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28화 (28/175)

# 28

더 소울(The Soul) - 성장 [1]

@ 성장.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건은 연희의 예언대로 레드 블러드의 광팬이 되었다.

레드 블러드는 지금까지 건이 마셔본 그 어떤 술, 아니 음료보다 맛있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맛있다는 표현보다는 환상적이었다는 표현이 어울렸지만 어쨌든 건은 레드 블러드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하지만 홀딱 반했다고 해서 무한정 마실 수 없는 게 레드 블러드였기 때문에 건은 딱 한 병의 레드 블러드를 철민, 연희와 나눠마셨다.

그것만으로 건의 맹약을 축하하긴 충분했다.

재미있는 건 연희와 철민은 건에게 어떤 영혼과 맹약을 맺었는지 절대 묻지 않았다.

심지어 몇 등급의 영혼과 맹약을 맺었는지도 묻지 않았다.

아예 맹약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고 순수하게 축하만 해주었다.

건은 철민과 연희의 이런 배려가 고마웠다.

사실 그들이 묻는다면 얼마든지 자신이 맹약을 맺은 영혼에 관해 얘기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아예 묻지를 않음으로써 건을 더욱 편하게 해주었다.

이렇듯 건은 어느새 확실한 카페 헤븐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연희도 그리고 철민도 이젠 건을 단순한 아르바이트생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덕분에 건은 평생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끈끈한 소속감 같은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건은 지금까지 아웃사이더(Outsider)처럼 살아왔었다.

그렇기에 이러한 소속감은 상당히 낯선 감정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낯설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감정이란 사실이었다.

레드 블러드는 상당한 독주였지만 역시나 숙취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숙취가 없었기 때문에 다음날 출근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았다.

건은 평소와 같이 카페 헤븐에 출근했다.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건이 맹약을 맺고 진짜 소울러가 되었고 그와 함께 철민이 건을 카페 헤븐의 정직원 승격시켜줬을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큰일들이었지만 사실 건이 하는 일 같은 게 변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엔 그대로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달라진 게 없을 뿐 사실 달라진 건 많았다.

특히 건은 척준경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자신의 맺은 맹약을 완성한 후 그제야 왜 맹약을 맺은 소울러를 진짜 소울러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굳이 자동차와 비교한다면 소울러가 자동차 그 자체라면 맹약을 맺지 않은 소울러는 기름을 넣지 않은 자동차였고 맹약을 맺은 소울러는 기름을 가득 채운 자동차였다.

당연히 두 자동차의 차이는 엄청날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긴 곧 맹약을 맺지 않은 소울러는 죽었다 깨어나도 맹약을 맺은 소울러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무리 자동차를 멋지게 고쳐도 절대 기름을 넣지 않고서는 마음껏 달릴 수가 없었다.

차라리 똥차라 할지라도 기름을 넣은 자동차가 나은 것처럼 아무리 재능이 떨어져도 맹약을 맺으면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맹약을 맺지 않은 이보다 훨씬 강했다.

물론 기름의 질이나 양에 따라 자동차가 낼 수 있는 성능 역시 달려졌지만 일단 뭐라고 넣어야 달릴 수 있는 것처럼 맹약을 맺어야만 그때부터 진짜 소울러로써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건은 정말 최고급 휘발유를 가득 채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건이 가지고 있던 자동차의 성능도 굉장했는데 거기다 최고급 휘발유를 가득 채우게 되자 당장 건은 지닌 성능을 마음껏 발휘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자동차가 지닌 성능이나 한계를 정확히 알지 못해 마음껏 가속페달을 밟진 못했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건은 전과는 완벽히 다른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은 통혼도 익숙하지가 않네?”

카페 청소를 끝내고 짬이 나자 잠깐 통혼을 통해 힘을 끌어올려 본 건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보통 소울러들은 맹약을 맺고 맹약을 맺은 영혼과 제대로 링크를 유지하는 데만 거의 한 달 이상이 걸렸다.

하지만 건은 그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건의 제혼력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거기에 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맺은 맹약을 임시로 오랫동안 유지하며 알게 모르게 링크가 조금씩 형성된 것도 한몫했지만 결국 그 모든 건 건의 뛰어난 제혼력으로 귀결되었다.

어쨌든 그렇게 하나의 과정을 완전히 건너뛴 건은 곧바로 영혼과 통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통혼은 아무리 제혼력이 뛰어난 건이라고 해도 쉽게 익힐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사실 소울러들은 임의로 통혼 - 강림(降臨) - 승천(昇天)의 세 과정으로 영혼의 힘을 빌려 쓰는 방법을 나눠놓고 뒤로 갈수록 더 대단한 기술인 것처럼 얘기했지만 따지고 보면 세 방법 모두 고유의 특징과 장점이 있었고 또 각각 단점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세 가지 과정은 엄밀히 따지면 서로 별개의 기술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통혼을 완벽하게 터득한 후 강림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통혼과 강림은 아예 서로 별개라는 뜻이었다.

물론 이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소울러들은 극히 드물었다.

흔히 탑클래스로 분류되는 극소수의 소울러들만 정확히 깨닫고 있을 뿐…… 나머지는 그저 통혼보다 강림이 강하고 강림보다 승천이 강한 기술이라고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건은 이제 갓 정식 맹약을 완성한 햇병아리와 같은 소울러이면서도 어렴풋이 통혼과 강림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지는 기술들의 관계가 자신이 들었던 것처럼 수직 관계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어렴풋이 그냥 느끼는 것일 뿐이지 명확하게 이해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건은 아직 통혼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초보 소울러였기 때문에 지금 그에게 급한 건 통혼을 마스터하는 것이었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더 자연스럽고 빠르게 맹약을 맺은 영혼과 제대로 된 연결 통로를 뚫느냐인데…… 너무 서두르면 불완전한 링크가 활성화돼서 중간에 흩어지는 혼력의 양이 커질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완벽하게 링크를 활성화하려다간 정작 필요할 때 제대로 혼력을 수급하지 못해 곤란할 수 있다.’

맹약을 맺은 영혼과 소울러를 연결하는 이 연결 통로, 즉 링크는 한 번 완성되면 영원히 유지되었지만 정작 이 링크를 활성화 시키는 건 다른 문제였다.

혼력은 본래 인간에게 허락된 힘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특별한 능력을 지닌 소울러라고 해도 장시간 혼력을 육체에 담아두면 당연히 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링크를 늘 유지하고 있는 행위는 육체에 큰 부담을 주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물론 이것 역시 소울러들마다 지닌 재능이 모두 달라 감당할 수 있는 혼력의 양은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아무리 많은 양의 혼력을 감당할 수 있는 육체를 지닌 소울러라고 해도 링크를 늘 유지하는 건 불가능했다.

가장 좋은 건 필요할 때마다 링크를 빠르게 활성화 시켜서 혼력을 공급받는 것이었지만 얼마나 링크를 유지하고 또 어느 순간에 다시 링크를 끊어야 하는 건지는 순수하게 소울러가 경험을 통해 터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계속 경험을 쌓아가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겠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뛰어넘지 못하는 간극(間隙)은 분명 존재했다.

건에겐 이 부분이 그러했다.

‘그렇다면 결국 많이 써봐야 한다는 뜻인데…… 결국 답은 수마 사냥뿐인가?’

사실 수마 사냥은 건에게 하나의 돌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동철의 가문인 백련김가였다.

연희는 건에게 당분간은 최대한 조심하라고 얘기했다.

백련김가가 당장 노골적으로 움직이긴 힘들지 몰라도 언젠간 분명 동철의 복수를 하려고 할 게 분명했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조심한다고 수련까지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건 마치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것과 마찬가지야. 결국, 궁극적으로 백련김가의 위협에서 벗어나라면 내가 강해져야 한다.’

조심해야 하는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잔뜩 움츠러들어 있는 것은 건의 성격과 맞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무조건 그 일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살아온 건이었기에 이번에도 역시 피할 생각이 없었다.

“수마 사냥은 계속한다. 다만…… 전처럼 무조건 경계가 보이면 뛰어드는 게 아니라 이제부턴 내가 스스로 경계를 만들어내는 연습을 해야겠다.”

경계란 결국 세 가지로 나뉘었는데 첫 번째는 자연스럽게 세상에 만들어지는 외(外) 경계였고 두 번째는 내가 스스로 원해서 만들어내는 아(我) 경계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열어놓은 경계인 피(彼) 경계가 있었다.

사실상 아 경계와 피 경계는 같은 경계였기에 두 개를 합쳐서 내(內) 경계라고도 불렀다.

어쨌든 건은 이 세 가지 경계 중 피 경계에는 어지간해선 들어가지 않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피 경계만 조심한다면 건이 위험해질 일도 그리 많진 않았다.

물론 대놓고 건을 따라 경계로 들어온다면 위험해질 수도 있었지만, 백련김가가 공식적으로 카페 헤븐의 일원이 된 건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노릴 가능성은 극히 적었다.

‘수마 사냥을 하지 않을 땐 전처럼 제혼력을 위주로 수련하자.’

건은 맹약을 맺고 정식 소울러가 되었으면서도 여전히 예전에 익혔던 오행발현술(五行發現術)을 수련했다.

이미 건이 익히고 있는 오행발현술은 사실상 오행발현술이라 할 수 없는 경지까지 올라 있었다.

연희의 말을 빌리자면 건은 오행발현술을 자신만의 오행술로 만든 상태였다.

‘이 술법도 혼력을 이용해서 증폭시키면 더 강해진다고 했지?’

연희에게 대충 혼력을 어떤 식으로 쓰면 되는 건지 배운 건은 그걸 떠올리면서 슬쩍 손안에 불꽃을 만들어 보았다.

화르륵.

카페 헤븐은 경계 안에 만들어진 공간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반쯤은 경계에 걸쳐 있는 공간이라 할 수 있었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카페 헤븐은 실제로는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었지만 정작 보통 사람들은 이 카페를 발견할 수 없고 오로지 경계에 소속된 특별한 이들만 발견할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철민이 일명 결계석(結界石)이라 불리는 무지하게 비싼 돌덩이를 이용해 카페 헤븐을 현실과 경계 중간에 있게 하는 진법을 펼쳐놨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카페 헤븐은 일반인들은 아예 인지조차 못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런 이유 때문에 건은 카페 헤븐 안에서는 좀 더 많은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물론 경계에 들어간 것처럼 100% 모든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70%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건이 만든 불꽃은 생각보다 더 강렬하게 타올랐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건은 손바닥 위에 불꽃을 내려다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곧장 그 손바닥을 눈앞에 있던 큰 양동이에 가져갔다.

치이익!

건이 양동이에 손바닥을 붙이자 불꽃이 양동이의 옆면을 휘감으며 타올랐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이러는 건 아니었다.

그저 건은 양동이의 물을 끓일 생각이었다.

건은 뜨거운 물이 필요했고 그걸 위해 수련을 겸해서 이렇게 물을 끓이는 것이었다.

‘살짝…… 혼력을 써볼까?’

물을 끊이기 시작한 건은 조금 전 생각했던 혼력을 이용한 오행술의 강화를 떠올리곤 곧장 실행에 옮겨 보았다.

가볍게 맹약으로 이어진 척준경과의 링크를 활성화 시켜보는 건.

그가 원하는 건 아주 약간의 혼력이었기 때문에 링크를 완벽하게 활성화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마치 야구에서 투수가 주자가 있을 때 퀵 모션을 통해 투구동작을 간략하게 바꾸는 것처럼 나름 자신만의 방식으로 빠르고 간단하게 링크를 만들었다.

이런 게 바로 통혼의 요령이었다.

건은 이렇듯 이러한 요령을 아주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터득했다.

건은 지금 자신이 가볍게 만들어낸 이 빠르고 간단한 링크를 그렇게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사실 이러한 퀵 링크는 최소한 정식 맹약을 맺고 일 년 정도는 통혼에 익숙해져야 만들 수 있었다.

그걸 건은 며칠 만에 만들어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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