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18화 (18/175)

# 18

더 소울(The Soul) - 재수 없는 놈(1)

@ 재수 없는 놈.

크게 리볼버와 자동권총으로 나뉘어 있는 권총들은 가장 보편적인 권총인 글록부터 규격 외 권총이라 불리는 데저트이글까지 거의 모든 권총이 진열되어 있었다.

‘휴우, 많기도 하네. 아무래도 이건 연희 누나한테 물어보는 게 가장 좋겠네.’

건은 군대에 갔다 왔지만, 대부분의 대한민국 전역 군인들이 그런 것처럼 권총은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었다.

그렇기에 이건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연희에게 조언을 구하는 게 옳았다.

그렇게 총기를 팔던 곳을 지나친 다른 물건들을 계속 구경하며 천천히 만물상을 한 바퀴 돌았다.

총기나 도검 같은 물건은 만물상에서 가장 흔한 것들이었다.

만물상 한쪽엔 여러 종류의 자동차와 오토바이도 팔았고 또한 그것들을 불법으로 개조 해주는 곳도 있었다.

돈만 있으면 뭐든지 구할 수 있다는 얘기를 절실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근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계의 세상에서도 돈은 여전히 절대적이구나.’

건은 만물상에 와서 새삼 돈이 가지는 위력을 더욱 실감했다.

돈을 만든 건 인간이었지만 이제 그 돈은 자신을 만든 인간을 지배하게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건 비상식의 세계라는 경계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돈을 벌어야 해.’

건은 오래전부터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단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사람답게 살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틀리지 않았다고 느꼈다.

비록 속물처럼 보일지 몰라도 건은 일단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응?”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만물상을 구경하던 건은 문득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한 남자를 보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은…….’

그 남자는 건이 아는 사람이었다.

절대 친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아는 사람이었다.

‘김동철!’

그 남자는 한때 건과 지독한 악연(惡緣)으로 꼬여 있던 중학교 동창생 김동철이 확실했다.

“백건?”

건을 지나쳤던 김동철은 곧장 고개를 돌려 건을 다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건은 그가 자신을 몰라봤으면 했지만 역시나 당시 워낙 지독하게 엮였던 김동철이었기 때문에 한 번에 건을 알아보았다.

“김동철…… 오랜만이네.”

건은 애써 모른척하지는 않았다.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피할 이유도 없었다.

“여기에서 널 만날 줄이야…….”

깜짝 놀란 건 김동철도 마찬가지였다.

“놀란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니겠어?”

“하긴 그런가? 그나저나 별로 반갑지 않은 표정이네?”

김동철은 슬쩍 웃으며 얘기했다.

‘재수 없는 저 미소는 여전하네.’

건은 그런 동철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우리가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악수하는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푸하하하, 여전하구나! 너.”

동철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 크게 웃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너도 여전하구나. 쓸데없이 큰 웃음소리. 내가 과거에도 얘기했었지만, 그거 상당히 민폐다.”

“지적하는 것도 여전하고 이거 정말 죽지 않았네! 강철 고아 백건.”

강철 고아.

그건 오래전 중학교 때 건의 별명이었다.

건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별명이었지만 김동철은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너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미친개 김동철.”

미친개는 중학교 때 김동철의 별명이었다.

동철은 당시 그 중학교에서 흔히 말하는 짱이었다.

그것도 무려 1학년 때부터 3학년들을 죄다 이겨버린 전설적인 짱이었다.

당시 그 지역에서 김동철을 모르는 학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김동철을 죄다 알았다.

그 정도로 동철은 유명했다.

중학교 3년 그리고 고등학교 3년 그는 6년 동안 그 지역은 물론이고 근처 지역까지 모두 자신의 발아래 놔두었었다.

하지만 그런 전설적인 동철에게도 옥에 티와 같은 사건이 하나 존재하긴 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사건 때문에 건과 동철의 지독한 악연이 만들어졌다.

“흐흐흐, 다른 놈도 아니 설마 너를 여기서 만나다니…… 이거 하늘이 아무래도 내 인생의 오점을 내 손으로 지우라고 기회를 주는 것 같은걸?”

“후후, 네 손으로 뭘 지우려고?”

“글쎄, 그건 좀 더 생각해봐야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경계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거 아니겠어?”

김동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어쩌다 너 같은 놈이 소울러가 되었을까?”

건은 한심하단 표정으로 동철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나야 너랑 다르게 고귀한 혈통이라 당연히 소울러가 되었지만…… 너 같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는 비루한 혈통을 가진 녀석이 어떻게 소울러가 되었을까?”

놀랍게도 김동철은 흔히 영맥이라 불리는 소울러의 혈통을 타고난 이였다.

아주 명문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전통이 있는 영맥 출신이었다.

근 오십 년 동안 후계 소울러가 나오질 않다가 김동철이 방계(傍系) 출신임에도 소울러로서 각성해 본가(本家)의 후계자가 된 상태였다.

덕분에 그는 그 가문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6등급 영혼주와 맹약을 맺을 수도 있었다.

물론 그 맹약을 맺기 위한 모든 준비는 본가에서 해주었기 때문에 동철은 별로 어렵지 않게 상당한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고귀한 혈통이 저번 겨울에 다 얼어 죽었나 보군. 아, 아닌가? 나름 견가(犬家) 쪽에선 너도 고귀하다 할 수 있으려나?”

“이 새끼…… 죽고 싶구나.”

건의 가차 없는 비아냥에 동철의 표정은 잔뜩 굳어졌다.

가뜩이나 그때 그 일로 건에게 쌓인 게 많은 동철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만 같은 표정이었다.

“십 년 전에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았던가?”

“그랬지. 그래서 십 년 전에 지키지 못했던 내 말을 이제는 좀 지켜야 할 거 같아.”

“그때도 못 지킨 걸 지금은 지킬 수 있을 거 같아?”

건과 동철은 서로 노려보았다.

그 둘 사이에서는 보이지 않는 불꽃이 마구 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디 한 번 두고 보자고. 백건…… 네놈이 소울러가 된 걸 확인했으니 아마 조만간 분명 다시 만나게 될 거야.”

아무리 김동철이 수틀리면 눈에 뵈는 것 없이 날뛰는 미친개라고 해도 이곳에서 날뛸 순 없었다.

이곳은 소울러들에게 일종의 중립 지역과 같은 곳이었다.

김동철보다 더 대단한 소울러들도 이곳에선 날뛰지 못했다.

“두고 봐. 계속 그렇게 두고 봐. 여전히 나에게 넌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일 뿐이니까.”

동철이 어떤 말을 해도 건은 겁을 먹지 않았다.

설사 동철이 대단한 소울러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건은 동철과 같은 인간쓰레기 앞에선 절대 비굴해지고 싶지 않았다.

“크크크크크. 그래, 그 잘난 주둥이를 언제까지 놀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동철은 건과 더 대화하다간 화를 못 참고 폭발할 것 같았다.

이곳에서 폭발하면 결국 자신만 곤란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던 동철은 어쩔 수 없이 건과의 설전(舌戰)은 여기까지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다려라. 내가 조만간 널 찾아가마.”

동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건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건은 그런 동철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필 저 개 같은 놈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현실에서도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일 순위 인물이 바로 미친개 김동철이었다.

그런데 현실도 아닌 경계의 세상에서 놈을 만났다.

건에게는 이것만큼 기분 나쁜 사실도 없었다.

동철은 끝까지 건을 노려보며 자리를 떠났고 건 역시 동철을 계속 노려보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나저나 저 미친개 새끼라면 충분히 미친 짓을 할 수 있는데…… 이거 좀 더 빨리 강해져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생긴 건가?’

건은 동철이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의 소울러인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보다는 높은 등급의 소울러일 것이라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수능도 끝나고 시간도 많아졌는데…… 아주 철저하게 강해져 주마. 미친개…… 네놈이 붙여준 이 불꽃을 아주 크게 만들어 전력을 다해서 타올라 주겠다.’

건은 이제 단순히 강해져야겠다가 아니라 꼭 강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강해져야겠다는 말과 강해지겠다는 말은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로 지닌 의미는 완벽히 달랐다.

동철은 그렇게 사라지고 건은 만물상을 둘러보는 대신 조용히 한곳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강해지기 위해서 지금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최대한 많은 시간 동안 영혼단련법을 수련해야 한다. 단순히 남는 시간이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영혼단련법을 이어가야 한다.’

물론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움직이면서도 영혼단련법을 돌릴 수 있어야 했다.

이걸 행공(行功)이라 불렀는데 행공이 가능한 영혼단련법은 최상위급 영혼단련법들 중에서도 몇 개 없을 정도로 희귀했다.

일단 행공이 가능해지려면 영혼단련법이 아주 안정적이어야 했다.

행공 자체가 상당히 위태로운 수련법이었기 때문에 영혼단련법이 안정적이지 못하면 자칫 혼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크게 다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건이 만들어낸 영혼단련법은 행공에 최적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혼력 자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기 때문에 움직이며 영혼단련을 해도 절대 무리가 없었다.

오히려 혼력이 더욱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어서 제자리에 앉아서 하는 수련보다 훨씬 더 좋았다.

정말 행공에 최적화된 영혼단련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건이 그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그리고 최대한 빨리 수마라도 사냥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후…… 수마를 사냥하자. 헌터가 뭐 별거겠어? 일단 수마부터 사냥을 시작해서 하나씩 장비를 좀 맞추면 언젠간 나도 암괴를 잡을 수 있겠지.’

건은 일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꼭 암괴나 혼마를 잡아야만 돈을 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암괴나 혼마에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돈이었지만 분명 수마를 잡아도 돈은 벌 수 있었다.

‘늘 시작은 빈손이었잖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빈손이 아닌 경우로 시작한 적은 없었다.

건은 처음부터 빈손일 수밖에 없는 삶을 타고났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했다.

한편 건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이 연희는 생각보다 더 빨리 볼일을 끝내고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

마침 그녀가 올라온 근처에서 건이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연희는 곧장 건을 향해 손을 들었다.

“백건.”

“아, 누나. 생각보다 일찍 끝내셨네요?”

“괜찮은 물건들이 있어서 별로 고민하지 않고 사버렸어.”

“지름신이 강림하셨군요.”

“프로 헌터에게 좋은 장비는 여벌의 목숨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거든. 여벌의 목숨을 사는데 지름신이 강림하는 건 나쁜 게 아니지.”

“그건 그렇네요.”

건은 연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세상에 목숨보다 소중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돈이 대단하다고 해도 결국 살아있어야 그 대단한 돈을 쓸 수 있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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