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
더 소울(The Soul) - 성장 [2]
어쨌든 그렇게 빠르고 간단한 퀵 링크를 통해 혼력을 끌어당긴 건은 곧장 그 혼력을 자신이 만들어낸 불꽃 쪽으로 주입했다.
여기까지는 아주 좋았다.
퀵 링크를 만들고 그 링크를 통해 아주 능숙하게 혼력을 끌어오고 다시 그 혼력을 불꽃에 주입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은 진짜 노련한 소울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능숙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과정들은 능숙했는데…… 정작 혼력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나 무식했다.
혼력을 이용해 술법을 강화하는 건 이렇게 단순히 주입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연히 건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콰앙!
“크윽!”
혼력이 불꽃에 주입된 순간 불꽃은 폭발을 일으키며 양동이에 주먹만 한 구멍을 만들었다.
건이 의도한 건 불꽃을 키우는 것이었지만 결과는 불꽃이 커지는 게 아니라 폭발이 일어났다.
그것도 건이 통제하지 못한 폭발이었다.
치이이익.
갑작스러운 폭발 때문에 건은 오른손이 얼얼할 정도로 충격을 입었다.
다행히 그리 많은 양의 혼력을 사용한 게 아니라 혼력이 몸속에서 역류하거나 하진 않았다.
“……이것도 요령이 필요한 건가?”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구멍 난 양동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다행히 카페에는 손님이 없었고 연희와 철민도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물론 양동이 하나를 망가트렸다고 뭐라고 할 그들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것이었다.
‘소울러마다 가지고 있는 혼력의 성질이 다르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진 혼력을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겠구나.’
이번 폭발로 건은 더욱 확실하게 혼력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소울러들이 맹약을 맺은 영혼으로부터 받는 모든 종류의 힘을 통틀어 혼력이라 불렀지만 정작 이 혼력은 그 종류만큼 다양한 성질을 지닌 힘이었다.
그렇기에 똑같은 방법으로 사용해도 그 결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우선 척준경이란 인물에 대해 좀 알아보는 게 먼저이려나?’
혼력은 결국 맹약을 맺은 영혼이 지닌 고유의 힘이었기 때문에 그 영혼이 생전에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면 더 쉽게 성질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소울러가 이렇게 하고 있었고 건 역시 연희에게 어느 정도 이런 것들을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았다.
“이거 졸지에 역사 공부를 하게 생겼네.”
건은 슬쩍 웃으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 * * *
길주에서 윤관과 별무반 2만 명이 3만의 여진족과 맞닥뜨렸다.
윤관은 급히 대열을 갖추고 적을 맞을 준비를 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적들은 대열만 갖추고 있을 뿐 돌격해 오지를 않았다.
윤관이 의아해 하던 차에 여진족의 후미에서 붉은 깃발을 든 무리가 나와 고려말로 외치기를 “우리 추장께서는 많은 피를 보시는 것을 꺼리신다. 추장께서 일기토를 신청하니 너희 고려인 중에 인재가 있다면 어디 한번 우리 여진족 장수 올고타와 상대해보라.”라고 하였다.
고려인을 조롱하는 말을 듣고 대노한 윤관이 당장 싸움에 임하자고 응수했다.
본디 윤관 휘하의 장수에 걸출한 장사들이 많았으므로 자신만만하였다.
윤관은 휘하 장졸 중 무술이 가장 뛰어난 두충을 불러 내보내었다.
두충이 호기롭게 창을 꼬나쥐고 한가운데로 나가자 순간 여진의 무리가 반으로 갈라지며 족히 8척 3치(193cm)는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거한이 앞으로 나왔다.
두충은 큰소리를 치며 대번에 창을 휘둘러 올고타의 목을 찔러갔으나 창이 올고타의 왼손에 잡히며 한칼에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토록 무력이 뛰어나던 두충이 어이없이 한칼에 목이 잘리자 여진족은 기세등등하게 고함을 질렀고
별무반은 사기가 죽어버렸다.
이에 윤관은 사기를 회복하고자 다른 장수를 찾았지만, 두충이 패하는 것을 본 장수들이 모두 그를 기피하였다.
그때, 부관으로 보이는 8척(180cm)이 넘어 보이는 거구가 앞으로 나서 윤관에게 소리쳤다.
“신은 척준경이라 하온데, 소관을 보내주시면 저 무례한 오랑캐의 목을 베어오겠나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다른 장수들이 부관이 앞에 나서는 것이 심히 무례하다며 꾸짖었으나 윤관은 그의 용모와 골격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허락하였다. 이에 척준경은 거대한 태도(太刀)를 쥐고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이에 올고타가 코웃음 치며 곡도(曲刀)를 휘둘러왔다. 척준경이 양손으로 태도를 잡고 피하지 않고 부딪쳤다.
놀랍게도 한칼에 올고타는 곡도를 놓친 채 손목을 부여잡았다.
이에 척준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양손으로 도를 잡은 채 횡(橫)으로 도를 휘둘러 올고타의 허리를 베어버렸다.
반대로 별무반의 사기가 크게 오르고 여진의 사기가 땅에 떨어졌다.
이에 척준경을 상대할 만한 장수가 없었던 여진은 물러갔고 이 일로 윤관의 총애를 받은 척준경은 공로가 조정에 보고되어 장수로 승진하였다.
고려사 절요(高麗史 節要) 발췌
* * * *
윤관과 오연총이 8천의 군사를 이끌고 협곡을 지나다가 5만에 달하는 여진족의 기습에 고려군이 다 무너져 겨우 10여 명만 남았고, 오연총도 화살에 맞아 포위된 위급한 상황에 척준경이 즉시 용사 10여 명을 이끌고 달려왔다. 이에 척준경의 동생 척준신이 이르기를 “적진이 견고하여 좀처럼 돌파하지 못할 것 같은데 공연히 쓸데없는 죽임을 당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척준경이 말하기를 “너는 돌아가서 늙은 아버님을 봉양하라! 나는 이 한 몸을 국가에 바쳤으니 사내의 의리상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소리치며 우레와 같은 기합과 함께 적진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척준경은 단숨에 여진족 10여 명을 참살하였다. 척준경과 10명의 용사가 분투하여 최홍정과 이관진이 구원하고 윤관은 목숨을 건졌다.
고려사 절요(高麗史 節要) 발췌
* * * *
윤관의 여진 정벌 당시, 여진족이 석성에 웅거하여 별무반의 앞길을 가로막자 윤관이 전전긍긍하였다. 이에 부관이었던 척준경이 이르기를 “신에게 보졸의 갑옷과 방패 하나만 주시면 성문을 열어 보겠나이다.”라고 호언장담하였다.
척준경이 석성 아래로 가서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성벽으로 올라가 추장 두서너 명을 참살하고 성문을 열어 고려군이 성을 함락하였다.
고려사 절요(高麗史 節要) 발췌
건은 인터넷에 찾은 자료 들을 읽으며 진심으로 감탄해 고개를 끄덕였다.
건이 인터넷으로 찾은 척준경에 대한 자료는 거의 A4용지로 100장이 넘었다.
그리고 그 자료들 대부분이 척준경의 말도 안 되는 무력을 똑똑히 알려주고 있었다.
다소 과장돼서 알려진 자료들도 많았지만, 과장을 없앤다고 해서 척준경의 업적은 여전히 대단했다.
오히려 모든 역사가 기록되진 않았을 것을 고려하면 진짜 척준경은 엄청난 무력을 지닌 무인이라 할 수 있었다.
‘정말 그의 말 그대로 대무신(大武神)이었군.’
이제야 건은 왜 척준경을 자신을 대무신이라고 표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보통은 그렇게 자신을 표현하면 어느 정도는 과장이 섞이기 마련이었는데…… 척준경 같은 경우는 전혀 과장이 섞이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러니까 불꽃이 폭발했지.’
건은 척준경의 자료를 읽고 왜 혼력을 주입한 불꽃이 폭발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척준경의 혼력은 정말 강력한 패기(覇氣)였다.
혼력 차체에 녹아들어 있는 그 패기는 당연히 오행술법과 만나며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건이 노련했다면 혼력에 녹아들어 있는 패기를 최대한 억제하고 혼력의 힘만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불꽃의 크기와 열기만 키웠겠지만, 아직 건은 혼력을 그렇게까지 노련하게 다루진 못했다.
‘척준경…… 난 과연 이 대무신의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건은 척준경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가 생전에 지녔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생전의 힘이 대단하다면 당연히 혼력도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건은 자신이 맹약을 맺은 척준경이 무려 3등급의 영혼이란 걸 알고 있었다.
이건 철민과 연희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다만 예전에 연희에게 3등급 영혼이 얼마나 대단한 영혼인지 들었었기 때문에 자신이 대단한 기연을 얻은 것이란 사실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초월급 영혼이라고 했던가? 뭐…… 아직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은 못하겠네.’
대단한 건 충분히 알겠지만 정작 그 대단함을 실감할 정도로 적응된 건 아니었다.
“대충 정리가 됐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수련을 시작해볼까?”
스윽.
건은 손에 들고 있던 A4용지 뭉치를 책상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시각은 새벽 4시.
출근하기까진 아직 몇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이 시간엔 역시 육체단련이지!’
맹약을 맺고 정식 소울러가 되었지만, 건은 육체 단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희의 조언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건은 육체 단련 자체가 재미있었다.
‘연희 누나가 소울러의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했었지?’
소울러들은 누구나 더 높은 등급의 영혼과 계약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나 높은 등급의 영혼과 계약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영혼을 담는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소울러의 육체가 영혼의 등급에 못 미치면 영혼은 맹약을 거부하거나 역으로 소울러의 육체를 잡아먹고 혼마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최상급 소울러들은 자신의 육체를 꾸준히 단련했다.
‘가볍게 팔굽혀 펴기 사백 회부터 시작해볼까?’
이미 건의 육체는 보통 인간의 기준에서 거의 프로 운동선수 수준으로 강화되어 있었다.
물론 여기에 혼력이 더해지면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만, 건은 육체 단련을 할 땐 순수하게 육체의 능력만 이용했다.
그렇게 해야 효율이 더 높았고 자꾸 혼력을 이용해 육체를 강화해서 수련하게 되면 육체가 본연의 힘보단 혼력에 의지하려는 성질이 강해지는 것 같아서 혼력은 필요할 때만 조금씩 사용했다.
이런 요령은 언제나처럼 건이 독학으로 터득한 것들이었지만 역시나 아주 정확한 방법이었다.
건은 마치 누가 옆에서 족집게 수련 과외를 해주는 것처럼 스스로 알아서 가장 정확하고 효율이 높은 방법으로 수련했다.
그렇기에 건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건이 거의 온종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건 만의 특이한 영혼단련법인 건식수련법(乾式修鍊法)은 날이 갈수록 더욱 특별하게 변해갔다.
건이 혼력의 의지를 읽어서 스스로 완성한 그 특이한 영혼단련법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주 조금씩 변했는데 그 변화의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점점 더 건의 육체에 녹아들면서 마치 건을 위해 만들어진 영혼단련법처럼 특화되어가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아주 미세했지만, 행공이 거듭될수록 건식수련법이 움직이는 혼력의 흐름 자체가 점점 빨라진다는 점이었다.
일단 건의 육체에 녹아들어서 건만을 위한 영혼 단련법이 되어간단 얘긴 그만큼 건과 건식수련법의 궁합이 좋아지면서 효율이 극대화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혼력의 흐림이 빨라진다는 뜻은 건식수련법 자체의 영혼단련 능력이 강화된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 두 가지 사실이 의미하는 건 건식수련법이 점점 더 강력한 영혼단련법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정작 건은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인지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어차피 건은 건식수련법을 그만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건식수련법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주 조금씩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육체 수련과 영혼단련.
건은 이 두 가지를 놓치지 않고 계속 이어나가며 거기에 연희와의 실전 수련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건은 당연히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건을 가르치는 연희도 매일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건의 성장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아쉬운 건 워낙 건이 밑바닥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점이었지만…… 이러한 성장 속도만 꾸준히 유지한다면 앞으로 몇 년 안에는 정말 대단한 소울러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