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더 소울(The Soul) - 흑룡(黑龍)과 백(魄) [1]
@ 흑룡(黑龍)과 백(魄).
백의 의도는 건을 통째로 집어삼킨 후 자신이 가진 막대한 마이너스 에너지를 이용해 천천히 소화할 작정이었다.
쉽진 않은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건을 소화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쩜 대략 몇 달 동안 꼼짝없이 은밀한 곳에 숨어 조용히 지내야 할지도 몰랐지만 건에게 당하는 것보단 이게 훨씬 나았다.
적어도 백의 생각은 이러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늘 그렇듯 모든 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라는 법은 없었다.
원래라면 건은 이미 마이너스 에너지의 강력한 부정적 자아(自我)에 굴복당해서 정신을 잃었어야 했다.
그리고서 건의 육체를 마이너스 에너지가 조금씩 분해하는 그런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당연히 굴복당해야 했던 건의 정신이 멀쩡하다는 데부터 시작했다.
마이너스 에너지가 가진 부정적인 자아는 어지간한 정신은 단번에 집어삼켜 버릴 정도로 강렬했다.
그렇지만 그런 강렬한 마이너스 에너지의 부정적 자아도 건의 정신은 집어삼키지 못했다. 아니, 아예 침범 자체를 못했다.
그 이유는 바로 척준경의 혼력에 있었다.
아무리 마이너스 에너지의 부정적 자아가 강렬하다고 척준경의 혼력에 녹아들어 있는 패기를 찍어누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건은 마이너스 에너지에게 흡수된 상태에서도 또렷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건가?’
건은 모든 빛이 완벽하게 차단된 어둠 속에 갇힌 느낌이었다.
마이너스 에너지에게 흡수당할 때만 해도 건은 ‘이대로 끝인가?’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하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렇게 버텨서일까? 정말 끝이 아니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 없으며 거기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분명 건은 살아 있었다.
‘침착하자. 일단 내 몸 상태를 점검하자.’
여전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던 건은 살아있다고 기뻐하기에 앞서 일단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빠르게 몸 상태를 점검한 건은 몸은 특별히 이상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뭔가 외부에서 건의 몸을 매우 꽉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여긴 분명 대마수의 몸속일 거다. 그렇다면 날 잡고 있는 건 대마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그 검은색 기운인 건가?’
건은 대충 자신의 몸을 꽉 붙잡고 있는 존재가 뭔지 예상하고 있었다.
‘마이너스 에너지…… 분명 그 검은색 기운은 마이너스 에너지였어.’
건은 지금 자신이 거대한 마이너스 에너지 덩어리에 갇혀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
‘여기서 어떻게 탈출하지?’
호랑이한테 물려갔을 때 계속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다면 그다음 할 일은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지금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건이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있던 그 순간 백은 반대로 건을 제대로 집어삼킬 방법을 찾고 있었다.
백 역시 지금 상황이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놈은 먼저 건의 정신을 제압해야겠다고 판단했다.
백은 왜 건이 여전히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진 못했지만 적어도 자신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더욱 집중시키면 충분히 건의 정신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믿었다.
콰아아아!
마이너스 에너지가 지닌 부정적인 자아는 건의 정신을 향해 몰려들었다.
지극히 순수한 마(魔)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 매섭게 건의 정신을 휘감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쩌저정!
건의 정신은 그 매서운 폭풍과도 같은 정신 공격을 오롯이 이겨냈다.
정확히는 건의 정신을 보호하고 있는 척준경의 혼력이 모든 공격을 철벽과 같은 방어로 막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건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내 정신을 제압하려는 건가? 그 얘긴 내 정신을 제압하지 못하면 내 몸도 제압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 그렇다면 아직 여유가 좀 있구나.’
건은 지금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존재했다.
‘문제는 혼력이 날 영원히 지켜주진 못한다는 것이겠지.’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현재 건을 지켜주고 있는 척준경의 혼력은 이대로 계속 시간이 흐르면 언젠간 다시 척준경에게로 돌아가야 하는 힘이었다.
아무리 그 시기를 늦추고 늦춘다고 해도 최대 12시간 정도가 한계였다.
‘빨리 탈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건은 조급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느긋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게 건이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조급해진 건 백이었다.
백은 마이너스 에너지를 집중시켰는데도 건의 정신을 제압하지, 아니 아예 정신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 크게 당황하며 빨리 뭔가 다른 방법을 찾으려 했다.
녀석은 건이 지닌 이 철벽과 같은 정신방어가 영원히 지속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한시라도 빨리 건을 제압할 방법을 찾기 위해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한 백의 조급함은 결국 그에게 무리한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드드드드득!
백은 정신도 제압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의 육체 안으로 마이너스 에너지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이건 원래 정신을 제압한 상태에서 해야 하는 일이었다.
정신을 제압해 상대방이 전혀 대항할 수 없는 상태를 만든 후 마이너스 에너지를 상대방의 몸속에 집적 주입해 천천히 상대방을 마이너스 에너지에 동화시키는 게 정석이었다.
그런데 백은 거기서 정신을 제압하는 과정을 건너뛰었다.
급한 마음에 일단 저지르고 본 것이었는데 결국 이 선택이 백의 치명적인 실수가 되었다.
츠츠츠츳!
건은 자신의 몸속으로 마이너스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만약 건이 정신을 잃고 있었다면 마이너스 에너지가 쏟아져 들어와도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건은 재빨리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마이너스 에너지에 반응했다.
‘아예 날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건가? 하지만 네 맘대로 되진 않을 거다!’
건은 백이 밀어 넣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교묘하게 한쪽으로 유도했다.
마이너스 에너지를 제압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막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한쪽으로 유도를 할 뿐이었다.
이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마이너스 에너지는 굉장히 공격적인 성향을 지닌 기운이었기 때문에 적절히 몸속에 존재하는 혼력의 흐름만 제어해도 마이너스 에너지가 움직이는 방향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었다.
콰과과과!
마이너스 에너지는 건이 유도하는 방향으로 마구 쏟아져 들어갔다.
놀랍게도 건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유도한 방향은 바로…… 척준경과 자신을 잇는 링크 쪽이었다.
건은 그 짧은 순간 자신의 몸으로 쏟아져 들어온 마이너스 에너지를 자신과 척준경을 잇는 링크 쪽으로 유도해 통혼을 역(易)으로 적용해 척준경에게 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보낼 생각을 했다.
정말 황당한 생각이었지만 건이 아무런 이런 선택을 한 건 나름대로 정확한 계산이 밑바탕 되어 있었다.
척준경이 지닌 힘은 본래 아주 강력한 마이너스 에너지였다.
그 힘은 맹약을 통해 허락받은 통혼(강림, 승천)이란 과정을 거치며 완벽한 플러스 에너지가 되었다.
건은 그 부분에서 답을 찾았다.
통혼이란 과정이 도대체 어떻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플러스 에너지로 바꾸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마이너스 에너지를 역통혼(易通魂)을 통해 척준경에게 보내면 안전하게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모든 건 건의 예상일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짓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모험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넋 놓고 당하고 있는 것보단 이런 모험이라도 해보는 게 훨씬 좋았다.
건은 자신에게 약간의 여유 시간이 있다고 해도 지금 기회를 놓치면 오히려 죽도 밥도 안 될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곧장 승부를 걸었다.
이 역통혼의 승부수가 어떤 결과를 만들지는 건도 몰랐다.
다만…… 성공하길 빌며 전력을 기울일 뿐이었다.
콰아아아아아!
어쨌든 백이 건의 몸속으로 계속해서 밀어 넣는 마이너스 에너지는 모조리 역통혼을 통해 척준경에게로 흘러갔다.
그렇게 역통혼의 과정이 완성되자 그때부턴 오히려 마치 건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것처럼 되어버렸다.
콰과과과과과과!
백의 마이너스 에너지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빠르게 건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쯤 되자 오히려 백이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백은 이렇게까지 많은 양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건의 몸에 밀어 넣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적당히 마이너스 에너지를 밀어 넣고 그 에너지를 이용해 건의 육체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예 백이 가진 마이너스 에너지를 건이 모조리 먹어 치우고 있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건 백도 그리고 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실 백만큼은 아니지만, 건도 약간은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이 완성한 역통혼이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보여줄지는 몰랐었다.
어쨌든 지금 이 순간에도 백의 마이너스 에너지는 끊임없이 건의 몸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흘러들어 간 마이너스 에너지는 곧장 역통혼의 과정을 통해 다시 척준경에게로 흘러들어 갔다.
대마수가 가진 마이너스 에너지의 총량은 대단히 많았다.
사실 마이너스 에너지의 총량만 따지고 보면 대마수는 거의 중급 혼마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건은 한참 동안 백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다.
백은 계속 건에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빼앗기면서 점점 대마수로써 지녀야 할 당연한 마성(魔性)이 조금씩 사라졌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대마수 ‘백’의 뼈대가 되었던 영수 ‘백’의 정신이 마이너스 에너지의 압박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점점 몸의 통제권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건 영수 ‘백’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기적이었다.
설마 자신의 몸 대부분을 집어삼켰던 마이너스 에너지가 이런 식으로 몸 밖으로 빠져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영수 ‘백’은 결국 건이 마지막 남은 마이너스 에너지 한 방울까지 모조리 흡수하자 드디어 자신이 자유를 되찾았다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이너스 에너지에게 몸을 빼앗긴 상태가 꽤 오랫동안 유지된 것 때문에 예전에 지녔던 영기(靈氣)가 대부분 소멸 된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유를 찾은 건 영수 ‘백’에게 너무나 기쁜 일이었다.
그리고 영수 ‘백’이 그렇게 되찾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건은 백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었다.
건이 흡수한 마이너스 에너지는 대단히 많았다.
그런데 건은 그걸 모조리 척준경에게 보내버렸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건은 이대로 모든 게 정리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건의 생각일 뿐이었다.
척준경에 흘러들어 갔던 마이너스 에너지…… 그 에너지는 건의 예상처럼 그렇게 쉽게 정리될 힘이 아니었다.
척준경은 건이 자신을 향해 마이너스 에너지를 공급하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 어떤 소울러가 역통혼을 통해 오히려 영혼에게 마이너스 에너지를 공급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척준경이 보기에 건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소울러였다.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마이너스 에너지를 척준경에게 보낸 것까진 좋았지만 사실 척준경에게 이 마이너스 에너지는 쓸데없는 잡기(雜氣)일 뿐이었다.
자신이 지닌 힘에 대한 자존심이 굉장히 강했던 척준경은 절대 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흡수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이런 잡기를 흡수하면 자신이 지닌 고유의 심혼(心魂)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척준경은 어쩔 수 없이 수고스러움을 무릅쓰고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이 마이너스 에너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척준경의 성격을 생각했을 때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건 정말 기적적인 일이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아예 마이너스 에너지가 들어오는 걸 막아버렸겠지만 그러면 건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꾹 참고 마이너스 에너지를 전부 받아주었다.
아무리 척준경이라고 해도 이번 맹약은 아주 오랜 세월을 기다려 맺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허무하게 끝낼 수 없었다.
척준경은 그렇게 그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은 친절함을 보여주며 마이너스 에너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그는 마이너스 에너지를 압축하고 또 압축했기 때문에 대마수가 지녔던 막대한 마이너스 에너지는 겨우 달걀크기만큼의 작은 덩어리로 뭉쳐졌다.
자신에게 흘러들어온 모든 마이너스 에너지를 하나의 덩어리로 뭉친 척준경은 더는 마이너스 에너지가 흘러들어오지 않자 그때서야 그 덩어리를 다시 건에게 흘려보냈다.
이렇게 역통혼을 통해 척준경에게 흘러갔던 마이너스 에너지가 다시 건에게 돌아왔다.
콰아아아아!
“헉!”
건은 순간 척준경과 이어진 링크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한 덩어리의 기운이 자신을 향해 쏟아져 들어오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기운은 척준경이 직접 가공하고 거기에 역통혼이 아닌 정식 통혼의 과정을 거치면서 완벽하게 건의 의지에 종속된 기운으로 바뀌어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그 기운은 본래 대마수의 마이너스 에너지였기 때문에 온전히 건에게 흡수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 기운은 건의 몸에 다시 돌아오자마자 건의 오른팔로 이동했다.
그리곤 오른팔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건의 피부 쪽으로 흩어졌다.
스르르르르르.
그 순간 건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오른팔 전체를 휘감는 한 마리의 검은색용을…….
놀랍게도 대마수의 마이너스 에너지는 한 마리의 흑룡 문신이 되어 건의 오른팔에 자리를 잡았다.
건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모든 위협이 사라지고 이젠 안전해 졌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이미 그의 몸은 자유를 되찾았고 그를 위협하던 모든 존재는 사라졌다.
남은 건…….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마리의 작은 흰 돼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