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44화 (144/200)

# 144

세계수의 종언 –3-

김현은 씨앗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자신의 내부.

정확히 말하면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읽는 중이었다.

[작은 세계구나.]

굳이 따지자면 지구의 절반 크기 정도.

세계의 이름은 엘페리아. 한때는 대략 1000그루의 세계수가 있으며, 세계수마다 백만 명 가량 되는 숲 엘프들이 거주했다고. 지금은 그 1/10로 줄었고, 모조리 유령 곰팡이 신세가 되었지만.

현재 살아남은 세계수는 122그루. 아니, 117그루라고 했다. 5그루는 인간 각성자에 의해 불타 사라졌다고.

이 모두가 엘프 여왕이 김현에게 남긴 정보였다.

"성혼이 남았네요."

씨앗이 있던 곳 바로 옆.

영롱한 빛을 발하는 성혼 세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세계수(7★, 요정)]

[불멸(7★, 거신)]

[영왕(7★, 유명)]

7성 성혼……

불현듯 어떤 추리가 떠올랐다.

사실 이렇게 세계수가 불타고 성혼과 씨앗을 강탈당하는 건 이 세계에서 처음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엘프 여왕들은 자신도 모르게 몇 대를 전생하면서 성혼을 생산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의미 없지.'

그래, 의미 없다.

김현은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움직이죠."

다른 각성자들이 선수를 치기 전에.

일행 모두 말뜻을 알아들었다. 한 번씩 세계수가 있던 자리를 일별하고는 몸을 일으킨다.

김현이 만들어낸 종이비행기에 올랐다.

피터가 우울한 기색으로 묻는다.

"우리가 실패하면 지구도 저렇게 되는 거죠?"

"비슷하지."

"절대, 절대 실패하면 안 되겠네요."

"지금까지는 우리 모두 잘 하고 있습니다. 지금처럼만 하면 돼요."

"우리 모두 7성이 되면 가능해질까요?"

"못해도 8성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누군가 9성이 된다면 가능성이 열려요."

"9성……"

김현으로서도 미답의 경지.

사실 계획과 많이 어그러져서 8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지금으로선 공허를 더 일깨우는 방법뿐인데, 자칫하다간 자기만 아니라 지구 전체까지 영향이 갈 가능성이 높고.

힐끔 김애경을 보았다.

당초 계획대로 김애경에게 승부를 걸어봐야 할 것 같다. 원 역사에서 김애경은 위대한 선도자였으니까. 지금의 경지는 김현의 인도로 이뤄진 경지라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김현 자신이 도전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높다.

쌔애액!

모두 상념에 잠겨 있음에도 종이비행기는 날렵하게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갔다.

작은 행성, 여기에 7성이 된 후 더욱 빨라진 속도.

다음 세계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 저거!"

서경태가 벌떡 일어나더니 손가락질을 했다.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벌써 방화중이라는 뜻. 하지만 아까 보았던 장면과는 뭔가 달랐다.

"느려! 불타는 게 늦다고!"

"어, 그러네요?"

"엘프 여왕이 저항하는 거 아냐?"

절망의 끝에서 엘프 여왕은 자살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다음이 더욱 짙은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면? 종족 전체가 변환당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성혼 생산 기계가 되는 미래가 죽음의 끝에 위치한다면?

엘프 여왕은 반항할 것이다. 자신의 자손들을 위해서. 그래봐야 덧없는 발악에 불과하지만……

피터가 코를 벌름거리며 콧김을 뿜었다.

"Mr. 김! 가요! 엘프들을 도와줘요!"

"저기엔 지구인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들과 싸울 수 있겠어?"

따끔한 일침에 피터가 움찔한다.

김애경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해야지. 죽이지만 말자."

"진심이지?"

"그럼. 엘프들에게 안식을 주고 싶어."

처음에는 떨떠름한 기색이었던 김애경.

엘프 여왕의, 숲 엘프들의 마음에 직접 접촉해서일까? 어느 때보다도 적극적인 모습이다.

유명계의 자원 줄을 끊는다는 당초 목표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엘프들에 대한 동정심이 김애경을 움직이고 있었다.

"좋아. 가자."

기기긱, 기긱.

종이비행기가 변형된다.

보다 날렵한 형태로, 보다 길쭉하게.

쿠아앙!

원래부터 음속을 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10배 이상 빨라지는 종이비행기.

단번에 세계수까지의 거리를 주파했다.

관성의 법칙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세계수 상공에 정지. 거대한 용처럼 그림자를 드리운 채 하계를 굽어보았다.

"뭐, 뭐……"

"헉! 저건!"

"김현? 김현이 왜 여기에?"

세계수 중턱에서 불을 뿌리던 자들이 기함하며 종이비행기를 올려다본다.

익숙한 얼굴들.

박준, 하네다 요코, 첸슈잉, 응우옌 꿘 꽝, 체첵, 아니스.

바로 몇 시간 전에 무법성에서 마주쳤던 이들이다.

김현은 종이비행기를 접고 뛰어내렸다. 동료들이 김현의 뒤를 따른다. 바람을 뚫고, 불꽃에 휩싸인 세계수의 뿌리 근방에 착지했다.

박준이 경계심어린 얼굴로 김현을 본다.

"김 사령관님, 여기엔 어쩐 일이십니까?"

스윽 주위를 둘러보는 김현.

보이느니 불타는 세계수뿐이다. 푸르스름한 도깨비불에 감싸여 있으나 기이하게도 세계수 표면에서는 붉게 변하여 세계수를 살라먹는다.

[사악한 유령 놈들, 너희를 저주하노라!]

세계수, 엘프 여왕의 비명이 아스라이 들렸다.

김현은 박준 일행의 상황을 확인했다.

저마다 회색의 보석 같은 걸 들고 있다. 보석에서 을씨년스러운 청염이 회오리친다. 그때마다 세계수를 태우는 영혼의 불꽃도 기세를 더해 갔다.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유명계와 저희는 전쟁 중이라고요. 그래서 유명계의 자원 줄을 끊으러 왔지요."

"하, 하지만 여긴 유명계의 차원문을 통해야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만……"

"대개는 그렇지만, 꼭 그렇지는 않지요."

김현이 그러했듯 어떤 방식으로든 반응기기를 설치하거나 차원 좌표를 얻는다면 간단히 넘어올 수 있다. 복속 차원은 차원의 벽이 이미 사라졌으니까.

다른 세계들이 그러지 않는 것은 이미 이 세계의 획득에 실패하여 조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조약을 무시하려면 무시할 수 있으나 그 경우 처절한 개싸움이 펼쳐진다. 무구한 세월 동안 몇 번이나 그런 일이 발생했고, 현재에는 어떤 세계라도 조약을 지키게 되었다.

"그나저나, 뭐하고 계셨습니까?"

"어, 그야……"

"설마하니 유령 놈들이 시키는 대로 엘프들을 죽이고 마지막 남은 가능성조차 변형시켜서 더한 절망을 주고 있는 건 아니지요?"

이 말에 김현 일행이 일제히 적대적인 눈빛을 보냈다.

특히 김애경은 정도가 심했다.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두 주먹에서 청광과 홍광을 피워낸다. 당장이라도 둘을 융합하여 멸망포를 쏠 것 같은 기색이다.

흠칫 몸을 떠는 박준 일행.

이들이 아무리 5성 각성자라고 해도, 김현 일행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아니까. 극대파멸력을 다루는 김애경에게는 특히 더.

"왜, 왜 그러십니까? 엘프는 또 뭐고요?"

"저희는 유명계의 의뢰를 받아 오염된 세계수를 정화하고 있었습니다!"

"저길 보세요! 저게 정상적인 세계수로 보입니까?"

"딱 봐도 오염됐잖아요!"

"저걸 정화하면 씨앗이 나온답니다. 그 씨앗을 씻은 다음 심으면 이 세계가 재생 된대요!"

"유령들이 재수 없긴 하지만 이번에는 좋은 일 하는 것 같아서 저희도 일을 수락한 거예요! 덤으로 6성도 되고!"

박준 일행이 중구난방으로 해명을 늘어놓는다.

김애경이 김현을 돌아보았다.

눈으로 묻고 있다. 저것이 사실이냐고.

서서히 머리를 끄덕이는 김현. 공허령으로 살펴본 결과 저들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저들도 유령들에게 속았다는 말.

하기야 진실을 알면 각성자 중에 변심하는 자가 나올 확률이 크다. 자기들 세계가 이 꼬라지가 될 줄 알면 협력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극도의 탐욕에 휩싸인 몇몇만 협력할 것이다. 이건 이민족의 식민지가 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니.

"여러분은 속았습니다."

"속았다니요?"

"유령들이 세계수가 왜 오염됐다고 말하던가요?"

"이계에 침식당했다고……"

유령들은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 말했다.

이곳, 엘페리아가 지구처럼 외계종의 침략을 받은 것은 사실대로 말했다. 그들 중에 자기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하지만 자신들은 그저 계약을 맺고 엘프들을 보존시켜 주기로 했다며 진실을 호도했다.

사실 계약한 건 맞다. 단지 그 계약이 사기 계약이었을 뿐.

전쟁 과정에서 세계수가 이계의 힘에 침식되었고, 그걸 되살리려면 한 번 불태웠다가 다시 키워야 한다는 거짓말까지.

"잘도 속으셨습니다."

"으음……"

박준 일행의 얼굴이 묘하게 변한다.

그들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고. 실제로 유명계의 제안을 뿌리치고 돌아간 각성자도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6성 탈각이 눈앞에 보이는데 이런 허술한 거짓말쯤이야. 욕심이 눈을 가린 상황에서 각성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속였다. 그리고 세계수를 불사르기 시작한 것.

어쩌면 세계수를 보고 더 확신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1/3은 엘프, 1/3은 세계수, 1/3은 유령.

이 셋이 융합되어 기괴한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

"유령들이 진실을 말한 것일 수도 있잖아요?"

요코가 반항하듯 빽 소리를 지른다.

스스로도 놀라 입을 막는 요코.

김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보여드리죠. 진실을."

가볍게 손을 뻗었다.

죽음의 기운이 세계수를 뒤덮었다. 그 광대한 권능의 발현에 다들 입을 쩍 벌린다.

이대로 세계수를 끝장내는 것도 가능하겠다.

그건 김현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세심하게 죽음의 기운을 제어한다. 그리하여 세계수가 아닌, 세계수를 불사르는 영혼의 불꽃만을 뒤덮어 지워버렸다.

제 모습을 되찾은 세계수.

원래도 쓸쓸하고 광막한 모습이었으나 반쯤 타서 그런지 더욱 황량한 분위기를 풍긴다. 거대한 나무가 아닌, 바위와 모래밖에 없는 황야를 보는 듯한 모양새.

"따라오세요."

다시 손을 휘저어 땅굴을 판다. 김현이 다루는 죽음은 생명체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에 쉬웠다. 단숨에 땅굴을 파고는 세계수 지하로 들어간다.

곰팡이 엘프들이 가득한 그곳으로.

박준 일행이 경계하는 기색을 보이면서도 따라온다. 김현이 해코지를 하려고 했으면 진작 했을 것을 알기에.

이윽고 세계수 지하 공동에 도착.

시야를 공유해주자 박준 일행의 얼굴이 참담함으로 물든다.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이게 정말이에요?"

박준 일행 중 요코가 정신 계열 각성자였다. 자연히 어둠만 걷어주면 엘프의 상태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들이 받는 충격은 엘프 여왕과 대면했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이 악귀들! 이 사악한 악마들!]

반쯤 불에 탄 듯한 형상의 나무 엘프.

엘프 여왕이 악에 받쳐서 소리친다. 박준 일행은 당혹감에 젖은 채 엘프 여왕을 주시했다.

"이, 이건 뭡니까?"

"세계수와 융합한 엘프 여왕입니다. 생전에는 7성 각성자였던 것 같고요."

"7성 각성자……"

"이것이 유명계 계약자의 말로입니다. 하네다 양? 자리 비켜드릴 테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눠 보시지요."

요코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선다.

그쯤 되자 엘프 여왕도 조금은 진정했다. 밖에서 영혼의 불꽃을 뿌릴 때야 최악의 수확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대면하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까닭이다.

긴 대화가 이어진다.

영음을 통한 대화. 김현이 중계하기에 여기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었다.

엘프 여왕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털어놓았다.

엘페리아가 온전하던 시기, 외계종과의 전쟁을, 그리고 유명계와의 계약에 대해서도.

"후우우."

들리느니 한숨 뿐.

김현은 모두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박준 일행에게는 그게 아니었나 보다.

박준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소리쳤다.

"그럼 그게 다 사기였다는 소리잖아!"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대화가 일단락된 것 같자, 김현은 아까 떠올랐던 질문을 엘프 여왕에게 던졌다.

[엘프 여왕.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무엇이냐?]

[당신은 정말로 엘페리아의 최후를 경험한 그 자신이 맞나?]

[그게 무슨 뜻이지?]

[간단하다. 당신이 정말 유명계와 계약했던 그 엘프 여왕 본인이냐는 뜻이다. 전생체나 복사체가 아니고?]

[이, 이, 무엄한!]

전생체나 복사체.

엘프 여왕의 눈이 좌우로 주욱 찢어진다. 원독에 가득 찬 눈빛을 뿌리며 두 팔을 휘젓지만 삐걱대는 팔로는 뭘 어쩔 수가 없다.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런 거였구나.'

김현의 짐작이 맞았다.

눈앞의 엘프 여왕은 진짜가 아니다. 단지 세계수를 유지하고, 엘프들을 관리하여 성혼을 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인공 영혼에 불과했다.

아니, 이걸 단순히 가짜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엘프 여왕이 느끼는 절망과 고통은 실제로 존재하는데? 지하 공동에 매달린 곰팡이 엘프들도 그렇고.

[엘프 여왕.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흥……]

[그래서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이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싶지 않습니까?]

[그건……]

[이건 제 생각이 아니고, 당신의 자매가 부탁한 일입니다.]

김현은 직접 불태웠던 세계수와의 대담 장면을 영음으로 쏘아 보냈다. 엘프 여왕이 그 기억을 받고는 잠시 침묵하더니 시리게 웃는다.

[놀랍네요. 마침내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좋아요. 당신의 제안을 수락하지요. 단, 반드시 제 씨앗을 제거해주셔야 합니다.]

[약속하겠습니다.]

어쩌면 엘프 여왕들도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니 씨앗을 없애 달라고 했겠지. 단순히 후손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이 영원한 절망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세계수가 불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까만 재가 되어 세계로 흩어진다. 그리하여 황량한 세계에 한 겹 더 푸석한 흙의 층을 더했다.

"허무하네요."

박준이 조용히 뇌까린다.

그들끼리 할 때는 몇 시간을 두고 태워야 겨우 재로 변하는 것이 세계수였다. 그런데 엘프 여왕의 허락을 받자 몇 초 만에 끝나는 것 아닌가.

"살아있는 존재니까요."

"그렇습니까……"

박준이 쓸쓸한 표정을 짓는다. 유명계와 후원 계약을 맺은 자신과 엘프 여왕이 겹쳐 보인 까닭이겠지.

"박준 씨, 어떻습니까?"

"네?"

"이래도 유명계가 하라는 대로 세계수의 씨앗을 유령들에게 가져다 줄 겁니까?"

"하아, 그럴 리가요.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6성 탈각이 아깝지만 포기할게요."

"아직 포기하기엔 이릅니다."

"네?"

"이렇게 하시죠."

한 가지 계획을 제시했다.

간단하다.

지금처럼 엘페리아를 돌아다니며 세계수를 불사르되 씨앗을 그 자리에서 부수라는 것. 그 공훈에 따라서, 특히 유명계와 완전히 등지면 6성 탈각을 주선할 수 있다는 미끼를 내밀었다.

박준 일행은 한참 고민하다가 김현의 제안을 수락했다. 무법성에서의 제안과 비슷했으니까.

"저들도 동료로 받게?"

"차오웨이나 무함마드와 비슷한 경우지, 뭐."

이 또한 유명계에 대한 김현의 반격.

자원 줄을 말리는 한편 지구와의 통로를 끊는 것도 중요하다. 계약자는 후원자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니까.

"우리도 가자."

세계수를 불태우는 여정이 계속된다.

가끔 지구의 다른 각성자도 만났다. 그때마다 설득을 시도했고, 대부분은 박준처럼 김현을 따라왔다.

물론 통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제압해서 한쪽에 처박아 두었다. 죽이는 것은 보류. 김현은 살인귀가 아니니까.

그리하여 100번째 세계수를 불사르고 씨앗을 부쉈을 때였다.

하늘이 우르릉 뒤틀리며 분노에 찬 영음이 울려 퍼졌다.

[누가 감히 내 나무들을 망가뜨리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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