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0화 (10/175)

# 10

더 소울(The Soul) - 카페 헤븐(1)

@ 카페 헤븐.

“너도 참 운도 없다. 어떻게 처음 만난 인도자는 소문난 건망증 대마왕 백무결이고 그다음으로 만난 사람이 생색내기 좋아하는 홍가의 꼬맹이냐.”

카페 헤븐에 출근한 건은 연희에게 자신이 할 일을 배우고 있었다. 사실 카페에서 건이 할 일이라고 해봤자 청소와 설거지가 주된 일이었기 때문에 일 자체는 별로 배울 게 없었다.

오히려 건은 그녀에게 경계에 관한 얘기들을 더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둘 다 이쪽 세계에서 유명한가요?”

“유명한 편이지. 기본적으로 둘 다 실력이 꽤 좋은 소울러들이니까. 하지만 솔직히 인도자 역할을 하기에는 둘 다 부족한 게 많은 것도 사실이야.”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그래, 그냥 재수가 없었던 것뿐이지. 어쨌든 홍가의 꼬맹이가 얘기해준 것들은 대부분 사실이야. 다만 그 꼬맹이가 빼먹은 게 하나 있는데. 맹약을 맺지 않고도 경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어. 현실 세상의 역사만큼이나 이쪽 세상의 역사도 오래됐기 때문에 수많은 편법이 만들어졌지. 예를 들자면 이런 거?”

스륵, 스륵.

연희는 손가락으로 싱크대에 묻어있던 물기를 찍은 후 그 물기를 이용해 허공에 이상한 그림을 그렸다.

복잡한 문양들이 서로 겹치며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자 놀랍게도 그 그림에서 화염이 치솟았다.

화르륵.

“헛!”

건은 그걸 보고 깜짝 놀라며 연희를 바라보았다.

“별거 아니야. 그냥 내 혼을 섞은 물기를 이용해서 허공에 간단한 화염 술법을 그렸을 뿐이야. 이 정도는 너도 조금만 연습해도 할 수 있는 거야.”

“화염 술법이요?”

“혼을 이용해서 하는 일종의 비밀스러운 기술 같은 거야. 원리는 거의 비슷하지만 여러 이름으로 불리곤 하지. 종류도 매우 다양하고 요령도 모두 달라서 이것도 영혼단련법과 마찬가지로 같은 영맥끼리만 비밀스럽게 공유하는 게 일반적이야.”

“그것도 저에겐 그림의 떡 같은 것이군요.”

“꼭 그렇진 않아. 이건 영혼단련법보단 조금 중요도가 낮아서 기본적인 간단한 기술들은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을 거야. 뭐, 원한다면 기초 정도는 나도 알려줄 수 있고.”

“정말요?”

“그래, 하지만 기초는 정말 별거 없어. 그러니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네, 저에겐 그 정도도 충분히 감사하죠.”

“네가 돈이 좀 많다면 과학이 경계의 세상과 만나며 만들어낸 수많은 장비에 대해 얘기해줬을 텐데…… 솔직히 그건 돈이 없으면 진짜 그림의 떡이니까. 나중에 혹시라도 돈을 많이 벌게 되면 그때 직접 알아봐. 생각보다 훨씬 기상천외한 것들이 많으니까.”

“과학기술이 이쪽 세상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그럼 당연하지. 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현실이나 여기나 역사는 비슷하다고…… 그러니까 이쪽 세상에서도 당연히 이 세상에 맞는 과학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이거 얘길 들으면 들을수록 더 복잡해지네요.”

“내가 얘기했잖아. 한동안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어지러울 거라니까.”

“그럼 혹시 소울러가 아닌 사람들도 그 발전된 이쪽 세상의 과학 기술로 경계의 세상에 들어올 수 있나요?”

“호오, 아주 중요하면서 날카로운 질문을 하는데? 일단 대답부터 하자면. 맞아, 들어올 수 있어. 그런 사람들을 우린 ‘외인(外人)’라 부르지. 하지만 대신 많은 돈이 필요해. 그냥 많은 게 아니라 아주 많이.”

“돈이요?”

“강제로 경계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영혼의 조각을 모아 만든 영혼의 파편이 필요한데 이 영혼의 파편이 굉장히 비싸거든. 그리고 애초에 경계라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것 자체가 쉽지 않으니까…… 실제로 선택받지 않았으면서 이쪽 세상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아.”

“그렇군요.”

“만약 네가 경계와 현실을 구분하는 선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고 경계에 들어오는지 알 수 있게 될 거야. 그만큼 선택받은 자들은 특별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휴, 모든 사람이 특별한 걸 원하는 건 아닐 거예요.”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응? 뭐라고?”

“아니에요. 그나저나 원래 이렇게 손님이 없나요?”

건이 출근한 지도 한 시간이 넘었지만, 그동안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이건 장사가 안되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가게가 망한 수준 같아 보였다.

“어제 말했잖아. 이건 부업일 뿐이라고.”

“근데 아무리 부업이라고 해도 이렇게 손님이 없는데 아르바이트는 왜 뽑으셨어요?”

“내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연희는 당연하단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왜 필요하신데요?”

“아무리 손님이 별로 없어도 카페를 비워둘 순 없으니까.”

“어차피 누나가 있잖아요.”

“이번 달까진 내가 있겠지. 하지만…… 다음 달부턴 좀 달라지거든.”

“네? 여길 그만두기라도 하시는 거예요?”

“아니, 그만두진 않아. 다만 할 일이 좀 늘어나는 것뿐이야.”

“그게 무슨…….”

“정확히 사 년 만에 사장님의 테스트를 통과했거든. 그래서 이제 나도 사냥을 할 수 있게 됐어.”

연희는 손가락 네 개를 펼치며 얘기했다.

“사냥이라면 설마…… 누나도 헌터가 되는 거예요?”

“그냥 헌터는 누구나 될 수 있지. 하지만 혼마를 잡는 프로 헌터는 아무나 될 수 없지. 나도 프로 헌터가 되기 위해서 사장님 밑에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십 년 전 소울러가 되었을 때부터 쭉 프로 헌터가 되는 게 꿈이었거든.”

“허…… 몰랐네요. 근데 솔직히 전 헌터랑 프로 헌터의 차이도 잘 모르니까요.”

“차차 알게 될 거야. 어쨌든 그래서 난 다음 달부터는 무척 바빠질 예정이거든. 그러니까 난 이번 달, 그러니까 정확히 이주 안에 너한테 카페의 모든 일을 인수인계 해줘야 해.”

“열심히 배울게요.”

워낙 아르바이트 경험이 많은 건이었기 때문에 카페 일을 배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연히 열심히 배워야지. 이 누님이 피가 되고 살이 될 많은 것들을 가르쳐줄 테니 기대하라고.”

연희는 기분 좋게 웃으며 얘기했다. 적어도 그녀는 그토록 꿈꾸던 프로 헌터로 활동할 수 있게 된 지금만큼은 한없이 착한 천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건이 모르는 한 가지 사실이 있었다.

경계의 세상에서 아이스 퀸(Ice Queen) 혹은 얼음 여왕이라 불리는 이연희. 그녀는 절대 이렇게 친절한 인물이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건은 아주 재수가 좋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의 기분이 가장 좋을 때, 그녀가 필요로 하는 자리에 있었던 것만으로 이런 행운을 차지할 수 있었다.

건을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건 정말 생각보다 훨씬 큰 행운이었다.

* * * *

건의 생활은 다시 단조로워졌다.

낮에는 카페 헤븐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영혼 단련을 했다.

특히 그는 연희에게 몇 가지 간단한 술법을 배웠다.

물론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라 전혀 특별하지 않은 술법들이었지만 불고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던 건에게는 모든 게 신기할 뿐이었다.

건은 연희에게 술법만 배우는 게 아니었다.

연희는 건에게 경계의 세상과 그곳을 살아가는 요령 같은 것도 알려주었다.

아이스 퀸이라 불리는 그녀였지만 자신의 후임자라고 할 수 있었던 건에게는 상당한 친절을 베풀어주었다.

덕분에 건은 빠른 속도로 경계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건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연희가 가르쳐주는 것들을 습득했다.

특히 건은 연희가 알려준 술법 중 일명 ‘오행술(五行術)’이라 불리는 술법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다.

물론 연희가 알려준 건 오행술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오행발현술(五行發現術)이었지만 아무리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해도 건의 재능은 범상치가 않았다.

화르륵.

건의 손바닥 위에 촛불보단 크고 횃불보단 작은 불꽃이 치솟았다.

이건 오행발현술 중 하나인 발화(發火)의 술이었다.

‘확실히 발화의 술과 유수(流水)의 술이 제일 쉽고 그다음이 수목(樹木)의 술과 백토(白土)의 술 순서로 쉽다. 가장 어려운 건 철금(鐵金)의 술인데…… 이것만 좀 더 익숙해지면 오행발현술은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군.’

오행발현술은 대단한 술법이 절대 아니었다.

그것은 오행술이라 불리는 술법을 익히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오행술을 익히기 전에 적성 같은 걸 알아보기 위해 익히는 아주 기초적인 술법일 뿐이었다.

연희는 건에게 오행발현술을 아무리 익혀도 실전에선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열심히 오행발현술을 수련했다.

연희는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건에겐 불과 물을 만들어내고 나무와 교감하고 흙의 진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건 물론이고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술법은 너무나 신기한 것이었다.

물론 만들 수 있는 불꽃의 크기는 가스레인지의 불꽃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물 역시 큰 머그잔 정도의 양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또한, 나무와 교감하는 건 아주 간단한 좋고, 싫음 정도만 느낄 수 있었고 흙의 진동은 자신을 중심으로 반경 50m 안의 진동만 느낄 수 있었다.

피부를 강철처럼 만드는 건 손바닥만 한 면적이 한계였다.

이처럼 모든 게 어설펐지만 그럼에도 건은 실망하지 않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습관이 들어 있었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고아로 자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나 자신이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 수련했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좀 더 고급의 술법을 찾거나 구해 배우려고 했겠지만, 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어차피 지금 당장 그런 것들을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온 힘을 기울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불꽃의 크기와 물의 양을 늘릴 수 있을 것 같다. 그 얘긴 곧…… 나무와 교감하는 폭과 흙의 진동을 느끼는 범위 그리고 강철화 시킬 수 있는 피부도 넓어진다는 뜻이겠지?’

건이 수련하면 할수록 아주 미세하게나마 오행발현술이 발전했다.

물론 그래 봤자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어차피 건이 당장 수련할 수 있는 건 이런 지극히 간단한 기본기들뿐이었다.

‘나도 그…… 영혼의 조각이란 걸 구할 수 있으면 좀 더 고급 술법들을 구할 수 있으려나?’

요즘 술법 익히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던 건은 좀 더 상위의 술법들을 익히고 싶었다.

하지만 상위의 술법은 익히고 싶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연희가 건에게 호의적이라고 해도 그녀 역시 건에게 상위의 술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결국, 건이 상위의 술법을 익히려면 스스로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헌터라…… 나도 헌터가 될 수 있을까?’

영혼의 조각을 떠올리자 자연스럽게 헌터라 불리는 직업이 떠올랐다.

헌터는 경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일그러진 존재’를 사냥하는 이들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헌터들 중에서도 특별한 능력으로 가장 심각하게 일그러진 존재인 ‘혼마’를 사냥하는 이들은 프로 헌터라고 불렸다.

건이 취직한 카페 헤븐의 사장 강철민과 지배인이라 할 수 있는 이연희가 그 프로 헌터였다.

‘뭐 아직 나에겐 멀고 먼 얘기일 뿐이니까.’

건은 머리를 흔들며 잡념을 털어냈다.

지금의 건은 경계라 불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게 우선인 초짜 소울러일 뿐이었다.

* * * *

그날도 건은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 카페 헤븐에 출근했다. 연희와 철민은 며칠 전부터 일 때문에 카페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카페 문을 여는 것부터 닫는 것까지 모든 건 건의 몫이었다.

그나마 건도 카페 헤븐에서 일한 지 한 달이 넘었기 때문에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었다.

특히 카페 헤븐에는 사실 손님이 별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상 건이 하는 일은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손님을 기다리며 오행발현술을 연습하는 게 전부였다.

손님은 하루에 서너 명 정도밖에 오지 않는 한산한 카페였지만 그럼에도 카페는 망하질 않았다.

그 이유는 이 카페가 다른 평범한 카페들처럼 차와 간단한 먹을 것만 파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최하급 다섯 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한 손님은 아메리카노와 함께 또 하나의 물건을 주문했다.

“개별 포장을 해드릴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알겠습니다. 물건은 주문하신 커피와 함께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영혼의 조각은 선불입니다. 오늘 최하급 영혼의 조각 시세는 하나에 구십칠만 사천이백 원이네요. 다섯 개니까 오를 곱하면…… 사백팔십칠만 천 원입니다.”

건은 한 손으로는 작은 단말기를 들여다보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영혼의 조각은 마치 금처럼 매일매일 시세가 변했기 때문에 국제 시세를 확인하는 단말기는 필수였다.

“뭐야? 또 올랐어?”

“요즘 영혼의 조각 시세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는 건 더 잘 아시잖아요.”

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젠장…… 그놈의 외인(外人)들이 늘어나는 바람에 조각 시세가 너무 올라갔어.”

남자는 질렸단 표정으로 중얼거리며 탁자에 올려두었던 작은 가방을 열었다.

원칙적으로 카페 헤븐에서는 영혼의 조각을 무조건 현금으로만 판매했다.

물론 간혹 현금이 아닌 결제 수단으로 조각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건 지극히 드문 일이었다.

“나 같은 가난하고 능력도 부족한 소울러들은 망할 외인들 때문에 점점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잖아.”

남자는 계속 투덜거렸다.

하지만 건은 남자의 말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소울러가 영혼의 조각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그 조각을 이용해 자신의 혼을 단련하려고 할 때뿐이었다.

이걸 흔히 ‘조각 수련’이라고 불렀는데 조각 수련을 할 정도라면 절대 가난하고 능력이 부족한 소울러일리는 없었다.

특히 남자는 이곳에 상당히 자주 오는 단골이었기 때문에 건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은 알고 있었다.

‘쳇, 엄살은…… 난 조각 수련이 하고 싶어도 돈도 없고 요령도 몰라서 못한다고.’

조각 수련을 하려면 정식 영혼 수련법을 알아야 했다.

하지만 건은 정식 영혼 수련법을 몰랐기 때문에 설사 조각이 있다고 해도 조각 수련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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