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20화 (20/175)

# 20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씨앗(1)

@ 어둠의 씨앗.

6등급의 영혼은 위인(偉人)급은 되지 않아도 명인(名人)급에선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이건 과거에 지녔던 힘이 상당했었다는 뜻이었다.

등급이 높은 영혼과 계약했다는 게 절대적인 강함의 기준이 되는 건 아니었지만 계약한 영혼의 등급이 높다는 건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향상된다는 뜻이었기 때문에 대략적인 강함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있었다.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는 현재 사냥 중이었다.

그냥 평범한 사냥이 아니라 상당히 월척이라 할 수 있는 놈을 추적하고 있었다.

‘분명 아까 그 한방으로 타격을 입혔어…… 이거 잘하면 헌터 협회에서 건 현상금 이십억은 내가 가져올 수 있겠는걸.’

이십억이란 현상금은 거의 상급 혼마에게만 붙은 금액이었다.

물론 비검은 상급 혼마도 사냥해본 경험이 있긴 했지만, 그땐 단독 사냥이 아니라 팀을 짜서 사냥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녀석은 분명 알려진 것과 다르게 쇠약했다. 어쩌면…… 아무리 혼마급 힘을 지니고 있어도 암괴라는 한계 때문에 혼력이 점점 흩어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비검은 경험 많고 노련한 프로 헌터답게 아주 정확하게 놈의 상태를 예상해 냈다.

“그건 곧 나에게 더할 나위 없는 기회란 뜻이지.”

비검은 계속 산자락을 달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파파팟!

땅을 강하게 박차고 뛰어오른 그는 놈이 도망친 경로를 정확히 예측하고 그곳으로 빠르게 몸을 날렸다.

그리고 역시나 그가 몸을 날린 곳 앞에는 놈이 있었다.

그것은 희미하게 흩어진 검은색 안개 뭉치였다.

대략 전체적인 모습은 인간과 유사한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인간은 절대 아니었다.

녀석은 바로 몇 달 전 헌터 협회에서 소집령까지 꺼내 들게 한 그 암괴였다.

수많은 소울러를 잡아먹은 암괴의 한계를 벗어난 괴물.

대략 중상급 혼마 정도의 힘을 지니고 알려졌던 놈이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하급 혼마에도 미치지 못할 거 같아 보였다.

‘그래, 이십억…… 그건 내가 접수해주마.’

이십억이라면 아무리 수입이 좋은 프로 헌터라고 해도 몇 년은 모아야 만질 수 있는 돈이었다.

거기에 중간 정간 사냥을 위해 쓰는 돈까지 계산하면 진짜 십 년은 모아야 모을 수 있을지 모르는 돈이었다.

그런 돈을 벌 기회인데 그걸 그냥 지나칠 사람은 없었다.

스르릉.

비검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았다.

‘굳이 강림까지도 필요 없을 거 같네.’

그는 강림 대신 간편하고 뒷수습도 깔끔한 통혼을 선택했다.

츠츠츠츳!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그의 영혼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검선 김광택의 영혼이 깨어나 힘을 보내주었다.

상당한 실력자답게 순식간에 통혼을 이루어낸 그는 곧장 자신의 검에 혼력을 채워넣었다.

조선 시대에 검선이란 별호까지 얻을 정도로 대단한 검술을 지니고 있던 김광택의 힘이 고스란히 비검에게 전해지면서 비검 김명운은 완벽하게 한 자루의 검이 되었다.

파아아앗!

빠르고 간결하게 전방으로 검을 뻗으며 눈앞의 검은색 안개 괴물을 꿰뚫고 지나갔다.

피할 수도 그리고 막을 수도 없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제대로 들어갔다.’

비검은 손에 느껴진 감각만으로도 자신의 공격에 아주 정확하게 적에게 명중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비검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았다.

휘릭.

그는 빠르게 몸을 돌리며 두 번째 공격을 준비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가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 그를 향해 쏟아졌다.

촤아아아아아!

분명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게 뭉쳐 있던 안개 괴물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비검을 향해 쏟아졌다.

비검이 예상하지 못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비검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정도의 돌발 사태는 늘 있는 일일 뿐이었다.

스르륵.

비검은 가볍게 발을 몇 번 구르는 것만으로 뒤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마치 누군가 그를 뒤로 확 잡아당긴 것처럼 보이는 움직임이었다.

이것은 김광택의 독문 보법이었던 ‘천지보(天地步)’를 비검이 사용해 만들어낸 움직임이었다.

김광택은 ‘천지검(天地劒)’과 ‘천지보(天地步)’, 이렇게 두 가지 무공만으로 당대 제일의 검객이 된 인물이었다.

비검은 그런 김광택의 힘을 통혼을 통해 전해 받아 완벽하게 자신의 것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따다다당.

비검은 뒤로 물러나면서도 끊임없이 검을 휘둘러 자신의 몸에 들러붙으려고 하는 검은색 안개 덩어리들을 쳐내버렸다.

“어딜.”

이미 비검은 눈앞의 안개 괴물이 대충 어떤 놈인지 알고 있었다.

정보는 곧 프로 헌터에게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당연히 놈을 철저히 조사해놓은 상태였다.

‘접촉을 통한 복제 능력을 지녔고 소울러의 몸에 직접 침투하는 기생 능력도 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무조건 거리를 유지하며 싸워야겠군.’

대략적인 전략을 세운 비검은 검을 치켜세우고 잠시 검은 안개의 다음 움직임을 살펴보았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검은 안개는 다시 하나로 뭉치며 이번에는 인간이 아닌 팔이 여섯 개나 되고 눈은 하나인 커다란 괴물의 모습으로 변했다.

“변한다는 게 겨우 육비독안괴(六臂獨眼怪)인건가?”

육비독안괴는 최상급 암괴였지만 그래 봤자 결국 암괴일 뿐이었다.

‘저 녀석이 잡아먹은 소울러만 해도 상당할 텐데…… 이 상황에서 겨우 암괴로 변한다는 건 결국 놈도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뜻이겠지? 그럼…… 끝을 내자.’

비검은 육비독안괴의 모습으로 변한 안개 괴물을 보며 마무리를 지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던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뭔가가 있었다.

비검은 실력이 좋은 노련한 소울러였지만…… 마무리를 짓고 이십억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주변을 좀 더 꼼꼼히 살피는 걸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이건 그에게 너무나도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비검의 등 뒤에서 꿈틀거리던 건 놀랍게도 지금 비검을 상대하고 있는 검은 안개 괴물의 조각들이었다.

비검의 예상대로 안개 괴물은 혼력이 흩어지며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녀석은 태생이 혼마가 아닌 암괴였기 때문에 영원히 경계에 머무르는 게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른 수마나 암괴 그리고 소울러를 잡아먹고 지금까지 경계의 세상에서 버텨왔지만,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특히 헌터들의 추적이 조직화 되면서 놈은 위기를 느끼고 행동이 조심스러워졌었다.

그렇기에 원하는 만큼 혼력을 흡수하지 못했고 그건 곧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혼력이 흩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검은색 안개 괴물은 겉모습과 달리 굉장히 영악한 놈이었기 때문에 혼력이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쉽게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다.

헌터들이 집중적으로 자신을 추적한다는 사실과 헌터들에게 제대로 걸리면 무조건 소멸한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혼력이 흩어지는 상황에서도 경계의 뒤편 어둠에 숨어들어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 결과 결국 헌터들은 집중 추격을 멈추었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검은 안개 괴물의 판단이 옳은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판단은 옳았을지 몰라도 그 때문에 검은 안개 괴물은 잃은 것도 많았다.

특히 혼력이 본격적으로 흩어지기 시작하자 수마나 암괴 같은 걸 잡아먹는 것으로는 흩어지는 혼력을 붙잡기가 거의 불가능해졌다.

결국, 검은 안개 괴물은 흩어지는 혼력을 다시 모으려면 최소한 명인급 이상의 영혼과 맹약을 맺은 소울러를 잡아먹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놈은 자신이 잡아먹었던 소울러 중에서 가장 맛있고 혼력이 듬뿍 담겼던 소울러를 기억하고 그 소울러와 비슷한 수준의 소울러를 잡아먹기 위해 경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만난 게 바로 비검 김명운이었다.

놈은 영악하게도 비검을 만난 그 순간부터 지금의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혼력마저 흩어진 상태에서 비검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오히려 자신의 약해진 모습을 이용해 비검을 방심하게 한 후 그 틈을 노릴 생각이었다.

일개 암괴치고는 너무나 치밀한 계획이었다.

이 정도의 지능은 최소한 중급 혼마 이상은 되어야 가질 수 있었다.

어떻게 이 검은 안개 괴물이 암괴이면서 이 정도의 지능을 지니게 되었는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놈은 음흉하면서 동시에 영악하기까지했다.

녀석은 자신의 약해진 몸으로 비검의 방심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비검을 노리는 진짜 본체를 따로 빼돌렸다.

비검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육두독안괴의 모습을 한 괴물이 검은 안개 괴물의 본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진짜 검은 안개 괴물의 혼정(魂情)은 다른 곳에 있었다.

비검의 등 뒤에서 꿈틀거리는 검은 안개 조각들. 그것이 놈의 진짜 본체였다.

놈이 노리는 건 단 하나.

바로 비검의 몸이었다.

그동안 간신히 수마나 암괴들을 잡아먹고 버텨왔던 놈에게 비검의 몸은 아주 훌륭한 안식처로 보였다.

검은 안개 괴물은 흔히 현실에서 기생 생물이라 부르는 놈들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혼력이 흩어져도 다른 혼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당연히 비검은 이런 검은 안개 괴물의 암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에 곧장 눈앞에 있는 육비독안괴를 향해 달려들었다.

비검은 오로지 육비독안괴를 빠르게 쓰러트릴 생각밖에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눈에 육비독안괴는 대략 몇 번만 제대로 공격을 꽂아넣으면 별로 어렵지 않게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로 그게 그에게 결정적인 빈틈을 보이게 만들었다.

그가 방심만 하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통혼이 아닌 강림만 선택했어도 이런 빈틈은 나오지 않았을 수 있었다.

검은 안개 괴물은 비검의 안일한 생각과 잘못된 선택이 만들어낸 이 빈틈을 너무나도 잘 파고들었다.

놈이 이길 가능성은 오로지 이것밖에 없었는데 놈은 이걸 정확하게 읽어냈다.

파파팟!

실낱과 같던 비검의 빈틈을 파고드는 한 줄기의 검은 그림자.

그것은 검은 안개 괴물의 혼정이 담긴 진짜 본체였다.

파파팟!

검은 안개 괴물의 진짜 본체는 곧바로 비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컥!”

육비독안괴에게 달려들던 비검은 자신의 옆구리를 파고드는 굉장히 기분 나쁘고 이질적인 느낌에 순간 몸을 옆으로 날렸다.

하지만 그의 반응보다 검은 안개 괴물이 파고드는 게 조금 더 빨랐다.

드드득!

놈은 비검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곧장 비검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크흑!”

비검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곤 곧장 자신의 혼력을 모두 끌어올려서 몸속으로 들어온 침입자를 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 허수아비로만 보였던 육비독안괴가 비검을 향해 여섯 개의 팔을 휘두르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만약 비검이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정말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을 공격이었지만 지금은 육비독안괴의 공격이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왔다.

‘젠장!’

이거야말로 제대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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