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3화 (3/175)

# 3

더 소울(The Soul) - 선택받은 이들(3)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죠.”

건 때문에 어제 있던 예약 손님을 모조리 놓친 백무결은 오늘 있는 예약 손님만은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표정으로 빠르게 건의 고시원 방을 나갔다.

백무결이 나가고 건은 한동안 멍하니 자리에 앉아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하늘을 날아다니던 이상한 사람들.

자신의 머리에 뭔가를 쑤셔 넣었던 중년인.

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뿌옇게 흐려진 기억.

철학원을 하는 백무결이 얘기해준 경계란 세상.

이 모든 걸 제대로 정리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후…… 모르겠다. 일단 씻고 나가자.”

건은 방에 걸려 있던 시계를 보고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상한 상황에 휘말린 건 확실해 보였지만 지금 당장은 무단결근을 한 아르바이트가 더 걱정이었다.

스륵.

건은 티셔츠를 벗고 침대 옆에 붙어 있던 작은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수를 하는 건. 그런데 건의 오른쪽 어깨에 새겨져 있던 삼족오…… 그 삼족오가 전과 다르게 살짝 변해 있었다.

정확히는 삼족오의 세 개의 다리 중 하나가 붉은색으로 물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건은 이런 변화를 알지 못했다. 그는 지금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에 어떤 핑계를 댈지 그걸 고민하느냐고 정신이 없었다.

* * * *

꿈과 같은 이상한 일들이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갔지만 정작 건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똑같이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고 똑같이 고시원 방에서 쪽잠을 잤다.

백무결이 얘기했던 경계란 세상은 특별히 느껴지질 않았다.

그렇게 열흘 정도가 지나자 건은 경계란 세상 자체에 대해 잊어버렸다.

사는 게 워낙 고되다 보니 그런 걸 일일이 기억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계속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 보통 사람이라면 지쳐서 나가떨어졌을 만도 했건만 건은 특유의 긍정적인 성격으로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루…… 건은 오늘도 물류센터 일을 끝마치고 자신의 고시원 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렇게 열심히 모았는데도 겨우 이 년 치 대학등록금밖에 못 모았네. 진짜 대한민국 대학교들…… 대단하다.’

건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면서 제일 첫 번째 목표를 대학교 입학으로 정해놓고 있었다.

언제까지 밑바닥 인생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를 나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게 건이 가지고 있는 소박한 꿈이었다.

일단 목표는 2년 동안 대학교에 다닐 수 있는 학비와 약간의 생활비를 버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제 조금만 더 고생하면 목표를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표를 채운 후에는 수능을 다시 볼 생각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힘내자!’

건은 자신을 향해 힘차게 파이팅을 외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건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스으으으으.

뭐랄까?

선을 넘는다고 해야 할까? 왜 그런지 모르지만, 건은 자신이 일정한 선을 넘어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귓가에 얘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날 좀 봐.’

간절하게 얘기하는 귀신.

‘여기야! 여기!’

관심을 끌려고 발악하는 귀신.

‘어서 와. 여기는 처음이지.’

벽에 기대고 서서 느끼하게 얘기하는 귀신.

여러 종류의 잡스러운 귀신들이 건에게 말을 걸었다.

“뭐, 뭐지?”

마치 속삭이듯 얘기하는 수많은 존재. 그리고 안개가 낀 듯 흐리게 변하는 거리.

순간 건은 백무결이 얘기했던 경계란 곳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게…… 경계인 건가?’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신기하네. 정말로 그의 말이 사실이었어.”

건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경계에 들어선 순간 세상엔 마치 자신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경계 안쪽 세상은 모습만 현실과 똑같이 생겼을 뿐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마치 같은 공간이 두 개로 나뉘어 경계와 경계가 아닌 공간으로 겹쳐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건은 천천히 경계 안의 세상을 걸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와중에도 건의 귓가에는 온갖 잡귀들이 마구 속삭여 댔지만, 건은 백무결의 조언을 잊지 않고 그것들의 말을 철저히 무시했다.

‘그러니까 이 공간이 현실의 공간과는 다른 공간이란 뜻이지?’

쾅쾅. 삐이익, 삐이이익.

건은 길가에 세워두었던 자동차를 발로 차보았다. 자동차는 당장에 찌그러졌고 경보음마저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았다.

“정말 웃긴 곳이네.”

건은 슬쩍 웃으며 계속 가던 길을 걸어갔다.

‘근데 뭐 특별히 위험해 보이진 않……,’

건은 경계 안이 특별히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크르르르르릉.

“헙.”

갑자기 들려온 오싹한 으르렁거림.

순간 건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커어엉!

그곳엔 기괴한 모습을 한 커다란 개가 한 마리 있었다.

머리에는 대못이 몇 개 박혀 있었고 몸에서는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꼬리는 거의 다 잘려나가 있었고 다리에도 못이 듬성듬성 박혀 있었다.

보통의 개라면 건이 무서워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나타난 개는 조금 많이 달라 보였다.

‘설마…… 저게 그 수귀라는 놈인가?’

건은 또다시 백무결이 해줬던 말이 떠올랐다.

“아, 그리고 앞으론 조금 위험한 일이 많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뭐, 아직 맹약도 맺지 않은 소울러를 공격할 존재는 기껏해야 동물의 육체를 차지한 수귀(獸鬼)들 정도뿐이지만 아무리 약한 놈들이라고 해도 지금의 건님에겐 위험할 수도 있죠. 어쨌든 뭔가 위험할 거 같으면…… 뛰세요. 열심히 뛰어서 잠시라도 경계에서 벗어나세요. 그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떠오른 그 순간.

건은 곧장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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