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
용사 육성 계획 -1-
후환을 남길 필요 뭐 있을까.
깔끔하게 보내주었다.
충격 받은 얼굴로 김현을 바라보는 리아.
무시하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명단에 있는 다음 7성 각성자를 향해 날아간다.
"대체…… 이럴 거면 왜 체포해서 경찰에 넘긴 거죠? 당신 마음대로 죽여 버리지."
간신히 따라온 리아가 묻는다.
"그땐 그게 최선이어서."
"그럼 지금은요?"
"이게 최선이지."
이유를 캐묻지만 무시해 버렸다.
간단하다. 그때는 기존 국가의 공권력을 존중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어차피 100년. 파멸신이라는 수호자가 사라지기 전 지구의 전력을 최대한으로 올려야 했다. 그때까지 흡혈귀를 살려놓는 건 쓸데없는 짓이었다.
'불사계가 무슨 짓을 할지 알고?'
100년은 조용하겠지. 파멸신이, 김현이 사라진 다음 수를 쓸 것이다. 카를로스가 갱생한다면 좋겠으나 종족 변환한 이상 불가능. 백해무익한 위험 변수를 남겨놓을 필요가 없다.
리아의 얼굴이 찌그러지건 말건, 소식을 접한 미국 대통령이 항의 공문을 보내건 말건 아무래도 좋다. 김현은 빠른 속도로 지구를 한 번 크게 돌앗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요?"
김현이 하루 동안 끝장낸 종족 변환 각성자만 수백 명을 훌쩍 넘어갔다.
이중에는 선량한 각성자도 많았다. 각 국가에서 영웅 취급을 받는 각성자도 있었다. 따라서 매체를 통해, 인터넷을 통해 강도 높은 비난이 이어졌다.
[모가디슈의 독재자, 드디어 미치다.]
[광란의 살인극.]
[영웅은 없다. 있다면 악마 한 마리뿐이다.]
[힘을 독점하는 마왕. 그는 진실로 마왕이 되고자 하는가?]
자극적인 뉴스가 수도 없이 쏟아지고, 전 세계의 네티즌도 한결 같이 김현을 비난했다.
물론 김현은 그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대신 모가디슈 웹사이트에 어떤 지식을 추가로 공개했다.
승급 방법.
기존에는 6성과 7성 승급 방법만 알렸다면 지금은 8성까지 모두 풀었다. 1, 2, 3성의 기본적인 각성부터 4성 진화, 5성 승급, 특히 훈련장을 짓거나 영혼의 업에 관한 내용까지 전부.
그것도 22세기에 정리되었고, 다시 김현이 체계적으로 정리한 다음이었다. 재료만 충분하다면 누구든 이걸 보고 쭉쭉 승급할 것이다.
"너는 일을 항상 크게 벌이는구나."
김애경이 못 말린다는 듯 머리를 저었다.
"항상 그랬죠. 그런데 김현 님, 굳이 죽일 필요는 없지 않았어요? 범죄자도 아닌데……"
"거대 악마를 상대하려면 조금이라도 불안 요소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욕 먹을 각오하고 손을 쓴 거예요."
"나중에 유족들이 복수하겠다고 오면 어쩌려고요?"
"어쩌긴요. 제가 약하면 복수 당하는 거죠."
인류 문명의 가치를 깡그리 부정하는 듯한 말에 이세희가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에일리가 묘한 얼굴로 김현을 보다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세계 정복 축하해요. 김 사령관님."
"켄트 양까지 왜 그럽니까? 세계 정복할 거였으면 진작 했죠."
"어머, 세계 정복은 쉬운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실제로 쉬우니까요. 켄트 양. 전 마음만 먹으면 1달 내로 지구 전체를 정복할 자신이 있습니다."
"사령관님께 무한한 영예와 영광을 바치겠습니다."
"넌 가만히 있어."
물색없이 끼어드는 사브리나에게 살짝 면박을 주었다.
에일리가 소파에 누워 기지개를 폈다.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실 건데요?"
"교육을 해야죠."
"교육이요?"
"저번에 나왔던 얘기 있잖아요. 용사 육성 계획."
"아……"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유치한 작명.
100년 간 9성 5명, 8성 50명을 육성하여 거대 악마를 몰아내자는 계획이었다.
김애경이 불편한 기색을 비치면서도 가까이 와서 앉는다.
"그거 현실성이 있는 계획이야? 들어보니까 외계종 중에 힘이 강한 천상계나 악마계도 9성 7명에 8성 49명이라며. 가장 강한 혼돈계가 9성 9명에 8성 81명이고."
"가능하지. 9성은 몰라도 8성은 충분히."
"9성은 도대체 어떤 거야? 지금까지는 대충 감이라도 잡혔는데 이젠 전혀 감이 안 온다."
"신이야, 신."
"신이라고?"
"그래. 유일신교에서 말하는 그런 완전무결한 신은 아니고 다신교의 신에 가깝지. 그런데 지구에서 9성이 탄생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9성 탄생의 의의는 크다.
현재 18개인 초월적 세계가 하나 더 늘 수도 있으니까.
그 경우 다른 세계처럼 이계를 침공하면서 무수한 희생자를 양산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당하고 사는 것보다야 낫겠지.
'어차피 나중 일.'
김현이 소멸한 후의 일이기도 하고.
미래 일은 미래 세대에게 맡기자.
고개를 젓고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김현의 눈이 푸르게 물들더니 허공에다가 홀로그램 종이를 불러냈다.
"간단한 거였지? 전 세계 학교에 자질 검사 장치를 설치해서 상급 이상은 모조리 훈련소로 넣자는 거."
"응. 거기서 일정 이상 진전을 보이면 상급 훈련소로 보내는 거지."
"4성 달성해야 외계로 원정 보내고……"
"지금도 떠돌이는 계속 들어오니까 하급 각성자는 그들 잡게 해도 좋을 거예요."
"굳이 헌터 생활 안 해도 성혼 하나 있으면 일상생활에도 도움이 될 거야."
"성혼 농장에서 근무해도 좋죠."
김현의 성혼 농장을 모방한 시설이 지구 곳곳에 들어서고 있었다. 김현이 보기에는 매우 조악하고, 효율도 나쁜 시설이지만 수십 년 정도 지나면 김현의 성혼 농장을 비슷하게나마 흉내 낼 것 같다.
'그때가 되면 숫자 조절 들어가야겠다.'
지구의 성혼 생산에도 한계가 있다. 지금은 성혼 농장이 세계 침식도 대신 유도하는 등 장점이 더 많지만, 포화 상태가 되면 오히려 세계 자체에 악영향을 끼친다.
그 결과물이 기갑계와 충왕계 아닌가. 기갑계는 황페해진 행성을 대신하여 인공 행성을 건설했고, 충왕계는 아예 고향을 잃고 신격들이 거주지로 변신해야 했으니.
"학교가 없는 곳은요?"
"우리가 세워야지."
"이야, 졸지에 좋은 일 하게 생겼네요."
"그런데 10대만 확인하게요? 20대 이상에도 좋은 자질 가진 사람은 많아요. 차오웨이나 무함마드도 나이가 꽤 되잖아요."
"병원에도 설치해야죠. 사실, 성혼을 가지고 꼭 각성자만 만들 필요는 없어요."
"그럼요?"
"치료에도 쓸 수 있죠. 암 환자한테 1성 재생 성혼이라도 준다고 생각해 봐요."
"와…… 그거 좋네요."
1성 재생 성혼. 전투 능력으로 따지면 정말로 하잘것없는 등급이다.
하지만 일반인에게는 다르지. 그 자체로 암과 맞서 싸울 기력을 얻는다. 뇌졸중 환자나 치매 환자에게도 그렇다. 현대 의학으로는 어쩔 수 없는 질병이라도 느릿느릿하게 호전시키는 것.
사실 일선 의료 현장에서 이미 시행되는 방법이긴 하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니 예전부터 재생과 치유 계열 성혼의 값이 비쌌다. 지금 김현이 한 말은 농장 자원의 일부를 여기로 돌리겠다는 것과 같았다.
"외계종이랑 거래를 안 하니까 이런 건 좋네요. 지구 안에서 다 소비하게 되면."
"그럼요. 아마 10년 내에는 전 지구인이 각성자가 될 겁니다."
다들 입을 쩍 벌린다.
모든 사람이 다 초능력자라니?
김애경이 쓰게 웃었다.
"그렇게 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빠르네."
"빨랐지. 모든 게 다. 원래 지금 시점에서는 5성 각성자도 없었어. 내년에나 나왔다고."
"너 덕분이야."
"알면 됐어."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급선무는 전 세계 국가의 협력. 어느 나라는 하고, 어느 나라는 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니까.
김현은 그 대목은 걱정하지 않았다.
훈련소는 자신이 직접 맡을 예정이니까. 자신에게 상급 자질을 가진 아이를 보내는 나라는 결국 강한 각성자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 아무리 승급 방법을 공개했어도 김현보다 더 뛰어난 스승은 나오기 힘들 터, 결국 모든 나라가 김현에게 매달리게 되어 있다.
"차원 도시를 만들자."
"그건 또 뭐야?"
"거대한 차원문을 지을 거야. 허가 받은 각성자라면 쉽게 무법성과 지구를 오갈 수 있게."
"무법성에 너무 많이 진출하면, 그것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위험은 감수해야죠. 헌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에요."
김현의 구상은 간단했다. 거대한 학원 도시를 건설하자는 것. 상급 훈련소든 하급 훈련소든 다 때려박고 상급으로 갈수록 중심에 가깝게 배치할 생각이었다. 가장 중심에는 거대한 상시 차원문이 위치하고.
"세계에 분산 배치하는 게 아니고?"
"응. 각성자들의 성지처럼 만들 생각이야."
"그것도 괜찮겠네……"
"집에 가고 싶으면요?"
"이걸 쓰면 되죠."
손가락을 들어 바닥을 가리켰다.
바로 인공 지구를.
말 된다며 이세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인공 지구 비슷한 구조물을 통한다면 괜찮겠다. 딱 몇 분 만에 지구 어디든지 갈 수 있으니까.
"그 도시도 아차원에 만들게?"
"생각은 해봤는데 그냥 소말리아 앞바다에 인공 섬을 띄워서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아. 아차원 공간에 너무 오래 있으면 부작용이 생기거든. 그래서 모가디슈를 얻은 거잖아."
"각성자는 괜찮지 않아요?"
"괜찮죠. 그래도 심리적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생활 공간은 섬에 만들고, 아차원 훈련소만 각 훈련소…… 아니, 학교에 따로 달 생각입니다."
"Mr, 김이 고생 좀 하겠어요."
"100년 동안 쓸 건데 고생해야죠. 여러분도 절 도와주실 거죠?"
김현은 김애경을 제외한 셋을 빤히 쳐다보았다. 셋이 시선을 돌렸으나 끝내 굴복하고 만다.
사브리나가 가장 먼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겠습니다."
"그래. 사브리나, 너 밖에 없다."
"전 환자들 보느라 바쁜데…… 휴우, 그래도 어쩔 수 없죠."
"오랜만에 바빠지겠네요."
김현은 결정된 사실을 기자 회견을 통해 알렸다. 그러자 또 각양각색의 반응이 쏟아진다.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사람, 세계 정복의 음모라며 비난하는 사람……
며칠 전부터 모가디슈에 상주하고 있던 신은서가 손을 들었다.
"용사 육성 계획이라고 하셨는데, 무엇에 대한 용사인가요? 용사라고 하면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존재로 많이 부르는데요."
사실 꼭 그렇지는 않지.
김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거대 악마가 있습니다……"
기자들은 숨을 죽이고 김현의 설명을 들었다.
거대 악마, 마왕이라고 할까? 그런 9성 신격이 있으며 100년이 지나면 깨어나 지구를 덮칠 것이라는 경고.
"그거 확실한가요? 비록 몇몇 각성자들이 차원의 틈을 통해 목격했다고는 하나, 사령관님의 증언 말고는 악마의 정체를 짐작할 어떤 것도 없는데요."
노골적으로 못 믿겠다는 태도.
"그럼 보여드릴까요?"
"네? 가능합니까?"
"가능하죠. 차원의 문을 열고 잠깐 해당 차원에 다녀오면 되니까. 단, 이러면 악마가 깨어나는 게 빨라집니다. 대략 한 1년 정도?"
"그, 그건……"
기자가 말을 잊는다.
그럴 수밖에 없지. 혹시라도 100년 뒤에 1년 정도 시간이 부족하기라도 하면 인류 멸망의 원흉으로 지목될 것 아닌가.
어물어물 앉으려고 하자, 김현이 아예 쐐기를 박아 버렸다.
"CNN의 로라 페이드 기자님께서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맞아요. 제 말만 믿고 전 지구적인 대비를 하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있죠. 이렇게 합시다. 전 세계의 국가 원수분들을 모두 초대하겠습니다. 기자분들과 함께 악마가 잠들어 있는 차원에 잠깐 들어갔다 나오지요. 그러면 모두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실 겁니다."
김현을 어떻게 믿고 참석하느냐?
이런 말은 나오지 않았다. 홍문연 열듯이 계략을 꾸밀 거였으면 차라리 직접 방문하여 모조리 다 잡아죽이는 것이 김현의 성격에 맞다는 걸 다들 알고 있으니까. 그런 말을 했다가 당할 후환이 두렵기도 했고.
김현은 전 세계 국가에 초청장을 보냈다. 갑론을박을 거쳐, 모가디슈에서 제 1회 마왕 대책 회담이 개최되었다.
UN에 속한 국가 원수는 물론 각성자 협회장들, 종교 지도자와 기자들까지 참석.
그들 앞에서 차원의 문을 열었다.
"이, 이건……"
"맙소사."
"신이시어!"
신좌의 끔찍한 광경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한 악마. 세계의 중심에 위치한 옥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기괴한 괴물이다.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컸다. 얼마 전 지구 곳곳을 점령하고 있던 외계종 거점에 비할 정도.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분위기.
뭔가…… 뭔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다. 심장이 찢어질 듯 쿵쾅쿵쾅 박동한다. 본능이 비명을 지른다. 당장 달아나라고, 눈을 감고 뒤로 돌아 달리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박제들.
두 팔 벌려 거대 악마를 경배하는 것들이 보인다. 악마와 기계와 곤충들. 고통으로 얼룩진 그들이, 자신 또한 그들 사이에 속할 것 같아 문득 소름이 돋았다.
"닫아도 되겠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묻는 김현.
"닫으세요, 얼른!"
"빨리 닫읍시다! 빨리!"
국가 원수들이 체통도 잊고 아우성을 쳤다.
일부러 천천히 문을 닫았다. 그러자 문이 닫힌 다음, 몇몇 국가 원수들이 달려가 구토를 해댔다.
김현은 조금은 얄미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제, 왜 용사를 키워야 하는지 알겠습니까?"
여기 있는 모두, 머리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