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소울(THE SOUL)-30화 (30/175)

# 30

더 소울(The Soul) - 마이너스 에너지 [1]

@ 마이너스 에너지.

건은 카페 헤븐에서 일을 하면서 남는 시간에 수련과 수마 사냥을 아주 열심히 했다.

수마 사냥 같은 경우는 백련김가를 의식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다행히 백련김가는 아직 건을 노리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건은 끝까지 방심하지 않고 안전하게 수마 사냥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시간은 쏘아놓은 화살처럼 빨리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건은 그가 아주 오랫동안 그토록 꿈에 그리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가 합격한 대학교는 ‘한국대학교’였다.

한국대학교는 최상위권의 대학교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20위권 안에는 들어가는 나름 상위권 대학교였다.

정확히 건은 한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건은 영어영문학과와 경제학과 중 한 곳을 놓고 고민했었는데 아무래도 영어에 좀 더 흥미가 있어서 영어영문학과를 선택했다.

이제부턴 낮에는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건의 근무 시간은 오후부터 새벽까지로 바뀌었다.

그동안은 건이 낮부터 저녁까지 근무하고 연희와 교대를 했지만, 이제는 반대로 연희가 건이 출근할 때까지 근무하게 되었다.

건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근무시간을 바꿔준 철민과 연희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어쨌든 근무시간까지 해결한 건은 아주 마음 편하게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첫 등교.

건은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막상 처음으로 학교에 가게 되자 기분이 묘해졌다.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

하지만 분명한 건 이번 한국대학교 입학은 건의 살아온 인생 중 가장 주류에 가까운 일이란 사실이었다.

사실 건이 어색한 느낌을 받는 이유는 그가 주류보단 비주류에 가까운 삶을 쭉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분명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이런 이상한 기분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 * * *

건은 수마 사냥을 하느냐고 오리엔테이션을 건너뛰었기 때문에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낯설 수밖에 없었다.

다른 신입생들은 대부분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기 때문에 이미 서로 상당히 친해져 있는 상태였다.

더욱이 건은 보통 신입생들보다 다섯 살이나 나이가 더 많았기 때문에 쉽게 어울리기도 힘들었다.

결국, 건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아웃사이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건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친구를 사귀거나 신 나게 놀기 위해서 대학교에 온 건 아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카페 헤븐에서 일을 하고 또 짬짬이 수련도 해야 하는 건에겐 강의 듣는 시간도 빠듯할 지경이었다.

사실 건이 친해지고자 마음을 먹는다면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는 건 일도 아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만약 건이 소울러가 되지 않았다면 먼저 나서서 다른 학생들과 친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랐다.

건은 정말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기도 했고 지금은 현실 세상의 일도 일이지만 경계에서의 일에 더 신경이 쓰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학교에선 정말 모범생처럼 공부만 했다.

그 덕분에 건은 영어공부 하난 확실하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스슷!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

이건 경계가 만들어질 때 느껴지는 전형적인 느낌이었다.

‘응? 여기서 웬 경계가…….’

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건은 강의를 듣고 있었다.

설마 그는 이곳에서 경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다.

경계가 만들어지자 건 주변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경계 특유의 음산한 기운이 건의 몸을 휘감았다.

‘어디 보자…… 설마 내(內) 경계는 아니겠지?’

이렇게 급작스럽게 경계가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외(外) 경계일 가능성이 높았다.

건은 잠시 정신을 집중하며 경계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았다.

그러자 경계에 미세한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기운이 한곳에서 흘러나오는 게 아니라 중구난방 마구 흘러다닌다. 확실히 외 경계군.’

외 경계와 내 경계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지금처럼 경계 내부에 존재하는 기운의 흐름을 읽는 것이었다.

기운의 흐름이 한 곳을 중심으로 흐른다면 그것은 아 경계나 피 경계 같은 내(內) 경계란 뜻이었고 중심이 존재하지 않고 중구난방으로 마음대로 흐른다면 그건 외(外) 경계란 뜻이었다.

물론 이게 아주 100% 정확히 맞는 건 아니었지만 거의 95% 이상 맞았다.

‘도대체 뭐 때문에 경계가 만들어진 거지? 내가 볼 때 여긴 경계가 만들어질만한 장소가 아니었는데…….’

경계는 아무 이유가 없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경계가 만들어졌다는 건 분명 경계를 만들어낸 뚜렷한 원인이 존재한다는 뜻이었다.

“일단 좀 살펴볼까?”

건은 이대로 곧장 경계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이 외(外) 경계라는 걸 확인하곤 도대체 어떤 원인이 경계를 만들어냈는지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스윽.

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경계가 만들어진 이상 현실에서의 건은 그 자리에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로 사라졌을 것이다.

경계를 모르는 현실의 보통 사람들은 경계와 관련된 것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소울러가 갑자기 경계 속으로 들어가도 그들은 애초에 소울러가 사라졌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소울러가 현실에서 사라져도 그걸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질 않았다.

당연히 반대도 다시 경계 밖으로 나오며 현실에 나타나도 마찬가지로 소울러가 다시 갑자기 나타난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

한 마디로 소울러가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건은 여유 있게 경계를 살펴볼 수 있었다.

경계는 평범했다.

대부분의 경계처럼 잡귀(雜鬼)들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등급이 매우 낮은 몇 마리의 수마(獸魔)만 간혹 보일 뿐이었다.

그런 잡귀나 수마들은 잡아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에 건도 그냥 놔두었다.

애초에 그들 역시 건에게서 풍기는 혼력을 느끼고 건을 피해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렇게 건은 삼십 분 정도 경계를 쭉 둘러보았지만, 특별히 경계가 만들어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뭐지? 그냥 잠깐 우연히 마이너스 에너지가 중첩되었던 건가?’

경계를 만들어내는 가장 결정적인 힘 중 하나가 흔히 마이너스 에너지라 불리는 기운이었다.

사실 혼력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마이너스 에너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혼력은 마이너스 에너지였지만 맹약(盟約)이라는 숭고한 과정을 통해 정 반대의 힘인 플러스 에너지로 바꿀 수 있었다.

여기서 얘기하는 마이너스 에너지는 간단히 설명하자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부정(不正)의 기운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플러스 에너지는 그와 반대되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긍정의 기운을 통칭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마이너스 에너지가 과도하게 쌓이면 수많은 일이 발생했는데 그 중 가장 흔한 게 바로 잡귀나 하급 수마들이 탄생하는 것이었다.

이건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어떻게 막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이 바로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그 밖에도 마이너스 에너지가 과도하게 쌓이면 온갖 일들이 다 일어났지만, 대부분의 마이너스의 에너지는 앞의 두 경우를 통해 해소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과도하게 쌓일 일이 별로 없었다.

“쳇, 사냥할만한 수마도 보이지 않고…… 이거 괜히 시간만 버렸네.”

건은 다시 한 번 주변을 둘러보다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차라리 이 삼십 분 동안 수업을 듣는 게 훨씬 더 생산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빠져나가자.’

아마도 건이 경계를 빠져나가면 이 경계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소멸 될 것이다.

구심점이 존재하지 않는 경계는 오래 유지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스르륵.

건은 경계의 외곽에 존재하는 뚜렷한 선을 확인하곤 그 선을 가볍게 넘어섰다.

그게 바로 경계와 현실을 구분 짓는 선이었다.

파아아앗!

건은 별로 어렵지 않게 경계를 빠져나왔다.

그는 경계를 빠져나온 이후 곧장 자신이 수업을 듣던 강의실로 돌아갔다.

강의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뒷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로 갔다.

재미있는 건 강의실에 있던 그 누구도 그런 건을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마치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다른 학생들을 대하듯 건도 그렇게 대했다.

이게 바로 인지를 하지 못한다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예 건이 사라진 것에 대해 인지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건이 다시 강의실에 들어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분명히 영역을 침범하면서도 교묘하게 균형을 맞추는 두 세상.

현실과 경계는 이런 식으로 서로 뒤엉켜져 있었다.

스으으으.

건이 사라진 경계.

건은 자신이 빠져나가면 경계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가 빠져나갔음에도 경계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던 구심점.

놀랍게도 그 구심점이 존재했다.

스르륵.

학교 강당 지붕 위에 나타난 검은색 그림자.

분명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는 그 그림자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다가 건이 사라졌던 곳에 시선을 멈추었다.

“크르르르.”

그리곤 아주 낮게 으르렁거렸다.

희미한 실루엣만 보였기 때문에 정확한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일단…… 사람이 아닌 동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건 확실해 보였다.

놀라운 건 그 검은색 그림자가 풍기는 존재감이었다.

일개 수마가 가지기엔 너무나 큰 존재감.

그것은 마치 혼마들이 풍기는 존재감과 유사했다.

스으윽.

한동안 건이 사라졌든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와 함께 경계도 역시 천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 * * *

오늘도 역시 건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장 카페 헤븐으로 출근했다.

평소와 다르게 카페 헤븐은 손님들이 꽤 있었다.

덕분에 건은 출근하자마자 연희를 도와 곧장 일을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서울, 경기 지역에 외(外) 경계가 집중적으로 열리기 시작하면서 현재 대한민국의 수많은 헌터들이 이쪽 지역으로 몰려 와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그들은 여러 종류의 소모품을 구하기 위해 카페 헤븐과 같은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강의가 별로 없는 수요일이라 일찍 출근했던 건은 저녁 시간까지 연희를 도와 계속 일만 했다.

저녁에 가까워지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손님들이 뜸해졌고 겨우 여유가 생겼다.

건이 카페 헤븐에서 일한 지도 반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손님이 많은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휴, 이제 좀 여유가 생기네.”

연희는 오늘 판 물건들 목록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창고도 엉망인데. 전 창고 정리부터 할까요?”

“정신없었지? 아마 당분간은 계속 이럴 거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왜 이렇게 손님들이 많이 왔던 거예요?”

“아직 원인은 파악되지 않았는데…… 서울, 경기 지역에 갑자기 마이너스 에너지가 마구 몰려들기 시작했나 봐. 그 때문에 외(外) 경계가 미친 듯이 열렸고 그곳에서 사냥하려는 헌터들이 전국에서 모두 몰려들었다.”

“마이너스 에너지가 몰려든다고요? 원래 이런 현상이 자주 일어나나요?”

“아니, 거의 일어나지 않지. 나도 말로만 들었지 직접 경험하는 건 처음이야. 덕분에 갑자기 가게 매출이 늘어날 것 같긴 한데…… 덕분에 정작 내 본업인 사냥을 나가지 못하는 게 아쉽네.”

“저한테 맡기고 사냥을 나가세요. 좀 정신없겠지만,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면 이 정도는 혼자 소화할 수 있어요.”

“말만이라도 고맙다. 근데 어차피 지금은 완전 잔챙이 경계들만 잔뜩 만들어지고 있어서 별로 사냥을 나가고 싶지도 않아. 혹시 나중에라도 제대로 된 사냥감이 나타나면 그때 부탁할게.”

“네, 언제라도 부탁하세요.”

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학교에서 왜 갑자기 경계가 생성되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구나.’

그와 함께 건은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창고 정리하고 올라와. 오늘은 가게를 일찍 닫고 곧바로 수련부터 하자. 이 정도나 팔았는데…… 더 장사하는 건 도둑놈 심보지.”

연희는 마치 자신이 사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음대로 가게 문 닫는 시간을 결정했다.

“그래도 돼요?”

“어차피 사장님은 지방 출장 중이셔.”

“넵! 알겠습니다. 그럼 후딱 정리하고 올라올게요.”

수련이라면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건이었기 때문에 기분 좋게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하곤 곧장 창고로 뛰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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