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쓰는 헌터사-188화 (188/200)

# 188

용사 육성 계획 -2-

자연히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인공섬의 건조. 학원 도시의 건설.

몇몇 국가 원수가 김현이 학원 도시를 관리하는 것에 난색을 표했다. 이런 것은 UN 같은 범지구적 단체에 맡겨야 되지 않냐며.

"도시는 제 사립학교입니다.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생각은 없습니다."

끝까지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선언.

차오 회장, 아니 차오 주석이 헛기침을 했다.

"꼭 한 곳에 만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오히려 분산 배치하여,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봐라?

중국의 권력을 손에 넣더니, 김현의 그늘에서 슬슬 벗어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다. 처음에는 대통합 학원 도시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방금 차오 주석의 제안에서 한 가지 구상을 더 떠올렸으니까.

"그것도 좋겠습니다. 이렇게 하시죠. 전 저대로 학원 도시를 만들겠습니다. 다른 분들도 만들고 싶은 분은 만드세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1년에 1번 정도 각성자 체전을 벌이는 것도 좋겠습니다."

"각성자 체전이라면……"

"체육 대전. 올림픽의 각성자 버전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차원 전장도 있겠다, 적당히 응용해서 학생들의 무투회 비슷한 축제를 열죠. 누가 정말 강한지 경쟁하는 겁니다."

체육 대회도 아니고 무투회라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기함했다.

김애경이 가장 먼저 눈살을 찌푸렸다.

"야, 그건 너무 갔다. 한창 자랄 애들한테 무슨 무투야. 그냥 체육 대회나 열지."

"아니야. 체육 대회 정도로는 모자라. 지금 우리는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전사를 키우는 거라고. 당연히 그 정도는 해야지. 그 정도도 안 하면서 어떻게 마왕하고 싸운다고 그래? 누나. 신촌 병원 때를 생각해 봐. 괴물을 쓰러뜨릴 때 희생은 당연하게 따라오는 거야. 불필요한 고통을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무투회 정도는 괜찮다고 봐."

김현은 의식적으로 강철 의수를 톡톡 두드렸다.

그걸 보고는 김애경도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괴물과 싸울 각성자를 키우는 교육은 민주 시민을 키우는 교육과는 달라야 한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으니까.

미국 대통령도 앞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각성자 학교 설립은 각자 알아서 하는 것으로 하지요. 그리고 그 체전이라는 거 말입니다, 꼭 무투회만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기왕 하는 것, 대규모로 벌이죠. 체육 대회도 하고, 주식 모의 투자 대회나 뭐 아무튼 그런 것도요."

"좋은 생각입니다."

각성자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력. 그래도 자라나는 10대들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다른 종목에도 신경을 쓰는 건 나쁘지 않겠다.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구상을 말하다가 힐끗 김현을 보았다.

"참, 그런데 자질 검사 장치는 어떻게 설치되는 겁니까? 혹시, 저희가 학교를 따로 차려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 때문에 나섰나 보다.

김현은 흔쾌히 대답했다.

"전 세계 학교에 자질 검사 장치를 보급하는 건 예정대로 시행합니다. 원래는 제가 직접 챙기려고 했지만, 학교를 만드실 거면 여러분도 거들어 주시죠."

"좋습니다."

"물량만 대주신다면야……"

국가 원수들의 눈이 반짝인다. 특히 차오 주석과 미국 대통령이 그랬다. 둘 다 사업가 출신이다 보니 공짜에 더 민감해지는 모양이다.

준비 기간은 1년.

김현은 자질 상급 이상이라면 성별, 나이, 인종, 종교,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학생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자 국가 원수들이 보이지 않게 스리슬쩍 웃는다.

'최상급이나 극상급은 이 사람들이 다 데려가겠네.'

남에게 위탁 교육하느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할 테니.

헛된 망상이다.

승급 방법을 일목요연하게 공개하긴 했어도 김현에겐 100년간 쌓인 시행착오와 훈련 지식이 있다. 이 차이는 컸다. 그깟 자질 차이는 간단히 뒤집을 정도로.

'믿으면 천국이고, 못 믿으면 지옥이지, 뭐.'

회담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파멸의 신좌를 직접 목격한 이들 모두가 용사 육성 계획의 필요성을 실감한 탓이다.

엠바고가 해제되자마자 모든 방송과 신문사에 기사가 올라갔다. 자연히 난리가 났다. 파멸의 신좌 영상 때문이었다.

[9성 악마라고? 시발, 저런 걸 어떻게 이겨.]

[8성 10명 있으면 잡지 않음? 교환비 1대 10이라며.]

[잠깐…… 9성은 그게 아니라는데? 9성은 아예 신이래, 신.]

[그래 봐야 슈퍼 김 출동하면 갈리는 신세 인정?]

[아오, 그 새끼는 왜 멸망왕을 던져 줘서 저런 놈을 만들고 지랄이야.]

[그럼 8성 악마 20마리가 쳐들어오는데 가만히 놔둠? 100년이라도 시간 끌어서 다행이지.]

[나도 그 학원 도신지 뭔지 들어갈 수 있냐. 흙수저 인생 청산하고 각성자 되고 싶은데.]

[1년 안에 전 세계 초등학교에 자질 검사 장치 설치한다더라. 그걸로 검사해 봐. 상급 이상이면 무조건 받아준대.]

[진짜? 입학비는?]

[그야 나는 모르지.]

[야! 오피셜 떴다! 학비 전액 무료래!]

[뭐? 진짜?]

[기숙 학교라서 학생은 몸만 오면 된다는데? 아, 용돈은 지급 안 하니까 따로 벌든지 부모한테 받든지 알아서 하래.]

[와…… 쩐다. 나 나이 35살인데 입학 가능한 부분이냐?]

[연령도 안 따진다네?]

[나 지원한다.]

[나도.]

[음…… 나 같으면 우리나라가 만들 학교에 입학할 것 같아. 그게 말도 편하고 더 낫지 않을까?]

[미쳤냐. 세계 최고 각성자가 직접 운영하는 곳을 놔두고 왜 다른 델 가?]

[어차피 얼굴 보기도 힘들걸.]

[개소리. 김현 능력 몰라? 카메라로 보다가 조언이라도 해주겠지. 그게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 이거야.]

[맛집이든 학원이든 원조가 최고지.]

[암, 암.]

여론은 호의적이다. 더불어 김현이 각성자들을 살해했다는 사실도 어느새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마왕의 영상과 용사 육성 계획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때, 김현은 모가디슈 앞바다에 나와 있었다.

'넓이가 어느 정도여야 할까?'

당초 계획보다는 다소 축소되었다. 전 세계의 모든 각성자를 육성하는 시설에서, 일부만 육성하는 시설로 변했으니.

그래도 너무 작게 만들면 그것도 곤란하다. 김현의 구상에서 학원 도시는 단순히 학교의 역할만 수행하는 것이 아닌, 무법성 원정의 출발지로 기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 정도로 하자.'

이만하면 충분하지 싶다.

모양은 간단하게 원형. 반지름을 25 킬로미터로 하면 제주도보다 조금 더 넓은 인공 섬이 된다.

'아니지.'

관리하기 어렵게 왜 원형으로 만들어?

그냥 정사각형으로 만들자. 그래야 구역 할당하기도 쉽고 관리하기도 쉽다.

손을 내민다. 아차원 공간에서 인공 태양이 휘영청 고개를 내밀었다. 김현의 주위에 쌓여 있던 금속 덩어리들이 열기에 스르륵 녹아 액체가 되어서는 춤을 추며 인공 태양 주위를 휘어 감았다.

인공 지구와 비슷한 공정이었다. 겉모습은, 그리고 기능은 전혀 다르겠지만 처음에 인공 태양을 수십 개 활용하는 것은 비슷하다는 말.

[잘 되고 있어요?]

에일리가 하품하며 묻는다.

[잘 되고 있죠. 사냥은 어땠습니까?]

[그냥 그랬어요. 무법성도 요즘엔 예전 같지 않아요.]

[그래요?]

[떠돌이들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어요. 오죽하면 지구인 반, 외계종 반이라고 하겠어요.]

[조심하라고 하세요. 괜히 무법성 지배자들한테 대들면 안 됩니다.]

[아, 벌써 몇 명 그랬다가 공개 처형 당했어요.]

[쯧……]

[어쩌면 지배자들이 우릴 찾아올지도 모르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는 없죠. 무법성을 우리가 완전히 점령하는 건 현명하지 않은 선택입니다. 제가 다른 각성자들에게 다시 주의를 주지요.]

무법성의 지배자는 8성 떠돌이. 자신의 영역을 확고히 한 탓에 다른 차원계를 침공하는 일은 없어졌다. 대신 자기 영역을 빼앗길 것 같다고 생각하면 죽을 각오로 반항할 것이다.

김현은 무법성을 언제든 빼앗을 수 있다. 그러면 실익이 없으니 그렇게 하지 않을 뿐이다. 차라리 적당히 거래해서 사냥터 및 무역 거점으로 써먹는 게 훨씬 낫다.

에일리가 재잘거리며 다가왔다. 짊어진 차원 가방에서 뭔가를 탈탈 털어냈다.

각종 외계 금속과 토양, 소재들. 인공 섬에 들어갈 물품이었다.

손짓할 때마다 뼈대가 생기고 서로 얽힌다. 그것이 벌써 바다 가득 펼쳐졌다. 에일리가 신기하다는 듯 그걸 보다가 지나가는 어조로 입을 연다.

"피터 얘기는 들었어요?"

"아뇨. 요새 뭐 한답니까?"

"기가 막혀서 참. 학교 다닌대요."

"학교요? 아, 원래 다니던 고등학교?"

"아뇨. 아예 전학 갔어요. 얼굴도 바꾸고, 이름도 바꾸고요. 영육 개변한 거 못 알아보게 공을 엄청 들였다니까요? 참, 지금 뭐 하는지 알아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자, 에일리가 짤랑짤랑 웃음을 터뜨렸다.

"미식축구 쿼터백 한대요! 푸하하!"

"허, 각성자가 스포츠 경기 참가하는 건 금지되지 않았습니까?"

당연한 일.

순수한 신체 능력이 아닌 성혼 능력으로 승패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서 많은 이들이 스포츠 업계에서 퇴출당했다.

그런 만큼 스포츠 선수들의 인기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간단한 성혼 한두 개만 각성해도, 범접할 수 없을 것 같던 유명 스포츠 선수보다 더 뛰어난 기록을 내는 세상이다. 대신 대중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차원 격투. 김현의 차원 전장을 활용하여 흉험한 격투를 벌이는 그곳에.

무기 사용도 허가된다. 실로 21세기의 콜로세움이 따로 없었다. 다만 로마 제국의 콜로세움과 다른 점은 죽는 자가 없다는 것. 고위 치유 계열 각성자가 상주하며 목이 잘려도, 머리가 터져도 즉석에서 얼린 후 치유해 버렸으니까.

"각성자 아닌 척 하나 봐요. 하긴, 피터 능력이면 그런 건 쉽죠."

"우주의 빛 성혼도 최상급이니까요."

"피터도 우리랑 같이했으면 좋은데, 가끔은 아쉬울 때가 있어요."

"피터 선택이니 존중해야죠. 이러다 우리 학교 학생으로 들어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에이, 설마요."

"두고 봐야죠. 그런데 쿼터백이면 섹시한 여친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미국 영화 보면 대부분 그렇던데요."

"흐흥."

에일리가 기묘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게요. 여자애 하나 끼고 있더라고요."

"잘 살고 있네요."

"뭐, 자기가 원하던 삶을 얻은 셈이죠. 으휴, 7성 각성자씩이나 됐으면서 원하는 게 학교 짱이라니…… 조금 어이가 없네요."

에일리는 괜히 심통을 부렸다.

처음 피터가 합류했을 때 보였던 호감 때문일까? 어차피 받아들일 것도 아니었으면서 떨떠름해 하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재미있었다.

그래도 다행.

서경태의 죽음을 완전히 떨쳐버린 것 같으니……

"다른 약한 애들 때리고 다니지나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러진 않더라고요. 너드라고 놀림당하는 애들 있으면 감싸 주기도 하고 그러던데요?"

"하긴, 인성이 나쁜 친구는 아니었어요."

"그랬으면 벌써 사단 났죠."

7성까지 같이 가지도 못했을 거고, 김현이 순순히 놔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동안 피터를 추억하다가 헤어졌다. 인공 섬에 막대한 자원이 들어가는 만큼, 에일리는 무법성을 분주히 오가며 자원을 모아오고 있었다.

에일리 다음으로는 사브리나가 방문.

자원을 쏟아붓더니, 평소와 다르게 바로 가지 않고 김현의 주위를 얼쩡거린다.

"왜 그래? 할 말 있으면 해."

"사령관님, 제 동생들에 대해서입니다만……"

"응, 왜?"

"자질 검사 장치로 검사하니 둘 다 상급 자질이 나왔습니다."

"그래? 그럼 초등부에 입학시켜."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은이도 이번에 초등부에 입학하니까 그게 낫겠지."

성혼을 각성하기 가장 좋은 것은 10대 초반에서 20대 후반까지다. 하지만 이미 성혼을 각성했다면 빠른 관리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각성자 초등학교도 운영하게 되었다.

사브리나의 얼굴이 확 펴졌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때 되면 내가 한 번 정도는 봐주지."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뭘. 사브리나한테 도움 받고 있는 것도 많은데 그 정도는 해줘야지. 두 녀석이 하은이랑 놀아줘서 고마운 것도 있고."

"감사합니다!"

인공 섬 건설은 순조로웠다. 자질 검사 장치 생산과 보급도 그랬다.

몇 번은 범죄자들이 자질 검사 장치를 탈취하는 일이 있었다. 김현은 친히 찾아가 범죄자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다. 몇 번 그렇게 반복하니 자질 검사 장치를 더 손대지 않게 되었다. 차라리 은행을 털면 털었지, 자질 검사 장치를 털면 안 된다는 인식이 전파된 것.

1년이 지나고, 첫 입학식이 인공 섬 용사 시에서 열렸다.

100만 명.

용사 시의 1기 입학생 숫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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