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21화 (21/175)

# 21

더 소울(The Soul) - 어둠의 씨앗(2)

일단 비검은 급한 대로 전력을 다해 뒤로 몸을 빼내며 동시에 혼력을 전신으로 퍼트려 몸 안에 들어온 정체를 알 수 없는 침입자를 찾았다.

생각보다 침입자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자면 찾은 게 아니라 침입자가 먼저 비검의 혼력을 향해 달려들었다.

비검은 재빨리 혼력을 이용해 놈을 막았다.

하지만 놈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몸을 안개처럼 흩어지게 한 후 곧장 비검의 혼력에 들러붙었다.

‘헉!’

비검은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는 설마 상대가 이렇게 나올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콰과광!

그 와중에도 육비독안괴는 계속 비검을 공격했다.

‘크윽…….’

비검은 육비독안괴의 공격을 피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혼력에 들러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몸 밖으로 밀어내야 했다.

‘이대론 위험하다.’

비검은 자신이 진짜 위험해졌다는 걸 깨닫자마자 곧장 자신의 가진 혼력을 모두 개방하며 자신과 맹약을 맺은 6등급의 영혼인 김광택을 자신의 몸에 강림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시도는 오히려 검은 안개 괴물이 기다리는 것이었다.

애초에 검은 안개 괴물의 목표는 비검의 혼력과 맹약으로 연결된 김광택의 영혼이었다.

지금까지는 소울러들이 지닌 혼력만 잡아먹었던 검은 안개 괴물은 이대로는 계속 버티는 것밖에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곤 뭔가 새로운 시도이자 모험을 해볼 작정으로 비검의 몸에 뛰어든 것이었다.

놈은 김광택의 영혼이 강림을 통해 비검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오자 망설이지 않고 그 영혼을 향해 있는 힘껏 달려들었다.

혼정이 산산이 부서질 정도로 강렬한 진격이었다.

그렇게 부서진 혼정의 조각들은 고스란히 김광택의 영혼에 틀어박혔고 그대로 영혼 속으로 흡수되었다.

“크아아아악!”

그 순간 비검은 영혼 자체가 뜯겨 나가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드드드드드드.

비검은 바닥이 쓰러져 전신을 비틀며 떨었다.

그가 김광택과 맺은 맹약은 죽기 전까진 절대 깨어지지 않을 절대적인 약속이었다.

그런데 그 절대적인 약속이 지금 깨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깨어지는 게 아니라 맹약의 대상자였던 김광택의 영혼이 검은 안개 괴물이 혼정까지 스스로 부수며 남긴 어둠의 씨앗에 물들며 맹약 자체가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비검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눈은 당장 피눈물이라도 흐를 것처럼 완벽히 붉어졌고 전신에 검은색 핏줄이 튀어 올라왔다.

우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고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비검을 향해 달려들던 육비독안괴는 어느새 다시 검은 안개로 변해 천천히 비검의 몸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검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어 갔다.

비검을 지켜주던 김광택의 영혼은 오히려 비검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물론 이미 김광택의 영혼은 정상적인 명인의 영혼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해 있었다.

스르르르.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비검의 몸은 원래 대로 돌아왔다.

검은색 핏줄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갔고 붉게 충혈되었던 눈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더 이상 그 몸속에 과거 비검이라 불렸던 이의 영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영혼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대신 그 영혼을 집어삼킨 완벽히 새로운 종류의 영혼이 비검의 육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비검은 그렇게 너무나 허무하게 어둠의 씨앗에게 먹혀버렸다.

“……크크크, 이거 아주 마음에 드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비검. 아니, 어둠의 씨앗.

놈은 비검의 육체가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의 씨앗은 단순히 어둠의 기운이 뭉쳐져 암괴로 태어났을 땐 자신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 말 그대로 그냥 괴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뒤로 점점 다른 수마와 암괴들을 잡아먹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깨달아 갔고 결정적으로 소울러들을 잡아먹으며 전혀 다른 존재로 바뀌어 갔다.

‘난…… 오랜 세월 경계의 어둠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위대한 어둠의 왕. 이제야…… 대충 머릿속이 정리되는 느낌이군.’

물론 아직 완벽하게 모든 게 떠오르진 않았지만 적어도 놈은 자신이 누군지 확실히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건 6등급 영혼이었던 김광택의 영혼을 흡수하면서 얻은 것들이었다.

‘무모한 시도였지만 그 무모한 시도가 아니었으면 또 수십, 수백 년을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지낼 뻔했었군.’

놈이 세상에 나오려고 노력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다만 전에 했던 수없이 많은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거의 모든 시도가 애초에 암괴 단계에서 무참히 실패했고 몇 번 암괴 단계를 뛰어넘어 간신히 자신의 존재를 깨닫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결정적인 벽 하나를 넘지 못해서 좌절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 벽을 어떻게 넘는지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역시 본능에 따라 움직인 게 컸다. 크크크크, 이제 나도 드디어 제대로 된 영혼과 육체를 가지게 되었군.’

어둠의 씨앗, 아니 이제는 자신을 명확하게 어둠의 왕이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된 놈은 기분 좋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음…… 이 얼마나 상쾌한 공기인가?”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어둠이란 한정된 공간에서 제대로 된 인지 능력도 없는 일종의 영(靈)으로만 지냈던 어둠의 왕은 현실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러한 여러 감각이 너무나 신기하고 즐거웠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여전히 난 배가 고프다.”

어둠의 왕은 단순히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려고 그 오랜 세월 동안 계속 도전하고 또 도전한 게 아니었다.

그에겐 경계의 세상에서 이뤄야 할 또렷한 목표가 있었다.

‘우선은 이 육체를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고…… 그다음 또 다른 먹잇감을 찾아봐야겠군.’

급하게 음식을 먹으면 자칫 소화가 안 돼서 체할 수도 있던 것처럼 어둠의 왕 역시 김광택의 영혼을 다소 급하게 먹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김광택의 영혼을 완전히 소화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 * * *

“대련을 해달라고?”

연희는 생각지도 않은 건의 부탁을 듣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네, 꼭 좀 부탁해요.”

“어려운 건 아니지만…… 굳이 나와 대련을 하려는 이유가 있어?”

“확인하고 싶어서요.”

“뭘 확인해?”

“사실은…… 이제 수마들은 암괴보다 보기 어려운 일 등급을 제외하곤 쉽게 잡을 수 있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슬슬 암괴를 잡고 싶은데…… 제 실력으로 암괴를 사냥할 수 있을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누나와 대련을 하고 누나에게 직접 듣는 것 같아서요.”

건의 대답을 들은 연희는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근데 벌써 그 정도로 강해진 거야? 대단한데? 제대로 된 영혼단련법도 없는 상태에서 그렇다고 맹약을 맺은 것도 아닌데…… 역시 재능의 힘인가?”

평소 연희는 건의 재능을 상당히 높게 봐주었다.

그녀가 보기에 건은 흔히 말하는 천재형 소울러들과 비슷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 봤자 수마잖아요. 누나가 그랬었잖아요. 맹약을 맺지 않아도 수마까지는 쉽게 잡을 수 있을 거라고…….”

“그거야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처럼 이렇게 맹약도 맺지 않은 상태에서 겨우 반년 정도 만에 수마를 완전히 정복하는 소울러는 거의 없어.”

“하하, 그럼 그냥 제 재능의 힘이라고 치죠.”

건은 넉살 좋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후후, 좋아. 그럼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계신 건님의 실력을 한 번 직접 볼까?”

건의 넉살 좋은 미소는 아이스퀸이라 불리는 연희마저 미소 짓게 하였다.

두 사람은 현재 카페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둘 다 그런 걸 전혀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가게 안쪽에서 자는 강철민도 두 사람이 뭘 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연희와 건은 잠깐 가게 문을 닫고 카페 지하로 내려갔다.

카페 헤븐의 지하는 보통의 카페들과는 전혀 다른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대련하기에 알맞은 널찍한 공간도 있었다.

실제로 강철민이 수련할 때 이용하는 공간이라 내구성도 상당히 튼튼한 공간이었다.

적어도 건과 연희가 대련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시작해볼까? 참고로 대련이라고 적당히 할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난 진심으로 할 거니까…… 알아서 몸 사려라.”

연희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건을 바라보았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대련은 그냥 장난일 뿐이라는 강철민의 가르침에 따라 연희 역시 절대 대련이라고 살살할 생각이 없었다.

“네, 저도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염치불구하고 선공을 잡겠습니다.”

스윽.

건은 연희와 자신의 실력 차이를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선공을 선택했다.

파파팟!

건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애초에 그에게 연희를 상대로 탐색전을 하고 그럴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혼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하는 것 정도는 건도 별로 어렵게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곧장 자신의 두 다리를 강화하고 빠르게 연희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연희 역시 건과 마찬가지로 혼력으로 육체를 강화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거기에 그녀는 오랜 세월 혼력을 키워오면서 자연스럽게 육체가 그 혼력에 물들어 그 자체로 아주 강력해진 상태였다.

당연히 건의 움직임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스스슷!

건의 공격을 단 몇 걸음만 움직여 피해버린 연희는 가볍게 건의 중심을 무너트리는 반격을 했다.

가볍게 한 반격이라지만 기본적으로 연희가 지닌 힘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절대 만만히 볼 수 있는 공격은 아니었다.

휘릭!

그걸 이미 몸으로 인지하고 있던 건은 재빨리 몸을 비틀며 연희의 반격을 피했다.

치이익!

순간 연희의 주먹이 건의 뺨을 스치고 지나가며 선명한 상처를 남겼지만, 그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살벌하네.’

건은 연희가 말한 진심이란 얘기가 이제야 확 마음에 와 닿았다.

조금 전 가벼워 보이던 연희의 반격도 제대로 맞았으면 며칠 동안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만큼 강력한 공격이었다.

“움직임이 생각보다 훨씬 좋은걸? 그동안 정말 열심히 수련했구나.”

연희는 살짝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손과 발은 건을 위협했고 건은 그녀의 말에 대답할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전력을 다해 그 공격들을 피했다.

쾅! 콰광!

연희는 정말 가볍게 손과 발을 뻗었지만 그걸 직접 몸으로 받는 건의 입장에선 절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실제로 연희의 공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좀 더 빠르고 강력해졌고 당연히 건은 점점 더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이대로라면 그냥 무난하게 질 수밖에 없다. 그렇단 얘긴…… 무난하게 지기 싫으면 뭔가 다른 수를 내야 한다는 뜻이겠지?’

건은 전력을 다해 연희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으면서 딱 한 가지 생각만 했다.

질 땐 지더라도 그냥 허무하게 지진 않는다.

이게 건의 생각이었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힘은…… 오행발현술.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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