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4화 (14/175)

# 14

더 소울(The Soul) - 깨달음(1)

@ 깨달음.

“후우…….”

건은 천천히 호흡을 내쉬며 다리를 허공을 향해 느리게 뻗었다.

이제는 건의 전용 수련장이 되어버린 고시원의 옥상은 아주 조용했다.

시간 자체가 새벽 4시였기 때문에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윗옷을 벗고 있는 건은 하나의 조각상처럼 보였다.

단단하게 튀어나와 있는 흉근과 정확하게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는 복근.

차돌처럼 단단해 보이는 상완이두근은 물론이고 등 뒤쪽에 있는 승모근과 삼각근도 아주 잘 발달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근육은 혼력을 수련하며 자연스럽게 같이 발달한 것이었기 때문에 헬스트레이너들처럼 잔뜩 부풀린 근육이 아니라 적당히 튀어나왔지만 아주 단단하고 알찬 진짜 힘을 쓸 수 있게 해주는 근육이었다.

다리를 한껏 하늘 높이 치켜든 건은 그 상태에서 그대로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발로 땅바닥을 박차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휘리릭, 파파팟!

그리곤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며 멋진 회전 발차기를 보여주었다.

타탁.

허공에서 상당히 화려한 움직임을 보여줬음에도 건은 아주 가볍고 안정적이게 착지를 했다.

경계의 세상에 들어선 지도 벌써 다섯 달이 흘러 있었다.

처음 경계의 세상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모든 게 생소하고 힘겨웠던 건이었지만 이젠 나름 잘 경계에 적응하고 있었다.

“다 좋은데…… 어째 이게 끝이 아닌 거 같단 말이야.”

바닥에 착지한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혼을 자극해 혼의 기운을 키우고 그걸 이용해 육체를 단련한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혼이란 놈을 겨우 이렇게까지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아니야…… 내 몸속에 있는 혼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있어.’

건이 알고 있는 영혼단련법은 경계에 속한 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 정도밖에 없었다.

혼을 자극해 혼력을 키운다.

이것만큼 기본적인 상식도 없었다.

물론 모든 영혼단련법은 이 기본으로부터 시작되어 발전한 것이었지만 어쨌든 이건 사실 단련법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의 상식이었다.

그런데 건은 그 너무나도 기본적인 상식 속에서 스스로 뭔가를 깨달아 가고 있었다.

이는 오랜 경계의 역사 속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굉장한 일이었다.

‘혼을 키우면 육체도 강해진다. 하지만 혼은 단순히 육체를 강하게 하는 용도로만 쓰이지 않는다. 혼이 지닌 힘…… 혼력이라고 하던가? 이건 명확한 의지를 지닌 기운이다.’

건은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혼력을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다.

보통의 혼력을 이렇게 뚜렷하게 느끼려면 등급이 있는 영혼과 맹약을 맺어야 했다.

물론 건은 자기 자신이 맹약을 맺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소울러라면 누구나 이렇게 혼력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 힘을 내 의지대로 쓸 수 있을까? 전에 주먹에 혼력을 모았던 것처럼…… 이걸 이용해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엔 그저 호기심뿐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현실적인 방법들을 구상하는 중이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혼력을 확실히 내 의지대로만 움직일 수 있다면 지금처럼 단순히 혼을 자극해서 혼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혼력을 움직여 직접 혼을 성장시키면 되는 것이다.’

잠시 고민을 하던 건은 바닥에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그는 몸속에 있는 혼력을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가슴 언저리에 뭉쳐있었다.

건은 마치 엉킨 실타래처럼 뭉쳐있는 혼력을 확인하고 다시 생각에 빠졌다.

‘저 혼력을 어떻게 움직이면 더 크게 만들 수 있을까?’

건은 연희에게 영혼단련법의 아주 기본적인 원리 같은 걸 들을 수 있었다.

‘연희 누나의 말에 따르면 영혼단련법은 결국 자신의 몸속에서 혼력을 끊임없이 순환시켜 자연스럽게 혼력과 그것을 담는 그릇과 같은 몸을 단련시키는 것이라고 했지? 물론 이름 높은 영혼단련법들은 그 최적의 경로와 방법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걸 따라 혼력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난 그런 것 따윈 구할 수 없으니…… 결국 내가 나만의 경로를 만들어야겠군.’

건은 생각을 정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보면 지금 건이 하려는 일은 굉장히 간단한 일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건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영혼단련법을 만들 수 있다면 애초에 영혼단련법들이 그렇게 귀하게 대접받을 이유가 없었다.

흔히 일대종사(一代宗師)라 불렸던 아주 특별한 소울러들도 오랜 세월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만들 수 있었던 게 바로 영혼단련법이었다.

그런데 건에게는 당연히 오랜 세월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제 소울러가 된 지 겨우 5개월밖에 되지 않는 초짜 소울러였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 영혼단련법을 만들 생각을 했다.

무식하면 용감한 걸까?

하지만 아무리 무식해서 용감하다고 해도 생각하는 것과 만드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컸다.

‘그럼 혼력을 어떻게 움직여야 혼력과 몸이 효과적으로 단련될까?’

자칫 혼력을 잘못 움직였다간 오히려 몸이 상할 수도 있었다.

괜히 영혼단련법을 배우지 않은 소울러들에게 함부로 혼력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말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함부로 혼력을 움직이다 크게 다치는 것보단 혼력을 있는 그 상태 그대로 조금씩 자극해서 키우는 게 훨씬 나았다.

당연히 연희도 건에게 그 부분을 얘기해줬었다.

그럼에도 건은 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할 생각이었다.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큰 보상을 바랄 순 없는 법. 때론 위험하더라도 지름길로 가는 게 이득일 때가 있는 법이지.’

이것은 건이 오랜 세월 혼자 살아오며 터득한 일종의 세상을 살아가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후우, 일단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좀 더 집중을 해보자.’

건은 아무리 무모한 도전을 한다고 해서 그냥 막무가내로 달려들 생각은 없었다.

그는 혼력이 정말 자신의 몸속 깊은 곳에 존재하던 영혼이 뭉쳐져 만들어진 힘이라면 그 자체로 뭔가 의지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은 그 혼력이 하는 얘길 들어볼 생각이었다.

애초에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그가 초짜 소울러라는 뜻이었다.

조금이라도 경력이 있는 소울러는 이런 황당한 생각을 하지 않는 게 기본이었다.

하지만 이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건은 경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미천했지만 대신 경험과 지식이 쌓이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일종의 한계나 벽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의 혼이 지닌 의지를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생각 자체는 황당했지만, 아예 허무맹랑한 건 아니었다.

실제로 혼은 그 자체로 약간의 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소울러들은 극히 적었다.

아니, 알고 있어도 그냥 알고 있을 뿐 그걸 어떻게 이용해볼 생각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중해보자. 혼의 의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어쩜 최적의 경로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건은 계속 더 집중하며 자신의 혼력이 지닌 의지를 읽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혼력의 의지를 읽는다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애초에 혼이 지닌 의지란 게 너무나 미약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영감으론 의지는 고사하고 몸속의 혼력을 또렷하게 느끼기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건은 너무나 쉽게 혼력을 느끼고 또 그 혼력에 집중하기까지 했다.

언젠가 연희가 얘기했던 건의 무시무시한 재능이 제대로 빛을 내고 있었다.

다만 건은 자신이 지닌 그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잘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제대로 가르침을 받질 않고 독학으로 혼을 단련하는 건이었기에 당연히 자신의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건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자신의 몸속에 존재하는 혼력에 집중한 지도 벌써 두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여전히 건은 혼력의 의지를 읽을 수 없었다.

아주 작게 뭔가가 속삭이는 듯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정확히 그 속삭임이 뭔지 알지는 못했다.

‘휴우, 쉽게는 안 된다는 건가?’

물론 건은 쉽게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뭐,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간 분명히 읽을 수 있겠지.’

건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 한 단계씩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지금까지의 건의 인생에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고속으로 수직 상승을 했던 적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늘 계단을 올라가듯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갔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역시 그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위로 올라갈 생각이었다.

‘일단 출근준비도 해야 하니 가볍게 몸을 좀 더 풀고 내려가자.’

결정을 내린 건은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 물구나무를 섰다.

그리곤 그 상태에서 양팔을 굽혔다 폈다 하며 몸을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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