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더 소울(The Soul) - 카페 헤븐(2)
투덜거리던 남자는 가방에서 정확히 오백만 원을 꺼내 건에게 건네주었다.
“남는 돈은 모두 영혼의 가루로 바꿔줘.”
영혼의 가루는 조각과 다르게 등급이 낮은 수마를 잡아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영혼의 가루를 아무리 모아도 조각과 같은 역할을 할 순 없었지만 가루는 가루 나름대로 용도가 따로 있었다.
예를 들어 건이 수련하고 있는 오행술을 펼칠 때 가루를 이용해 술법을 펼치면 술법의 위력이 조금 더 강해 지곤 했었다.
이런 식으로 나름의 용도가 따로 있던 가루였기 때문에 1g(그램)에 십만 원씩 팔렸다.
“더 필요한 건 없으시죠?”
“없다. 아, 근데 요즘 이상한 소문 같은 거 못 들었어?”
“이상한 소문이라니요?”
“요즘 몇몇 소울러들이 실종된 것 때문에 청룡가(靑龍家)에서 조사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 아무래도 그런 소문을 가장 빨리 아는 이들이 헌터들이다 보니 혹시 아는 게 없나 해서.”
카페 헤븐의 사장 강철민은 아주 유명한 프로 헌터였다.
그는 대한민국에 단 다섯 명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등급의 프로 헌터였기 때문에 당연히 남자도 강철민을 알고 있었다.
금강철벽(金剛鐵壁) 강철민이라면 대한민국의 경계에 속한 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인물이었다.
“모르겠어요. 우리 사장님이 저 같은 아르바이트생에게 그런 얘길 하시는 분이 아니란 건 아저씨도 잘 알잖아요.”
“하긴 물어보려면 네가 아니라 얼음여왕에게 물어봐야겠지.”
아이스 퀸 또는 얼음여왕이라 불리는 인물은 연희였다.
그는 이 가게의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연희도 잘 알고 있었다.
연희의 말에 따르면 그는 일명 ‘역외인(逆外人)’이라 불리는 소울러였다.
역외인이란 선택받지 못했음에도 경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반대로 선택받았음에도 경계보단 현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현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경계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비록 현실에서는 경계 안에서와 달리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보통 사람보단 훨씬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게 소울러였다.
역외인들은 그 점을 이용해 현실에서 소울러의 힘을 최대한 이용했다.
정작 경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수많은 방법을 통해 회피하고 오로지 현실 생활에만 집중하는 이들…… 그렇기에 그들은 경계 안에서는 외인들보다 훨씬 더 존중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뭐, 저 아저씨 같은 역외인들 역시 나름의 방법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난 별로 저렇게 살고 싶진 않네.’
건은 커피를 만들며 슬쩍 테이블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역외인은 대부분의 소울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들은 아주 특별한 선택을 받았음에도 그 선택에 따른 의무를 뒤로하고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힘을 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인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외인들은 특별한 힘을 얻고 싶어서 스스로 노력을 한 끝에 경계에 들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역외인보다 훨씬 나았다.
‘근데 소울러 실종사건은 뭐지? 나중에 연희 누나한테 한 번 물어봐야겠다.’
건은 자기 자신도 소울러였기 때문에 소울러들이 실종되는 사건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 * * *
스으으으.
어둠의 기운이 몰려오며 순식간에 주변을 물들였다.
그리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났다.
번쩍!
허공에 붉은색 섬광이 생겨나며 순식간에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것 같은 거인(巨人)이 나타났다.
붉은 거인은 나타나자마자 먼저 주변을 둘러보며 자신의 배를 채워줄 대상을 찾았다.
당연히 놈은 암괴였다.
암괴 중에서도 상당히 상급에 속하는 혈아귀(血餓鬼)란 놈이었다.
혈아귀는 굉장히 포악한 암괴였다.
물론 암괴들은 정체성을 잃은 혼이 일그러지며 탄생한 괴물이라 본성 자체가 포악했지만, 혈아귀는 그중에서도 더욱 포악한 암괴로 이름 높았다.
특히 놈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나 굶주려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의 배를 채워줄 먹잇감을 찾았다.
혈아귀는 경계에 존재하는 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집어 먹었다.
소울러들은 물론이고 수마들까지…… 배만 채울 수 있다면 뭐든지 먹었다.
아주 정확히 말하자면 암괴들이 먹는 건 혼이라 불리는 경계의 핵심적인 기운이었지만 혼을 먹기 위해선 결국 혼을 담은 그릇도 먹어야 했기에 소울러나 수마를 통째로 잡아먹는다고 보면 되었다.
워낙 먹성이 좋은 혈아귀는 심지어 돌덩어리나 쇳덩어리도 씹어먹는다고 알려졌었다.
물론 그것들은 혈아귀의 배를 채워주지 못했지만, 혈아귀는 본능적으로 뭔가를 자꾸 먹으려고 했다.
“크르르르.”
혈아귀는 몸 색깔만큼이나 붉은 끈적끈적한 침을 흘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쭉 찢어진 커다란 입과 눈동자가 존재하지 않는 붉은 눈.
피가 흘러내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진물과 같은 붉은 액체가 흘러내리는 육체.
키는 거의 5m에 덩치 또한 컸기 때문에 혈아귀는 보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이 느껴졌다.
혈아귀는 본래 경계에 존재하는 영성(靈性)을 지닌 영혼이 모종의 이유로 일그러지며 탄생한 괴물이었다.
영혼이란 존재는 원래 티끌 하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존재였지만 너무 깨끗했기에 다른 기운에 잘 물들었다.
마치 하얀 천이 때가 더 잘 타는 것처럼 영혼 역시 쉽게 타락되었다.
타락된 영혼은 영혼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능대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 결과 일그러진 존재가 되었다.
이러한 암괴들은 그냥 놔두면 대부분 며칠 안에 영혼이 붕괴하며 사라졌지만, 등급이 높은 암괴일 경우 아주 오랫동안 경계 안에 살아남아 살육을 저지를 수 있었다.
혈아귀 같은 경우는 등급이 꽤 높은 암괴였기 때문에 평균 한 달 정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그냥 놔두면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괴물이란 뜻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등급이 높은 암괴들은 자신들의 평균 수명을 다 채우지 못했다.
그 이유는 경계의 세상에 전문적으로 암괴들을 잡는 이들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헌터라 불리는 소울러들.
그들이 있었기에 암괴들은 오랫동안 경계에 존재하질 못했다.
암괴와는 태생부터 다른 혼마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었지만 적어도 암괴는 헌터들 앞에선 그저 사냥감일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암괴를 무시해서는 안 됐다.
특히 혈아귀와 같이 등급이 높은 암괴는 그냥 놔두면 큰 소란을 일으킬 수 있었다.
혈아귀라면 헌터들 중에서도 상당한 경력을 쌓은 이들이 나서야 했다.
“영압(靈壓)이 꽤 크게 느껴져서 기대했는데 겨우 혈아귀였잖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혈아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건물 옥상에 나타난 남자.
그는 대한민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로 헌터 중 한 명이었다.
“쩝, 오늘은 혼마 한 마리 정도는 걸릴 줄 알았는데…….”
프로 헌터들이 주로 노리는 건 혼마였다.
사실 그들은 암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암괴는 그들이 아니라도 잡을 사람이 많았고 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 자체가 혼마와 차이가 컸다.
‘에휴, 요즘 혼마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니까 아쉬운 대로 이 녀석이라도 잡아야겠군.’
흑웅(黑熊)이란 별호가 붙을 정도로 덩치가 크고 건장했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들어 있던 자신의 혼을 개방했다.
파아아아!
당연히 그는 정식으로 영혼과 계약한 소울러였다.
“개방(開放)!”
남자는 자신의 혼을 개방하며 그 혼에 담긴 힘을 끌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