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5화 (5/175)

# 5

더 소울(The Soul) - 경계를 살아가는 방법(2)

분명 대략 그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어린애였다.

“그나저나 형은 도대체 무슨 깡으로 경계를 그렇게 활보한 거야? 아직 맹약도 맺지 않은 거 같고 심지어 혼(魂)도 단련하지 않은 거 같은데…… 인도자(引導者)한테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봉혼(封魂)이라도 해야 한다고 안 배웠어요?”

건은 눈앞의 꼬마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 봉혼? 그게 무슨 말인데? 미안한데…… 난 지금 네 말이 하나도 이해가 되질 않아.”

“맙소사! 그럼 형이 알고 있는 건 뭐예요?”

“내가 아는 건…… 그냥 여기가 경계라는 것과…… 경계는 특별하다는 거 정도뿐이야.”

“헐…… 형, 도대체 누가 인도자에요?”

“인도자? 그게 뭔데?”

“쉽게 물어볼게요. 형이 경계에 들어왔을 때 누굴 제일 처음 만났어요?”

“아! 처음 만난 사람. 그 사람은 아마 이름이…… 아, 백무결. 무결점 철학관인지 뭔지를 하는 백무결이란 사람이었다.”

건은 어렵지 않게 백무결의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맙소사! 또 그 엉터리 점쟁이 백무결이 사고를 쳤네. 에휴, 건망증 대마왕 백무결……. 정말 내가 못 산다 못 살아.”

꼬마는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있죠. 인도자가 선택받은 자를 제대로 이끌어주질 못했으니 이런 일이 생긴 거고 덕분에 난 백무결 그 망할 인간이 못한 인도자의 역할을 지금 여기서 하게 생겼잖아요.”

“그, 그래?”

건은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휴우, 일단 잘 들어요. 형이 경계에 들어온 이상, 형은 자신을 스스로 지켜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맹약인데…… 이건 처음부터 쉽게 되지 않는 것이니까 좀 나중으로 제쳐놓더라도 최소한 혼은 단련해야 해요.”

“혼? 그게 뭔데?”

“혼은 말 그대로 형의 영혼을 뜻해요. 우리와 같은 강령사(소울러)들은 보통 사람과 다르게 영혼 자체를 단련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렇게 혼을 단련하면 일반 사람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죠.”

꼬마는 천천히 이 세상에 대해서 다시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확실히 대충대충 설명하고 후다닥 떠났던 백무결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설명이었다.

“조금만 더 알기 쉽게 설명해줘 봐.”

“으음…… 형 무협영화 같은 거 본 적 있어요?”

“응, 본 적 있어.”

“그럼 거기에 무인들이 몸속에 내공을 쌓아 그 공력으로 화려한 무공을 펼치는 걸 본 적 있죠? 그거랑 똑같아요. 혼, 그러니까 형이 영혼이라고 알고 있는 그것을 단련하면 형의 영혼은 계속 강해져요. 그리고 형은 그 강해진 영혼의 힘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게 되는 거예요.”

“대충 이해는 되는데…… 도대체 영혼을 어떻게 단련한다는 거야?”

“그것도 무협영화에 나오는 무인들과 비슷해요. 영혼을 단련하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해요. 하지만 결국 결과는 형이 얼마나 노력하고 또 얼마나 재능이 있느냐에 따라 가장 많이 달라져요.”

“하지만 난 단련하는 방법 자체를 알지 못해.”

“에휴, 당연히 그렇겠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형은 어쩜 굉장히 희귀한 경우일 수도 있어요.”

“희귀한 경우?”

“네, 보통 경계에 들어오는 선택받은 자는 대를 이어 나타나곤 해요. 이쪽 세상에서는 선택받은 자가 될 가능성을 지닌 혈통을 영맥(靈脈)이라고 부르는데 그 영맥의 규모가 크면 하나의 특별한 가문이 되기도 하지요. 형이 제일 처음 만났던 백무결이란 사람도 그런 특별한 가문 출신이에요.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게까지는 크지 않아요. 그저 직계자손들에게만 근근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럼 난 뭐지? 난…… 가문 같은 건 없는데.”

“그래서 제가 형을 희귀할 수도 있다고 한 거예요. 아주 가끔…… 전혀 경계와 상관없는데 선택받은 자가 되는 이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죠. 한 영맥의 뿌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력한 영혼을 타고날 수밖에 없거든요.”

“내, 내가 재능이 뛰어나다고?”

“물론 무조건 그런 건 아니에요. 영맥의 뿌리가 되었다고 해도 영맥 자체가 미약한 경우가 꽤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영맥이 너무 미약해서 아예 영맥이 후대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리고 사실 어쩜 형도 모르는 형의 조상 중에 영맥을 타고났던 분들이 계실지도 몰라요. 이건 복잡한 조사를 하지 않는 이상 확실히 확인할 수 없어서 사실 형이 진짜 영맥의 뿌리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은 편이에요. 어쨌든 그런 것과는 별개로 형 같은 경우는 이미 경계에 너무 노출돼서 봉혼조차 불가능할 텐데…… 그게 문제네요.”

“아까부터 계속 봉혼, 봉혼 그러는데 그건 뭐야?”

“봉혼은 한 마디로 아직 준비되지 않은 강령사들의 혼을 임시로 봉인해서 당분간 경계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는 거예요. 대부분 인도자가 해주는데…… 형 같은 경우는 인도자 자체가 하자가 많은 사람이라 이런 고생을 겪고 있는 거죠.”

“……백무결.”

건은 살짝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꼬마의 얘길 듣고 있다 보니 백무결이 자신에게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대 영맥 중 하나인 백호가문에서 어떻게 그런 정신없는 강령사를 배출했는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그 형은 오래전부터 명문 출신이면서도 사고를 워낙 많이 쳐서 이젠 백호 가문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소문난 사람이에요. 그러니 형도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은 결국 하나에요. 형이 혼자 혼을 단련하는 수밖에 없어요.”

“혼자?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건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가능하긴 해요.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혼을 단련하는 건 결국 운동하는 것과 비슷해요. 운동은 누구라도 할 수 있죠. 하지만 체계적인 방법으로 운동할 수 있다면 같은 시간을 운동해도 훨씬 효과가 좋다는 것 역시 사실이죠. 여기서 체계적인 방법이 제가 위에서 얘기한 영혼단련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영혼단련법이라…… 그냥 네가 기본적인 것만 알려주면 안 돼? 난 그냥 경계에서 위험하지 않을 정도만 단련하면 되는데…….”

“형 진지하게 얘기하는데 함부로 남의 영혼단련법을 궁금해하지 마세요. 그건 영맥의 비밀과 같은 것이라 이쪽 사람들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에요.”

꼬마는 나이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표정으로 건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일단 경계에 들어온 이상 적당히 살 생각은 버리시는 게 좋아요. 아까 형이 봤던 그 괴물은 경계에선 괴물 측에도 끼지 못하는 놈이에요. 그놈보다 더 위험한 놈이 언제 형 앞에 나타날지 아무도 몰라요.”

꼬마의 경고에 건의 표정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세요. 조금만 혼을 단련해도 어지간한 놈들은 어렵지 않게 처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난 정말 어떻게 혼을 단련해야 하는지 아예 몰라.”

“혼을 단련하는 요령은 제가 간단하게 설명해드릴게요.”

“조금 전에는 안된다고 했잖아?”

“기본적인 원리 같은 것만 알려드릴 거라 상관없어요.”

“휴, 고맙다.”

“형은 절 만난 걸 큰 행운으로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예요. 보통은 자신과 같은 영맥이 아닌 이들한텐 이런 것조차 알려주지 않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를 안 했네요. 전 적홍가(赤紅家) 출신의 홍수민이라고 해요.”

“반갑다. 난 백건이야. 그런데 넌 도대체 몇 살인 거니?”

건은 수민의 나이가 궁금했다. 보이기엔 12살 정도로 보였지만 말하는 건 도저히 11살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형은 이것도 모르겠구나. 전 열여섯 살이에요. 참고로 혼을 단련하면 단련할수록 노화(老化)가 점점 더 느려져요. 저 같은 경우는 일곱 살에 경계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꾸준히 혼을 단련한 덕분에 실제로는 열두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죠. 이것도 뭐 나름 혜택이라면 혜택일 수 있어요.”

“그건 나쁘지 않네.”

“이렇게 혼을 단련하면 형 자신한테도 나쁠 게 없어요. 그러니까 열심히 노력하세요.”

“그런데 혹시 그 영혼단련법이란 거 어디 가서 구할 수는 없는 거야?”

“구할 수야 있죠. 하지만 남에 것을 강탈하지 않는 이상 결국 구할 방법이라곤 돈을 주고 사는 것뿐인데…… 전에 들으니까 별것도 아닌 영혼단련법이 몇억에 팔렸다고 하더라고요.”

“며, 몇억?”

건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경계에 속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건 경계란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과 특별한 힘을 지녔다는 것…… 그것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다 똑같아요. 당연히 돈에서 자유로울 수도 없죠.”

“……하지만 특별한 힘을 지녔잖아. 그럼 돈 같은 건 우스워지는 거 아니야?”

“아, 또 얘기하지 않은 게 있었네. 형, 우리 같은 강령사 또는 소울러라 불리는 이들은 경계 안에서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백 퍼센트 사용할 수 있지만, 경계를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최대 십 퍼센트 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 물론 그 정도도 대단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세상의 규칙을 무시하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는 아니죠.”

“그럼 먹고 사는 건 다를 게 없다는 거네?”

“그렇죠. 그래서 더 혼을 단련해야 해요. 그나마 우리에겐 이게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결국, 모든 결론은 혼을 단련하는 걸로 모이는군.”

“적어도 우리 같은 소울러에게는 그게 모든 물음에 답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알았다. 네 호의는 절대 잊지 않으마.”

“헤헤, 그냥 저한테 한 번 빚졌다고만 생각하세요. 아마 언젠가는 제가 그 빚을 받을 거예요.”

“그래, 그렇게 해라.”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는 허리와 목이 끊어질 듯 아팠지만 수민과 얘기하다 보니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았다.

경계는 알면 알수록 더욱 복잡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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