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6화 (6/175)

# 6

더 소울(The Soul) - 경계를 살아가는 방법(3)

* * * *

“후우…….”

이른 새벽 건은 고시원 옥상에 올라왔다. 그곳은 안전 때문에 늘 잠겨 있는 곳이었지만 건은 옆쪽에 있는 작은 창문을 통해 몰래 옥상에 올라올 수 있었다.

원래는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을 시간이었지만 건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도 그만두었다.

늘 그렇듯 돈보단 목숨이 소중했다.

‘대신 낮에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하나 더 구하면 되는 거니까.’

굳이 새벽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건 수민의 충고 때문이었다.

‘영혼은 새벽녘에 가장 뚜렷해져요. 즉, 그 시간이 혼을 단련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란 뜻이죠.’

“새벽에 일어나는 건 일도 아니지.”

보통 사람들은 몰라도 건은 새벽에 늘 깨어 있었기 때문에 별로 그 시간에 수련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혼을 먼저 느끼라고 했었지?’

수민이 건에게 알려준 건 경계에 속한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아주 기본적인 영혼단련순서였다. 수민은 그걸 마치 대단한 걸 알려주는 것처럼 계속 얘기했지만 사실 건의 첫 인도자였던 백무결이 정상적으로 일만 처리했어도 벌써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건은 대충 옥상에 낡은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눈을 감아보았다.

‘자세는 상관없고 마음만 편안하게 먹으면 돼요. 그 상태에서 자신의 몸속을 관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피부부터 시작해서 근육, 뼈까지 천천히 계속 안쪽으로 시선을 옮기세요. 그렇게 계속 자신의 몸속 깊은 곳으로 시선을 옮기다 보면 어느 순간 밝은 빛 덩어리가 보일 거예요. 그게 바로 혼입니다.’

건은 편안히 앉아서 수민이 말 한 대로 자신의 몸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엔 더 편하게 누워서 할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집중이 안 될 것 같아 그냥 편안하게 앉아서 계속 집중을 했다.

‘아마 처음에는 좀 어려울 거예요. 아무리 빨라도 최소 일주일은 노력해야 느낄 수 있을 테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세요. 늦으면 한 달 동안도 못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 늦어진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요.’

빠르면 일주일 늦어지면 한 달.

건은 대략 보름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집중하고…… 집중하고…….’

새벽녘의 고시원 옥상은 집중하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주변은 어둡고 고요했다.

덕분에 건은 아주 빠르게 집중할 수 있었다.

보통은 이렇게 집중하기까지 며칠이 걸리는 게 대부분이었지만 건은 불과 10분 정도 만에 완벽하게 집중했다.

점점 더 자기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건. 그는 차근차근 자신의 몸속으로 모든 감각을 집중시켰다.

건은 순식간에 자신의 육체를 모두 꿰뚫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육체를 모두 꿰뚫고 안쪽으로 들어가고 나니 그곳부터는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였다.

모든 빛이 차단된 곳.

그곳은 바로 건이 척준경과 맹약을 맺은 장소이기도 했다.

하지만 건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는 거침없이 무의식의 세계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무의식의 세계는 굉장히 넓었다.

바다? 하늘? 마치 그것들과 비슷했다. 그런 곳에서 자신의 영혼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단계에서만 몇 날 며칠을 보내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건은 조금 달랐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신의 영혼을 향해 내달렸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미 그는 자신의 영혼을 이곳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단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

건은 자신의 영혼으로 향하는 길을 알고 있었다. 길을 모른다면 헤매는 게 당연했지만 길을 알면 헤맬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건은 순식간에 자신의 영혼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파아아아앗!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칠흑 같은 어둠이 단번에 걷히며 하얀빛이 건을 향해 쏟아졌다.

아주 미세한 빛의 입자 하나하나가 건의 몸을 관통했고 그 순간 건은 자신의 영혼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수민이 얘기한 혼이구나!’

빛의 입자, 아니 영혼의 입자들은 그 하나하나에 모두 또렷한 기억들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건은 수천 개의 서로 다른 사진들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아아아…….”

영혼의 입자들은 건의 몸을 통과하며 또렷한 흔적을 남겼고 그것은 곧장 건의 몸 안에서 뭉치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해서 수민이 얘기한 혼은 이것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영혼이란 자신이 알지 못하는 무의식의 세계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소울러들은 달랐다.

소울러들은 무의식의 세계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영혼을 찾아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영혼의 힘을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게 만들었다.

이 과정을 거쳐야지만 진짜 소울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민이 얘기했듯이 이 과정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사실 수민이 빠르면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얘기했지만, 일주일은 대단한 재능을 지닌 이들이나 가능한 날짜였고 대부분의 소울러는 보름 이상을 노력해야 이 과정을 끝낼 수 있었다.

실제로 한 달 이상 걸리는 소울러도 적지 않았다.

물론 건은 그런 사실들을 전혀 몰랐다. 그는 그저 정신을 집중하고 전력을 다해 자신의 혼을 찾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혼을 찾은 지금…… 그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한 환희를 느끼며 조용히 정신을 잃었다.

“으으음.”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난 신비한 일 때문에 정신을 잃었었던 건은 천천히 눈을 뜨며 정신을 차렸다.

건의 느끼기에는 아주 잠깐 자신이 정신을 잃은 것 같았었다. 하지만 어느새 해가 자신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뭐야? 몇 시간이나 지난 거야?’

건은 깜짝 놀라며 주머니에 있던 휴대전화기를 꺼내보았다.

휴대전화기의 시계는 오전 11시 40분으로 되어 있었다.

“대략 여덟 시간 정도 흐른…… 헉!”

8시간 정도 흘렀을 것이라 예상했던 건은 순간적으로 시간 위에 적혀 있던 날짜를 보고 깜짝 놀랐다.

6월 16일.

건이 옥상에 올라왔을 때 날짜가 6월 15일이었으니까 무려 하루하고도 8시간이 더 지난 상태였다.

“여덟 시간이 아니라 서른두 시간이 흐른 거였어?”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리던 건은 자신이 32시간이나 정신을 잃고 있었다는 걸 확인한 순간 급격하게 배고픔을 느끼기 시작했다.

‘일단 뭘 좀 먹어야겠다.’

건은 우선 배를 채우고 다음 일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역시 SG전자 휴대전화 배터리 성능은 최고네.’

이 와중에도 또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부터 하는 건. 그는 확실히 아직 경계의 세상보단 현실 세상에 익숙한 젊은 청년이었다.

하지만 건은 정작 지금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짓을 해낸 것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아무리 빨라도 일주일, 보통은 보름…… 늦으면 한 달 이상도 걸린다는 혼을 느끼는 과정을 불과 서른두 시간 만에 끝내버렸다.

아무리 길을 알고 있었다고 해도 이 속도는 무지막지하단 말이 어울릴 정도로 빨랐다.

충격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건이 누군가의 도움으로 혼을 단련하기 시작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보다 빠르게 무의식의 세계에서 혼을 찾아 의식의 세계로 끌어낸 건.

하지만 그런 건도 자신이 찾은 영혼 뒤에 또 다른 무의식에 세계가 존재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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