주.
칼날 세 개가 김현이 있던 자리를 난자하는 것 같다. 가슴 떨리는 기세가 해일처럼 사방을 덮쳤다.
서경태의 몸이 거뭇하게 변한다. 두고만 볼 수 없으니 당장 어둠 질주를 써서 김현을 구하려는 것.
"관둬."
청량한 목소리가 서경태를 제지했다.
"저 정도로는 김현 님을 어쩌지 못해."
"그, 그렇겠죠?"
"당연하지."
환자를 돌보던 이세희가 신뢰 가득한 눈으로 김현을 쳐다본다.
세 개의 빛 무리는 미친 듯이 김현이 있던 자리를 두드렸다. 그걸 보고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환호를 지른다.
"좋아, 잘 한다!"
"꼴좋다! 이교도 새끼!"
"죽여 버려!"
"와, 저 인간들 언제 이런 걸 숨기고 있었대?"
영적인 힘이 아니라 물리적인 힘이었다면 산도 쪼갤 위력. 같은 편은 이렇게 웃고 있었지만 팔레스타인 측은 달랐다. 나라 잃은 듯 절망적인 얼굴로 김현 쪽을 보고 있었다.
"알라시어……"
"희망이 이렇게 지다니!"
"정녕 저희를 버리시나이까!"
몸을 수습하며 떠나던 주민들도 두려운 기색으로 빛이 난무하는 지점을 힐끔거린다. 김현이 죽고, 팔레스타인 각성자들이 패퇴하고 나면 또다시 자기들 차례가 돌아올 테니.
"후후후……"
양껏 성혼을 퍼부운 요나한이 낮은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호호호.]
하얀색과 회색의 불덩이 같은 것이 요나한 주변을 맴돌며 똑같이 음침한 소리를 낸다.
이것은 완전히 유령, 그 자체.
서경태가 이를 갈았다.
"저 새끼들, 아주 혼을 팔아 넘겼고만?"
"후후후, 혼을 팔다니? 우린 단지 정당한 거래를 했다. 이 힘으로 지상에 신의 나라를 건국할 것이다!"
다 끝났다고 생각한 걸까? 요나한이 목젖이 보이도록 크게 웃어젖혔다. 유령 둘도 재차 음험한 웃음을 터뜨린다.
그러나 통쾌하게 울려퍼지던 그들의 웃음은 곧 그치고야 만다. 그들의 뒤, 조금 전만 해도 그들이 공격을 퍼부운 곳에서 짧은 비수 같은 목소리가 날아들었기 때문.
"유명계 유령들 주제에 신의 나라를 운운하다니, 말이 안 되지 않아?"
"형!"
김현이었다.
걷히는 먼지 사이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전신이 약간 검정색이었으나 그마저도 원래대로 돌아오면서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자랑했다.
요나한의 눈이 거세게 흔들리고, 옆의 유령들도 한 차례 크게 깜빡였다.
[네놈…… 어째서 죽지 않은 거지?]
"글쎄? 너희들 공격이 너무 약해서?"
[놈!]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새하얀 광선이 날아간다.
인지하는 순간 적을 관통하는 순수한 영력 덩어리. 유명계의 최상급 성혼 중에서도 원거리 타격 능력은 수위를 다투는 영왕 성혼이다.
그래봐야 김현에게는 안 통한다. 검게 물든 손을 천천히 내민다. 막 어지럽게 분화하여 수십 다발로 김현을 찢으려던 광선이 빨려들듯 김현의 손에 잡힌다. 김현이 흉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꽉 쥐자, 팍 하고 몽땅 터져 버렸다.
[이 무슨……]
이어지는 회색 파장. 흐느적거리며 공기 중에 녹아들어 김현의 뇌를 노린다.
김현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게 쓰는 게 아니야."
회색빛 성혼, 즉 혼왕을 쓴 유령을 주시한다.
언듯 두 눈에서 맑은 묵빛이 빛난 것 같았다.
[크아악!]
유령이 비명을 지르며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정신 공격에는 정신 공격. 약자를 학살하는 것에는 최강일지 몰라도 같은 계열 각성자 상대로는 최악의 선택이다.
요나한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김현을 보다가 무언가 깨달은 얼굴을 했다.
"설마, 7성?"
입 꼬리를 비틀며 웃는 김현.
요나한이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7성이라니, 말도 안 돼!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너희는 몰라도 나는 가능하지. 나는 신께서 선택한 도살자니까."
"웃기지도 않는……"
"안 웃겨? 나는 웃긴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요나한을 향해서, 또한 그 옆에 있는 두 유령을 향해서.
글러먹었다는 것을 안 그들이 도망치려고 한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영체를 솟구쳐 튀어나가려고 했는데 기이하게도 영체가 말을 안 들었기 때문이다.
흡사 육체라도 있어 신경계가 장악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간단한 거야. 혼왕의 응용이지. 어때, 쓸 만하지?"
"비, 빌어먹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라져라 악마야!"
"그거 주기도문이지? 우리 어머니가 카톨릭 신자라서 조금 듣기가 그러네. 너희 같은 반 성경적 살인자 놈들을 처리하라고 신께서 날 선택하신 것 같아."
김현이 발하는 주박이 셋을 이미 꽁꽁 묶어 버렸다. 두 유령은 완벽히 제압당했고 요나한도 몸을 뒤틀고는 있으나 뭘 어쩌지는 못했다.
천천히 손을 치켜드는 김현.
"잠깐만!"
이스라엘 각성자 하나가 용기 있게 소리쳤다.
김현이 돌아보자 이스라엘 각성자가 침을 삼키고는 소리쳤다.
"이미 승부는 났어요! 여기서 그만 두죠! 저희가 물러날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안 그래 요나한?"
"아, 졌습니다! 우리가 졌어요!"
[졌다.]
[항복.]
함께 민간인 학살을 하면서 영혼이라도 통한 걸까? 척 하니 착 하고 알아듣는다.
애초부터 그랬지. 죽거나 항복하면 끝이라고.
하지만 말이다, 그걸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김현이 자기 입으로 그랬잖아?
김현의 입가에 맺힌 비소는 떠날 줄을 몰랐다.
"거절한다."
"뭐, 뭐라고요?"
"이건 결투이기 이전에 전쟁이다. 예의 있게 도전을 했다면 항복을 받아들였겠지만, 유명계의 사주를 받아서 날 기습해 죽이려고 했으니 나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겠다."
"그, 그래도……"
"그딴 소리를 할 거면 처음부터 정체를 드러내고 덤볐어야지."
"다, 당신도 자신이 7성이라는 건 숨겼잖아요!"
"그게 대거리가 된다고 생각해? 이제 보니 머리가 빈 년이었네. 말 섞은 내가 등신이지."
"이이익!"
요나한의 코앞에 닿는다.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쉬는 호흡이 코에 와 닿을 정도.
눈이 마주친다.
절망 섞인, 그리고 애원하는 눈동자.
요나한이 힘겹게 입을 뗀다.
"사, 살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렇게 애원할 때 넌 어떻게 했냐는 등의 진부한 질타는 하지 않도록 하자.
그것 말고도 이 셋이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유명계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 그래서 김현의 적이 되었다는 점.
살려 보내봐야 다시 앞을 가로막을 게 뻔한데 뭐 하러 자비를 베풀까?
손을 이마에다가 얹는다. 거뭇한 기운이 스르륵 요나한의 뇌로 스며든다. 그리하여 그 안에 있을 영혼석을 완벽히 장악했다.
"아……"
다가오는 죽음을 느낀 요나한이 비탄어린 신음을 흘렸다.
조곤조곤 말해준다.
"요나한, 흡혈귀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형벌이 뭔지 아나?"
"으으……"
"피 주머니 처형이야. 봉인해놓고 혈정을 생산하는 가축으로 쓰는 형벌이지. 그럼 유령은 뭐라고 생각해? 유령이 된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모르지?"
"크흐, 살려……"
"바로 성혼 추출이다. 성혼을 추출하면 유령은 모든 힘을 빼앗겨서 일개 빙의귀로 전락하거든. 그러면 억겁의 세월 동안 뭇 차원계를 떠돌면서 빙의할 육체를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지. 운 좋게 빙의하면 잠깐의 안식을 얻고 성혼을 얻어 승급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요나한이 부들부들 떤다. 거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육체만이 아니다. 뇌 속에 숨은 영체도 발작을 하고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어떻게든 달아나려고 하는 것.
[캬아악!]
[크악!]
옆의 두 유령이 발악하며 성혼을 쏜다. 그러나 발현하는 즉시 허공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김현의 공허령 성혼이 그들의 성혼 발현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
손에다가 천천히 힘을 준다. 검은 힘이 짙어졌다. 죽음의 힘이 극도로 끌어올려지며 흡입력을 발휘했다. 그에 따라 요나한의 영체에서 성혼이 점차 분리된다.
성혼이야말로 유명계 유령들의 근간. 요나한이 절규한다. 귀곡성이 길게 아로새겨진다. 영혼을 뒤흔드는 처절한 음색에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깃든다.
결국 뜯어져 나오는 성혼.
[명왕(유명, 6★)]
매우 강력하고 극도로 희귀한 성혼이지만 김현에게는 짧은 감흥만을 일으킬 뿐이다.
'하은이 선물로 줘야지.'
이런 생각을 하며 요나한을 슬쩍 밀었다.
털썩!
죽은지 오래된 육체가 뒤로 넘어간다. 김현의 눈에 언뜻, 희끄므레한 유령이 땅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 보였다.
빙의귀.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다. 어디 으슥한 흉가나 폐 정신병원 같은 곳에 숨어들지 않는 한 지구에서는 생존하기도 힘드니까.
"요나한!"
"안 돼!"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목놓아 소리친다.
모조리 무시.
두 유령에게서도 성혼을 추출했다. 둘 다 모든 힘과 위세를 상실하고 빙의귀로 전락하여 땅 밑으로 도망쳤다.
"이이, 이이이……"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죽일 듯이 김현을 노려본다.
김현 일행을 빼고는 지구에서 처음 나타난 6성 각성자. 어쩌면 천년왕국의 초석을 다질 수도 있었을 자를 죽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김현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스라엘 각성자들을 보며 턱짓을 하며 물었다.
"그래, 더 해볼까?"
슬슬 눈치를 보는 각성자들.
자신들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각성자들을 끌고 와도 상대가 되지 않으리라는 점을 깨달았으니까.
"어디 두고 보자!"
"신께서 널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정말이지, 아까 그리 된통 당해놓고도 이리 함부로 입을 놀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오른손을 내밀어 까딱까딱 손짓을 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막 몸을 날리던 각성자들의 움직임이 덜커덕 멈춘다. 흡사 공간에다가 못을 박아 버린 것 같다.
"뭐 하러 나중에 두고 봐? 지금 한 번씩 보고 가지."
"다, 당신……"
"이번에는 경고로 끝내지. 다음에는 이렇게 안 끝날 줄 알아."
허공에다가 손가락을 주욱 그었다.
각성자들이 비명을 지른다.
검은 선이 그어지며 코를 한 번씩 베고 지나간 까닭. 이스라엘 각성자 전원의 콧등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칼로 도려낸 듯한, 거무죽죽하게 죽어 흉측한 상처.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굴욕이라는 표정을 짓고는 물러났다.
"그냥 가게? 인사는 하고 가."
"으득…… 안녕히 계십시오, 김 사령관."
"오냐. 살펴 가라."
"크흑,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급히 자리를 피했다. 비 맞은 개 같은 처량한 꼬락서니에 팔레스타인 측에서 왁 하고 웃음이 터진다.
아스라이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에나힘! 치료 부탁해."
"어…… 안 먹히는데?"
"뭐? 어째서?"
"제길! 재생이 안 돼! 저 자식이 뭔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해!"
"빌어먹을! 지옥에나 떨어질 악마 새끼!"
욕을 하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관대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없는 데선 나랏님 욕도 한다고 했으니.
팔레스타인 각성자들이 다가와 정중히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덕분에 소중한 인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흠, 그래? 난 당신들도 안 좋게 보는데."
"예?"
"이거."
태블릿 PC를 꺼내 던진다. 그곳에는 바로 눈앞에 있는 팔레스타인 각성자가 유대인 정착촌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 사령관님, 이건……"
급히 변명을 하려고 하지만 무시.
손가락을 들어 코를 쿡 찔렀다.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민간인 학살은 최후의 선이야.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그건 어디까지나 알라의 영……"
"으흠! 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확실히 민간인까지 피해가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다 저희 불찰입니다."
한 각성자가 대꾸하려 하자 늙수그레한 각성자가 헛기침을 해서 막는다. 이스라엘 각성자들이 당하는 걸 보면서 배우는 게 없지는 않았던 모양.
그들을 굽어보며 선언했다.
"이 시간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을 엄금한다. 또다시 불행한 일이 벌어질 경우 국가와 종교를 불문하고 내 분노를 맛봐야 할 것이다."
말로만 떠들지 않았다.
가자 시티 옆의 난민 캠프만 아니라 가자 지구 전체, 심지어 저 멀리 동쪽의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건 정말이지 가관도 이런 가관이 따로 없다. 난민 캠프가 가장 심하다 뿐이지 어디서든 각성자들이 분탕질을 치는 걸 흔히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
김현이 직접 수십여 명을 죽이고 나자 한결 진정된다. 일단은 서로의 권역으로 철수하여 눈치만 살폈다.
오로지 주먹 하나로 이뤄낸 평화.
작은 깡패 둘이 큰 깡패에게 된통 당한 모양새다.
여기서 그치면 안 되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에 초청장을 보냈다. 중재자 역할을 할 UN과 교황청, 여러 강대국, 그리고 세계의 유력 방송국들에게도.
그리하여 2018년의 크리스마스, 예루살렘에서 어떤 회담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