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
더 소울(The Soul) - 대무신(大武神)[1]
@ 대무신.
이제야 자신이 맹약을 맺었다는 사실과 대무신 척준경의 이름을 기억해낸 건은 드디어 맹약의 언을 완성하며 척준경과 연결되었다.
잠시 끊겨 있던 척준경과의 연결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통혼(通魂)이 되며 엄청난 양의 혼력(魂力)이 건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이 엄청난 혼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몸을 다쳤을 수도 있었지만, 건은 그동안 꾸준히 제혼력(制魂力)을 연마한 덕분에 아주 능숙하게 그 혼력을 전신으로 퍼트렸다.
전신으로 퍼진 혼력은 순식간에 망가진 건의 육체를 회복시켰다.
물론 완벽하게 회복시킨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움직이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까진 회복시켰다.
척준경은 무려 3등급의 영혼이었다.
3등급은 일명 초월(超越) 급이라고도 불렸다.
사실 척준경은 원래대로라면 4등급의 대영웅(大英雄) 급이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생(生)을 끝내기 직전 깨달음을 얻어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초월의 무(武)를 완성했다.
덕분에 그는 영혼석과 계약할 때 4등급이 아닌 3등급으로 자신의 영혼등급을 격상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 오로지 자신이 일신에 지닌 무력(武力)만으로 3등급에 오른 것이었기 때문에 척준경은 다른 영혼들보다도 더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었다.
괜히 그를 대무신(大武神)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그런 척준경의 혼력이었기에 더욱 힘이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건은 이 혼력을 이용해 육체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겉으론 힘겨운 표정과 모습으로 서 있었다.
굳이 자신이 힘을 얻었다는 걸 지금 자신을 향해 한껏 비릿한 미소를 짓고 천천히 걸어오는 동철에게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마음껏 웃어라.’
오히려 건은 그런 동철을 마음속으로 비웃으며 반격을 준비했다.
“어디를 망가트려 줄까?”
동철은 오른손을 슬쩍 들어 올리며 비틀거리는 건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네놈이 그렇게 빳빳이 서 있는 게 마음에 들지 않으니…… 두 다리를 박살 내주마.”
동철은 일단 건의 두 다리를 완전히 망가트린 후 계속 건을 괴롭힐 생각이었다.
츠츠츳!
동철은 들어 올린 오른손에 다시 한 번 혼력을 유형화시키며 천천히 건을 향해 뻗었다.
그는 이미 건이 정상적으로 피하거나 방어를 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다.
원래대로라면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만약 척준경이란 변수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건은 이번 공격을 절대 막거나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변수가 등장했고 건의 육체는 대부분 회복된 상태였다.
그뿐 아니라 건은 척준경이 보내준 막대한 양의 혼력도 지니고 있었다.
비록 건은 아직 통혼을 통해 제대로 맹약으로 이어진 영혼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 자체를 모르고 있었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척준경이 보내준 막대한 혼력만으로도 건은 아주 강해졌다.
“너에게 어울리는 건 벌레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이지!”
파파팟!
동철은 유형화된 혼력을 건의 다리 쪽으로 방출시켰다.
그는 당연히 그 기운이 건의 두 다리를 완전히 박살 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그 확신은 불과 1초 만에 깨어졌다.
콰과과광!
그가 뿌린 유형화된 혼력은 그가 원했던 곳에 정확히 적중되었지만 정작 그가 노린 목표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건은 가볍게 뛰어오르며 동철의 공격을 피했다.
그냥 뛰어오르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는 뛰어오르는 것과 동시에 허공을 박차고 앞으로 날아갔다.
“헛!”
갑작스러운 건의 반격에 동철은 깜짝 놀랐다.
물론 깜짝 놀란 것과는 별개로 본능에 따라 건의 반격을 막기 위해 움직였지만, 확실히 놀란 건 분명했다.
쩌저정!
건의 발과 동철의 손이 부딪치며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했다.
이 얘긴 곧 건의 발에도 유형화된 혼력이 뭉쳐져 있다는 뜻이었다.
“맹약도 맺지 않은 소울러가 혼기(魂氣)를 사용한다고?”
순간 동철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건을 바라보았다.
“무슨 혼기에 대한 저작권이라도 가진 것 같은 표정이네?”
건은 슬쩍 웃으며 얘기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파파파팟!
고속으로 뻗어지는 건의 주먹.
건은 단지 가볍게 몇 번 주먹을 날리려고 한 것이었지만 정작 육체는 마치 일순간에 쏟아지는 소나기 같은 연속 펀치를 구현해 냈다.
이건 모두 척준경이 전해준 혼력의 효과였다.
모든 혼력은 마치 지문과 같이 사람마다 각기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이건 영혼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척준경이 지닌 혼력은 다른 영혼들과는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척준경의 혼력을 받은 건은 자연스럽게 척준경이 지닌 아주 기본적인 능력들 같은 걸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걸 진정 척준경이 지닌 모든 힘을 사용하려면 꾸준히 수련해 통혼 과정을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동시에 통혼으로 끌어온 혼력에 담긴 척준경의 완벽하게 의지를 자신 몸에 깃들게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순수하게 척준경의 혼력을 받은 것만으로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능력이란 게 존재했고 그 덕분에 건은 전과 완벽히 다른 육체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대무신이라고 불리는 척준경의 영혼이 지닌 절대적인 힘이었다.
따다다다당!
동철은 힘겹게 건의 소나기 펀치를 막아냈다.
그가 통혼을 통해 연결한 영혼은 6등급의 준수한 영혼이었지만 척준경과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영혼이었다.
척준경의 혼력은 단순히 건의 육체만 강화한 게 아니었다.
건은 척준경의 혼력에 담긴 극한(極限)의 패기(覇氣) 덕분에 정신력마저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덕분에 그는 동철을 몰아붙이면서 동시에 현재 자신의 상태를 하나씩 점검할 수 있었다.
‘이게 통혼이란 건가? 정말…… 마치 대해(大海)에서 물을 공급받는 느낌이구나.’
건은 처음 통혼을 경험하는 것이었지만 아주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통혼을 통해 전해진 혼력을 자신의 것처럼 다루었다.
이게 가능한 건 그동안 건이 제혼력을 열심히 연마했기 때문이었다.
연희의 말처럼 제혼력은 맹약으로 맺어진 영혼의 혼력을 다룰 때도 적용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건은 처음이었지만 그럼에도 아주 능숙하게 척준경의 혼력을 받아서 사용했다.
“크윽.”
연신 쏟아지는 건의 공격에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던 동철은 도대체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뭐지? 도대체 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저 어마어마한 존재감은…… 도대체 뭐야?’
동철은 갑자기 건에게서 절대란 단어가 어울릴만한 기세가 피어오르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이해하고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퍼퍼퍼퍽!
동철은 계속해서 쏟아지는 건의 주먹을 양팔로 간신히 막으며 계속해서 뒤로 밀려났다.
‘이, 이대로 당할 순 없다.’
동철은 이대로 계속 건의 공격을 막기만 하다간 진짜 아무것도 못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츠츠츳, 콰광!
동철은 있는 혼력을 양팔로 집중시켜 건의 공격을 강하게 밀어냈다.
그 결과 건의 혼력과 동철의 혼력이 충돌하며 큰 폭발을 일으켰다.
주르르륵.
폭발 때문에 서로 밀려나는 건과 동철.
결국, 동철은 자신이 원했던 대로 건과 서로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이 개새끼……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동철은 이를 갈며 건을 노려보았다.
“흐음…… 뭐, 어떻게 보면 힘을 숨겼다고 하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겠네.”
그런 동철을 바라보며 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분명 건은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게 맞았다.
“어떻게 네놈이 혼기를 사용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국 넌 모든 게 미숙한 초보 소울러일 뿐이다. 내가 오늘 너에게 진짜 소울러가 싸우는 법을 보여주마!”
그 말과 함께 동철은 곧장 통혼을 통해 박술희의 혼력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혼력은 영혼마다 지닌 성질이 다른 것처럼 그 혼력을 이용해 얻을 수 있는 이능(異能)도 모두 제 각기였다.
동철과 맹약을 맺은 박술희의 혼력은 육체 강화와 함께 맹호(猛虎)라 불리는 고유의 ‘명혼(名魂)’을 가지고 있었다.
명혼이란 6등급 이상의 영혼들만 가질 수 있는 매우 특별한 능력이었다.
일명 ‘스페셜 소울’이라 불리는 그것은 6등급 이상의 영웅급 영혼들에게만 허락된 힘이었다.
물론 4등급의 대영웅 급 영혼들은 그보다 더 특별한 ‘천혼(天魂)’을 가졌고 그 위의 초월급 영혼들은 ‘초월혼(超越魂)’이라는 아주 특별한 힘을 지녔지만 어쨌든 명혼도 굉장히 강력한 힘인 건 사실이었다.
각설하고 박술희의 맹호라는 명혼은 발동을 시키면 순간적으로 맹약을 맺은 맹약자의 육체 능력이 두 배 이상(맹약자의 제혼력에 따라 증가하는 수치가 달라짐.) 강해지고 동시에 맹약자는 그 옛날 박술희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극한의 용기를 부여받게 되었다.
비록 동철의 제혼력이 그리 좋지 못했기 때문에 맹호의 발동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최소한 15분 이상은 유지할 수 있었다.
동철은 그 시간이면 충분히 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크어어어어!”
동철은 망설이지 않고 곧장 맹호를 발동시켰다.
드드드드득!
박술희가 가진 명혼인 맹호가 발동되자 당장 동철의 덩치가 두 배로 커졌다.
“크으…… 뼛조각 하나도 남지 않을 정도로 가루로 만들어주마.”
동철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건을 노려보았다.
그는 맹호까지 발동시킨 이상 무조건 건을 쓰러트릴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가 내뿜고 있는 존재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확실히 명혼은 평범하지가 않았다.
애초에 명혼을 가지고 있는 영혼이라는 것만으로도 그 영혼의 힘이 상당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 영혼의 힘은 단순히 그 영혼이 생전에 가졌던 무력 같은 것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영혼이 생전에 가졌던 무력은 영혼의 힘을 결정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지만, 사실 그 영혼보다 더 중요한 건 영혼이 생전에 지녔던 명성이었다.
간혹 척준경처럼 말도 안 되는 무력으로 그 명성을 뛰어넘는 등급을 얻는 영혼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영혼은 생전에 지닌 무력이나 다른 특별한 능력이 명성에 합쳐지면서 등급이 결정되었다.
소울러들과 맹약을 맺는 영혼 중 70% 이상은 일명 무력형이라고 불리는 ‘무인(武人)’ 출신의 영혼들인 게 사실이었지만 나머지 30%는 무인 출신이 아닌 다양한 출신의 영혼들이었다.
어떤 영혼은 영적인 특수한 힘을 다루기도 했고 또 어떤 영혼들은 뛰어난 지력을 바탕으로 무력형 영혼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힘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특별히 일신에 지닌 무력이 뛰어나지 않다고 해서 높은 등급을 받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 무인 출신이 아니면서도 무인 출신의 영혼들을 압도하는 힘을 지닌 높은 등급의 영혼들도 다수 존재했다.
더 알기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면…… 대한민국의 소울러 중 가장 유명한 비무인(非武人) 계열 소울러였던 백의판관(白衣判官) 이희호 같은 경우는 조선 시대 최고의 재상이라 불렸던 황희와 맹약을 맺은 인물이었다.
그는 무력이라곤 조금도 가지지 않은 황희의 영혼과 맹약을 맺었지만, 그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순 없었다.
그가 맹약을 맺은 황희가 지닌 혼력은 무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대신 그에게 그 어떤 혼력보다 뛰어난 방어 능력과 동시에 상대방을 매우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특별한 명혼을 지니고 있었다.
황희의 영혼등급은 5등급이었지만 그보다 더 등급이 높은 영혼과 맹약을 맺은 소울러들도 황희와 맹약을 맺은 이희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비무인 계열 소울러들은 대부분 강력한 무력을 대체할 무언가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가장 알기 쉽게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영혼들은 무인 계열 영혼들이었지만 비무인 계열 영혼들도 잘만 사용하면 얼마든지 무인 계열 영혼들만큼이나 강력해졌다.
또한, 동철의 경우처럼 영혼은 오랜 세월에 걸쳐 대를 이어가며 맹약을 유지해 꾸준히 현세에서 활동하면 그 등급이 상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등급이 낮은 영혼이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됐다.
하지만 문제는 상대가 척준경이란 점이었다.
아무리 동철과 맹약을 맺은 박술희가 여러 가지 이유로 상당히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해도 척준경과는 그 격이 완전히 틀렸다.
순수하게 자신이 지닌 무력만으로 등급을 올려버린 괴물.
지닌 힘 자체가 모두 무력에만 집중된 초월급 영웅이었다.
사실상 순수한 무력만 놓고 보면 척준경은 등급이 하나 높은 이 등급의 영혼들도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기에 아무리 동철이 박술희의 명혼까지 발동시키며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그저 통혼만 유지하는 건의 존재감을 뛰어넘을 순 없었다.
꽈아앙!
동철은 전력을 다해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 주먹은 건의 손바닥에 가로막혔다.
건은 마치 어른이 어린아이의 주먹질을 가볍게 막는 것처럼 동철의 공격을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