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25화 (25/175)

# 25

더 소울(The Soul) - 대무신(大武神) 척준경, 그 이름을 기억해라.(2)

“여전히 넌 네 생각밖에 하지 않는구나? 그래도 너 좋다고 쫓아다니는 똥개 새끼들인데…… 역시 미친개다워.”

“그건 네가 신경 쓸 게 아닌 거 같은데?”

“하긴 개새끼들 일인데 사람인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한결같은 그 태도…… 언제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게 제일 궁금해. 과연 내 발밑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도 그 태도를 유지할까? 그렇다면 내가 인정해주마.”

동철은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자신의 힘을 개방했다.

그는 원래 자신과 맹약으로 맺어진 영혼의 힘을 사용하지 않고 건을 제압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수민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덕분에 건이 생각보다는 훨씬 더 강하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츠츠츳.

동철은 통혼을 통해 자신과 계약한 영혼의 힘을 끌어왔다.

콰아아아아!

순식간에 그의 몸속 깊은 곳에서 강력한 혼력이 용솟음쳤다.

동철과 맹약을 맺은 영혼은 과거 궁예의 위사(衛士)였다가 뒤에 태조 왕건을 모셨던 유명한 무인 박술희였다.

그는 천성이 용감하고 육식을 좋아해 두꺼비부터 개미까지 못 먹는 게 없다고 알려진 용장(勇壯)이었다.

원래 그의 영혼등급은 7등급이었지만 오랜 세월 김동철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가며 계속 그의 영혼을 계승시킨 덕분에 아주 아슬아슬하게 6등급의 영혼으로 승격한 상태였다.

물론 다른 6등급 영혼들과 비교하면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어서 굳이 정확히 구분하자면 최하급 6등급 영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6등급 영혼인 건 확실했다.

박술희의 영혼에서 흘러나온 혼력은 동철의 몸 전체로 퍼져 나갔고 그 덕분에 동철은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미증유의 거력(巨力)을 가지게 되었다.

“백건, 너에게 왜 맹약을 맺은 소울러가 진짜 소울러인 건지 확실히 알려주마.”

동철은 말과 함께 건을 향해 움직였다.

단지 가볍게 한 걸음을 뗀 것 같았는데 어느새 그는 건의 앞에 나타났다.

순간 건은 몸을 옆으로 날리며 동철의 접근에서 벗어났다.

피이잉!

아슬아슬한 차이로 동철의 주먹이 건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허공을 쳤다.

“호오, 이걸 피해?”

그걸 보고 동철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 순간에도 그는 옆으로 몸을 날린 건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파파팟!

동철은 옆으로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한 건을 향해 빠르게 몇 번의 주먹을 뻗었다.

건은 이번 공격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직감하고 곧장 양팔에 혼력을 집중시킨 후 그 공격들을 막았다.

퍼퍼퍼퍽!

주르르륵.

“크윽.”

간신히 막긴 막았지만, 워낙 동철의 주먹에 실린 힘이 강력해 막아도 막은 게 아닌 것처럼 되어버렸다.

그대로 한참을 뒤로 밀려난 건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뼈가 부러지진 않았지만, 양팔의 근육이 살짝 파열된 느낌이었다.

“이여, 백건. 어디서 기본은 제대로 배웠나 보네? 혼력을 상당히 능숙하게 사용하는걸?”

동철은 영혼과 맹약도 맺지 않은 건이 혼력을 아주 능숙하게 사용하는 걸 보고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동철은 아무리 건이 혼력을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해도 자신과는 지니고 있는 힘의 등급 자체가 달랐기 때문에 결과는 절대 바뀔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퉷.”

건은 조금 전 충격 때문에 몸 안에서 역류해 올라온 핏덩어리를 뱉으며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지금 내 실력으론 저 미친개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젠장…… 내가 너무 안일했다. 설마 미친개가 저 정도로 강할 줄이야. 이건 완벽한 내 실수다.’

건은 미친개가 언제 한 번쯤은 자신을 찾아올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서 미친개한테 자신이 꿀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는 미친개가 기껏해야 9등급 정도의 영혼과 맹약을 맺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정도라면 이길 순 없을지 몰라도 대충 싸우다 몸을 빼낼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예상이 빗나갔다.

이건 건의 완벽한 실수였다.

‘저 정도의 움직임이라면 몸을 빼서 도망치기도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할까?’

건은 실수했다고 해서 그 실수를 계속 생각하며 후회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실수는 실수로 인정하고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었다.

‘우선은…… 버티자.’

지금 건이 할 수 있는 건 겨우 버티는 것뿐이었다.

몸을 뺄 수도, 그렇다고 반격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버티면서 기회를 엿보는 게 최선이었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겠군.”

동철은 건을 빨리 제압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아주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고통스럽게 건을 괴롭힐 작정이었다.

그래야만 오래전 쌓였던 분노가 풀릴 것만 같았다.

스으윽.

동철은 오른팔을 들어 건을 향해 뻗었다.

츠츠츳.

그러자 그의 오른팔에 유형화된 혼력이 뭉쳐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흔히 소울러들이 혼기(魂氣) 또는 소울 포스(Soul Force)라 부르는 것이었다.

‘젠장…… 이 타이밍에 혼기라니…….’

건도 혼기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어지간한 혼력으로는 흉내도 낼 수 없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기술이었다.

당연히 등급이 있는 영혼과 맹약을 맺어야만 쓸 수 있는 기술이기도 했다.

연희가 종종 보여준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건은 그 위력이 상당하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파파팟!

동철은 가볍게 건을 향해 혼기를 뿌렸다.

콰과과광!

혼기는 건이 서 있던 곳에 쏟아지며 강력한 폭발을 일으켰다.

하지만 건은 다행히 그 자리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는 혼기의 위력을 잘 알았기 때문에 확실히 피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동철의 공격은 지금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타타탁!

동철이 가볍게 바닥을 구르며 뛰쳐나가자 그의 몸은 한줄기의 바람처럼 순식간에 건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동철의 폭풍과 같은 공격이 건의 몸에 마구 쏟아졌다.

퍼퍼퍼퍼퍽!

피하거나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건이 강해졌다고 해도 한계란 건 분명히 존재했다.

동철은 영혼과 맹약을 맺고 그 영혼의 혼력을 끌어다 사용하고 있었다.

그냥 영혼도 아니고 무려 6등급 영혼이었다.

동철의 제혼력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6등급 영혼이 지니고 있는 혼력 자체가 워낙 컸기 때문에 당연히 건은 동철에게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크으으윽.”

건은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고통을 느끼며 계속 뒤로 밀려났다.

동철은 사악하게 일부러 공격을 분산시켜 건을 쓰러지지도 못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건은 그저 몸으로 동철의 공격을 받아냈다.

정말 근육이 파열되는 건 물론이고 뼈가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이 느껴졌지만, 건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대신 이를 꽉 물고 고통을 참았다.

여기서 이대로 죽는 한이 있어도 건은 절대 미친개 앞에선 비명을 지를 생각이 없었다.

과거에도 그랬었다.

건은 아무리 지독한 고통이 있다고 해도 절대 자신을 찍어 누르는 이들 앞에서 힘든 표정을 짓지 않았다.

“이 새끼…… 이것마저 예전하고 똑같네? 고통스럽지 않아?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기는 고통은 어지간해선 참기 어려울 텐데?”

동철은 더욱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런 동철에게 건은 대답 대신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보여주었다.

파파팟!

온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와중에도 반격의 기회를 엿보던 건은 동철이 잠깐 말을 하는 사이를 놓치지 않고 곧장 주먹을 휘둘렀다.

츠리릿!

순간 동철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동철의 반응이 빨랐기 때문에 아쉽게도 건의 공격은 동철의 뺨을 살짝 스치는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주르륵.

살짝 스쳤음에도 동철의 뺨에선 한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그만큼 건이 날카로운 반격을 했다는 뜻이었다.

“이 새끼!”

피를 본 동철은 순간 분노가 솟구쳤다.

휘이잉! 빠각!

그는 솟구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아주 강하게 건을 차버렸다.

드드드드드, 콰과광!

건은 갈비뼈가 조각조각 부서지는 고통을 느끼며 그대로 바닥에 튕겨져나가 구석에 처박혔다.

“크윽.”

그 와중에도 건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지만 이젠 진짜 참는 것도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여기까지인가…… 저 개새끼한테…… 이대로 당할 수밖에 없는 건가?’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이 상황에서도 건은 끊임없이 방법을 찾았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포기했을 테지만 건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포기할 바엔 단 한 번에 모든 걸 걸고 승부를 거는 남자였다.

그렇기에 이 상황에서도 그는 자신이 승부를 걸 뭔가를 계속 찾고 또 찾았다.

“후유, 이거 피를 보고 잠깐 흥분했군. 죽진 않았지? 아직 죽으면 안 돼. 난 아직…… 분을 덜 풀었거든.”

스윽.

동철은 천천히 건을 향해 다가오며 마치 걱정이라도 해주는 것 같은 표정까지 지었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동철은 이걸 즐기고 있었다.

‘힘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가진 힘으론…… 저놈을 이길 수 없다. 나에겐…… 더 강한! 힘이 필요하다.’

물론 건은 당장 자신에게 그런 힘이 생길 것으로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더 강한 힘을 키우지 못한 자기 자신을 책망하려는 것뿐이었다.

‘결국, 모든 건 내 실수였다. 나 자신을 지킬 힘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멍청하게 방심이나 하고…… 이 모든 고통은 내가 스스로 자처한 것이다.’

건은 다른 누군가를 원망할 생각은 없었다.

그는 뭐가 됐건 이건 오롯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모든 걸 놔버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난…… 백건이다.”

스르륵.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건.

서 있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몸이었건만 건은 오로지 의지 하나만으로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똑바로 미친개 김동철을 바라보았다.

“김동철!! 넌…… 날 절대 굴복시킬 수 없을 거다. 예전에…… 그러했듯이.”

건은 큰 소리로 동철에게 외쳤다.

“오냐, 언제까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한 번 보자.”

동철은 오히려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아주 철저히 건을 망가트릴 생각이었다.

‘힘이 필요해. 저 녀석에게 맞설 힘이 필요해.’

건은 너무나도 간절히 힘을 원했다.

비록 힘이란 건 원한다고 당장 생길 수 있는 게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간절하게 힘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기억해……]

갑자기 건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이상한 목소리.

‘환청인가?’

건은 고개를 흔들며 그 이상한 목소리를 떨쳐내려 했다.

하지만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것도 점점 또렷하게!

[……내 이름을 기억해……]

‘뭐, 뭐야?’

[……힘이 필요하다면 내 이름을 기억해……]

환청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한순간 마치 천둥이 치듯이 머릿속을 관통해 건의 심장에 꽂혔다.

[맹약의 인자(因者)여, 힘이 필요하다면 내 이름 기억해내라!]

콰과광!

순간 시간이 정지했다.

그리고 건의 머릿속에 꼭꼭 숨겨져 있던 한 뭉치의 기억이 자연스럽게 풀어졌다.

최초 경계에 들어왔을 때 맺었던 맹약…… 그때 만났던 영혼…… 그리고 그의 이름.

“척……준경…….”

그랬다.

소울러가 맹약을 맺은 영혼을 불러내기 위해선 무조건 맹약을 맺을 당시 들은 영혼의 이름을 기억해내야 했다.

이게 바로 소울러와 영혼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맹약의 언(言)이었다.

[그래, 이제야 기억해 냈구나.]

콰아아아아.

그 말과 함께 갑자기 건의 몸속 깊은 곳에서 엄청난 양의 혼력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척준경. 대무신 척준경! 이제부턴 그 이름을 꼭 기억해라.]

콰과과광!

건이 모든 걸 기억해내는 그 순간.

대무신 척준경의 영혼이 오랜 세월을 뛰어넘어 드디어 현실에 강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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