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더 소울(The Soul) - 선택받은 이들(1)
영혼의 부름.
그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
우리는 그들을 ‘소울러(Souler)’라고 부른다.
@ 선택받은 이들.
“고생하세요.”
건은 오늘도 고생스러운 마지막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끝냈다. 새벽에는 물류센터에서 상, 하차 일을 하고 오전에 잠시 눈을 붙인 후 일어나서 오후엔 피시방에서 일하고 밤에는 건물 청소일을 한 후 다시 물류센터로 직행하는 피곤한 삶.
이렇게 살아온 지도 벌써 삼 년째였다.
스물한 살에 군대를 제대하고 단 하루도 쉬질 못했었다. 쉴 수가 없었다. 고아에 최종학력도 고졸밖에 되지 않던 그가 이 세상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이렇게 미친 듯이 일이라도 해야 했다.
‘좀 일찍 끝났는데…… 오늘은 사우나라도 들렀다가 고시원으로 갈까?’
건에게는 아주 가끔 들리는 사우나가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사치의 전부였다.
집에 가는 길에 있는 24시간 사우나에 들른 건은 사람이 별로 없는 새벽 시간인데도 굳이 구석 쪽으로 가서 옷을 벗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그의 오른쪽 어깨에 커다랗게 새겨진 한 개의 문신 때문이었다.
사실 정확히는 문신이 아니었다. 처음 갓난애로 고아원에 맡겨졌을 때부터 어깨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은 문신처럼 피부에 생긴 게 아니라 피부 자체가 색이 변해서 만들어진 그림이었다. 피부과 의사가 건에게 그렇게 얘기해줬던 것이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생김새는 영락없는 문신이라는 게 문제였다.
다리가 세 개 달린 희한한 모습의 새…… 건은 어릴 때 이게 무슨 새인지 몰랐었지만 크고 나서 여기저기 인터넷을 찾아본 결과 이 새가 고대 전설 속에 등장하는 삼족오(三足烏)라는 걸 알게 되었다. 왜 삼족오가 자신의 어깨에 아주 어릴 때부터 새겨져 있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이 문신 아닌 문신 때문에 건은 사우나에 오면 늘 구석으로 향했다.
건은 185㎝의 큰 키와 아르바이트로 다져진 잔 근육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생긴 얼굴까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호감형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등 뒤의 삼족오 문양이 눈에 너무 띄었기 때문에 사우나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건에게 가까이 오질 않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거의 없는 사우나에서 땀을 좀 빼고 난 건은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다시 고시원을 향해 걸어갔다.
늘 그렇듯이…… 해가 뜨기 직전의 새벽녘 거리는 한산했다.
적어도 조금 전까지는 그랬었다.
꽈과광!
건은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듯한 폭발 소리를 듣곤 깜짝 놀라 바닥에 엎드렸다.
‘뭐, 뭐야? 가스 폭발인가?’
건은 바닥에 엎드린 상태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주변에 가스가 폭발한 것 같은 흔적은 없었다.
‘뭐지? 어디서 들려온 소리…….’
건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보며 갑자기 들려온 폭발 소리가 어디서 들려온 것인지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다시 한 번 폭발소리가 들렸다.
꽈과과과광!
이번에는 더 가깝게 들려왔다. 허공…… 폭발소리는 하늘 위에서 들려왔다.
“헉!”
소리에 이끌려 하늘을 올려다본 건은 깜짝 놀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서…… 한 사람이 빠르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콰과과광! 쩌저저적.
하늘에서 추락해 왕복 4차선 도로 한가운데로 떨어진 남자는 아스팔트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 신기한 광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도로로 떨어진 남자를 따라 허공에서 또 한 명의 남자가 떨어…… 아니, 천천히 내려왔다. 그 남자는 마치 허공을 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건은 도저히 자신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 광경들이 혹시 꿈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엎드려 있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운은 이게 절대 꿈이 아니라는 걸 생생하게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가문 중 하나인 ‘백호(白虎)’ 가문의 후예가 나 같은 소속도 없는 하찮은 사람을 이렇게 괴롭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바닥에 먼저 떨어졌던 중년의 남자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힘겹게 일어나 자신을 따라 내려온 흰색 장발이 인상적인 젊은 남자를 향해 얘기했다.
“……애초에 당신이 깨울 수도 없는 영혼주(靈魂珠)를 욕심냈던 게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죠.”
영혼이 봉인된 붉은 구슬. 그것은 영혼이 담긴 단단한 그릇과 같은 것이었다.
“깨울 수 없는 영혼주라고 해도 결국 찾아낸 건 난데 그게 무슨 문제가 된다는 건가?”
“그걸 당신이 그냥 가지고만 있으려고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하지만 당신은 그걸 외국으로 빼돌리려고 했다는 게 문제죠. 영혼주 밀반출이 얼마나 심각한 죄인지는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빼돌리려고 했다는 정황만으로 이러고 있다는 걸 잊었나? 정작 내가 진짜로 빼돌리려고 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한(韓)을 수호하는 네 가문 중 백호가 이 세상의 규칙을 책임지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너무하는 거 아닌가?”
중년의 남자는 끝까지 인정하지 않을 기세였다.
어차피 상대에게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끝까지 우겨서 이 위기를 벗어날 생각이었다.
“너무한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봉인이 풀리지 않은 삼(三) 등급 영혼주가 국외로 반출되는 것보단 이렇게 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요.”
백발의 젊은 남자는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얘길 했다.
이쯤 되자 다급해지는 건 중년의 남자였다.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뭔가 다른 수단을 취해야 했다. 하지만 실력 면에서 완벽하게 백발 남자에게 뒤처졌기 때문에 도망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나?”
중년의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며 물었다.
“순순히 영혼주를 반납하고 밀반출 혐의를 인정한 후 ‘염옥(炎獄)’에서 죗값을 치르면 최악의 상황은 피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망할 얼음장 같은 새끼…… 뭐? 염옥에서 죗값을 치르라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선 단 하루도 있을 수 없다.’
중년의 남자는 절대 염옥에는 가질 않을 생각이었다.
차라리 가능성이 희박할지라도 다시 한번 도주를 시도해보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다시 한 번 도망쳐보자.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순순히 염옥에 들어가는 것보단 백 배는 나을 거다.’
중년의 남자는 도망칠 기회를 엿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눈이 반짝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원래는 여기에 있을 수가 없는 한 존재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바닥에 엎드려 도로 쪽을 바라보고 있던 건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구나!’
중년의 남자는 건을 발견하자마자 곧장 건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팟!
백발의 젊은 남자는 갑자기 중년의 남자가 움직이자 서둘러 그를 저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고 해도 바로 옆으로 달려드는 중년의 남자를 막을 순 없었다.
“악! 살려주세요!”
중년의 남자는 오른팔로 건의 목을 휘감으며 건을 방패처럼 자신의 앞에 세웠다.
“자…… ‘경계(境界)’를 수호하는 수호자 나리께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시려나? 이 꼬마 녀석이 어떻게 경계 안으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방을 수호하는 사대가문의 일원이라면 처음 경계 안으로 휘말려 들어온 ‘선택받은 자’를 그냥 무시할 순 없겠지?”
경계는 그들이 살아가는 특별한 세상이었다. 그곳은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단 한 발자국 차이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보통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그 한 발자국을 못 넘었다. 하지만 선택받은 자들은 틀렸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따라 언젠가는 그 한 발자국을 넘어 경계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하는 짓이 역시 ‘유령(幽靈)’답군요.”
경계에 속했지만, 경계의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간들을 흔히 유령(고스트)이라고 불렀다. 그런 의미에서 중년의 남자는 전형적인 유령이라 할 수 있었다.
“하하하하, 나 같은 유령들은 규칙을 강요하는 걸 가장 싫어하거든. 그래서 말인데…… 어디 한 번 나를 계속 추격해보시지?”
스윽.
중년의 남자는 품에 있던 붉은색 영혼주를 꺼낸 후 곧장 그것을 건의 정수리에 찔러넣었다.
스르르륵.
빠르게 건의 정수리로 파고들어 사라지는 영혼주. 원래는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 받아들여야 하는 영혼주였지만 중년의 남자는 강제로 다짜고짜 건의 몸에 영혼주를 밀어 넣었다.
‘크으,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나도 못 먹을 떡이니까. 아무도 못 먹게 되면 그나마 덜 아깝겠지.’
무려 삼 등급의 영혼주였다.
그걸 이제 갓 경계에 들어온 건에게 강제로 주입했다. 그렇다면 결과는 뻔했다. 영혼주 그리고 건, 둘 다 무사할 수가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악.”
순간 건은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중년의 남자는 그런 건을 백호 가문의 후예에게 던진 후 그대로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나갔다.
파팟.
백발의 젊은 남자는 건을 받은 후 곧장 그 중년의 남자를 추적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정작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젠장…….”
도주하는 중년의 남자를 잡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선택받은 자를 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살릴 수 있을지 장담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받은 자들은 그만큼 중요했다.
결국, 잠시 고민하던 그는 추격을 포기했다.
‘……그나저나 살릴 수 있을까?’
갓 ‘선택받은 자’들은 최하등급인 구(九) 등급 영혼주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데…… 무려 삼 등급 영혼주였다.
아직은 정신력 자체가 인간에 가까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칫 영혼주에게 거꾸로 잡아먹힐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눈앞의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원초적인 영혼의 본능만 지닌 ‘혼마(魂魔)’가 탄생할 수도 있었다. 삼 등급 영혼주가 혼마가 된다면? 그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클 수 있었다.
‘이 망할 새끼 지가 살겠다고 이런 미친 짓을 해? 나중에 잡히면 넌 영원히 염옥에서 못 나올 줄 알아라.’
백발의 젊은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건의 머리에 양손을 가져갔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외부에서 최대한 건의 정신을 보호해 영혼주에게 잡아먹히는 걸 막아보는 것뿐이었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이 녀석이 삼 등급 영혼주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혼마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백발의 젊은 남자는 최소한 혼마가 탄생하는 건 막을 생각이었다.
삼 등급 영혼주와 선택받은 자를 잃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삼 등급 영혼주가 혼마가 되는 것보단 차라리 그것이 나았다.
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칠흑의 공간.
건은 그 공간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당연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공간의 저편에서 누군가 건을 향해 말을 걸어왔다.
“……처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는데 겨우 이런 애송이 꼬마인 건가? 난 살아 있을 때도 죽어서도 인복(人福)은 지지리도 없구나.”
“누, 누구시죠?”
건은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냐고? 내가 누구냐고? 크하하하하, 그래 잘 물었다. 난 대무신(大武神) 척준경님이시다. 이 순간을 위해 영혼석(靈魂石)과 계약하고 무려 구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기다려왔는데…… 겨우 애송이 꼬마나 만난 인복이 지지리도 없는 무인 척준경님이시기도 하다.”
“척준경? 그게 누구죠?”
건은 공부를 썩 잘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고려 시대 때 무신이라고 불렸던 척준경이 누군지 몰랐다.
“크아아아아아! 미치겠군. 안 되겠다. 그냥 내가 너의 육체를 그냥 가져야겠다. 더는 이 안에서 기다릴 수가 없을 것 같다.”
척준경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이 자신이 꼬맹이의 육체를 가져서라도 다시 세상에 나가려고 했다. 물론 이건 최초 영혼석과 한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였지만 척준경은 더 기다릴 순 없었다.
“잠, 잠시만요!”
상대가 육체를 가져간다고 하자 건은 급격히 당황했다.
“왜?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게냐?”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죠? 전 왜 여기에 있고 당신은 또 왜 제 육체를 가져가겠다고 하는 거죠?”
“내가 그 복잡한 경계의 세상에 대해 설명해주길 바라는 것이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난 그렇게 친절한 성격이 아니다. 그저 넌 감당하지 못할 걸 얻은 게 죄라고 생각하면 된다.”
척준경은 막무가내였다.
그는 살아 있을 때의 성격 그대로 일단 일부터 저지르고 볼 생각으로 천천히 건을 향해 다가왔다.
스르르르륵.
건은 칠흑과 같은 어둠이 갈라지는 느낌이 나면서 뭔가 거대하고 위험한 존재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아, 안돼…….’
뭐가 뭔지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건은 이대로 자신의 육체를 그 이상한 존재에게 빼앗길 순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건은 뭔가를 할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마음속으로 강하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거대한 존재를 거부했다. 아주 간절하게…… 그 존재를 막았다.
투우웅!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갑자기 그 거대한 존재가 건의 앞에서 멈춰 섰다.
“응? 뭐야?”
척준경은 갑자기 자신을 막아서는 투명한 벽 같은 걸 느꼈다. 이 공간에 벽 같은 게 있을 리는 없었다.
“……설마 저 녀석이 만든 벽이라고? 이제 갓 경계에 들어선 걸로 보이는 애송이 꼬마가 여기서 벽을 만들었다고?”
척준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