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5화 (15/175)

# 15

더 소울(The Soul) - 깨달음(2)

아침 수련을 끝내고 가볍게 발화의 술로 김치찌개를 끓여 먹은 건은 곧장 카페 헤븐으로 출근했다.

벌써 한 달째 연희와 강철민은 요즘 경계의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변종 암괴를 추적하고 있었다.

덕분에 건은 한 달 동안 혼자 가게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려운 건 별로 없었다.

어차피 늘 똑같이 하는 일이었고 이제는 아주 익숙해져서 오히려 여유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정도였다.

당연히 건은 남는 시간엔 열심히 수련했다.

오행발현술은 물론이고 명상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혼력을 들여다보았다.

그뿐 아니라 서점에서 사온 온갖 격투기 관련 서적을 읽으며 직접적인 전투 방법도 익혀나갔다.

어차피 손님이라고 해봤자 하루에 몇 명 정도밖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수련할 시간은 넘치도록 많았다.

‘이제 시간도 어느 정도 남는데…… 슬슬 재수학원에 등록해야겠지?’

경계의 세상에 들어와 소울러가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건의 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어 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은 그가 오래전부터 꼭 가고 싶어했던 곳이었다.

이제 몇 달 후면 수능시험이 있었다.

이번 수능을 치러야만 내년 봄 학기에 대학교 입학이 가능했다.

소울러가 되었다고 해서 머리까지 똑똑해진 건 아니었기 때문에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공부를 해야 했다.

물론 틈틈이 계속 공부는 했었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수능을 치르려면 몇 달 정도는 공부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건은 상위권 대학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고 싶었다.

최근에 본 모의고사 성적을 보면 충분히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할 수 있어 보였지만 실제 수능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건 전부하는 게 맞았다.

‘어차피 다음 달부터는 놈이 잡히지 않더라도 연희 누나가 돌아온다고 했으니까 대충 퇴근 시간만 조절하면 학원에 등록할 수 있겠다.’

아무리 변종 암괴를 잡는 일이 중요해도 몇 달씩 놈만 추적할 순 없었다.

특히 변종 암괴는 최근 들어 갑자기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헌터들 역시 대부분 집중 추적을 멈추는 추세였다.

‘사장님이 시급도 올려줬으니까 아르바이트는 여기 카페 아르바이트 하나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련과 공부에 모든 걸 투자하자.’

철민은 성격만큼이나 간단하고 시원하게 건의 시급을 올려주었다.

덕분에 건은 어지간한 아르바이트 두 개를 하는 것만큼 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생이라…….”

개나 소나 다 가는 대학이라지만 건은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는 군 복무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그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바로 대학교였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군대를 제대하고 제일 먼저 세운 목표가 대학 입학이 되었다.

‘그래도 이왕 가는 거 최대한 괜찮은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어?’

건은 어중간한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중간할 바엔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건이었기 때문에 이왕 가기로 한 대학이니 최대한 노력을 해서 자신이 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대학으로 갈 생각이었다.

“이래저래 더 바빠지겠구나.”

건은 작게 중얼거리며 정리하고 있던 커피잔을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경계에 들어오고 소울러가 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인생이 통째로 바뀔 수도 있었던 큰일이었지만 건은 그런 큰일을 겪었음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 버려진 이후 그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 않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가지게 된 평정심.

그 평정심은 경계의 세상에 들어와서도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 * * *

결국, 변종 암괴는 잡히지 않았다.

변종 암괴는 마치 수많은 헌터들의 추적을 눈치라도 챘다는 듯이 오히려 그 자취를 감춰버렸기 때문에 결국 헌터 협회는 소집령을 거두어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변종 암괴가 위험한 존재라고 해도 언제까지고 계속 헌터 소집령을 유지할 순 없는 게 현실이었다.

소집령이 거두어지고 헌터들은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당연히 연희와 강철민도 집중 추적을 멈추고 카페 헤븐으로 복귀했다.

“며칠 쉴 거니까 진짜 급한 일 아니면 나 찾지 마. 그리고 연희 너도 며칠 휴가를 줄테니 쉬다 출근해.”

강철민은 가게로 돌아오자마자 대충 장비를 구석에 던져놓으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전 그냥 출근해서 가게에서 쉬엄쉬엄 일하는 게 더 편해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어쨌든 난 좀 자야겠다.”

집중 추적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든 정신을 집중해 희미한 흔적을 찾아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건 보통 정신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세요.”

철민이 가게 안쪽으로 들어가자 연희도 장비들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휴우, 가게엔 별일 없었지?”

연희는 옆에 있던 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별일이 있었으면 연락을 했겠죠.”

“하긴 그러네.”

“그나저나 소집령은 완전히 해제된 건가요?”

“응, 일단은…… 하지만 놈이 다시 나타나면 또 소집령이 재개될 수도 있어.”

“흐음, 그 녀석 정말 끈질긴 놈이네요.”

“말도 마라. 진짜 그런 놈은 처음 봤다. 한 달 동안 집중 추적을 했는데 번번이 놈이 나타났던 경계를 찾는 게 전부였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헌터들도 죄다 그랬어. 다른 건 몰라도 도망가는 솜씨는 상급 혼마만큼이나 뛰어난 거 같더라.”

철컥, 철컥.

연희는 바닥에 내려놓은 장비 중 흔히 말하는 총기계열 장비들을 점검하며 안전하게 장전되어 있던 탄약들을 제거하며 대답했다.

“근데 전부터 궁금했던 건데 누난 등급이 있는 영혼과 정식으로 맹약을 맺은 소울러잖아요. 그런데도 왜 이런 총기들을 들고 다니시는 거예요? 사장님은 기껏해야 방어구 한 벌에 단검 두 자루만 들고 다니시잖아요.”

그런 연희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건이 진심으로 궁금하단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거야 사장님이 맹약을 맺은 영혼과 내가 맹약을 맺은 영혼이 다르니까 그렇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장님이 맹약을 맺은 영혼은 단검 두 자루만 있어도 모든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이 총들이 필요하거든.”

“총을 사용하는 영혼도 있나요?”

“거기까지.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는 건 상대방에게 실례야.”

“아, 죄송해요.”

“만약 내가 아닌 다른 소울러였으면 당장에 네 멱살을 잡았을지도 몰라.”

연희는 웃으며 얘기해줬지만, 건은 순간 자신이 큰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소울러들에게 자신과 맹약을 맺은 영혼에 대한 정보는 아주 중요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그걸 눈치 없이 꼬치꼬치 캐물었으니 당연히 큰 실수라 할 수 있었다.

“너무 생각 없이 여쭤봤네요. 죄송해요. 누나.”

“소울러들이 쓸데없이 이런 거에 좀 민감한 편이니까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땐 조심해. 이쪽 세상에선 이런 걸로도 상당히 큰 싸움이 일어나거든.”

연희는 가볍게 웃으며 건에게 조언해주었다.

건은 이렇게 늘 그녀에게 많은 걸 배웠다.

“나도 좀 피곤하긴 하네. 창고에서 좀 쉬고 있을 테니 무슨 일 있으면 불러.”

연희는 점검이 끝난 장비들을 차곡차곡 가방에 담은 후 건을 향해 얘기했다.

“네, 가게 걱정은 하지 말고 푹 쉬세요.”

연희와 철민이 복귀했지만, 여전히 가게 일은 전적으로 건의 몫이었다.

그만큼 그들이 건을 믿는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가게에 할 일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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