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우화등천 -2-
작은 지구에 어둠이 내린 것은 김현이 바삐 일할 때였다.
"어?"
커피 한 잔을 한 모금 하던 그때 지구가 빛을 잃는다.
그리고 느껴지는 싸늘한 추위.
문자 그대로 기온이 내려간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영적인 추위이며, 육감의 경고다. 김현은 본능적으로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으아아아.]
흡사 이런 비명이 들린 듯했다.
아주 작은,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게 됐다.
"이건……"
동시에 인공 지구 전체가 운행을 멈춰 버린다. 공간 연결이 모두 차단되고, 전력으로 변형되어 공급되던 혼력이 끊기며 여기저기서 당혹에 찬 소음이 들렸다.
"정전, 정전이야?"
"엄마야!"
"왜, 왜 이래?"
당장 문제가 생긴다. 중력이 사라지며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려 하고 산소가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인공 지구의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 사실 차원 거점 모두가 공유하는 약점이다. 이럴 일이 거의 없으니 노출되지 않을 뿐.
[지구, 재기동.]
이럴 때를 위한 명령어가 존재한다. 당장 그걸 읊자 김현의 전자 두뇌에 기계 음성이 울렸다.
[지구, 재기동합니다.]
우웅……
희미한 불이 들어왔다.
그것을 기점으로 빛이 늘어난다. 별 무리가 땅에서 떠올라 승천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동시에 망가진 유지 체계가 제 기능을 하며 원래대로 돌아갔다.
겨우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일. 인공 지구를 누비던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응? 뭐였지?"
"정기 점검이라도 했나 봐."
"깜짝 놀랐네."
김현도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자신이 지구에 있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 때문에. 나중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자동 재기동 명령을 짜 넣어야겠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일까? 인공 지구가 생산하는 방대한 동력이 한꺼번에 나가는 건 불가능한데.
'설마……'
김현의 눈이 흔들렸다.
"현아!"
그 순간, 김애경이 문을 뭉그러뜨리다시피 하며 뛰어 들어왔다.
"왜 그래?"
"방금 뭐야? 외계종들 쳐들어온 거 아냐?"
"아냐. 그럼 내가 바로 알았지."
"그럼?"
김현은 살짝 얼굴을 굳혔다.
가능한 일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경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덩달아 얼굴이 굳어지는 김애경.
"정말? 야,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렇지. 누나가 이 선생님 모셔 올래? 나 먼저 가 있을게."
"세희도 지금…… 아, 모가디슈 내려가 있겠구나. 알았어. 빨리 가 봐, 빨리!"
김애경이 몸을 날렸다. 급한 마음과 잘 조절되지 않는 성혼 때문에 아예 벽을 소멸시키고 나가 버린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김현은 가슴이 옥죄어 오는 것을 느꼈다.
여태 동료 한 명 잃지 않고 잘 해왔다. 그래서 동료 중 누구도 죽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쩌면 그게 이번에 깨질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괜찮겠지."
애써 자신을 위로하며 지하 통로로 몸을 던진다. 깊이가 정확히 6 킬로미터에 달하는 통로다. 하염없이 추락하면서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달랬다.
아니겠지.
단순한 제어 인공 지능의 오류겠지.
혹여 무슨 일이 있더라도 죽진 않았겠지. 운이 없었다며 평소처럼 그렇게 씩 웃어 보이겠지.
그러나 운명은 김현을 배신했다.
인공 지구의 중심.
빛나는 혼력의 결집체들 사이에 고정된 투명 캡슐이 혼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그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시커먼 암흑 뿐.
그것을 목격한 김현이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는다.
본 적이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옛 김현의 기억에 기록되었다.
22세기.
인류 저항군 기지에서 있었던 일.
8성 우화에 실패한 이들이 저렇게 변하곤 했다. 자신을 구성하던 혼력이 흩어져 캡슐 안에 꽉 차 버리는 것. 이 과정에서 기지의 혼력도 흡수하여 일시적인 혼력 차단 상태를 일으켰다.
천천히 다가간다.
캡슐로, 서경태에게로.
아니, 이제는 서경태가 아니게 된 혼력 덩어리를 향해서.
"말도 안 돼……"
김현의 가슴에 거센 격랑이 불었다.
서경태.
처음 건국대학교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별 감정이 없었다. 잘 키우면 유망한 각성자가 되어 외계종과의 전쟁에서 도움이 되겠지 했던 게 전부.
두 번째 인연이 닿았을 때 비로소 마음을 열었다. 아버지를 잃은 서경태에게 공감하여 동료로 받아들였고, 수많은 모험을 거쳐 여기까지 왔지.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다. 핏물 한 방울, 살점 하나 없다. 오로지 혼탁한 혼력의 찌꺼기만 남아 휘몰아칠 뿐.
"경태야."
불러본다.
대답은 없다.
옛 김현과는 다르다. 옛 김현은 그나마 빙의귀의 형태로 남았고 육체의 일부인 피라도 조금 남겼다. 그래서 현재의 김현도 자신이 김현이라고 자처하는 것이다.
완전한 소멸. 윤회조차 불가능한 완벽한 종말.
믿어지지 않았다. 투명한 캡슐 뚜껑을 어루만져 본다. 기이한 사념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 김현을 잠식했다.
끝없는 공포, 심연 같은 절망, 억년을 홀로 있는 듯한 고독감.
최후에 서경태가 느꼈을 감정이 정신을 두드린다.
"빌어먹을."
8성 우화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나?
지금의 김현은 엄밀히 말하면 만들어진 존재. 8성 우화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22세기에서 아론이 지극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 8성이 됐던 건 기억이 난다. 영혼을 추출하다시피 하여 기계와 곤충이 뒤섞인 육체에 강제로 주입했었지. 흡사 어둡고 축축하며, 치명적인 가시와 곤충이 우글거리는 길고 어두운 동굴을 지나는 것 같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있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재차 욕설을 내뱉는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만 같다. 심장이 짜르르 아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감정.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충왕계에게 가족을 잃고, 인류 저항군의 소중한 동료들도 차례차례 죽거나 승급을 시도하다가 소멸하면서 이런 상황은 수도 없이 겪었다.
그래서 무뎌졌다.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옛 김현의 경우. 현재의 김현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제 갓 태어난 아기가 언제 소중한 것을 잃어보았을까. 옛 김현의 유산으로 승승장구하기만 했으니 더 그렇다.
"빌어먹을……"
눈물이 또르륵 흐른다.
용암처럼 뜨거운 눈물이다.
두 눈은 기계로 되어 있는데 왜 쓸모없는 눈물샘을 남겨놓았는지 이해를 못 했던 참이다. 이제야 알겠다.
눈물.
이 강렬한 감정의 정화에 슬픔과 괴로움이 응축되어, 김현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웠던 것.
나는 인간이라는 사실.
아무리 강력한 성혼을 품고 차가운 기계와 징그러운 곤충 몸을 갖고 있어도 나는 아직 인간이라는 그 분명한 진실.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안도 되며, 너무나 아픈 현실에 부딪혀 김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현아?"
"김현 님?"
마침 김애경과 이세희도 도착했다.
그들도 서경태가 들어 있던 캡슐을 보았다.
자연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서게 된다. 오로지 혼탁한 어둠만 남은 캡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울고 있는 김현.
"현아, 이거……"
돌아보지 못했다.
차마 돌아볼 수가 없었다.
마지막 남은 아버지마저 잃고 혈혈단신이 된 서경태. 그 불쌍한 녀석을 죽음으로 밀어 넣는 게 자신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서.
이세희가 총총 걸어왔다. 김현처럼 캡슐 뚜껑에 손을 얹는다. 정신을 집중하여 수성 성혼을 발현해 보지만, 바로 그때 혼탁한 어둠이 으르렁거리듯 일어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캡슐 안쪽을 주시하는 이세희. 더듬더듬 듣고 싶지 않은 선고를 내린다.
"경태가 죽었네요……"
"그럴 수가……"
여기서 김현은 그만 무너지고 말았다.
울음이 터지려는 걸 겨우 참았다. 캡슐에 머리를 묻고 아랫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다. 오열하듯 터져 나온다. 사람의 체액과는 다른, 그러나 의미는 완전히 같은 액체가 탁한 캡슐의 뚜껑을 아프게 씻어내렸다.
김애경이 다가온다. 뒤에서 김현을 안아주었다.
더는 버티지 못했다.
"크흑, 경태야!"
결국 통곡하고 마는 김현.
감정이 휘몰아친다.
바닥이 꺼지는 듯한, 격렬한 감정의 흐름이 김현을 때린다.
'진정하자.'
이 와중에도 전자 두뇌는 냉정했다. 차갑게 현재 상태를 분석하며 육체에 개입하려고 한다.
자율신경계를 조절하고 신경 전달 물질과 호르몬 분비를 조율하면……
'그러지 마.'
심장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장중하게 뛰면서 마지막 장송곡을 부르는 듯하다. 쿠웅 쿠웅 느리게 뛰는 심장 소리에 점차 함몰된다. 뒤에서 느껴지는 김애경의 체온과 더불어 고조되던 감정이 조금씩이나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한참을 울다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김애경이 뒤로 물러나서는 훨씬 키가 큰 김현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조금 진정되니?"
"조금은. 고마워."
"고맙기는. 하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김애경도 우울한 얼굴이다. 그래도 김현보다는 훨씬 담담한 기색.
그러나 두 눈을 보면 진한 슬픔이 묻어나온다. 그릇의 크기가 대양만큼 큰 탓에 내색하지 않을 뿐이지.
"무슨 일이에요?"
"왜 불렀어요? 아직 시간 안 됐는데."
피터와 에일리도 도착했다.
김현은 즉각 육체에 개입해 눈물 자국과 벌게진 얼굴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어째서인지 이 둘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 다 묵묵히 둘이 가까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둘도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피터가 캡슐을 살피더니 설마 하는 얼굴로 김현을 보았다.
"경태는요?"
나이 차가 조금 나지만, 서로 편하게 대했던 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두운 얼굴로 살짝 고개만 젓는다. 에일리의 얼굴이 별안간 창백해졌다.
"거, 거짓말!"
캡슐로 달려든다. 엎드리듯 캡슐을 감싸서는 두 손으로 캡슐 뚜껑을 두드린다. 하도 세게 두드리는 통에 깨지지나 않을지 걱정해야 할 지경.
"장난치지 마! 서경태! Mr. 서! 일어나 보라고!"
대답은 없다.
있다면 마지막 순간에 서경태가 느꼈을 온갖 부정적인 감정 뿐.
그 감정이 에일리를 침식한다. 어떻게든 잡아먹으려고 어두운 촉수를 뻗는다.
하지만 에일리 또한 7성 각성자. 충분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대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멍청한 자식, 이렇게 죽어 버릴 거면서……"
연애 감정?
그런 건 아니다.
대신 김현 일행 사이에서는 강력한 유대감이 있었다.
인류를 수호하고 있다는 사명감, 영육 개변한 몇 안 되는 선구자라는 점에서 오는 일체감……
요즘에는 가족보다 더 친근하다. 피터도 에일리도 서경태를 비롯한 동료들을 거의 가족처럼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이세희가 다가가 에일리를 안아주었다. 에일리는 이세희에게 안겨 한참이나 울음을 터뜨렸다. 피터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서는 에일리와 까만 캡슐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시, 싫어!"
마침내 그 한 마디만 남겨놓고 달려나가 버린다.
김현은 우울한 얼굴로 피터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균열이 느껴진다.
굳건하던 일행이 이번 일로 분쇄되는 것이 뻔히 눈에 보인다.
지구 최강의 각성자 무리로 이름이 높았지만 실은 연약하기 짝이 없었던 것.
'나 때문이구나.'
김현 일행의 모든 것은 김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멈추지 않는 성공 신화가 자칫 깨질 수 있는 일행을 강제로 접합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김현이 자기 자신을 희생하여 복제인간 김현을 만들면서 동료들의 마음속에 불안의 씨앗을 심었던 것 같다.
인공 지구? 노예 구출?
그 정도로는 부족했겠지. 옛 김현이 살아 돌아왔어도 서경태를 살리진 못했겠지만, 동료들 특히 피터에게 김현이란 거의 신앙의 대상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김애경이 피터를 쫓아가려고 했으나 김현이 손을 뻗어 제지했다.
"그만둬. 피터에게도 시간이 필요해."
"무슨 소리야? 지금 놔두면 피터는 우리를 영영 떠나버릴걸?"
잠시 침묵하는 김현.
처음부터 심약했던 피터다. 경험이 쌓이면서 강해졌고 6성에 달하면서 대범한 듯 변했으나 여전히 그 연약함을 마음속에 숨기고 있었다. 그러다가 김현이 재생한 뒤 부쩍 약한 모습을 보였지.
지금까지 열심히 했고, 벌기도 많이 벌었으니 이제는 편하게 살고 싶다고.
지구가 망하면 다 끝장 아니냐고?
그렇지가 않다. 피터 같은 고위 각성자에게는 또 다른 길이 열린다.
"그래, 부탁해. 내가 가면 역효과일 것 같아."
"알았어. 너는 경태 부탁해. 장례식이라도 잘 치러줘야지. 그렇게나 고생을 했는데……"
김애경이 말을 잇지 못한다. 한 번 캡슐을 돌아보고는 그대로 피터를 쫓아 달려나갔다.
이세희가 캡슐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린다.
"좋은 곳에 갔기를, 거기서는 평안해야 해……"
안타깝게도 불가능.
서경태는 완전히 소멸했으니.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천장만 쳐다본다. 그러다 문득 까맣게 변색한 캡슐이 시선이 가 닿았다.
김애경이 뭐라고 했더라?
그래, 장례식.
장례를 치러야지.
비록 제삿밥 받아먹을 주체는 이미 소멸해 버리긴 했지만.
"경태야, 잘 가라."
마지막으로 캡슐 뚜껑을 쓰다듬었다. 검게 변색한 혼력이 짐승처럼 으르렁거린다.
이것도 처리해야 할까?
서경태의 흔적이라면 흔적. 그냥 없애 버리기가 싫었다. 김현은 참담한 눈으로 캡슐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잠깐.
22세기에서는 이런 잔재를 어떻게 처리했더라? 김현, 즉 아론이 사령관으로 있을 때만 해도 거의 10명 가까이 8성 우화에 도전했었는데……
다음 순간, 김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22세기의 인류 저항군은 이렇게 얻은 혼력을 아주 유용하게 써먹곤 했다.
그렇다.
눈앞의 혼력은 서경태가 남긴 흔적이면서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