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더 소울(The Soul) - 단련(3)
* * * *
스으으으.
옅은 안개와 함께 찾아온 비상식의 세계.
경계였다.
쿵, 쿵.
경계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온 한 남자는 양어깨에 걸쳐 매고 있던 두 개의 무거운 꾸러미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오늘은 좀 쓸만한 것들이 걸리려나?”
그는 두 개의 꾸러미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정말 이 짓도 인제 그만 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수호자 애들한테 걸리면 염옥에서 최소한 이십 년은 썩어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진짜 끔찍하다.’
그는 소울러였다. 칠 년 전 처음으로 경계에 들어선 이후 자신과 같은 소울러였던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8등급 영혼과 맹약을 맺은 후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상적인 소울러로 몇 년을 살았었다.
하지만 삼 년 전 그의 할아버지가 죽고 나자 그는 점점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돈의 맛을 알게 되었다. 정확히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쾌락에 빠져들었다.
처음엔 그저 소울러의 특별한 힘을 이용해 현실에서 약간 불법적인 일을 했었다. 하지만 돈의 맛을 알면 알수록 그에게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결국, 그는 계속 더 타락했고 이제는 이쪽 세계에서 철저히 금지하고 있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번만 하고 진짜 그만하자.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니까.”
그가 하는 짓은 일명 ‘영혼 낚시’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지이익.
그는 두 개의 꾸러미 안에서 차갑게 식어 있는 두 구의 시체를 꺼냈다.
‘솔직히 이젠 시체 구하는 게 힘들어서라도 그만둬야 할 거 같다.’
그는 주로 연고가 없는 노숙자들의 시체를 훔쳐오는 방법으로 제물을 구했다. 하지만 이것도 자주 하다 보니 점점 경찰들이 신경을 쓰고 있는 눈치였다.
이래저래 영혼 낚시는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시체 두 개를 꺼낸 그는 그것들을 자신이 미리 그려놓은 복잡한 그림 위에 올려놓고 뒤로 물러섰다. 이제 제물을 던져놨으니 남은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영혼 낚시를 하는 방법 자체는 별로 어렵지 않았다. 그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체와 경계 안에 존재하는 어둠의 구역만 찾아낼 수 있으면 되었다.
이렇게 시체를 경계 안에 있는 어둠의 구역에 놓아두면 알아서 방황하던 영혼들이 시체에 스며들게 되어 있었다.
그렇게 영혼을 낚는 데 성공하면 그 시체는 곧장 암괴가 되었다. 어떤 영혼이 낚이는지에 따라 암괴의 등급도 달라졌지만 대부분 최하등급인 9등급에서 7등급 정도의 암괴가 되었다.
여기까지만 성공하면 영혼 낚시는 거의 성공했다고 보면 되었다.
남은 건 남자가 직접 암괴를 사냥해서 영혼의 조각을 얻어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모은 영혼의 조각을 비싸게 팔면 모든 게 끝났다.
영혼 낚시의 장점은 헌터들처럼 발품을 팔면서 암괴들을 쫓아다닐 필요가 없었고 주로 등급이 낮은 암괴들만 나타난다는 점과 미리 암괴를 제압할 수 있을만한 준비를 해놓고 낚시를 한다는 점 때문에 헌터들처럼 실력이 좋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는 것이었다.
‘금지된 방법이란 것과 제물로 쓰일 시체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만 빼면 진짜 최고라고 할 수 있지.’
적당한 곳에 숨어서 영혼이 시체에 스며들기만을 기다리던 남자는 벌써 영혼 낚시로 상당히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그는 영혼 낚시를 할 때는 늘 ‘이젠 그만해야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돈이 떨어지면 언제나 제일 먼저 영혼 낚시를 위한 시체를 찾았었다. 이것도 중독이라면 중독일 수 있었다.
어쨌든 시간이 지나자 점점 시체들 주변에 서늘한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건 영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슬슬 입질이 오는구나.’
남자는 미리 진짜 낚시꾼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며 두 구의 시체가 누워 있는 곳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두 구의 시체 아래에서 검은색 안개가 치솟았다.
‘헉! 뭐야?’
원래는 서리가 내린 후 천천히 한 영혼이 시체를 차지하고 시체가 영혼의 영향으로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과정이 이어져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뭔가 달랐다. 달라도 아주 많이 달랐다. 적어도 그가 지금까지 수십 번 했던 영혼 낚시에서는 이런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콰직.
검은색 안개는 순식간에 마치 거대한 괴물의 입처럼 변했고 그대로 두 구의 시체와 그 시체 주변에 몰려든 영혼들을 모두 통째로 삼켜버렸다.
“이, 이런 개 같은!”
남자는 자신이 어렵게 구한 시체 두 구가 허무하게 잡아먹히자 인상을 잔뜩 구기며 곧장 그 커다란 입 모양의 검은색 안개를 향해 손을 뻗었다.
‘어떤 괴물 새끼인지는 모르지만, 너라도 잡아주마!’
그는 검은색 안개가 경계에 사는 수많은 암괴 중 하나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이 열심히 바닥에 그려놓은 술법이라면 암괴를 충분히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딜 남의 미끼를 넘봐! 잡아라, 속(束)!”
파파파팟!
남자의 명령에 따라 남자가 바닥에 미리 심어놓은 혼의 파편들이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그 혼의 파편들은 일정한 공식에 따라 심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곧장 허공에서 서로 얽히며 강력한 올가미 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촤르르르르!
그 올가미는 곧장 괴물 입 모양의 검은 안개를 휘감았다.
‘끝났군.’
남자가 바닥에 그려놓은 그림은 강력한 속박 술법(術法)이었다. 그렇기에 어지간한 암괴는 그것에 걸린 순간 절대 벗어날 수가 없었다.
이제 남은 건 그가 마무리하는 것뿐이었다.
‘몇 등급이려나? 분위기를 봐서는 낮은 등급은 아닌 것 같은데…… 이거 어쩜 오늘 진짜 대어가 낚인 것일지도 모르겠는데?’
남자는 기분 좋게 웃으며 맹약을 통해 자신과 하가 된 영혼의 힘을 끌어올렸다.
츠츠츳.
그러자 남자의 손에 한 자루의 창이 만들어졌다.
이 창이 바로 남자와 맹약으로 묶인 영혼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라 할 수 있었다.
“끝을 내…….”
드드드득!
그런데 그 순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났다. 완벽하게 술법에 당해 제압당했다고 생각했던 그 검은색 안개가 술법 자체를 통째로 삼켜버리며 자신의 거대한 본체를 드러내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바닥이 갈라지며 드러나는 엄청난 크기의 검은색 안개 덩어리.
남자는 순간 깜짝 놀라 자신의 발밑에서도 솟아오르고 있는 그 거대한 검은색 안개 덩어리를 향해 들고 있던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검은색 안개 덩어리는 마치 두 구의 시체를 집어삼키던 것처럼 몸 전체를 거대한 하나의 입처럼 만들며 남자를 그대로 삼켜버렸다.
“아, 안돼! 살려줘! 으아아아아악.”
콰드드득.
순식간에 검은색 안갯속으로 삼켜진 남자는 더 이상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더 놀라운 건 그 검은색 안개가 경계에 있는 것들을 모두 닥치는 대로 먹어버린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마지막엔 경계의 공간 자체를 집어삼켜 버렸다. 놈은 그렇게 마치 굶주린 야수처럼…… 걸리는 건 모조리 삼켜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은 만족스러운 것 같지가 않았다.
‘모자라…… 배가 고파…… 더…… 더…….’
계속해서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검은 안개. 한 가지 확실한 건 놈이 그냥 단순한 암괴 같은 건 아니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