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
더 소울(The Soul) - 흑룡아(黑龍牙) [1]
@ 흑룡아(黑龍牙).
“크허! 주, 주인님 이게 뭔가요?”
열심히 음식을 먹던 백은 갑자기 자신의 뒤편으로 마치 커다란 구렁이 한 마리 같은 검은색 용이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며 건을 향해 물었다.
“아, 놀랄 거 없어. 괜찮으니까 그냥 넌 먹던 거나 마저 먹어.”
건은 그런 백을 무시하고 계속 흑룡에 집중했다.
‘자, 여기까진 모든 게 다 내 마음대로 되었다. 그런데 이 용을 어디에 써먹지? 그냥 이대로 소환수처럼 부리면 되나?’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 건은 흑룡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일단 흑룡 자체가 가지는 물리적 능력도 있어 보였다.
확인을 한 건 아니었지만, 흑룡을 소환수처럼 부리면 적어도 한 마리의 커다란 구렁이를 내 마음대로 부리는 효과를 볼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흑룡이 지닌 마이너스 에너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단순하게 흑룡을 부리는 건 뭔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였다.
‘뭔가 더 좋은 방법이 있으려나?’
건은 흑룡을 이대로 그냥 흑룡 자체로만 사용하는 건 별로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건은 흑룡을 몸밖에 꺼내놓고 한참을 고민했다.
건이 고민하고 있을 때 백은 자신 앞에 있던 모든 음식을 먹어치우고 조심스럽게 침대 쪽에 작은 두 발을 올려놓으며 흑룡을 올려다보았다.
백은 영수였기 때문에 당연히 기운의 흐름에 아주 민감했다.
특히 그는 한때 신수가 되기 직전까지 영기를 쌓았던 영수였기 때문에 더욱 기운의 흐름에 민감했다.
그래서일까?
백은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흑룡이 지닌 기운의 흐름을 아주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다.
“……주인님…… 이 녀석 용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떤 모습으로도 변형할 수 있겠는데요?”
갑작스러운 백의 말에 건은 침대 밑에서 낑낑대고 있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 그러니까…… 제가 지금 녀석의 몸속에 흐르는 기운의 흐름을 읽어봤는데 저 모습은 그냥 형식적인 모습일 뿐이고 실제로는 기운이 무작위로 뭉쳐있는 덩어리일 뿐이에요. 애초에 주인님이 저 녀석을 처음 받아들일 때…… 무의식중에 용의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에 지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일 겁니다.”
“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원하면 모양을 바꿀 수도 있다는 거야?”
“네, 제가 잘못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분명 그럴 겁니다. 간단히 말하면 저 기운은 마치 찰흙과도 같은 놈이에요. 찰흙이 어떤 모양이 될지는 찰흙을 만지는 사람의 마음인 것처럼 저 기운이 어떤 모양을 갖출지는 주인님의 뜻에 달린 거죠.”
백은 보다 이해가 쉽게 건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확실히 영수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기 때문에 상당히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백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건은 백의 얘길 듣곤 조용히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 흑룡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그 흑룡을 향해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다.
그러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츠츠츠츳!
흑룡이 건의 오른손 쪽으로 이동하며 갑자기 모습이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끈적끈적한 검은색 액체처럼 변한 흑룡은 곧바로 다른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스르르르.
그것은 바로 한 자루의 검이었다.
이번에도 역시 그 빛깔은 빛을 빨아들일 것만 같은 먹빛이었다.
크기는 대략 1m 정도였고 흔히 TV 사극에서 많이 보던 그러한 형태의 평범한 검이었다.
‘진짜…… 내가 상상한 그대로 만들어졌잖아?’
건은 정말 신기하단 표정을 지으며 검을 조심스럽게 휘둘러 보았다.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았고 무엇보다 검날에 서려 있는 날카로운 기운이 보통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디 한 번…….’
스윽.
건은 그 검을 아주 살짝 침대 옆쪽 모서리에 가져가 보았다.
서걱!
그러자 놀랍게도 그냥 살짝 검을 가져간 것만으로 침대 모서리의 나무가 잘려나갔다.
‘헐, 장난 아니네.’
건은 그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그는 자주는 아니지만, 검도를 배우면서 몇 명의 숙련자들이 진검을 사용하는 걸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들이 사용한 진검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날카로워 보였었는데…… 그런 진검들도 지금 건이 들고 있는 검는 비교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우아! 대단한데요. 아주 아주 작은 알갱이처럼 뭉쳐있는 수많은 기운이 하나로 합쳐져 있기 때문에 모양이 자유자재로 바뀔 수 있는 건 물론이고 그 안에서 서로 강력하게 얽히기 때문에 한 번 모양을 완성하면 쉽게 흩어지지 않겠네요. 와, 이런 건 저도 진짜 처음 봐요.”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넌 이 검 안의 기운을 볼 수 있는 거야?”
“헤헤헤, 제 특기가 바로 기운을 읽는 능력이었습니다. 단언컨대…… 저보다 기운을 잘 읽을 수 있는 영수는 없을 걸요?”
백은 자부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백의 기운을 읽는 능력은 대단히 뛰어났다.
다만…… 그것을 제외한 다른 능력들은 평균적인 영수의 능력들보다 떨어지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백의 그런 능력이 건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럼 내가 내 마음대로 이 기운을 계속 변형시켜도 문제가 없을 거 같아?”
“흐음…… 그건 확신할 순 없지만…… 너무 많은 모양으로 변형시키면 기운들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결합력이 조금 약해질 수도 있겠네요. 아무래도 아주 작은 알갱이와 같은 수많은 기운의 덩어리들이 하나로 합쳐져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너무 자주 반복해서 계속 다른 모양을 변형시키면 기운이 흩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백은 나름대로 자신이 분석한 내용을 그대로 건에게 얘기해주었다.
“너무 자주 반복한다는 게 어느 정도를 얘기하는 거야?”
“으음, 정확한 건 아니지만 대략 하루에 네 번 이상 변형시키는 건 무리가 있을 거 같아요. 안전하게 하시려면 저 기운의 가장 안정된 형태가 된 흑룡 모양을 제외하고 하루에 세 가지 정도의 모양으로 변형시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만한 결합력을 지니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세 번이라…… 뭐,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백의 말을 들은 건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이 흑룡에 대해서는 아직 좀 더 확인해봐야 할 게 많았지만, 건은 실제로 하루에 세 번 정도만 변형할 수 있다고 해도 충분할 것으로 생각했다.
“저, 그런데 주인님…….”
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백이 살짝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건을 불렀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건은 백이 흑룡이 지니고 있는 심각한 문제라도 발견한 줄 알고 살짝 놀라며 물었다.
“아, 아니요. 그건 아니고요. 죄송한데…… 혹시 먹을 걸 좀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아직 배가 고파서…….”
백의 대답을 들은 건은 황당하단 표정을 지었다.
사실 건이 백에게 준 음식의 양은 거의 3인분이 넘는 양이었다.
그걸 순식간에 흡입하고 더 달라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너 돼지 아니라며?”
“돼, 돼지는 절대 아닙니다. 다만 영기를 너무 많이 잃어서…… 그런 겁니다.”
백은 황급히 핑계를 댔다.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거면 돼?”
건은 귀찮은 표정을 지으며 백에게 물었다.
그나마 백이 앞선 흑룡을 다루는 과정에서 도움을 줬기 때문에 뭐라고 하지 않은 거지 만약 그런 도움도 없었다면 속의 계약을 괜히 했다고 투덜거릴 뻔했다.
“흠흠, 가능하다면 맛있는…….”
백은 염치불구하고 맛있는 음식이라고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건은 그런 백의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이제 먹을 건 시리얼밖에 없다. 그걸로 참아라.”
“네, 넵!”
백은 황급히 말을 끊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단 지금은 뭐라도 먹어서 허기를 채워야 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업었다.
* * * *
대충 흑룡의 정체와 사용법을 알게 된 건은 다시 흑룡을 오른손에 집어넣고 간단히 샤워한 후 카페로 출근했다.
당연히 백은 건을 따라 카페 헤븐으로 왔다.
이번에도 역시 현실 세상에서는 건을 졸졸 따라다니는 백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확실히 백의 말대로 지금 시대에선 영수를 볼 수 있는 일반인이 거의 없는 것 같았다.
건이 카페에 도착하자 연희는 그와 함께 들어온 꼬마 돼지의 모습을 한 백을 보며 살짝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수잖아.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왜 영수를 데리고 다녀?”
“흐음…… 얘기하자면 조금 긴데…… 일단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야, 인사해라. 앞으로 네가 나한테 하는 것만큼 똑같이 깍듯하게 모셔야 할 분이다.”
“안녕하십니까! 백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은 본능적으로 눈앞에 있는 연희가 건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란 걸 느꼈기 때문에 알아서 먼저 깍듯하게 행동했다.
“호오, 말도 제법 잘하네? 겉모습만 보고 이제 갓 영수가 된 녀석인 줄 알았는데…….”
연희는 다시 한 번 놀랍다는 표정을 지으며 얘기했다.
사실 영수들이라고 해서 모두 지금의 백처럼 유창한 언어구사능력을 지닌 건 아니었다.
이 정도의 언어구사능력은 최소 중상급 이상의 영수가 되어야 했다.
그런데 백은 연희가 볼 땐 아무리 좋게 봐줘도 간신히 하급을 벗어난 정도의 영수로 보였다.
“하하하하, 사연이 조금 있습니다.”
백은 연희가 왜 놀랐는지 알았기 때문에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뭐, 어쨌든 반갑다.”
사연이 있다는 것만으로 연희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성격상 굳이 그 사연까지 알려고 들진 않았다.
“근데 누나, 혹시 영수에 대해 잘 알아요?”
“잘 아는 것까진 아니라고 해도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지.”
“그럼 혹시…….”
건은 슬쩍 백의 눈치를 보며 연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었다.
“영수랑 속의 계약을 하면 좋은 거예요?”
연희에게 가까이 다가온 건은 백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너 속의 계약까지 한 거야? 이야, 백건 대단한데!”
건은 속삭이듯 물었지만, 연희는 재미있단 표정을 지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흠흠, 뭐 그렇게 됐어요.”
“후후후, 걱정하지 마. 속의 계약은 너에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 건 전혀 없는 계약이야. 저 아기 돼…… 아니 백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아직은 백이 가진 힘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조금만 더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떤 식으로도 분명 너에게 도움이 될 거야. 실제로 경계에는 영수와 속이 계약을 맺고 그 영수들을 이용해 강력한 힘을 얻은 이들도 존재해. 경계에선 그들을 ‘소환사(Summoner:서머너)’라고 부르지.”
“오, 영수를 이용하는 이들도 있었군요.”
“당연하지. 제대로 된 소환사는 소울러들도 절대 무시하지 못해. 특히 소울러이면서 소환사이기도 한 이들은 더욱 희귀해. 그런 의미에서 넌 지금 상당히 희귀한 존재가 된 거야.”
“에이, 뭐 그래 봤자…….”
건은 뭔가 말을 하려다가 한참 카페 구경에 정신이 팔려 있는 백을 바라보곤 말을 삼켰다.
그가 하려고 했던 말은 ‘그래 봤자 먹보 아기 돼지 한 마리만 얻었을 뿐이에요.’였지만 굳이 그 얘길 백 앞에서 할 필요는 없었다.
“너무 실망하지 마. 속의 계약을 맺은 영수는 속의 계약을 맺지 않는 영수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졌어. 그러니…… 너의 아기 돼지도 언젠간 너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영수로 성장할 거야.”
건이 말을 삼켰지만, 연희는 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듯 얘기했다.
특히 그녀는 마지막 말은 백이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이듯 얘기하는 배려도 해주었다.
하지만 사실 그런 배려는 굳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백은 연희와 건의 대화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열심히 카페 이곳저곳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놀랍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 너 왜 그렇게 정신 사납게 돌아다녀? 화장실이라도 찾는 거야?”
건은 그런 백을 바라보며 물었다. 물론 영수인 백은 화장실이 필요 없는 존재였지만 건이 그걸 알 리는 만무했다.
“주, 주인님! 여기…… 정말 엄청납니다.”
백은 자신은 영수라 화장실 같은 게 필요 없다고 대답하는 것도 잊은 체 아주 놀란 표정으로 건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얘기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느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대단하네요. 여긴 분명 영혈(靈穴)입니다. 그것도 아주 상급의 영혈…… 서울에 아직 이런 영혈이 남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관리가 잘 되어 있다니…… 정말 놀랍네요.”