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23화 (23/175)

# 23

더 소울(The Soul) - 도움(2)

“순수하게 육체 능력만 놓고 보면 암괴들은 동급의 소울러들보다 훨씬 강력하다.”

퍼퍼퍽!

연희의 주먹은 사정없이 건의 복부를 파고들었다.

“컥!”

건은 순간 숨이 턱 막혀왔지만, 더 이상의 추가공격을 허용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옆으로 몸을 비틀며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소울러에겐 혼력이 있지. 이 혼력을 잘 이용하면 암괴들의 육체 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어. 바로 이렇게.”

스스슷!

연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혼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했다.

그녀는 혼력의 수발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그녀가 생각하는 순간 혼력은 이미 그 힘을 발휘했기 때문에 사실상 생각과 혼력의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찰나에 불과했다.

휘릭, 콰광!

그녀는 몸을 비틀어 옆으로 구르며 공격을 피했던 건을 곧장 따라잡은 후 건의 한쪽 팔과 어깨를 붙잡고 그대로 건을 바닥에 내리 꽂아버렸다.

흔히 유도 경기에서 자주 나오는 엎어치기와 유사한 동작이었다.

“크악!”

문제는 바닥이 매트가 아니라 단단한 시멘트 바닥이란 사실이었다.

덕분에 건은 등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그나마 건은 바닥에 내리 꽂아지기 직전에 혼력을 이용해 등 근육을 강화시켰기 때문에 간신히 진짜 등뼈가 부러지진 않았다.

하지만 만약 그게 조금만 늦었다면 진짜로 등뼈가 부러질 수도 있었다.

그만큼 연희는 살벌하게 건을 가르쳤다.

“아직 반응이 늦어. 생각과 혼력의 움직임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줄이면 줄일수록 더 강해진다고 생각하면 돼. 이건 나중에 네가 영혼과 맹약을 맺은 후에도 그 영혼이 지닌 혼력을 끌어다 쓸 때 적용되는 부분이니까 먼저 익숙해지면 나중에 아주 편해질 수 있어.”

자신의 혼력을 다루는 요령과 맹약을 맺은 영혼의 혼력을 다루는 요령은 같았다.

그렇기에 여기서 혼력을 다루는 요령을 완벽하게 터득하면 훗날 맹약을 맺은 영혼의 힘을 더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게 사실이었다.

“크으으.”

건은 등뼈가 부서질 것 같은 큰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연희의 말을 집중해서 들었다.

“다시 한 번 막아봐. 명심할 건 네가 생각을 해서 혼력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생각을 하면 자연스럽게 생각에 혼력이 반응하게 해야 해. 그게 핵심이야.”

연희는 건에게 특별한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지 못하면 절대 모르는 아주 중요한 요령 같은 걸 가르쳤다.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사실은 어떤 특별한 기술보다 더 중요하고 대단한 것이 바로 이 요령이었다.

건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희의 말을 단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계속 집중 또 집중했다.

“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건은 머리를 흔들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연희는 절대 쉽게 그 중요한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철저히 몸으로 요령을 배워야 했기 때문에 건은 몸 전체에서 쏟아지고 있는 비명을 꾹 참고 연희와 계속 대련했다.

“끊임없이 네 의지와 혼력을 하나로 하려고 노력해. 그게 하나로 가까워지면 질수록 너도 분명 강해질 수 있을 거야.”

연희가 얘기한 건 소울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난해한 것이었다.

의지와 혼력을 하나로 만드는 것.

그것은 궁극적으로 소울러들이 추구하는 바였다.

하지만 실제로 이걸 완벽하게 하나로 만든 소울러는 사실상 없었다.

다만 하나에 최대한 근접하게 한 소울러들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 아주 미세한 차이가 혼력을 실질적인 힘으로 바꾸는 과정에선 아주 크게 작용하였다.

사실상 의지와 혼력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은 맹약으로 맺어진 영혼을 자신의 몸에 강림시키는 순간뿐이었다.

괜히 강림이 통혼보다 훨씬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영혼을 강림하지 않고도 의지와 혼력을 완벽하게 하나로 만들 수만 있다면 그땐 진짜 통혼을 통해서도 거의 강림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몰랐다.

그만큼 의지와 혼력이 하나가 되는 건 중요했다.

‘기필코 하나로 만든다!’

건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 번 굳게 다짐하면 다시 이어질 연희의 공격에 대비했다.

* * * *

잘 마른 종이와 같았던 건은 연희가 알려주는 물과 같은 가르침을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처럼 건은 아주 빠르게 연희가 알려주는 여러 요령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갔다.

특히 건은 연희가 매일 같이 강조하는 의지와 혼력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 결과 연희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한 달 정도 만에 어느 정도 자신의 의지에 혼력이 바로 따라올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연희와 비교했을 땐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불과 한 달 만에 이뤄낸 성과치고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건은 별로 만족스러워하질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남들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이었다.

건은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봤을 땐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울러들이 만든 계산법에 따르면 연희는 의지와 혼력의 차이가 0.29였다.

이 정도 수준이면 최상급 소울러들이 가지는 수치였다.

하지만 건은 아직 0.84였다.

이 수치는 대략 중상급 소울러들의 가지는 수치라고 할 수 있었다.

건의 목표는 이 수치를 0.5 이하로 만드는 것이었다.

소울러들은 이 수치를 ‘제혼력(制魂力)’ 또는 ‘소울 컨트롤(Soul Control)’이라고 불렀는데 이 수치가 낮으면 낮을수록 소울러로서의 역량이 큰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 제혼력은 영혼과 맹약을 맺는 것과는 또 다른 부분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등급이 꽤 높은 영혼과 맹약을 맺었음에도 이 수치가 좋지 않은 소울러들도 상당히 많았다.

제혼력이 좋지 않다는 건 그만큼 혼력을 다루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었고 이는 곧 맹약으로 이어진 영혼의 힘을 활용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뜻이었다.

즉, 제혼력이 낮으면 설사 등급이 조금 낮은 영혼과 맹약을 맺었다고 해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영혼의 힘을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건은 연희에게 그 얘길 듣고 어떻게 해서라도 제혼력을 0에 가깝게 낮추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연희와 대련을 하게 되면서 건의 일상은 더욱 규칙적이게 되었다.

새벽에 기상해 고시원 옥상에서 영혼단련을 하고 아침 일찍 출근해 연희와 한 시간 동안 대련을 빙자한 무차별 구타를 당한 후 저녁까지 쭉 카페 헤븐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 다시 한 번 더 연희에게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퇴근을 하며 경계를 찾아 돌아다녔다.

경계를 찾게 되면 들어가서 수마를 사냥했다.

가끔 재수가 좋아 등급이 낮은 암괴라도 발견하면 그 암괴도 사냥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건은 지루하단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하루 수련 시간, 사냥 시간이 부족해서 아쉽단 생각만 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를 대체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사냥이었지만 하면 할수록 성취감과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이쯤 되자 건도 프로 헌터라는 타이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아직 일반 헌터가 되지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프로 헌터는 먼 미래의 얘기일 뿐이었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늘 그렇듯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었다.

이렇든 건의 생활은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아주 순조롭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모든 게 순조로운 건 아니었다.

건이 잠시 잊고 있던 불안요소, 그것이 건이 모르는 곳에서 점점 건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카페 헤븐? 금강철벽 강철민이 운영하는 그 카페를 말하는 거야?”

김동철은 이제는 자신의 완벽한 심복이 된 수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수민은 중학교 때부터 김동철의 오른팔을 자처했던 인물이었다.

그 후로 김동철은 소울러로 각성하고 본가의 선택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수민을 데리고 있었다.

그는 비록 소울러는 아니었지만, 동철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외인(外人)으로 경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게 되었다.

“맞아, 거기에서 일하고 있더라고. 아직 맹약도 맺지 못했고 경계에 들어온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생초보야.”

“이 새끼……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놈이 그렇게 고개를 빳빳하게 들었던 건가?”

동철은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근데 카페 헤븐의 아이스퀸하고 상당한 친분이 있는 것으로 보이던데 괜찮겠어?”

“아이스퀸? 아, 그 금강철벽의 제자이자 이번에 새롭게 프로 헌터가 된 여자.”

“응, 아이스퀸도 아이스퀸이지만 그 뒤에 있는 강철민은 아무리 우리라고 해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이잖아.”

동철의 가문이 생각보다 상당히 전통 있는 명문이라고 해도 현재 대한민국 경계의 세상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최강의 소울러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인물은 사실 건드리지 않는 게 가장 좋았다.

“우리가 왜 강철민을 건드려? 우린 그저 카페 헤븐의 아르바이트생과 볼일이 있을 뿐이야. 귀찮은 걸 가장 싫어한다는 강철민이 일개 아르바이트생 때문에 움직일 거 같아? 설사 아이스퀸이 개입한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모든 일을 끝낸 이후일 텐데……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개입할 수 있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동철은 아무런 문제가 없단 표정으로 가볍게 얘기했다.

“그런가? 하여튼 녀석을 노리려면 무조건 카페 헤븐에서 나왔을 때여야 할 거야.”

“그건 당연하지. 내가 대가리에 총을 맞지 않은 이상 카페 헤븐으로 쳐들어갈 거 같으냐?”

“마침 녀석이 어쭙잖은 실력으로 수마 사냥을 시작한 거 같으니까 놈의 동선을 예상한 후 적당히 경계를 열어 놓으면 알아서 기어들어올 거 같아.”

“아주 좋네. 크크크, 그럼 그대로 진행해 봐. 적당한 장소와 시간만 골라오면 내가 직접 경계를 열어줄게.”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아주 기가 막히게 골라올게.”

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에게 동철은 보스 그 이상이었다.

동철이 없었다면 경계의 세상이란 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외인이 되는 건 꿈도 꾸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여전히 동철의 도움을 받아야지만 외인으로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동철이 시키면 동철의 발바닥도 핥을 수 있을 정도로 충성을 다했다.

“강철 고아 백건. 이번에는 확실히 네놈의 위치가 어딘지 알려주마. 아예 네 영혼에 각인될 수 있도록 확실하게…… 알려주겠다.”

동철은 이를 갈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만큼 그는 건에게 쌓인 게 아주 많았다.

쌓인 게 많은 만큼 풀고 싶은 것도 많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동철은 더욱 완벽하게 건을 옭아매고 싶었다.

‘백건…… 소울러가 되었다고 해도 넌 결국 하찮은 먼지일 뿐이야.’

동철은 조용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건을 이미 독 안에 들어간 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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