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더 소울(The Soul) - 대무신(大武神) 척준경, 그 이름을 기억해라.(1)
@ 대무신(大武神) 척준경, 그 이름을 기억해라.
“한 달 동안 번 돈이 정확히 사백칠십일만 구천사백 원…… 암괴는 사실상 몇 마리 못 잡았는데도 수익이 거의 배로 뛰었네.”
건은 연희에게 가르침을 받고 조금씩 암괴를 사냥했다.
비록 등급도 최하급이었고 숫자도 많지 않았지만, 확실히 암괴는 수마와 급이 달랐다.
‘수입이 괜찮을 것으로 생각하긴 했었는데…… 이 정도로 대박일 줄은 몰랐네.’
건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늘 그의 발목을 붙잡던 족쇄와 같은 것이었기에 더욱 기쁠 수밖에 없었다.
‘대학도 원하던 곳에 합격했고…… 요즘 일이 너무 잘 풀리는 거 같네. 내가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렸든 적이 있었든 가?’
건은 자신의 인생을 잠깐 돌아보았다.
조금만 나아가면 벽에 막히기 일쑤였던 삶.
그게 건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었다.
‘뭐 잘 풀리는 건 좋은 거잖아?’
잘 풀리는 걸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낯설 뿐이었다.
“앞으로 이대로 계속 쭉쭉 치고 나가자.”
건은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더도 말고 딱 요즘만 같으면 정말 세상 살맛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분위기는 딱 암괴가 나올 거 같은데…….”
오늘도 건은 퇴근 중에 우연히 발견한 경계에 들어와 수마 또는 암괴를 찾아다녔다.
자신이 연 경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마나 암괴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찾기만 하면 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건은 경계가 보일 때마다 한 번씩 들려보는 편이었다.
스으으.
경계의 특징 중 하나가 현실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짙은 안개가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었는데 이 안개는 수마와 암괴의 기척을 숨겨주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귀찮더라도 안개를 헤치고 돌아다니며 직접 수마와 암괴를 찾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다.
‘만약 오늘 암괴를 잡고 조각을 얻을 수 있다면…… 나도 조각 수련이란 걸 좀 해봐야겠다.’
그동안은 돈이 먼저였기 때문에 얻은 조각들을 모두 카페 헤븐을 통해 팔았었다.
하지만 건은 이제 돈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이상 조각수련이란 걸 해보고 싶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암괴를 잡고 영혼의 조각을 얻어야 했다.
짙은 안개를 헤치고 얼마를 헤맸을까?
건은 드디어 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암괴인가? 그런데 암괴치고는 느낌이 좀 약한데?’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천천히 자신이 발견한 존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데 가까이에서 확인한 그 존재는 건이 전혀 생각지 예상하지 못한 존재였다.
“백건…… 오랜만이네.”
놀랍게도 건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암괴나 수마가 아닌 사람이었다.
그것도 건이 익히 알고 있는 인물.
과거 건에게 무참히 깨졌던 동철의 오른팔 이수민이었다.
“이수민…….”
건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오, 그래도 날 기억하긴 하나 보네? 이거 영광인걸?”
수민은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건을 향해 얘기했다.
동철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그 역시 건에게 쌓인 게 많았다.
“미친개가 데리고 다니는 똥개들 중 그래도 네놈이 가장 끗발이 높았잖아? 그러니 기억 정도는 해줘야지.”
건은 살짝 미소를 띠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 새끼…… 듣던 대로 여전하구나.”
“듣던 대로? 아, 너 여전히 미친개 똥을 닦아주고 있구나. 이제 이해가 된다. 네가 왜 여기에 있는지.”
“뚫린 입이라고 마음대로 말하는 버릇은 정말 그대로구나. 강철 고아…… 네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뻣뻣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
수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여유롭게 얘기하는 건이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윽.
수민은 건을 바라보며 조용히 겉옷을 벗었다.
철컥, 철컥.
그러자 그의 전신을 뒤덮고 있는 묘한 갑옷 같은 게 드러났다.
수민은 손에 들고 있던 바이크 헬멧 같은 강철 헬멧까지 머리에 썼다.
그러자 그의 모습은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수민이 입고 있는 갑옷은 영화에 나온 최첨단 슈트와 비슷하게 생겼고 딱 보기에도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 인조인간이라도 된 거야?”
건은 수민을 바라보며 물었다.
“크크크, 하긴 너 같은 초짜 소울러가 소울 슈트(Soul Suit)를 알아볼 리가 없지.”
소울 슈트, 다른 말로 혼갑(魂鉀)이라 불렸던 그것은 외인들을 경계에서 살아남게 해준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아…… 이게 그거였구나. 그럼 넌 소울러도 아니란 뜻이네?”
건은 소울 슈트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대충 언젠가 연희가 얘기했던 경계의 세상에 존재하는 첨단 장비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얘긴 결국 수민이 소울러가 아니라 외인이라는 것 뜻이기도 했다.
“소울러? 흐흐흐, 경계가 소울러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냐? 오늘 내가 그 멍청한 생각을 완전히 박살 내주마.”
철컥, 푸슛!
수민은 가볍게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조각 하나를 자신이 입고 있던 소울 슈트의 가슴 언저리에 꽂아넣었다.
그 조각은 영혼의 조각이었다.
소울 슈트를 작동시키려면 영혼의 조각이 필요했다.
영혼의 조각에 담긴 에너지가 모두 소모되면 다시 조각을 바꿔줘야 했지만 적어도 지금 수민이 꽂은 영혼의 조각 정도라면 10시간 이상은 소울 슈트를 가동할 수 있었다.
‘호오, 저게 저렇게 작동하는구나.’
건은 그런 수민의 모습을 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민이 입고 있는 소울 슈트는 등급으로 따지면 하급 정도밖에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렇기에 영혼의 조각에 담긴 에너지를 뽑아내는 효율도 그리 높지 않고 성능 자체도 별로였지만 건이 그걸 알 리는 없었다.
“영혼과 맹약을 맺지 않은 소울러가 얼마나 무력한지 똑똑히 보여주마.”
쿵쿵.
수민은 건을 향해 다가오며 중얼거렸다.
그는 건을 잘근잘근 밟아서 이제 곧 도착할 동철에게 선물로 바칠 생각이었다.
수민은 오른팔을 뻗어 건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는 건을 완벽한 초짜 소울러로 보고 있었다.
혼력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실상 평범한 경계밖의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그런 초짜 소울러.
그렇기에 아주 쉽게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은 당연히 너무나 큰 착각이었다.
휘릭.
건은 자신을 향해 뻗어진 수민의 오른팔을 가볍게 낚아챈 후 그대로 수민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완벽한 엎어치기 한판.
수민은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을 한 바퀴 돌아 땅바닥에 처박혔다.
콰과광!
“크으윽.”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수민은 순간적으로 자신이 뭘 당했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그저 갑자기 하늘과 땅이 뒤바뀌며 바닥에 처박힌 느낌밖에 없었다.
수민을 가볍게 바닥에 꽂아버린 건은 그대로 쓰러져 있던 수민의 복부를 힘차게 차버렸다.
휘이익, 꽈광!
너무나 강력한 사커킥에 수민은 그대로 바닥에 튕기며 뒤로 날아갔다.
콰과광!
건은 전투에 있어서는 사정 같은 걸 봐주지 않았기 때문에 수민의 방심으로 얻은 기회를 철저히 이용했다.
단 두 번의 공격이었지만 이미 수민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큰 충격을 입은 상태였다.
“으으…….”
바닥에 튕긴 후 사정없이 벽에 처박혔던 수민은 힘겹게 일어나며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가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미 건은 그의 앞에 도착해 있었다.
츠츠츳!
건은 오른 주먹에 혼력을 집중시킨 후 그대로 쓰러져 있던 수민의 머리를 향해 그 주먹을 내리꽂았다.
콰드드득.
“크아아아악!”
그 한 방에 수민이 쓰고 있던 헬멧이 쪼개지며 수민의 머리가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민은 큰 충격을 입었다.
쿠쿵.
거의 반쯤 실신한 상태로 바닥에 쓰러진 수민.
최초 소울 슈트를 입고 나타났을 때 만해도 건은 안중에도 없었던 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뭐야? 생긴 게 굉장히 거창해 보여서 나름 기대했는데 겨우 이 정도였어?”
건은 오히려 실망스럽단 표정을 지으며 자신 앞에 쓰러져 있던 수민을 내려다보았다.
물론 지금은 수민이 너무 방심했고 건이 그러한 방심을 아주 완벽하게 받아쳤기 때문에 다소 허무하게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었지만 어쨌든 지금의 건은 어설픈 하급 소울 슈트를 입은 외인 정도가 이길 수준은 아니었다.
“끄으으으…….”
수민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건을 올려다보았다.
건은 그런 수민의 가슴 위에 발을 올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모습…… 익숙하지 않아?”
이수민은 과거에도 생각 없이 건을 건드렸다가 딱, 이런 모습으로 굴욕을 당했었다.
“이…… 이런…… 개…… 같…….”
수민은 몸을 부르르 떨며 건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노려보는 게 끝이었다.
그의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워져 있었다.
“흥분할 거 없어. 그때나 지금이나 넌 여전히 미친개를 따라다니는 똥개 중 한 마리일 뿐이니까…….”
건은 당연한 결과란 표정으로 얘기하며 지긋이 오른발로 수민을 눌렀다.
콰드득.
그냥 천천히 누르는 것 같았지만, 오른발에는 상당한 양의 혼력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급의 소울 슈트…… 그것도 이미 충격으로 영혼의 조각에서 공급되던 에너지가 끊긴 상태의 소울 슈트가 견딜만한 압력이 아니었다.
수민의 소울 슈트가 천천히 구겨지며 부서지기 시작했다.
“미친개는 어디 있지? 벌써 와 있나? 아니면 조금 천천히 오는 건가? 아, 네놈이 날 제압하면 그때 어슬렁어슬렁 등장해서 잔뜩 허세를 부리려고 한 것이군.”
건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그거 알아? 네가 아무리 전과 달라졌다고 해도 결국 평생 미친개 뒤나 따라다니는 네 위치는 여전히 여기일 뿐이야. 알겠어?”
건은 수민의 소울 슈트를 거의 짓이기며 또박또박 얘기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건의 예상을 듣고 나타난 것처럼 진짜 미친개가 등장했다.
“백건, 거기까지만 해라.”
스으으.
짙은 안개를 뚫고 나타난 김동철은 자신의 수족이라 할 수 있던 이수민이 크게 다쳤는데도 별로 신경 쓰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에게 수민은 그저 말 잘 듣는 한 마리의 개일 뿐이었다.
알아서 눈치껏 일 처리를 잘해서 조금 아껴줬던 것일 뿐이었기에 수민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서 크게 신경 쓸 동철이 아니었다.
“미친개…… 역시 왔군.”
건은 동철을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수민…… 멍청한 놈. 멋대로 일을 벌였으면 제대로 수습을 했어야지. 어디서 저런 근본도 없는 놈한테 또 그렇게 굴욕을 당하고 있는 거야.”
동철은 오히려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민을 바라보았다.
그는 수민의 현재 상황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로지 수민이 자신을 실망하게 하고 짜증 나게 하였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렇듯 동철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굉장히 이기적인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