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
더 소울(The Soul) - 성장(2)
경계의 틈은 일정 시간만 유지되다 사라지는 경계와는 다르게 영구적으로 세상에 경계가 유지되면서 나타나는 장소를 의미했다.
이런 경우는 아주 희귀했기 때문에 국가마다 몇 군데씩 밖에 없는 게 보통이었다.
대한민국에도 경계의 틈은 딱 두 군데밖에 없었는데 서울과 부산 그렇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에 하나씩 존재했다.
그리고 그 경계의 틈은 현재 소울러들이 이용하는 거대한 하나의 시장이 되어 있었다.
그곳에선 못 구하는 물건이 없었다.
경계에서만 구할 수 있는 물건부터 현실에서 사용되는 물건까지 없는 게 없었다.
심지어 가격만 맞추면 전투 헬기도 구매할 수 있을 정도였다.
없는 게 없는 곳.
그래서 그곳은 만물상(萬物商)이라고도 불렸다.
“응, 탄약도 좀 더 사야 하고 그동안 번 돈으로 장비를 업그레이드해줘야 더 강한 놈들을 사냥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같이 가도 될까요?”
“네가? 뭐, 상관은 없는 데 너도 뭐 살 거 있어?”
“아뇨, 전 거기서 총알 하나도 살 돈도 없어요.”
만물상은 그 특성상 현실보다 가격이 좀 더 비쌌다.
그렇기에 돈이라면 대학교 등록금으로 쓸 돈밖에 없는 건은 거기서 뭘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그냥 구경하러 가려고?”
“네, 지금이야 돈 없는 가난한 소울러지만…… 언제까지 그러라는 법은 없잖아요.”
“하긴 그렇겠네. 그래, 같이 가자. 근데…… 너 시험은 잘 봤어?”
“전력을 기울였으니 이젠 뭐 결과만 기다리면 되겠죠.”
건은 지나간 버스를 바라보며 마음 졸이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능은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기 때문에 후회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게 좋지. 그럼 빨리 마감 끝내고 바로 가자.”
“네, 저도 도와드릴게요.”
건은 옆에 있던 막대 걸레를 잡으며 고개를 대답했다.
서울에 있는 경계의 틈은 상암월드컵경기장 근처에 존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암월드컵경기장 옆에 있는 평화 공원.
만물상은 그 공간 위에 겹쳐져 있었다.
“이젠 경계의 선을 보고 그 선을 넘는 요령은 완벽하게 익히고 있는 거지?”
“그건 이미 두 달 전에 마스터 했습니다.”
연희의 물음에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연희의 바이크 뒤에서 그녀의 매끈한 허리를 끌어안고 와서일까?
건의 얼굴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지만,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어서 그 모습을 연희에게 보이진 않았다.
‘아…… 진짜 대박이다.’
건은 헬멧 안에서 마른침을 삼키며 머릿속을 헛된 망상으로 가득채웠다.
가뜩이나 연예인들도 울고 갈 정도의 외모를 지닌 연희였는데 몸매마저 특급이란 걸 오늘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뭐해? 헬멧 벗고 들어가자.”
연희는 그런 건을 툭 치며 얘기했다.
“아, 아! 네. 가, 가요.”
순간 건은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연희가 제일 싫어하는 게 그녀의 외모를 보고 추근대는 것이란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에 재빨리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며 헬멧을 벗었다.
“집중하고 들어가자.”
연희는 그 말과 함께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스르르륵.
앞으로 걸어나간 연희는 마치 마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보통 사람이 이런 걸 봤다면 눈을 비비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겠지만, 건은 당연히 그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집중하며 연희가 사라진 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스으으으.
그러자 그곳에 하나의 반투명한 벽 같은 게 나타났다.
이게 바로 흔히 소울러들이 얘기하는 경계의 선이란 것이었다.
‘확실히 모든 소울러에게 공개된 경계의 틈이라서 그런지 조금만 집중해도 선을 볼 수 있게 만들어놨네.’
경계의 선은 경계마다 다른 기준으로 공개되었기 때문에 등급이 높은 소울러들이 만들어낸 경계는 선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어쨌든 선을 찾은 건은 곧장 그 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스르륵.
자연스럽게 건은 경계의 선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선을 건넌 이상 더 이상 그곳은 평화의 공원이 아니었다.
경계의 틈, 흔히 만물상이라 불리는 소울러들의 공간이 건의 눈앞에 펼쳐졌다.
화아아악!
세상이 바뀌며 현실에서는 다소 한산했던 평화의 공원에 수많은 사람과 건물들이 나타났다.
건은 이렇게 극명하게 현실과 다른 모습을 한 경계는 처음이었다.
“만물상에 온 걸 환영해.”
먼저 들어와 있던 연희는 경계 안으로 들어오는 건을 보며 가볍게 웃어 주었다.
“휴, 생각보다 굉장히 사람이 많네요.”
“대한민국에 단 두 개밖에 없는 경계의 틈이니 당연히 붐빌 수밖에 없지. 경계에서 살아가려면 이곳은 필수 코스라 할 수 있거든.”
“신기하네요.”
“여기서 파는 물건들을 보면 더 신기할걸?”
연희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건을 보며 확신하듯 얘기했다.
“그런가요?”
“따라와 봐. 만물상에 처음 방문한 기념으로 내가 만물상 관광을 좀 시켜줄게.”
연희는 건을 향해 손짓하며 먼저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건은 그런 연희를 따라가며 계속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초보 소울러인 건에게 만물상은 너무나 신기한 장소일 수밖에 없었다.
“만물상은 총 네 구역으로 나뉘어 있어. 일단 지금 네가 보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D구역이야.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좀 더 비싼 물건들을 취급하는 C구역이 있지.”
연희는 그녀답지 않게 친절한 설명까지 해주며 건을 안내해주었다.
“보통의 소울러들은 대부분 D구역과 C구역에서 물건을 사. 하지만 프로 헌터들과 같은 조금 특별한 소울러들은 지하에 있는 B구역을 애용하지. 값은 당연히 지상에 있는 두 구역보다 비쌌지만, 품질은 확실히 보장되는 곳이거든.”
“왠지 B구역부터는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곳이란 얘기처럼 들리네요.”
“맞아. B구역부터는 일종 조건을 충족시킨 소울러들만 출입이 가능해.”
“그럼 하나 남은 A구역은 뭐예요?”
“A구역은 아주 특별한 곳이지. 사실 나도 가보진 못했어. 그냥 어떤 곳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지.”
“어떤 곳인데요?”
“A구역에선 오로지 한 가지 물건만 팔아.”
“한 가지요?”
“그래, 한 가지…… A구역은 바로 영혼주를 거래하는 곳이야.”
“아!”
연희의 말을 들은 건은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어지간한 돈으론 구 등급 영혼주도 못 구한다고 하더라고.”
“얼마나 비싸길래…….”
“구 등급도 어떤 영혼이 봉인되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론 오억 이상이라고 들었어.”
“오, 오억이요?”
“응.”
“그럼 도대체 그 위에 등급의 영혼주들은 얼마나 하는 건가요?”
“더 비싸겠지.”
“으음…….”
연희의 말을 들은 건은 문득 오래전 자신이 처음 경계에 들어설 때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분명 삼 등급 영혼주란 말을 했었어. 그럼 그 영혼주는 도대체 얼마나 하는 물건이었던 거지?’
물론 그 영혼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의 눈앞에 그런 물건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일단 너한테 A, B구역은 그냥 그림의 떡일 뿐이니까. C D구역만 안내해줄게.”
“네,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해요.”
어차피 당장 뭘 살 생각이 없었던 건이었기 때문에 C구역과 D구역만 보는 것만으로 충분할 수밖에 없었다.
연희는 D구역을 시작으로 천천히 C구역까지 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총기류를 주로 파는 골목부터 각종 도검류를 다루는 대장간들이 모여 있는 곳 그리고 전문적인 의료시술을 하는 곳까지 정말 이름 그대로 없는 게 없는 곳이란 걸 직접 확인시켜주었다.
“이 정도면 대충 만물상이 어떤 곳인지 알겠지?”
“네,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 그럼 혼자서 좀 더 구경하고 있어. 난 B구역에 갔다 올게.”
연희는 주로 B구역에서 장비를 구매했다.
하지만 B구역에 건을 데리고 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자 가야 했다.
“네, 천천히 보고 오세요.”
어차피 건은 연희에게 중요한 것들은 모두 들었기 때문에 혼자 돌아다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한 시간 정도면 될 거야.”
“진짜 전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갔다 오세요.”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게 연희가 볼일을 보러 가고 건은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진짜 돈만 있으면 사고 싶은 것들이 꽤 있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이었던 건에겐 다소 부담스러운 물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몇 가지 물건은 약간 탐이 나는 게 사실이었다.
‘정말 나도 헌터가 되는 건 어떨까? 사냥을 해서 돈을 벌면…… 좀 더 나 자신을 효율적으로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요즘 들어 건이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헌터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건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긴 했지만, 그동안 연희에게 들은 얘기들은 것들을 종합해보면 헌터에 입문하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처음엔 수마들을 잡아서 영혼의 가루를 구해 팔고…… 실력과 장비가 좋아지면 암괴를 사냥하는 쪽으로 가면…… 어지간한 아르바이트보단 수입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학교에 진학하더라도 아르바이트를 그만둘 생각은 없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카페 헤븐 아르바이트는 돈도 돈이었지만 워낙 배우는 게 많았기 때문에 그만들 수 없었기에 뭔가 아르바이트를 추가로 하나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 어쩌면 이쪽이 훨씬 좋은 선택일지 몰라. 조금 더 고민을 해봐야겠지만…… 헌터가 되는 건 분명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아.’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확실히 헌터란 직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면이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건은 계속 만물상을 돌아다니며 그곳에 있는 여러 물건을 구경했다.
군대 있을 때 지급되었던 K2 소총은 물론이고 영화에서나 보던 수많은 기관총과 저격용 라이플 그리고 권총들이 마치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들처럼 여기저기 진열되어 있었다.
‘K2 소총이 사십 만원이라…… 원래 가격보다 조금 더 비싼 건가?’
원래 K2 소총은 외국에 DR-200이란 이름으로 판매되는 소총이었다.
그 가격은 대략 30만 원.
그게 이곳에선 40만 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확실히 이곳은 현실보단 조금 더 비싸게 물건들을 팔았다.
하지만 현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이곳에선 아무런 조건 없이 돈만 있으면 모든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나 사두면 든든하긴 하겠네.’
물론 수마나 암괴들은 일반적인 현실의 무기들로는 제대로 충격을 주기가 어려웠다.
등급이 아주 낮은 수마가 아닌 이상 어지간한 소총 난사에도 쓰러지지 않았다.
놈들을 쓰러트리는 데 최적화된 기운은 당연히 혼력이었다.
혼력이 섞이지 않은 일반적인 무기로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휴대성을 생각하면 소총보다는 권총이 나으려나?’
건은 눈을 돌려 각종 권총이 진열된 곳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