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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소울(THE SOUL)-22화 (22/175)

# 22

더 소울(The Soul) - 도움(1)

@ 도움.

결정을 내린 건은 망설이지 않고 생각을 실현에 옮겼다.

화르륵!

결정과 함께 건의 몸에서 커다란 불꽃이 치솟았다.

건은 자신의 놀랍게도 발화의 술을 이용해 자신의 몸 전체를 화염으로 감싸았다.

“헛!”

생각지도 못한 건의 행동에 연희는 살짝 놀라며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하지만 건은 그런 그녀를 놓치지 않고 곧장 그녀에게 돌진했다.

“하압!”

아무리 오행발현술의 한계를 몇 번이나 넘겨놓은 건이라고 해도 오행발현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에 이 큰 불꽃을 오랜 시간 유지할 순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큰 불꽃을 만들어낸 건 단순히 이 불꽃을 이용해 공격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촤아아아아!

발화의 술과 거의 동시에 펼쳐진 또 하나의 오행발현술.

그것은 바로 유수의 술이었다.

순간적으로 많은 양의 물이 건의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렸다.

당연히 그 물은 건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불꽃과 부딪치며 순식간에 기화되었다.

치이이이이익!

불꽃이 꺼지는 것과 물이 기화되는 것이 동시에 일어나며 순간적으로 건의 몸 주변엔 마치 아주 짙은 안개와 같은 수증기의 막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잠깐이지만 분명하게 연희의 시야를 차단했다.

그리고 이어진 건의 기습.

파파팟!

건은 이 모든 걸 예상하고 수증기의 막이 생기는 동시에 자신의 오른 주먹을 통째로 철금의 술을 이용해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든 후 곧장 가장 낮은 자세로 앞으로 튀어 나가 연희의 두 다리를 공격했다.

이게 현실적으로 건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만약 공격이 성공해 연희의 두 다리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대로 공격을 이어나가 최대한 연희에게 큰 충격을 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걸로 연희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허무하게 그냥 무난히 밀려서 쓰러지고 싶진 않았다.

질 땐 지더라도 뭐라도 하고 지고 싶었다.

그렇지만 건의 이러한 꽤 획기적인 기습 공격은 성공하질 못했다.

계획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애초에 연희의 능력이 건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었던 게 문제였다.

연희는 평범한 소울러가 아니었다.

그녀는 프로 헌터.

그것도 무려 우리나라에 딱 다섯 명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등급의 프로 헌터였던 금강철벽 강철민의 제자라 할 수 있는 프로 헌터였다.

그런 그녀에게 이 정도의 기습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스슷, 퍼퍽!

그녀는 가볍게 건의 공격을 피하며 오히려 건의 옆구리에 강력한 사커킥을 꽂아넣었다.

“커억!”

연희의 발에 복부를 제대로 맞은 건은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콰과광!

그와 함께 멀리 날아가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적어도 갈비뼈가 몇 대는 부러진 느낌이었다.

당연히 대련은 이걸로 끝이었다.

박살이 났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시원하게 진 건이었지만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까 후회는 없다.’

구석에 처박힌 건은 통증이 느껴지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일어났다.

“괜찮아?”

연희는 건을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크으…… 견딜만해요.”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미소를 지어주었다.

“마지막 공격…… 아주 좋았다. 그리고 너…… 오행술은 어떻게 배운 거냐? 아주 제대로 배웠던데?”

“그거 누나한테 배운 거잖아요?”

“응? 뭐라고? 나한테? 내가 언제 너한테 오행술을…… 아! 설마 너!”

건의 말을 들은 연희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그것들이 모두 오행발현술로 만들어진 것이란 얘기야?”

“네, 모두 누나가 알려준 오행발현술로 만든 거예요.”

“……장난하는 거지? 방금 네가 보여준 오행술은 최소한 하급 이상의 오행술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지만 가능한 것이었어.”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왜 제가 누나한테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럼 정말 그것들이 전부 오행발현술만으로 만들어졌다는 거야?”

“네, 제가 다른 오행술법을 구할 능력이 없다는 걸 누나가 더 잘 알잖아요.”

“……너 정말 괴물이었구나?”

연희는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요?”

“문제는 없지. 다만 놀라울 뿐이다. 계속 네가 상당한 재능을 지녔을 것이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오행발현술을 이 정도까지 익히는 게 쉬운 게 아니었던 건가요?”

“쉬운 게 아니냐고? 아니, 쉽고 어렵고를 떠나 네가 방금 그걸 보여주기까진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

“불가능…… 한 거였어요?”

“이제는 가능한 게 되었지.”

“전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잘못했다고 얘기하는 게 아니야. 잘했어. 아니, 아주 잘했어. 난 단지 너의 어처구니 없는 재능에 놀랐을 뿐이야.”

“제가 좀 특출나긴 하죠.”

연희의 말을 들은 건은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건 진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겠다. 하지만 너도 이건 알아야 한다.”

순순히 건의 특출남을 인정해준 연희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네가 가진 재능은 이쪽 세상에서 잔뼈가 굵은 나조차 아주 놀랄 정도야.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재능이라고 해도 그 재능을 뒷받침할 힘이 없다면 절대 제대로 만개(滿開)할 수가 없는 것도 현실이야.”

연희는 솔직하게 건의 현실을 얘기해주었다.

“하지만 뒷받침할 힘이란 게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어차피 쉽게 구할 수 없다면 하나씩 차근차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연희가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었음에도 건은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애초에 건 역시도 알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 현실에 좌절하고 괴로워했겠지만, 건은 달랐다.

어차피 그는 스스로 풍족하게 뭔가를 가져본 경험이 없었고 오히려 부족한 것이 익숙했다.

그렇기에 건은 이러한 현실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할 수 있었다.

“직접 만들어간다…… 나쁘진 않지만 아무리 너의 그 대단한 재능이라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야.”

“저에게 중요한 건 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일 뿐입니다. 얼마나 빨리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건은 자신의 신념이 확고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연희의 말에 대답하는 그에게선 전혀 부족한 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거 내가 어쩌면 네가 가진 진짜 재능을 못 알아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는걸? 어쨌든 좋은 자세야. 하지만 분명 달릴 기회가 있다면 달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뭐, 달릴 기회가 있는데도 굳이 걸을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달릴 기회만 기다리며 넋 놓고 있고 싶지 않다는 뜻일 뿐이죠.”

“좋아, 그럼 내가 달리는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빠르게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진 도와주마. 앞으로 매일 나와 대련하자. 나도 이것저것 제약이 있어서 너에게 많은 걸 가르쳐줄 순 없지만…… 대신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건 확실히 가르쳐주마.”

연희는 건에게 그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호의를 베풀었다.

확실히 연희는 유독 건에게 친절했다.

건이 여러 가지 재수가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결정적으로 건은 누구보다 연희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이유 때문에 연희는 건에게 만큼은 마음을 열어주었다.

“진짜요?”

“너무 기대는 하지 마. 그냥 기본만 알려주는 것뿐이야.”

연희는 애써 별거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건에겐 이게 절대 별것이 아니지 않았다.

건은 잘 마른 종이와 같았다.

언제라도 물을 단번에 흡수할 수 있을 만큼 잘 말라 있었지만 정작 흡수할 물이 부족했다.

그런데 연희가 그 물이 되어주겠다고 했으니 당연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저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수련시간은 점심시간에 한 시간, 그리고 퇴근하고 한 시간. 이렇게 하루에 두 시간 정도만 하자.”

“네.”

건은 연희의 말에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수련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연희에게 배운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하루에 두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참고로 어설프게 가르칠 생각은 없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연희는 자신이 강철민에게 배울 때 그랬던 것처럼 아무리 기본일 뿐이라도 일단 가르쳐주기로 한 이상 제대로 가르칠 생각이었다.

“넵!”

연희가 무슨 말을 해도 건은 기분 좋게 웃었다.

수련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건은 그저 뭔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 * * *

수련은 당장 다음날부터 시작됐다.

연희는 강철민에게 건을 가르쳐도 좋다고 허락을 받고 곧장 아침부터 건을 데리고 카페 지하로 내려갔다.

“어차피 영혼단련 같은 거 내가 알려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까 난 너에게 앞으로 경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싸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쪽으로 가르쳐줄게. 참고로 경계에선 단순히 수마나 암괴 같은 괴물들과만 싸우진 않아. 소울러끼리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고 심지어 외인들과도 싸울 수 있어. 같은 소울러라고 해서 모두 같은 편은 아니라는 걸 절대 잊지 마.”

“네, 명심할게요.”

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연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오늘은 가볍게 암괴들을 상대하는 법부터 배워보자. 네 실력이라면 하급 암괴들은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며칠만 집중적으로 배우면 암괴 사냥은 충분히 가능해질 거야.”

“진짜요? 그럼 저도 정식으로 헌터가 될 수 있는 건가요?”

“암괴를 사냥했다고 해서 바로 헌터 협회에서 헌터로 인정해주는 경우는 없어. 일반 헌터라고 해도 인정을 받으려면 경력을 계속 쌓고 어느 정도 사냥 공로를 인정받아야 해. 그리고 사실 전에도 얘기했지만, 일반 헌터는 크게 의미가 있진 않아. 프로 헌터가 되어야 진짜 헌터 협회에서 인정하는 헌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

“아직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았어요. 일단은 눈앞에 있는 목표가 먼저니까요.”

건은 프로 헌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당장 그가 원하는 건 아르바이트를 대체할 안정적인 수입이었다.

“맞아. 지금 너에게 프로 헌터는 미래의 얘기일 뿐일 테니 일단은 암괴 사냥에 집중해. 넌 재능이 있으니까…… 생각보다 금방 프로 헌터의 문턱이 보일지도 몰라.”

연희는 진심으로 건의 재능을 인정했다.

“하하, 그때가 되면 누나에게 진짜 인정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후후,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네가 진짜 프로 헌터가 된다면 진심으로 축하해주마. 하지만…… 지금은 암괴 사냥이 먼저다. 자, 시작하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희의 표정은 차가운 얼음처럼 단단히 굳어졌다.

수련이 시작되며 그녀는 다시 아이스퀸이라 불리는 냉정한 프로 헌터로 돌아갔다.

적어도 수련을 할 때만큼은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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